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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날아가는 두루마리 (창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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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는 두루마리 (창 1:1)


스가랴서는 구약성경의 계시록이라고 할 만큼 종말론적 계시가 풍성한 책입니다. 특히 메시야에 대한 풍부한 예언과 종말론적 사건에 대해 다양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가랴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성전을 성공적으로 재건하여 영적 부흥을 도모하도록 격려하기 위해 기록했습니다. 바벨론에서 5만이나 되는 포로들이 예루살렘과 인근 성읍으로 귀환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성전 재건의 소명을 가지고 귀환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제단을 만들고 70년 동안 중단되었던 예배를 다시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못가서 여러 가지 방해로 성전 건축은 중단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가랴 선지자는 백성들을 고무시켜 성전 재건사업을 착수하도록 격려하고 있습니다. 

선지자 학개와 동시대에 활동하던 스가랴 선지자는 본문에 기록된 '날아가는 두루마리' 이상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스가랴서의 8개의 이상 가운데 6번째 이상입니다. 지금까지 환상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했는데, 6번째에 와서는 홀연 인간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본 날아가는 두루마리의 환상은 무엇인가? 

Ⅰ. 이 두루마리는 온 땅 위로 날아가는 하나님의 율법책입니다. 

본문 5장 2절에 『그가 내게 묻되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기로 내가 대답하되 날아가는 두루마리를 보나이다 그 장이 이십 규빗이요 광이 십 규빗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내가 다시 눈을 든 즉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보이더라』고 했습니다(5:1). 이것은 선지자가 한 이상을 보다가 다른 이상을 보려고 넘어갈 때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두루마리(roll, writing book)'라는 말은 하나님의 율법 책을 의미합니다(시 40:7). 이 두루마리가 새처럼 날아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신명기 4장 17절에 『땅 위에 있는 아무 짐승의 형상이라든지, 하늘에 나는 아무 새의 형상이라든지』라고 했습니다. 

날아가는 두루마리의 규격은 그 장이 이십 규빗이요 광이 십 규빗이라고 했습니다(5:2). 이것은 길이가 20규빗(약 900cm)이고 넓이가 10규빗(약 450cm)되는 두루마리가 하늘을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이 두루마리의 규격은 이상하게도 솔로몬 성전의 제단 앞 낭실의 규격과 같습니다. 
열왕기상 6장 3절에 『전의 성소 앞 낭실의 장은 전의 광과 같이 이십 규빗이요 그 광은 전 앞에서부터 십 규빗이며』라고 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낭실의 규격과 날아가는 두루마리의 규격을 의미 있게 보고 있습니다. 이 낭실은 당시의 제사장들이 백성들에게 율법책을 읽어 주던 곳입니다. 그렇다면 이 두루마리와 신정국가는 어떤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두루마리가 날아간다는 말은 문법적으로 분사형입니다. 이 두루마리는 계속해서 하늘을 날고 있다는(a flying roll)의미입니다. 분명한 것은 두루마리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두루마리의 가치는 그 속에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쓰여 있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을 날고 있는 두루마리에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스가랴는 기상천외한 광경에 놀라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Ⅱ. 이 두루마리는 하나님의 저주를 기록 한 것입니다. 

본문 5장 3절에 『그가 내게 이르되 이는 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와 무릇 도적질하는 자는 그 이편 글대로 끊쳐지고 무릇 맹세하는 자는 그 저편 글대로 끊쳐지리라』고 했습니다. 
율법책 두루마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저주란 말에는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저주(The Curse)를 말합니다. 
신명기 27장 15-26절까지에 기록된 내용과 28장 15절에서 68절까지에 기록된 저주의 내용을 말합니다. 

에발산에서 돌비에 기록하여 백성들에게 읽어 주고 거기에 세워졌던 저주의 경고를 말합니다. 즉, ① 우상 섬기는 자(27:15) ② 불효하는 자(27:16) ③ 타인의 소유를 침해하는 자(27:17) ④ 연약한 자를 억울케 하는 자(27:18-19) ⑤ 근친상간과 음란죄 짓는 자(27:20-23) ⑥ 이웃을 살해하는 자(27:24) ⑦ 무죄한 자를 죽이려고 뇌물 받는 자(27:25) ⑧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자(27:26) 이상과 같은 자들은 반드시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는 자와 그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않는 자에게 오는 저주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생업의 저주(28:16) ② 식탁의 저주(28:17) ③ 자식과 가축의 저주(28:18) ④ 입출의 저주(28:19) ⑤ 파멸의 저주(28:20) ⑥ 각종 질병의 저주(28:21-22) ⑦ 가뭄의 저주(28:23-24) ⑧ 원수 앞에 망하는 저주(28:25) ⑨ 비참한 최후의 저주(28:26) ⑩ 질병의 치료가 안되는 저주(28:27) ⑪ 타인에게 빼앗기는 저주(28:29-32) ⑫ 타인으로 인하여 고통 받는 저주(28:33) ⑬ 억울해서 미쳐버리는 저주(28:34) ⑭ 전신에 이르는 질병의 저주(28:35) ⑮ 이방인에게 끌려가서 우상 섬기는 저주(28:36) ? 흉년의 저주(28:37-42) ? 꼬리가 되고 머리가 못되는 저주(28:44)입니다. 

