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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지리산 편지] 동양 평화론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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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30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사살한 죄로 안중근 의사가 일본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게 되자 그는 항소를 포기하고는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항고를 포기하겠다. 당신들이 어차피 나를 사형시킬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요청이 있다. 내가 지금 틈틈이 쓰고 있는 글이 있다. ‘동양 평화론’이란 제목의 글이다. 바라기는 내가 이 글을 마칠 때까지 사형 집행을 보류하여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일본 법정은 그의 이런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형이 확정된 일주일 뒤에 형을 집행하고 말았다. 그래서 그의 글은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 내용에 담겨진 탁월한 경륜과 비전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글이다. 교육이라고는 어린 시절 마을 서당에 다닌 것밖에 없는 안중근 의사가 어떻게 이렇게 탁월한 사고를 할 수 있었을까 하고 읽을 때마다 감탄을 금할 수 없다.
그 내용 중에는 조선 반도를 중심으로 하여 각축을 다투고 있는 일본, 중국, 러시아 여러 나라들이 공동으로 군축을 할 방도와 공통으로 사용할 화폐를 발행하여 경제 공동체를 세워 나갈 일, 공동체의 중심을 중국의 여순으로 삼을 것, 그리고 동양 평화 공동체의 기본이 세워질 때까지의 위탁 관리를 로마 바티칸에 부탁할 것까지를 쓰고 있다. 당시로서는 유엔이 세워지기 전이니까 로마 바티칸이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안중근 선배는 가톨릭 신자였다. 15세 때인가에 가톨릭에 귀의한 후 영세를 받으며 ‘도마(Thomas)’란 영세 명을 받았다 그래서 도마 안중근으로 불렸다. 그가 학문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으면서도 ‘동양 평화론’에 담긴 탁월한 경륜을 전개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신앙에 입각한 영성 생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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