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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의 길이 공평치 아니한가? (겔 18: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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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길이 공평치 아니한가? (겔 18:25-32)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 조심해야 할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말씀이 기본 구원에 관한 말씀인지, 건설 구원에 관한 말씀인지를 구별하는 것입니다. 기본 구원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어 죄 사함을 받고 칭의를 얻고 하나님과 화친하는 3대 축복을 얻는 것입니다. 기본 구원은 사람이 천국 걸 것인가, 지옥 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행위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천국은 사람이 착하게 산다고 가는 곳이 아닙니다. 예수 믿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본 구원을 받았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건설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건설 구원이란 예수 믿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구원의 터 위에 공력을 건설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공력을 많이 건설하면 상을 받게 되고, 공력이 없으면 손해를 입게 됩니다. 건설 구원은 사람의 행위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의와 선을 행하며 사는 사람은 현세에서도 상을 받고, 내세에서도 상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의와 선을 행치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할지라도 현세와 내세에서 상을 받지 못합니다.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신학자들은 때로 칭의, 성화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구분하지만 부산에서 목회하시다 소천하신 배경희 목사님이 사용한 기본 구원, 건설 구원이라는 용어가 훨씬 유익하며 우리의 이해를 돕습니다. 

기본 구원과 건설 구원을 그림처럼 보여 주는 말씀이 고린도전서 3장 11절로 15절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본 구원의 터 위에 공력을 쌓아가는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금이나 은으로 쌓아가서 불로 하나님이 테스트해도 타지 않아 상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나무나 풀 같은 공력을 가지고 간 사람은 다 타버리게 됩니다. 예수 믿고 천국 갈 사람이 되었다고 신앙생활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터 위에 건설을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공력을 건설해 나가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건설 구원입니다. 건설 구원은 상급을 받을 것인지, 손해를 받을 것인지를 결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 살 것이다, 죽을 것이다는 표현이 나오면 기본 구원인지 건설 구원인지 판단해 보아야 합니다. 
 
에스겔 18장에는 반복적으로 나오는 구절이 있습니다. “선을 행하는 사람은 살 것이며, 악을 행하는 사람은 죽을 것이다. 선을 행하다가도 악을 행하면 죽을 것이고, 악을 행하다가도 선을 행하면 살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만약에 이런 표현들이 기본 구원이라는 측면에서 이해가 된다면 사람의 기본 구원은 행위로 받게 된다는 행위 구원설적인 이단 사설에 빠지게 됩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 교리에 어긋되고, 모순되는 해석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런 표현들을 건설 구원의 측면에서 이해하면 전혀 모순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입니다. 예표 적으로 보면 아무 공로 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기본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신약 시대로 말하면 교회를 예표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의 행위가 잘못되었습니다. 두 돌비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했는데 우상을 사랑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는데 학대하고, 속이고, 부도덕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어 끌려가 죽고 망하는 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예언을 시작한 때는 B. C 593년인데 이미 그때는 3차 포로로 끌려갈 것을 기다리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에스겔은 말했습니다. “여러분, 지금이라도 악에서 돌이키면 하나님께서 이제는 포로로 되지 않고 살려 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에스겔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멸망했습니다. 

B. C 598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이스라엘은 파괴되고, 백성은 포로 되었습니다. 그때에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는 백성이 속담을 퍼뜨렸습니다. 그 속담이 에스겔 18장 1절로 3절에 기록되었습니다. ‘아비가 신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는 것입니다. 이런 속담을 예레미야 선지자도 말을 했습니다. 

예레미야 31장 29절입니다. “그때에 그들이 다시는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바벨론에 끌려가는 유다 백성이 우리가 포로가 된 것은 조상을 잘 못 만나서 이렇게 된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조상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입니다. 에스겔 18장은 이런 속담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에스겔 18장 3절입니다.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이런 속담을 퍼뜨리는 것은 성경의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아비의 죄를 갚되 삼사대까지 갚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푼다는 출애굽기 20장 5절로 6절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 아버지가 죄를 지어서 우리가 삼사대까지 벌을 받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참된 의미는 하나님은 죄에 대한 벌은 삼대 밖에 안 주시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천대까지 주신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벌주시는 것보다 축복을 주시는 것이 훨씬 많은 은혜로운 분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또 이 말씀은 부모의 죄가 환경적으로 자식에게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많으니까 부모에게 경성 하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할아버지가 우상 숭배하면 손자들은 알지도 못하면서 따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삼사대가 우상숭배의 죄를 짓게 됩니다. 이런 의미로 말씀하시는 것이지 자식이 죄를 짓고 그 죄에 대해서 벌 받는 것을 가지고 부모에게 핑계 대고 원망해도 좋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사람이 책임 전가와 핑계 대고 원망하는 것은 아담과 하와가 취했던 첫 번째 태도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 죄를 조상에게 전가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18장을 보면 건설구원의 원리를 네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Ⅰ. 의를 행하는 의인은 현세와 내세에 상급이 있다. (18:5-9)

