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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지리산 편지]성경의 토지 공개념(土地公槪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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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7

우리나라에서 주택 값이 너무 오르는 이유들 중의 하나가 땅값 때문이다. 도시의 웬만한 요지에는 땅값이 평당 1000만 원 이상을 가니 그 땅값으로 인하여 집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정권이 바뀔 때마다 토지 공개념을 실천하여 서민들이 땅값으로 인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하겠다는 정책 발표를 하곤 하지만 그때마다 이런저런 이유로 실천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토지 공개념의 근원(根源)은 아무래도 성경이 아닌가 싶다. 그 중에서도 구약성경 의 레위기 25장 23절이 구체적인 예가 될 것 같다.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이 말씀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성경은 토지를 상품화하지 못하게 한다. 부동산 투기를 금하고 있음은 더 말할 나위없다. 성경이 토지를 사고팔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토지의 주인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만든 사람이 주인이다. 그런데 토지는 하나님이 만드셨다. 하나님이 주인인 땅을 그 땅에 잠시 동안 나그네로 살고 있는 사람이 사고파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이 그러하듯이 한국에서도 부동산 투기로 인해 국민 경제에 끼치는 나쁜 영향이 엄청 크다. 이런 국민 경제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성경이 가르쳐 주는 토지에 대한 교훈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 볼 때이다.  

연전에 작고하신 강원도 예수원(Jesus Abbey)의 대천덕 신부께서 살아생전에 자주 하시던 말씀이 있다. 한국이 이만큼이나마 복을 누리고 살 수 있게 된 것은 우리 자신들이 미처 모르는 사이에 성경의 법 두 가지를 실천하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첫째는 성경에서 “나그네를 대접하라”고 거듭 가르치고 있는데, 우리 남한이 해방 이후 6ㆍ25전란을 거치면서부터 무려 천만에 이르는 북한 피난민들을 받아들여 함께 지낸 것이 복을 받게 된 이유라 하였다. 실제로 길고 긴 세계사에서 우리처럼 이렇게 좁은 땅에서 그렇게 짧은 기간에 많은 피난민 나그네를 받아들여 함께 번영의 길로 이끌어 낸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나그네를 대접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실천한 셈이었다.

둘째는 성경이 지시하는 토지법을 지킨 일이었다. 바로 1950년 6ㆍ25전란이 일어나기 두 달 전에 완성하였던 토지개혁(土地改革)을 일컫는다. 성경이 가르쳐 주는 토지법은 철저하게 농자유전(農者有田) 원칙이다. 농사짓는 사람이 땅의 주인이 되는 법을 일컫는다. 지주(地主)와 소작인(小作人)의 관계를 성경은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지주이시기에 다른 지주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지주이신 땅을 그 땅에 살면서 농사짓는 사람이 그 땅의 경작을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청지기로서의 농사꾼이다.

1950년 6·25전란이 일어나기 두 달 전인 4월에 마무리하였던 토지개혁이 남한이 공산화되는 것을 막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음은 이미 지적한 바이다. 그때 토지개혁을 주도하였던 주역은 당시 농림부 장관이었던 조봉암(曺奉岩)장관이었다. 남한이 토지개혁을 실시하기 전에 이미 토지개혁을 끝냈던 북한의 경우는 무상몰수 방식이었으나 남한의 경우는 지주들에게 유상지금의 방식이었다. 그때 농지를 받게 된 소작인들이 두 달 후에 일어난 6·25전란에서 받은 농지를 지키기 위하여 열심히 싸웠다는 것이다.

어느 학자는 지적하기를 만일 그때 농지개혁이 제때에 있지 아니하였더라면 6·25때에 전국에서 소작인들이 봉기하여 이 땅이 공산화 되는 비극이 일어났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 하였다. 그러나 농지를 얻게 된 소작인들과 그 아들들이 땅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싸웠기에 공산화를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그때 토지개혁이 너무 부실하여 알맹이가 빠져있었기에 지금은 집을 지을 수 있는 대지값이 턱없이 오르게 되는 결과에 이르렀다. 본래 토지라면 농지, 대지, 산지 셋을 합하여 토지라 한다. 그런데 그 당시의 토지개혁에는 대지와 산지는 빼놓고 농지만 대상으로 삼았기에 지금처럼 부실한 개혁이 되고 말았다는 지적이다. 듣기로는 조봉암 팀이 처음 작성한 개혁안에는 모두다 포함되어 있었으나 당시 집권여당인 자유당이 지주 출신들이 중심이어서 요모조모로 핵심을 빼버리고 농지만 개혁하기에 이르렀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당시에 그 만큼이나마 토지개혁을 실시하였던 내용이 성경의 토지법에 많이 가까운 내용이었기에 이로 인해 이 땅이 공산화되지 않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남을 수 있게 된 계기였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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