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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메시아 시대의 축복 (사 3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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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아 시대의 축복 (사 35:1-10)
 

성경에 언급된 예언 중에서 가장 오래된 예언을 들라면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예언은 인류의 조상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인류의 운명이 파국을 맞이하게 된 사건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를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시면서 한 가지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그것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뱀의 말에 넘어가서 그 나무 실과를 따 먹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났고,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대로, 수고로운 삶을 살다가 죽어 한 줌 흙으로 돌아가는 운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담의 범죄는 아담과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그의 모든 후손을 범법자로 만들었으며, 이로 인해 인류는 아담의 비극적인 운명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아담은 개인이면서 동시에 인류의 대표로서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하와를 꾄 뱀에게 심판을 선고하셨습니다. 뱀에게 이르시기를 “14)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15)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하나님께서 뱀을 저주하신 말씀 속에 메시아에 대한 약속이 계시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신 창세기 3장 15절이 메시아에 대한 최초의 약속이자 예언입니다. 아마 아담은 그의 생전에 메시아를 만나 뵙게 되기를 소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메시아에 대한 예언은 아담에게서 그의 아들들에게로 전해졌을 것이고, 그런 식으로 후손들에게로 전해졌을 것이 분명합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메시아를 낳을 한 사람을 택하셨는데, 그가 바로 선민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고향이던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내셨으며(창 15:7), 하란을 거쳐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하란에 살던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그리고 창세기 22장 17절에 보면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씨’는 곧 메시아를 가리킨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 곳의 말씀을 연결시켜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게 하실 것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되고 땅의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복을 얻게 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후손으로 탄생하실 메시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메시아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오시지 않으셨다면 천하 만민이 아브라함으로 인해 복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선민 이스라엘은 메시아 때문에 선택된 민족입니다. 그리고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역사는 메시아 대망의 역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살펴보면, 곳곳에서 메시아에 대한 갈망이 드러나 있습니다.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자손을 생각해 보십시오. 

압제가 심할수록 이스라엘 자손은 하나님께 메시아를 보내어 그들을 구출해 주시기를 간절히 호소했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한시적으로 메시아의 역할을 한 것입니다. 실지로, 모세는 광야생활 40년을 마쳐갈 즈음에 행한 고별사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당부하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를 들을찌니라”(신 18:15)고 했는데, 여기 ‘나와 같은 선지자’는 메시아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모세의 후계자로서 선민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들인 여호수아 역시 메시아의 모형에 속합니다. 메시아는 하나님의 백성을 영원한 가나안인 천국으로 인도해 들이는 분이십니다. 그런가하면 실제로 “예수”와 여호수아는 같은 이름입니다. 여호수아를 헬라식으로 발음하면 예수가 됩니다.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것입니다. 

사사시대에 출현한 사사들 역시 메시아의 모형들입니다. 사사기를 읽어 보면, 선민이 범죄로 인해 징벌을 받아 이민족의 압제를 받게 됩니다. 압제가 심해지면 드디어 이스라엘 자손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도우심을 호소합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사사를 세우셔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민족의 손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왕들도 메시아의 모형들입니다. 본디 메시아란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인데, 이스라엘에서는 왕을 세울 때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러나 구약시대 선민을 다스렸던 왕들은 다윗을 비롯하여 소수를 제외하고는 메시아의 모형이 될 자격이 없었습니다. 왕들 중에는 하나님을 경외한 자보다 우상을 숭배한 자가 더 많았고, 공의로운 왕보다 불의한 왕이 더 많았습니다. 그러나 왕이 백성의 목자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수록 경건한 사람들은 메시아를 더욱 간절히 고대했습니다. 

구약시대의 예언자들 가운데는 메시아에 대하여 예언한 사람이 여럿 있는데, 이사야도 여기 속합니다. 특히, 이사야서 35장은 메시아 시대의 축복을 예언한 것으로서 메시아로 인하여 그를 믿는 우리가 누릴 영적 축복이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다운가를 보여줍니다. 

