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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화 [지리산 편지] 하늘로부터 임하는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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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편지] 하늘로부터 임하는 손길 ①

지난 74-75년 내가 안양교도소에서 옥살이를 할 때다. 동료 죄수 중에 원충연(元忠淵,1912-2004) 대령이란 분이 있었다. 원 대령이 무기수로 옥살이를 하게 된 것은 박정희  장군의 비서실장으로 있던 그가 박 장군에게 ‘군은 군으로 돌아가고 정치는 민간에 맡기자’는 뜻에서 운동을 일으켰다가 이 운동이 반혁명운동으로까지 번지게 되어 그 운동의 주동자로 검거되었다. 처음에는 사형이 선고 되었으나 후에 무기로 감형이 되었다.

교도소 수감자들 중에는 종교별로 모임이 구성 되어 있어서 그 어른이 기독교반 반장으로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당시에 안양교도소에는 4,300여 명의 각종 범죄자들이 수감되어 있던 때인데  수감자들이 원 대령을 얼마나 존경을 하는지 교도소 소장의 말은 듣지 않아도 원 대령의 말은 듣는 정도였다.
나는 그 점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여 한번은 그에게 물었다.
“원 대령님, 대령님은 같은 빵잽이(재소자들에 대한 감옥 안에서의 속어)면서도 다른 빵잽이들에게 어떻게 그렇게나 존경을 받을 수 있는지요? 우리는 성직자이지만 교인들에게 그렇게 존경을 받기는 어렵겠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인지요?”

나의 이런 질문에 원 대령은 진지한 자세로 다음 같이 답해 주었다.
“내가 다른 재소자들로부터 존경이라기보다 인정을 받으며 지나게 된 것은 나의 인격이 훌륭하거나 능력이 있어 인정받게 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사람들로부터 조금이나마 인정을 받게 된 것은 내가 체포 된 후 보안사 취조실에서 체험한 하나님의 손길 때문입니다.”

이렇게 시작한 그의 대답의 내용이 나에게 큰 감명을 주었기에 그 때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잊어지지 않는다.

하늘로부터 임하는 손길 ②
  
실존철학(實存哲學)이란 철학의 유파가 있다. 2차 대전 이후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난 철학이다. 2차 대전 이전까지는 인간의 합리성과 존엄성을 신뢰하여 인류가 계속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여 나갈 것으로 믿어 왔다. 그러나 2차 대전을 거치는 동안에 전쟁 동안에 인간의 광기와 야만성을 체험케 된 이후로 인류의 미래에 대한 그런 희망과 낙관이 무너지게 되면서 일어난 철학이 실존주의 철학이다. 실존주의 철학의 용어 중에 한계상황(限界狀況)이란 용어가 있다. 한계상황이란 인간이 인간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을 일컫는다. 실존주의 철학에서는 그런 항계상황을 다섯 가지로 손꼽는다.

첫째가 죽음, 둘째가 방황, 셋째가 고독, 넷째가 투쟁, 다섯째가 죄이다. 이들 다섯 가지는 어느 누구도 인간인 이상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벽이다. 그래서 한계상황이다. 그런데 삶을 진지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이들 한계상황에 부딪히게 될 때면 보다 진실하게 되고 진지하게 되어 자신의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평소에 잊고 있었던 근본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된다.

원충연 대령은 보안사 고문실에서 자신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고문에 몇 번이나 까물어쳤다가 깨어났다가를 거듭하는 동안에 그간에 잊고 있었던 하늘을 찾게 되었다. 한 번은 고문으로 까물어쳤다가 깨어난 후 온몸이 망가져서 손가락, 발가락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손, 발에서부터 싸늘하게 몸이 식어들더니 심장을 향하여 온 몸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때에 자신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도가 나왔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보아 주시옵소서. 저가 군인으로써 나라를 위한 거사를 준비할 때에 죽음은 이미 각오한 바입니다. 그러나 저가 하늘의 일을 하지 못하고 땅의 일만 하다가 죽게 된 것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는 동안에  고문실의 낮은 천정으로부터 한 가닥의 밧줄이 자기에게로 내려 오는 것이었다. 이것이 왠 밧줄일까 의아하게 여기며 쳐다보고 있는 사이에 그에게 하늘로부터 들리는 음성이 들려 왔다.

하늘로부터 임하는 손길 ③
  
원충연(元忠淵,1912-2004) 대령이 극심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죽음에 직면케 되었을 순간에 하늘로서 그에게 들려진 첫 번째 음성은 “이 줄을 잡으라.”였다. 그가 이 음성을 듣는 순간 손가락도 꼼짝할 수 없었던 처지에서 갑자기 힘이 치솟아 벌떡 일어나 두 손으로 밧줄을 덥석 잡았다.  그때 두 번째 음성이 들리기를 “다시는 이 줄을 놓지 말찌어다.”는 음성을 듣게 되었다. 그런데 그가 두 번째 음성을 듣는 순간 온 몸에 힘이 치솟으며 마치 전기가 지나가는 것과 같은 뜨거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렇게나  망가졌던 몸이 온전한 몸으로 회복되게 되었다.

원 대령은 나에게 이런 사연을 자초지종 들려 준 뒤에 나에게 자신의 심정을  다음 같이 들려 주었다.
“내가  죽을 자리에서 그렇게 큰 은혜를 받게 된 뒤로 나 자신이 변한 것입니다. 그 뒤로는 징역살이가 힘 들 때나 억울하고 원통함을 느낄 때마다 그 날 받았던 은혜를 돌이키며 자신을 이겨나가곤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의 앞에는 그 은혜의 밧줄이 항상 드리워져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때로는 견디기 어려운 마음의 갈등이 있어도 그 날 나에게 하늘로써 임하였던 그 은혜의 밧줄, 구원의 밧줄을 생각하며 자신을 이기곤 합니다.”

나는 그 날 원충연 대령의 말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다. 그 뒤로 며칠 동안은 한 밤 중에 잠이 깨기라도 하면 천정을 쳐다보며 나에게도 그런 밧줄이 임하지나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으며 천정을 쳐다보곤 하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런 신비한 체험은 임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중에서도 내 앞에도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을 찌라도 하늘로써 임하는 구원의 손길은 항상 임하고 있다는 믿음을 되새기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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