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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더 넓게 더 깊게 민들레 홀씨 제1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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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호 / 2004 년 10월 7일 발행 (부정기 발행) 발행처: 민들레성서마을    발행 및 편집인: 김재성    

더 넓게 더 깊게   문동환/ 한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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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 동안 아내와 같이 몬테나에 있는 <글레셔 마운틴 국립공원>에 휴가를 갔다 왔다. 은퇴해서 쉬는 사람이 휴가를 간다는 것은 미안한 일이지만 그 공원에 한 번 가 본 일이 있는 아내가 하도 아름답다고 하면서 나와 같이 한 번 가보고 싶다고 해서 마지 못하는 척 따라 갔었다. <글레셔 마운틴>이란 수백만 년 동안 녹아 본 일이 없는 눈 어름에 뒤덮인 산을 말한다. 불행히도 지난 몇 해 동안 엘니뇨 때문에 날씨가 너무 더워서 눈이 많이 녹아 이젠 여기 저기 음지 진 곳에 손바닥만한 눈들이 널려 있을 정도로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실망하게 한다.

하지만 서로 팔을 엮은 듯이 둘러서고 있는 산들이란 실로 우람하고 아름다웠고 그 산 그림자들을 품에 안은 호수들이란 신비스럽기만 했다.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이룩된 산들의 모양이란 정말 다채로웠다. 어떤 것은 큰 조개를 세워놓은 것 같고 어떤 것은 높은 산성 같다. 또 어떤 것은 큰 병풍으로 둘러막은 것 같고 또 어떤 것은 높은 피라미드과도 같았다. 그리고 이 산들은 흔히 높은 낭떠러지로 끝나고 그 밑에는 호수로 잇닿은 깊고 푸른 물이 늠름히 흐르고 있다. 밑바닥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호수에 발을 담그고 그 절경을 둘러보노라면 정말 신선의 세계에 온 느낌이 든다. 수술 후 아직 기운이 회복되지 않아 좀 힘들기는 했으나 이 신비한 경치를 같이 보고 싶어 한 아내의 심정이 새삼 고맙기만 했다.

이런 우람하고 아름다운 산 속에서 나는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곳을 찾아온 미국인들은 이곳저곳에 둘러서서 산 중턱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ꡒ저들이 도대체 무엇을 저렇게 주시하고 있지?ꡓ 하고 아내에게 물었더니 하는 말이 ꡒ곰을 보고 있지요ꡓ 하는 것이다. 저들은 맨눈으로는 볼 수도 없는 먼 곳에 점처럼 있는 곰을 보느라고 야단들이었다. ꡒ저 봐. 저기 있잖아. 자갈밭으로 기어가는 것이 보이지 않아?ꡓ 하면서 서로 밀치고 야단이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은 그 곰을 보려고 이 곳에 네 시간이나 서 있었다는 것이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아름다운 자연 속에 와서 깨알과도 같은 곰 한 마리를 보려고 네 시간씩이나 기다렸다니 나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날 저녁 샤워라도 하고 싶어서 호수 가에 있는 호텔에서 하룻밤 머물렀는데 새벽같이 창 앞에서 떠드는 소리가 나서 커튼을 열어봤더니 거기에도 두 세 사람이 서서 먼 언덕 위를 가리키면서 ꡒ저기 봐 저기도 곰이 있어ꡓ 하면서 신나 하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새벽부터 해 지기까지 곰 구경에 정신을 잃고 있었다. 그 우람한 산과 신비로운 호수들이 아깝게만 느껴졌다.

이런 기현상을 보면서 나는 한 가지 깊이 깨달은 것이 있다. 그것은 사람이란 그가 원하는 어떤 특수한 것만 보도록 프로그램이 돼 있다는 것이다.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면 렌즈로 들어오는 것은 다 필름에 찍히게 돼 있다. 그러나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골라보도록 돼 있다. 그리고 무엇을 보게 될 것이냐 하는 것은 어려서부터 그렇게 프로그램이 된다. 금강산 만물상을 볼 때 사람들은 거기에서 다 다른 모양을 보는 것이 바로 이것을 말한다. 미국인들에게 있어서는 곰이란 특별한 의미가 있다. 어려서부터 저들은 곰에 관한 이야기를 그림과 동화책으로 수없이 많이 들었다. 그러기에 저들은 곰에 대해서 특별한 흥미와 애착을 가진다. 따라서 산에 오면 곰부터 찾는다. 특히 곰이 나타난다는 산에 오면 더 그렇게 된다. 그러기에 어려서부터 무엇을 좋아하도록 교육을 하느냐 하는 것이 그렇게도 중요하다.

한번 나는 어떤 미국인 가족과 같이 자동차 여행을 한 일이 있었다. 그 차안에 초등학교 다니는 두 어린이가 있었는데 저들은 지나가는 자동차의 이름과 제작 연도 맞히기 내기를 했다. 그 가운데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 있었는데 두 어린것이 지나가는 자동차의 이름과 연도를 그렇게 잘 맞힐 수 없었다. 자동차 문화에서 자란 어린이의 특성이다. 요즈음은 TV 문화가 지배하는 때이다. 따라서 TV가 우리들이 무엇을 볼 것인지를 프로그램 화 한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폭력과 섹스이다. 스릴과 스포츠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 배후에는 상품을 팔아서 치부하려는 산업문화가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국립공원에서 곰을 주시하고 있듯이 우리들은 TV가 설정해주는 상품을 주시하면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보지 못하고 있다. 날로 적어져 가고 있는 지구촌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그 안에서 역사하고 계시는 하느님이 하시려는 것이 무엇인지를 전혀 보지 못하고 있다. 전 세계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유일한 초강대국 백성들이 산허리에 있는 곰 한 마리에만 관심을 쏟고 있으니 야단이 아닐 수가 없다.

이것은 우리 한국인이라고 다를 바가 없다. 글레셔 마운틴 국립공원에서, 기자생활을 약 15년간 한 한국 언론인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변호사일을 보는 그의 아내와 같이 미국에 관광을 온 사람이었다. 이국땅에서 동족을 만나는 것처럼 반가운 일이 없다. 더구나 나를 안다는 사람을 만났으니 더욱 좋았다. 서로 인사를 나눈 다음 요즈음 한국 사정을 물으면서 걱정을 했더니 그 기자는 나에게 걱정을 하시지 말라고, 한두 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내 마음은 몹시 쓸쓸해졌다. 요즈음 기사를 읽어보면 실직자가 수백만에 달하고 서울역이나 공원들에는 집 없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다는데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한국 경제가 온통 외국 자본가들의 수중에 넘어간다는데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제삼세계의 앞날에 검은 구름이 뒤덮이고 있는데 이 사람의 눈에는 이런 것들이 보이지 않는 것임에 틀림없다. 하기야 아내까지 변호사이고 보면 생활에는 아무 걱정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의 눈에는 TV가 선전하는 문화생활밖에는 보이지 않으리라.

그러면서 나의 관심사는 어떻게 하면 이 백성들에게, 특히 어린이들에게 좀 더 넓게, 그리고 좀 더 깊게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도록 도울 것이냐 하는 것이다. 온 인류를 한 가족처럼 보고 그 안에서 일하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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