첫 번 째로, 메시아께서는 그를 믿는 자들에게 구원의 기쁨과 생명을 누리게 하십니다.

이사야는 메시아 시대를 이렇게 노래합니다. 

“1)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 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2)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사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광야와 메마른 땅과 사막은 모두 사람들이 살 수 없는 불모지를 말합니다. 물론, 그 같은 불모지에서도 목축을 하면서 근근이 연명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들은 그곳 말고는 달리 거주할 땅이 없기 때문이지 광야나 사막이 살기 좋아서가 아닙니다. 영적으로 볼 때, 광야와 메마른 땅과 사막은 하나님을 떠나 죄악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령을 가리킵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단절된 사람은 살았다고 하나 영적으로 볼 때 죽은 사람에 불과합니다. 아직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의 실상에 대하여 성경은 “죄와 허물로 죽은 자”라고 합니다(엡 2:1). 영적으로 볼 때, 그들은 죽은 자들입니다. 그들의 심령은 광야와 메마른 땅과 사막처럼 아무런 생명의 작용도 하지 못합니다. 그 대신 전갈이 득실대고, 태양빛이 작렬하고, 마실 물을 얻을 수 없고, 쉴 나무 그늘도 찾을 수 없고, 모래 바람이 불고, 길을 잃기 십상인 사막과 같습니다. 

마태복음 12장 43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43)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44)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45)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모이는 곳은 ‘물 없는 곳’ 곧 무질서와 황량함과 죽음이 있는 곳입니다. 도적 곧 마귀가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입니다(요 10:10). 

황량한 광야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심령은 삭막한 사막과 같아서 기쁨이 없습니다. 술과 약물이나 감각적인 쾌락이 주는 기쁨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이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 기쁨, 그런 즐거움에 탐닉할수록 그 사람은 점점 더 심신이 피폐해 지고 결국은 폐인이 되고 맙니다. 근래에 우리 사회는 유명 연예인들의 자살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젊고 잘생기고 재능이 있어서 인기도 좋고 세인들의 부러움을 사는 연예인들이 자살로 삶을 끝내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우리에게는 그들의 개인적인 사정에 대하여 언급할 자격이 없지만, 신앙인의 관점에서 볼 때 심령에 기쁨이 고갈된 것이 원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 심령이 원하는 기쁨은 사업의 성공이나 무슨 목적을 달성함으로써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술이나 약물이나 육신의 쾌락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심령의 기쁨은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기쁨은 구원의 은총을 받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입니다. 사도행전 8장에 보면,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자 많은 사람이 빌립 집사의 말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거기 보면, “7)많은 사람에게 붙었던 더러운 귀신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나가고 또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으니 8)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고 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복음을 믿고 나자 그 성에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곧 사람들의 심령 속에 큰 기쁨이 넘쳤습니다. 우리 사회에 기쁨을 찾아볼 수 없고 다툼과 불만과 원망소리만 들리는 이유는 사람들의 속에 구원의 기쁨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심령이 필요로 하는 기쁨은 세상에서 얻는 기쁨이 아니라 구원의 기쁨입니다. 구원이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것은 구원은 곧 생명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14)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또 이르시기를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차 충성된 성도들에게 주실 상급은 생명의 면류관입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믿고 따르는 성도들에게 생명을 주시되 풍성히 주셔서 심령에 큰 기쁨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런즉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신 메시아로 인하여 언제나 생명과 구원의 기쁨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두 번 째로, 메시아께서는 그를 믿는 자들을 강하고 굳세게 하여 주십니다.

