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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약속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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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요한 목사(남서울비전교회 담임)

살아가면서 약속의 무게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약속의 무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무겁다. 약속에는 생명의 무게가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가볍고 사소한 약속은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약속의 무게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약속은 그 사람의 이름을 걸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약속을 어기면 자기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이 된다. 이름이 무엇인가.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낸다. 고대 근동에서는 약속을 어기게 되면 목숨까지 잃었다.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이 짐승을 쪼갠 것처럼, 약속을 맺을 때 짐승을 죽여 둘로 나눴다. 그런 후 약속의 당사자들이 그 사이를 지나가는 의식을 가졌다. 그것은 약속을 어기게 되면 그 짐승처럼 죽게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약속보다 더 무겁고 중요한 것은 없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은 상대로부터 잊혀지게 된다. 그러나 약속을 지키는 사람들은 마음 속 깊이 새겨지게 된다. 잊혀지는 존재가 되고 싶은가, 아니면 기억되는 존재가 되고 싶은가? 그것은 약속을 지키느냐에 달려 있다.

아리랑TV에는 국내에 사는 외국인들이 자주 출연한다. 언젠가 담당 PD들이 한국인과 외국인 출연자의 차이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들었다. 외국인 출연자들은 녹화나 리허설 시간보다 30분 가량 먼저 와서 기다리는 데에 반해, 우리나라 출연자들은 약속 시간을 어겨 담당자들의 속을 태운다는 것이다. 지각을 하고서는 “차 때문에”, “길 때문에”라는 핑계를 댄다고 한다. 교통문제라면 외국인들이 더 힘들 텐데 말이다. 삶은 약속의 연속이다. 가족과의 약속, 친구와의 약속, 상사와의 약속, 자기와의 약속, 하나님과의 약속 등 무수한 약속으로 이뤄져 있다. 약속의 무게를 안다면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말자. 그리고 한번 한 약속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는 사람이 되자.

독립운동가인 도산 안창호 선생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1932년, 이만영 소년에게 기부금을 내기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일본 경찰들의 눈에 띌 일을 하지 말라며 만류하는 동지들의 손을 뿌리치고 가다가 소년의 집 앞에서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는 것이다. 몇 년 전에 태국 CF 한편이 네티즌들을 감동시켰던 적이 있었다. 그 CF의 주인공은 86살의 한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매일 이른 새벽에 일어나 수프와 바이올린을 가지고 20km 거리에 있는 아내의 무덤까지 가서, 무덤 앞에 수프를 놓고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30년 동안 하루도 안 빠지고 매일 그렇게 했다. 할아버지가 매일 그 일을 했던 것은 “내 생명이 다할 때까지 매일 아침 수프를 만들어 주고, 아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연주해주겠다”고 했던 아내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물질만능의 사고와 이기적인 가치관이 지배하는 오늘날 약속은 그 무게를 많이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심하게 말하면 약속 불신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약속은 내가 필요할 때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약속의 무게를 회복해야 한다. 여호수아 24장에 보면 여호수아는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겠다는 약속을 새롭게 하는 의식을 가지면서 큰 돌을 취해 돌을 증거 삼는다. 돌이 무엇이길래 돌을 세워 증거 삼았는가.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못미더워서 수천 년, 수만 년 그 자리를 지키는 돌을 증인으로 세웠던 것이다. 하나님은 약속의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약속을 할 수 있는 존재는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인간뿐이다. 약속의 무게를 알고 함부로 약속하지 말자. 그리고 한번 한 약속은 생명을 다해 지키자.

- 출처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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