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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함께하는 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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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예전엔/홀로 설 수 있었습니다/하지만/지금은 홀로 설 수 없습니다/예전엔/홀로 서기를 좋아했습니다/그러나/지금은 함께 서기가 좋습니다.”

필자의 시 ‘함께 서기’의 일부분이다. 세상에는 독불장군이 많다. 나도 한때는 세찬 역사의 파고를 헤치는 독불장군의 활극을 꿈꾸고 홀로 서기의 영웅이 되려고 한 적이 있다. 그러나 피끓는 청춘의 봄이 지나고 어느 새 성숙한 중년으로 접어든 지금은 누구보다도 ‘함께 서기’ 를 꿈꾼다. 비록 조금 부족하고 연약해 넘어지더라도 혼자 잘났다고 활개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일으키고 부축해주면서 함께 서는 아름다운 동행을 꿈꾼다는 말이다.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다. 교회 공동체를 향한 일부 비판의 소리가 있지만 그럴수록 더 하나 되고 함께 서야 한다. 교회는 사회적 기준과는 다르다. 각 교회의 입장에 따른 상대적 특수성이 있다. 그런데 내 입장과 다르다고 편향된 시각으로 무조건 틀렸다고 말하면 악의적 파급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누구든, 특히 공교회에 관하여 이야기할 때는 함부로 말해서는 안된다. 내가 옳다고만 생각지 말고 다른 사람의 입장과 특수성을 배려하며 영적 차원에서 깊이 고찰해야 한다. 그것이 교회 모두를 위한 일이며 함께 서는 영성의 시작이다.

종교 리서치 결과를 보라. 가톨릭과 불교는 꾸준히 상승하고 있으나 기독교는 정체와 감소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것은 가톨릭과 불교가 이미지 홍보에 성공한 반면 기독교는 감성적 마케팅과 정서적 접근에서 실패했기 때문이다.

사실 교회에는 내부적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필요 이상으로 많다. 차라리 잘못을 비판하고 싶으면 가슴을 치며 울자. 생전에 박윤선 박사님은 신문에서 불미스런 사건을 접하자 기사 부분을 땅바닥에 접어놓고 무릎을 꿇은 채 “주여, 다 내 죄 때문입니다”라며 울었다고 한다.

대물림 문제도 마찬가지다. 외국의 경우 ‘긍정의 힘’의 저자 조엘 오스틴, 빌리 그레이엄, 로버트 슐러 목사 등 성공적 대물림의 사례가 많다. 그런데도 외국의 경우는 대물림이 전혀 없는 듯 왜곡해 한국 교회를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지금은 서로를 비판하기보다는 함께 하는 영성이 절실하다. 더불어 함께 서는 공교회 공동체를 이루자. 모래 한 알 한 알이 모여 은빛의 사막을 이룬다. 별 하나 하나가 모여 찬란한 은하수로 빛나지 않는가. 한국 교회가 함께 서는 영성으로 하나될 때 더욱 부흥하고 민족의 희망과 빛이 될 것이다.

- 출처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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