“3)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여주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여주며 4)겁내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굳세게 하라, 두려워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수하시며 보복하여 주실 것이라 그가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 예언을 할 당시에, 남 왕국 유다가 처한 정세는 매우 불안정했습니다. 그 원인은 다윗과 솔로몬 이후로 가장 걸출한 군왕이었던 웃시야가 죽은데다가 그의 뒤를 이은 왕들은 무능하였고, 주변 열강인 애굽과 앗수르와 바벨론이 호시탐탐 유다를 엿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겁을 먹은 자들을 거느리고는 싸우나 마나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전쟁에서 이기려면 먼저 약한 자들을 강하게 하고 겁내는 자들을 굳세게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약한 자들을 어떻게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요? 겁내는 자들을 무슨 수로 굳세게 할 수 있을까요? 본문은 그 비결을 말해 주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오셔서 대신 복수해 주시며 보복해 주시고 자기 백성을 구원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블레셋의 거인 장수 골리앗을 죽인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할 때 얼마나 강하고 담대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당시 다윗은 군대에 징집되지 않은 것을 보아서 만 20세가 채 되지 않은 때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장에 나간 형들을 면회 갔다가 적진에서 나온 거인 장수 골리앗이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골리앗 앞에서 이스라엘 군사들은 하나 같이 겁에 질려서 숨기에 바빴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곁에 섰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다윗은 사울 왕 앞에서도 말하기를 “그를 인하여 사람이 낙담하지 말 것이라,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사울 왕이 보니 다윗이 아직 홍안의 소년인지라 의기는 가상하나 만류했습니다. “네가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기에 능치 못하리니 너는 소년이요 그는 어려서부터 용사임이니라” 그러나 다윗은 뜻을 굽히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의 종이 아비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떼에서 새끼를 움키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었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다윗은 자기의 용력으로 골리앗을 물리치겠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곰과 사자의 발톱에서 그를 건지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해서 골리앗을 무찌르겠다고 한 것입니다. 왕의 허락을 받은 다윗은 평소에 입던 목동의 복장 그대로, 한 손에는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주머니에 넣고 또 한 손에는 물매를 가지고 골리앗과 싸우러 나갔습니다. 반면에, 골리앗은 키가 3미터나 되는 거인인데다 어려서부터 용사입니다. 

게다가 머리에는 놋투구를 쓰고 비늘갑옷을 입었는데 그 갑옷의 무게가 57kg이나 나갔으며, 정강이에는 놋으로 만든 정강이받이를 찼고 어깨에는 놋으로 만든 창을 메고 있었는데 그 창대는 베틀채 같고 창날은 쇠로 만들었는데 무게가 약 7kg이나 되었습니다. 거기에다 그의 앞에는 큰 방패를 든 자가 서 있었습니다. 골리앗은 홍안의 다윗이 막대기를 가지고 나오는 것을 보고는 우습게 여겨 그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 “내게로 오라 내가 네 고기를 공중의 새들과 들짐승들에게 주리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조금도 위축되지 아니하고 골리앗에게 이르기를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고 했습니다. 

이에 골리앗이 일어나 다윗에게로 마주 가까이 올 때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향하여 빨리 달리며 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취하여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쳤습니다. 그러자 그 돌이 순식간에 그 이마에 박혔고 골리앗은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이에 다윗이 달려가서 골리앗의 칼을 빼어 그를 죽였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할 때 골리앗 같은 대적이라도 두려움 없이 대항하여 이길 수 있습니다. 

