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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민들레 홀씨 제121호: 벌거벗은 카우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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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티브이를 보다가 뉴욕의 ‘벌거벗은 카우보이’라는 배우를 비춰주는 것을 보았다. 그는 뉴욕 맨해튼 거리의 악사라고도 하는 로버트 버크이다.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출신인데, 일년 내내 뉴욕 42번가 타임스 스퀘어에서 알몸에 흰 삼각팬티 하나만 입고 기타 치며 노래를 한다. 지난겨울 미 동부에 눈이 많이 오고 매우 추웠을 때도 그는 공연을 계속했다.

그는 뉴저지 근방에 사는 것 같은데 혼자 자가용을 타고 뉴욕 시내로 들어간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차 옆에서 흰색 팬티만 남기고 훌러덩 옷을 다 벗어서 차 트렁크에 넣는다. 그리고 카우보이들이 신는 멋있는 흰색 부츠를 신고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기타를 메면 준비 끝이다. 치렁치렁하게 긴 머리와 근육질의 몸매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는 곧장 걸어서 맨해튼 42번가 타임스 스퀘어 가서 길 한 가운데서 공연을 시작한다. 이미 뉴욕의 명물이 되어서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구경을 하고 같이 사진을 찍는다. 사람들은 젊은이 노인 할 것 없이 그를 매우 좋아해서 그와 함께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사진을 찍고 나면 그의 부츠에 1달러를 팁으로 넣어준다. 난 그게 그냥 부츠인 줄 알았는데 팁을 받는 통을 겸하는 것이다. 부츠에는 달러 표시와 팁이라는 영어가 쓰여 있었다. 기자가 왜 그런 일을 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가 대답하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저기 브로드웨이 극장에 가보세요. 관객 50명 앉혀놓고 연극하는데 그것보다는 이게 낫잖아요?”

티브이 해설자는 연신 그는 겁 없는 사람이라고 추켜세웠다. 맞는 말이다. 용기가 있는 사람이다. 모르긴 해도 그가 잘 나가는 뮤지컬 배우이거나 탤런트였다면 그렇게 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도 써주지 않으니까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말마따나 업주들에게 뽑힌 잘나가는 뮤지컬 배우들 수십 명이 겨우 50여 명의 관객을 앉혀놓고 공연할 때, 그는 거리에서 수천 수만의 사람들에게 공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무슨 구걸 행위인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는 자신은 공연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공연이 끝나고 주차장에 와서 부츠를 벗는데 꽤 많은 돈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그게 2-3백 달러는 된다고 했다. 한번 공연에 그 만큼이고 하루에 네 번 공연하니 수입이 천 달러는 될 거라고 했다. 휴우-, 우습게 알았는데, 하루 수입이 천 달러라니, 우리 돈으로 120만 원이나 되는 돈이다. 한달에 열흘만 일한다고 해도 월 천만 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셈이다. 그가 브로드웨이 극장가에 번듯한 뮤지컬 배우로 뽑히지 못한 것을 한탄만 하고 있었다면, 그런 수입을 올리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자신이 배우인데도 공연할 곳이 없다는 허탈감에서 괴로워해야 했을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가 다들 어렵다고 하고 특히 실업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장사나 사업하는 사람들은 문을 열어도 이전만큼 손님이 오지 않아서 걱정들을 한다. 책을 만들러 을지로에 가서 보니 늘 분주하던 출력소, 인쇄소, 제본소 사람들이 할 일이 없어서 졸거나 케이블 TV를 보고 있었다. 이구동성으로 불경기 탓이라고 하였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이렇게 불경기일 때 꼭 현대판 신데렐라 이야기가 판을 친다. <파리의 연인>이니 <황태자의 첫사랑>이니 하는, 요즘 인기 있는 TV연속극들을 보면 다 가난하고 실직한 여성들이 기업 총수의 아들과 사랑에 빠지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그 여성들은 그 사랑이 성공하면 아무런 노력 없이 일거에 신분상승을 이루게 된다. 거기 나오는 기업 총수의 아들들은 비싼 외제차를 타고 엄청난 소비를 해대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불경기 속에서 돈을 마음껏 쓰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돈 쓰는 것을 보면서, 또 여자 주인공이 신분상승을 하는 것을 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시간 죽이기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 외모 하나만 보고 그렇게 쉽게 사랑에 빠지는 어수룩한 재벌 총수가 있을 리도 없지만, 있다 해도 다들 그런 여주인공 같은 외모를 갖출 수도 없는 일이다. 그리고 가장 말이 안 되는 것은, 수백 만 시청자들이 그런 연속극들을 보는 동안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진정한 행복의 근원을 그런 재벌 총수들에게 빌붙는 데서 찾고 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비굴하고 추잡한 발상인가! 여주인공이 빼어난 외모를 이용하여 재벌 총수의 사랑을 받을 때 시청자들은 안심하며 박수를 친다. 행여라도 그들이 헤어질 가능성이라도 제기되면 인터넷으로 항의를 하고 난리를 친다. 왜들 그러는가? 그것이 아름다운 사랑이라도 된다는 말인가? 기껏해야 돈 많은 남자와 얼굴 예쁜 여자가 적당한 거래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불경기 때일수록 그런 허망한 환상에 빠져 시간을 죽일 것이 아니라, 뉴욕의 벌거벗은 카우보이처럼, 스스로 할 일을 기획하고 일할 장소를 찾아내고 사람들을 찾아가서 자기를 보여주는 용기가 필요하다. 벌거벗은 카우보이에게 ‘공연’이 중요한 것처럼, 오늘 우리도 사람들을 만나고 우리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가 뉴욕의 길거리에서 공연 장소를 만들어낸 것처럼, 우리도 공연할 장소가 없다는 한탄만 하지 말고, 우리 각자가 처한 곳에서 창의적으로 그런 장소를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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