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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지리산 편지] 호지명(胡志明)같은 지도자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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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02

나라 사정이 혼란스러워질수록 지도자에 대하여 생각하게 된다. 지도자의 인격과 경륜의 정도에 따라 나라와 백성들의 사정이 달리지겠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이 나라에 호지명(胡志明) 같은 지도자가 나라를 이끌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내가 호지명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된 동기는 그가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牧民心書)를 정독하였다는 말을 듣고 나서 부터이다. 그는 비록 공산주의자이었지만 우리가 아는 여느 공산주의자들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는 평생에 정적을 숙청한 적이 없었고 자신을 우상화하거나 신격화하는 일이 없었다. 그는 국민들로부터 ‘호(胡) 아저씨’로 불리면서 일생을 청빈하게 독신으로 살았다. 죽을 때는 옷 한 벌, 신 한 켤레만 남기고 죽었다.

마치 메뚜기와 코끼리 사이의 싸움에 비유할 수 있을 월남과 미국간의 전쟁에서 월남이 승리 할 수 있었던 것은 지도자 호지명의 인격과 지도력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호(胡)가 월남 국민들로부터 어느 정도의 지지와 신뢰를 받았느냐하면 남· 북 월남이 서로 전쟁을 하던 중에도 호지명의 생일이 되면 적인 남쪽 월남에서도 국민들이 가게 문을 닫고 그의 생일을 기릴 만큼 전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백성들은 굶주림으로 죽게 하면서도 궁전을 지은 북녘의 지도자에 비하면 하늘과 땅 만큼이나 차이가 있는 지도자였다.  

호지명(胡志明)같은 지도자를 기다리며 ②

호지명의 사상을 간추려 말하자면 ‘3꿈 정신’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민족주의자이면서 동시에 공산주의자로서 자기 나름대로 베트남을 구하기 위해 일평생을 헌신하면서 ‘3꿈 정신’을 실천하였다. 그리고 지금 베트남을 이끌고 있는 그의 후계자들도 명목상으로는 이 정신을 지도력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첫째는 함께 산다는 정신으로서의 ‘꿈일 정신’이다.
둘째는 함께 먹는다는 뜻으로서의 ‘꿈안 정신’이다.
셋째는 함께 일한다는 뜻으로서의 ‘꿈담 정신’이다.

지도자가 백성들과 함께 살고, 함께 먹고, 함께 일하는 공동체 정신을 삶으로 실천할 때에 온 국민의 역량이 통합되는 것이요, 어떤 난국도 극복하여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호지명은 그렇게 살았다. 그는 최고 지도자이었을 때에도 자신을 위해서 특권을 누리지 않았다. 국민들과 동고동락함으로써 이로써 쌓은 국민적 신뢰감을 바탕으로 국가통일까지 이루는 에너지의 원천이 되게 하였다.

오늘의 한국에도 이런 지도자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지도자를 중심으로 온 국민이 힘을 모아 통일한국, 선진한국, 복지한국을 건설하여 나갈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호지명(胡志明)같은 지도자를 기다리며 ③

호지명이 당대에 온 국민의 지지와 존경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다음의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째는 어떤 경우에도 청렴∙결백(淸廉∙潔白)했던 삶의 자세 때문이었다.
둘째는 그가 교육입국(敎育立國)에의 비전을 품고 젊은이들을 교육시켜 국가의 앞날에 대비하였던 점이다.
셋째는 그가 힘없는 백성들과 함께 하고 소외된 계층을 항상 품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가 평생토록 얼마나 청렴했던가는 그의 죽음 후에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그가 세상을 뜬 순간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입었던 홑겹의 옷 한 벌이었다. 그리고 그는 죽음 직전에 자신의 장례식에 대하여 유언하기를 “국민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화장으로 하라”고 일렀다.