하나님의 자녀가 의를 행하고 의인으로 살면 그 사람은 현세와 내세에 복을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의를 행하는데 하나님께서 상 주신다는 것에 대해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공평치 않다고 말할 이유가 없습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가 복을 받고 싶으면 선을 행하고, 의를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보다 약한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Ⅱ. 의인의 아들이라도 악을 행하면 현세와 내세에 손해가 있다. (18:10-13)

하나님께 축복받은 의인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 아들이 아버지가 의를 행한 것을 본받지 않고 악인이 되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방탕하고 타락하고 악을 행하며 산 아들은 복을 받지 못하고, 현세와 내세에 상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징계와 인생의 갖가지 손해를 보고 살게 될 것입니다. 아비는 의인으로서 복을 받았는데 자식은 악인이 되어서 망하게 되는 경우를 성경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3장 8절에 보면 침례 요한은 죄를 범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의 조상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의롭게 살았지만, 어찌 너희가 아브라함이 행위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레위기 10장을 보게 되면 아론은 모세의 형이며, 의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택했습니다. 그런데 아론의 아들이 넷 있었는데, 첫째 아들인 나답과 둘째 아들 아비후는 악한 자였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습니다. 명하지 않은 다른 불로 분향을 하다가 불에 타 죽고 말았습니다. 아버지는 의인으로 대제사장이지만, 아들은 불에 타 죽은 것입니다. 
 
사사 기드온은 의인이었습니다. 삼백 명의 용사를 데리고 미디안 군대와 전쟁을 했는데, 미디안 군대 십삼만 오천 명을 물리쳤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다. 그런데 사사기 9장 5절을 보면 기드온의 아들 가운데 첩의 아들 아비멜렉이 있었습니다. 아비멜렉이 왕이 되려고 이복형제 칠십 명을 바위 위에 올려놓고 모두 죽였습니다. 얼마나 악한 사람입니까? 기드온은 훌륭한데 첩의 아들 아비멜렉은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아비멜렉은 한 여자가 망대 위에서 맷돌 위짝을 던져 두개골이 파열되어 죽었습니다. 아버지 기드온은 의를 행하며 복을 받았지만, 아비멜렉은 악을 행하여 큰 손해를 받아 생명을 잃어버렸습니다. 
 
사무엘상 8장 3절에 보면, 사무엘은 위대한 선지자였지만 그 아들 요엘과 아비야는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는 악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사무엘의 뒤를 잇지 못하고 백성의 배척을 받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의인인데 아들은 악인인 대표적인 인물이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입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 군대가 십팔만 오천 명이 침공했을 때에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 주시고 천사를 보내서 하룻밤에 물리치게 하시고 승리를 주셨습니다. 유다를 구원한 선한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죽을병에 걸렸을 때에도 기도했는데 십오 년의 생명이 연장되었습니다. 생명이 연장이 된 지 삼 년 만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히스기야가 죽을 때에 므낫세는 열두 살이었습니다. 므낫세는 이사야를 톱으로 잘라 죽인 아주 악한 왕이었습니다. 므낫세는 자신도 망했을 뿐만 아니라 나라 전체를 망하게 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의인이면 아버지의 복을 받는 것이고, 자식이 악을 행하면 자식이 그 악을 따라 벌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Ⅲ. 악인의 아들이라도 의를 행하면 현세와 내세에 축복이 있다. (18:14-20)

악한 아버지의 아들이 의롭게 삽니다. 그러면 아들이 복을 받고 살게 됩니다. 부모의 악이 자식에게 전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부모의 악과 상관없이 악한 부모의 자식이 의롭게 살면 그는 자신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에스겔 18장 20절입니다.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 
 