하물며 메시아께서 오셔서 원수들에 대하여 보복하시고 구해 주신다면 하나님의 백성이 두려워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영적으로 볼 때, 성도들은 마귀의 군대와 대적하여 싸우는 사람들입니다. 그뿐 아니라, 마귀가 이 세상 임금이므로 세상은 예수님께 속한 성도들을 미워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르시기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멸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메시아이신 주 예수를 의지하여 강하고 담대하게 마귀의 세력과 싸워 이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세 번 째로, 메시아께서는 그를 믿는 자들에게 치료의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5)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6)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7)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시랑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5절 말씀과 같이,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친히 소경의 눈을 고쳐주셨고 귀머거리로 하여금 듣게 하셨고, 벙어리를 치료하여 말하게 하셨으며, 저는 자들을 일으켜 온전히 걷게 하셨습니다. 그와 동시에, 이 말씀은 영적으로 소경되고 귀머거리 되고 벙어리 되고 저는 자들을 온전하게 회복시키신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소경된 사람들은 피조세계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보면서도 창조주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만물이 우연히 저절로 만들어 졌다고 주장합니다. 그뿐 아니라, 수많은 전쟁과 민족 분규, 지진과 해일, 기근 등 자연계의 이변들을 보면서도 그것이 종말의 징조들인 줄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에 관해서, 천국과 지옥에 관해서 말해 주어도 마음의 귀가 먹었으므로 듣지 못합니다. 아니, 듣기는 들어도 깨달아 알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메시아를 믿으면 심령의 귀가 열려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알게 됩니다. 

그리고 영적으로 벙어리 된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송하거나 기도할 줄을 모릅니다. 믿음의 말을 할 줄 모릅니다. 그러나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자들의 입을 열어 하나님께 찬송과 기도를 할 수 있게 해 주십니다. 그리고 저는 자들은 아무 선을 행할 능력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받은 후로는 사슴같이 뛰듯이 힘차게 선을 행하면서 살게 됩니다. 

그리고 성도들은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내주신 성령을 선물로 받아 늘 영적 생명이 넘치는 삶을 누리게 됩니다.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되고 메마른 땅이 변하여 샘의 근원이 되고 승냥이 떼가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나는 습지가 될 것이라는 말씀이 이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생수의 강, 또는 샘물로 비유하셨습니다. 사막이라도 물만 공급하면 옥토로 바꿀 수 있습니다. 사막과 메마른 땅과 같았던 심령에 성령이 임하시면 생명을 산출하는 마음 밭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신다”는 바리새인들의 비난에 대하여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고 하심으로 친히 영혼의 의사로 자처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메시아이신 주 예수로부터 치료의 은총을 받아 영육간에 모든 연약함을 고침 받을 뿐 아니라 마르지 아니하는 샘물과 같으신 성령을 힘입어 늘 생명이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네 번 째로, 메시아께서는 그를 믿는 자들에게 천국에 이르는 대로를 열어주십니다.

“8)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된 것이라 우매한 행인은 그 길을 범치 못할 것이며 9)거기는 사자가 없고 사나운 짐승이 그리로 올라가지 아니하므로 그것을 만나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얻은 자만 그리로 행할 것이며 10)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믿고 따르려면 넓은 길이 아닌 좁은 길로 가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때 넓은 길은 핍박이 없고 안일하고 세속적인 삶을, 좁은 길은 핍박을 감수하는 믿음의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대로(大路)는 곧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탄탄대로입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틀림없이 천국에 당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대로에는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을 받은 사람들만 통행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길은 우매한 자들 곧 세상의 지혜를 자랑하는 자들은 다닐 수 없으며,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받은 성도들만 다닐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길에는 사자나 사나운 짐승이 없습니다. 곧 사자로 비유되는 마귀나 마귀에게 속한 악한 자들은 성도들이 걸어가는 천국 길에 들어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속받은 성도들이 두려움 없이 안심하고 영원한 천국을 향하여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성도들은 노래하면서 시온에 이르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얼굴을 찡그리고 투덜대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이 노래하면서 해야 합니다. 드디어 성도들은 신앙의 순례길을 마치고 시온 곧 영원한 천국에 이르러 영영한 희락과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28)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29)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보혈을 주고 사신 성도들을 다시 마귀에게 빼앗기시는 법이 없으며 영원한 천국에 이르기까지 지켜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아 시대를 멀리서 바라보면서 이 예언을 했으나, 저와 성도님들은 이 예언이 이미 성취된 것을 확인하고서 믿는 것이니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입니까! 그런즉 성도님들께서는 이사야서 35장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알고 메시아 시대의 축복을 누리면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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