또한 그는 전쟁 중에도 유능한 젊은이들을 선발하여 해외유학을 보내면서 그들에게 일렀다. “앞으로 나라가 반드시 통일이 될터이니 통일조국을 이끌 실력을 길러라. 최전선에서 전투하고 있는 동지들을 생각하며 전투하는 정신으로 국가경영의 실력을 쌓으라”고 다짐하였다. 그리고 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병사들에게도 일렀다. “그대들이 전쟁에서 승리를 하여야 외국에 나가 국가경영의 실력을 쌓고 있는 동지들이 미래에 일류국가를 건설할 수 있다.”

이런 그에게 아무도 특혜시비를 거는 사람이 없었다. 유학중인 젊은이들이나, 전투중인 젊은이들이 한결같이 그를 신뢰하였기 때문이다.  

호지명(胡志明)같은 지도자를 기다리며 ④

호지명이 임종에 임박하여 세 가지 유언을 남겼다. 그 내용이 호지명의 사람 됨됨이를 잘 드러내 주는 내용이다. 그가 비록 공산주의자여서 우리와 사상과 생각은 다를지라도 인간적인 면에서는 이런 점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한 인물 특히 지도자를 평가 할 때에 그의 사상이나 신앙은 나와 다를지라도 그의 인격이나 생활신조 같은 면에서의 훌륭한 점은 별도로 평가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호지명 같은 경우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는 철저한 민족주의자였고 빼어난 애국자였다. 나는 그의 민족주의 정신과 애국애족하는 정신을 본받으려 한다. 그의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은 한치도 받아들일 수 없다.
이는 내가 원효 스님을 존경하고 따르지만 그의 종교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호지명이 유언으로 남긴 세 가지 유언 중의
첫째는 자신의 무덤을 만들지 말고 시신을 화장하라. 매장하여 무덤을 만들면 인민들에게 폐를 끼치기 쉽고 또 우상화하거나 신격화 할 위험이 있노라 하였다.
둘째는 이제 곧 전생이 끝날 터인데 전후 미국 편을 들었던 남월남의 누구도 보복하지 말라. 모두가 한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처신한 것이니 과거지사는 없었던 것으로 하고 모든 남녘 백성들을 새로운 통일국가의 새 국민으로 새 출발하자는 것이었다.

호지명(胡志明)같은 지도자를 기다리며 ⑤

호지명이 죽음에 임하여 남긴 유언의 세 번째는 전쟁이 끝난 후 전쟁 중에 전사한 장병들의 아내나 자녀들을 국력을 기울여, 성심성의를 다하여 국가가 돌봐 줄 것이며 전쟁 중에 다친 상이군인들 역시 국가가 지성으로 우대하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호지명이 죽음에 임박하여 남긴 3가지 유언 중에서 어제 소개한 첫 번째 유언인 무덤을 만들지 말고 화장을 하라는 대목에서 그가 이르기를 화장을 하되 재를 세 등분으로 갈라 월남의 북구, 중부, 남부에 한 곳씩을 택하여 재를 뿌리게 하라. 통일된 조국이 번영하는 밑거름이 되기를 원한다 하였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들이 이 유언을 따르지 않고 수도 하노이에 묘지를 만들어 성역화(聖域化)하고 있다. 지금 하노이를 방문하면 날마다 수많은 참배객들이 그의 묘지를 둘러보고 그를 참배하고 있는 길고 긴 줄을 볼 수 있게 된다. 참으로 애석한 일이다. 그의 깊은 의도를 후계자들이 헤아리지 못하고 그의 시신을 정치에 이용하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가 상이군인들을 정성을 다해 돌보라 하였던 것이 오히려 화근이 되어 월남 전역에 가는 곳마다 상이군인들이 이권을 차지하여 시장 귀퉁이나 조그만 매장까지 상이군인들이 차지하여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가 죽은지 30년이 지났으나 아직 월남이 빈곤을 벗어나지 못한 채로 가는 곳마다 부패와 무능이 터를 잡고 있음을 접하게 된다.

이런 점은 그가 신봉하였던 공산주의의 한계점인 것을 그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이에 비하면 우리 한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선택하였던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웠던가를 실감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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