모든 것이 풍부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을 인하여 오는 저주는 다음과 같습니다. 사나운 대적으로 인하여 자손과 가정이 파멸당하는 저주(28:48-57)를 말합니다. 책에 기록된 율법의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에게 오는 저주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재앙이 크고 오래고, 질병이 중하고 오랜 저주(28:59) ② 질병을 몸에 들어붓는 저주(28:60) ③ 이름 모르는 질병으로 임하는 저주(28:61) ④ 사는 것이 오히려 고통스러운 저주(28:62-68)입니다. 

이상의 기록된 저주는 에발산에서 축복의 약속과 같은 돌비에 기록하여 백성들에게 읽어주고 거기에 세워졌던 저주의 경고입니다(수 8:30-35). 
이것은 온 지면에 두루 행하는 저주라고 했습니다(5:3). 여기에 지면이라고 하는 영역은 문맥상으로 보아 유다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 땅 전체를 가리킨다고 하는 것이 바른 해석입니다. 

그런데 여기 본문에서 지적된 죄는 두 가지입니다. 그것은 무릇 도적질하는 자와 무릇 맹세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맹세하는 자란 거짓 맹세하는 자입니다. 거짓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자입니다. 
전자는 10계명 중에 대인관계를 파괴하는 대표적인 죄인 동시에 후자는 대신관계를 파괴하는 대표적인 죄입니다. 

본문에 『이편 글, 저편 글』이란 말은 두루마리의 양면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율법의 돌비의 이편 저편 양면에 글자가 있었던 것처럼 두루마리 양쪽에 가득하게 저주가 임한다는 경고입니다. 
출애굽기 32장 15절에 『모세가 돌이켜 산에서 내려오는데 증거의 두 판이 그 손에 있고 그 판의 양면 이편 저편에 글자가 있으니』라고 했습니다. 
이 여섯 번째 이상의 초점은 이스라엘의 성결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다시 범죄하면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서 포로 생활을 했던 조상들처럼 버림당할 것을 경고하는 말입니다. 
본문 5장 4절에 『…도적의 집에도 들어가며 내 이름을 가리켜 망령되이 맹세하는 자의 집에도 들어가서 그 집에 머무르며 그 집을 그 나무와 그 돌을 아울러 사르리라』고 했습니다. 
율법 아래 살아 남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날아가는 두루마리 밑에서 살아 남아 큰 소리 칠 사람은 창세 이후로 이 땅에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Ⅲ. 이 두루마리는 그리스도만을 통한 사죄 의 필연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 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날아가는 두루마리는 저주의 두루마리입니다. 
스가랴 3장 9절에 『…이 땅에 죄악을 하루에 제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오던 대속죄일로 상징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그 날을 예언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날아가는 두루마리 밑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저주를 대신 받으시고 율법의 저주 아래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렇다고 날아가는 두루마리가 그 활동을 중단한 것은 아닙니다. 

스가랴 선지자가 말하는 그 날이 오면 이 땅의 죄악은 하루에 제하여 버리게 될 것이라고 했는데 예수님은 이 땅의 죄악을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단번에 제하여 버렸습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께서 친히 한 영원한 제물이 되어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시고 마귀의 올무에서 자기 백성들을 건져내셨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하였습니다. 
요한복음 19장 30절에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언의 성취이자 율법의 완성을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 10-13절에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또 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이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이를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들은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지속적인 죄를 범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연약한 영혼들을 유혹하는 자들입니다. 저주의 자식들은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졌다고 했습니다(벧후 2:14). 
따라서 저주의 자식들과 같이 있는 것은 독사와 같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① 그리스도와 끊어지는 자체가 저주입니다. 

로마서 9장 3절에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고 했습니다. 
②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받은 자입니다. 고린도전서 16장 22절에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지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③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9절에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스가랴 선지자가 본 여섯 번째 이상인 날아가는 두루마리는 우리 힘으로는 감당하지 못할 하나님의 준엄하신 저주의 율법입니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지 못한 자는 필경 영원한 죽음의 고통에 이를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이 율법의 저주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저주의 두루마리를 감당하실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있는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이 저주의 두루마리를 막을 자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우리의 저주를 대신 감당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죽은 자입니다. 죽은 자와 죽을 자는 차이가 있습니다. 전자는 살 가능성이 없고 후자는 살 가능성이 있는 자입니다. 우리는 죄로 죽은 자입니다. 
로마서 6장 2절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라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3장 3절에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 11절에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6장 11-12절에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 6절에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34장 7절에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 사대까지 보응하리라』고 했습니다. 

민수기 14장 18절에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과실을 사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고 아비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공의로 사랑을 충족시킬 수 있는 지혜로운 한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들에게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의 은총입니다. 

로마서 3장 23-26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날아가는 저주의 두루마리 밑에서 그 저주와는 상관없는 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씻음 받은 자들입니다. 이 사실을 믿지 못하는 자들을 가리켜 불신자들이라고 합니다. 이 사실이 영원히 안 믿어지는 자들을 불택자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때때로 연약하여 넘어질 때가 있을지라도 궁극적으로 믿어지게 되니 참으로 놀라운 은혜(Amazing Grace)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용서해야만 합니다. 요한일서 4장 8-10절에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믿음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고 희생하고 죽기까지 순종하는 순교의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우리 모두 영원한 저주의 형벌에서 해방된 자들처럼 살아갑시다. 마치 사형수가 무죄선고를 받은 것 같은 그 감격으로 말입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 감격으로 주를 섬김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날아가는 두루마리의 저주에서 해방된 자들입니다. 오늘의 교회는 날아가는 저주의 두루마리 밑에서 즐거워합니다. 오늘의 교회는 날아가는 두루마리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아 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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