악인의 아들 가운데에도 훌륭한 의인이 있는 경우를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첫 번째 왕은 사울입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받고도 두 번이나 말씀을 거역하여 악한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울 왕에게는 요나단이라고 하는 훌륭한 아들이 있었습니다. 인격, 믿음, 의리에서 훌륭했습니다. 요나단이 블레셋을 자기 병기 든 소년 한 명을 데리고 가서 물리쳤습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한 것입니다. 사울의 집안이 망해도 요나단과 그 집안은 대대로 돌보아 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아들 므비보셋은 다윗이 왕실에 불러서 먹게 하고 땅도 주고 하인도 주어 잘 살게 하였습니다. 악한 아버지에게도 선한 의인이 태어날 수 있고, 악한 아버지가 태어난 선한 의인이 선을 행하게 되면, 그는 아버지의 악과 상관없이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길은 공평한 길입니다. 
 
므낫세 왕은 히스기야의 아들입니다. 선한 아버지를 두었지만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므낫세에게 요시아라는 손자가 있었습니다. 요시아는 8살 때에 왕이 되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어도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습니다. 

열왕기하 22장 2절입니다. “요시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그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하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 어린 사람도 하나님 말씀을 따라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살면 의인입니다. 그러나 나이가 많이 들었어도 죄악을 따라 살면 악인입니다. 지혜가 없는 사람입니다. 요시아 왕은 지금도 유다 역사 가운데 구약의 종교 개혁가로서 기억되고 있는 인물입니다. 구약의 마르틴 루터는 요시야입니다. 므낫세의 손자입니다. 므낫세의 아들은 아몬은 악한 왕이었습니다. 제일 좋은 것은 의인의 아들 악인이 아니라 의인의 아들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식이 의와 선을 행하고 살면서 복을 받는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의 가정이 모두 그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Ⅳ. 악인이 돌이켜 의를 행하면 그 시각부터 축복이 오고, 의인이 돌이켜 악을 행하면 그 시각부터 손해가 온다. (18:21-24)

악인이 돌이켜 의를 행하고 살면 하나님이 그때부터 그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행한 악에 대해서 하나님이 잊어버리시는 것입니다. 현세에도 내세에도 복 받는 것입니다. 자신이 악인일지라도 돌이켜 의를 행하면 하나님이 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의를 행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돌이켜 악을 행하며 살아갑니다. 과거의 의에 대한 이자는 없습니다. 10년 전에 예수 잘 믿었다고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지금의 모습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거나 해를 받는 것입니다. 의인이 돌이켜 악을 행하면 하나님이 진노하시고 의에 대한 상급도 없어집니다. 행한 악에 대해 징벌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도 인생의 복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핑계 대지 마시기 바랍니다. 아버지를 잘못 만났다는, 아내를 잘못 만났다는 핑계 대지 마시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기본 구원받은 백성이 현세 삶 가운데 하나님의 축복이나 상급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다면 누구에게 책임 돌릴 것 없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 악이 있는지 스스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에스겔 18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독생자 예수를 죽게 할 정도로 사랑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축복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산다면 우리에게 악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의를 행하며, 선을 행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천국에 가면 중국집이 있는데 사찰 집사님은 팔보채를 드시고, 장로님은 짬뽕을 드십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오토바이 타고 배달 나갔습니다. 여러분, 직분 가지고 하나님께 상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행한 선과 의를 하나님이 보시고 상급과 복을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을 향해서 1, 2차 포로로 끌려갔지만 지금 이 순간이라도 돌이켜 의를 행하면 3차 포로로 끌려가는 일은 없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악에서 돌이키면 살려 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까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배반하여 B. C 587년 3차 포로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기본 구원은 우리의 행위, 노력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받는 것입니다. 기본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건설 구원은 우리의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복 받을 만한 말을 하시기 바랍니다. 행동 하나라도 복 받을 행동을 하시기 바랍니다. 마음도 복 받을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결론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의롭다고 해서 다른 가족 구성원이 저절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족도 각각 자신의 행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도 하고, 진노를 당하게도 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패망케 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스스로 돌이켜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기본 구원의 터 위에 악과 죄에서 돌이켜 선과 의를 쌓으시기 바랍니다. 금, 은, 보석으로 공력을 쌓아 축복받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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