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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정한 감사 (눅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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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감사 (눅 17:16)

(눅 17:16)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곽선희 목사님이 브라질에 있는 유명한 아마존 숲을 방문했을 때 40m나 되는 아주 큰 나무, 꼭대기 나뭇가지 사이에다가 꼭 까치집처럼 지은 방이 그 호텔에서 그 방이 제일 비싼 방인데 사다리를 타고 한참 올라가 그 방에 들어가서 며칠을 유숙한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밤에 자는 동안에 지붕 위에 원숭이들이 모여가지고 얼마나 시끄럽게 하는지 정신이 없고, 아침에 문을 열고 나오면 문 앞에 원숭이들이 있다가 막 달려듭니다, 뭐, 먹을 것을 좀 달라고... 그런 짐승들 속에서 며칠을 지내는 좋은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호텔에 사장님 되시는 분하고 제가 좀 사귀었는데 이 분하고 같이 숲을 지나갈 때 그 사장님이 누군가를 다 아니까, 이 짐승들이, 그래서 바나나를 한 바구니 들고 가면서 특별히 어린 원숭이들이 올 때 하나씩 주는 거예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이것을 받아갈 때 탁 잡아 빼앗듯이 가로채가지고 도망을 갑니다.  매일같이 그렇게 주는데도 그렇게 공손하게 받지 않고, 받고 탁 잡아채고는 막 도망을 가요.  

'저것이 왜 저럴까?'  그래 물어보았더니 그 사장님은 전문가이신데. "이것이 동물과 사람 다른 겁니다."라고  아주 인생 철학을 말씀하시더랍니다.  

동물은 한 평생 바나나를 이렇게 주어도 고마운 줄 모릅니다. 이게 특징입니다. '왜 저렇게 도망가느냐?' 그것은 불신 때문입니다. 이것을 주고 자기를 붙잡을까봐 그저 이것만 받아가지고는 도망을 가요.'  참 귀중한 진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의 마지막 여행을 위해 갈릴리와 사마리아 접경을 지날 때 열 명의 나환병자를 만나셨습니다. 나환병자들은 예수님을 보고 멀리서 소리를 높여 긍휼히 여겨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긍휼히 여겨 달라는 그들의 외침 속에서 그들이 예수께서 자신들을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병 고침을 호소하는 열 명의 나환병자들을 말씀으로 치료해 주셨습니다. 고침을 받은 열 명의 나환병자 중 사마리아인 한 명만이 주께 나아와 감사드렸습니다.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감사가 무엇인지 진정한 감사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합니다.

진정한 감사는 은혜를 기억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으로부터 고침을 받은 이는 모두 열 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방인 한 명을 제외한 아홉 명은 하나님께 나아와 감사하지도 않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받은 바 엄청난 은혜를 잊어버렸습니다.

레위기 13:45-46에 기록된 말씀에 의하면 나환병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고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부정하다 부정하다”라고 말해야 했고, 일반 사람들과 격리되어 진 밖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여기에서 옷을 찢고 머리를 풀고 자기 입술을 가리는 행위는 모두 자신을 죄인으로 비하시키는 표현입니다. 또 그들이 자신을 부정한 자라고 외치면서 사람들과 격리하여 사는 것은 거룩한 선민들과 상대할 수 없는 버려진 자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그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치유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 가운데 이 은혜를 기억하고 돌아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자가 이방인이었던 사마리아 사람 혼자였고, 소위 선민 유대인들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참된 감사는 은혜를 기억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시 103:2)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께로부터 구원함을 얻은 성도의 마음이 냉냉합니까? 왜 감사와 감격을 상실했습니까? 이는 잊어서는 안 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한 까닭입니다.
  
감사는 받은 바 은혜를 기억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죄 사함과 병 고침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시 103:3)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인간은 죄 가운데 태어났고(시 51:5), 
죄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래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롬 3:10).

그러나 하나님께 돌아온 자는 그 누구나 용서함을 받았습니다(사 55:7).
그 죄가 진홍같이 붉을 지라도 양털같이 되게 하셨으며(사 1:18), 저희 죄를 다시 기억조차 아니하셨습니다(히 8:12).

때문에 시편 기자는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라고 완전한 죄의 사유하심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죄의 결과는 멸망입니다. 그 멸망의 깊은 늪에 빠진 우리를 건져 주신 것입니다(요 3:16).
이 은혜를 회상하여 잊지 않는 자는 늘 감사와 감격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병 고침의 은혜는 죄 사함의 은혜와 나란히 언급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타락과 질병은 영적인 원인을 가지고 있습니다.(풀스포드(Pulsford) 육체의 질병들은 결국 영적인 부조화와 연약함으로 인하여 발생합니다. 때문에 병을 고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영혼의 죄악을 먼저 사하시고 치유의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었습니다(막 2:5-12).
육체의 질병들은 모든 죄악을 사유하심에서 그 치유가 가능합니다. 따라서 육체의 모든 병을 고쳐 주셨다는 사실은 영육 간에 치료하여 주신 은혜를 의미합니다.
  
인자하심으로 구속하여 주셨습니다.

(시 103:4)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는 앞에서 주신 죄 사함과 병 고침의 은혜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파멸에서'란 말은 죽음, 무덤, 지옥 등을 포함한 '웅덩이'에서 구원하셨다는 말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생명이 파멸을 당한다는 것은 인생에게 최대의 절망적인 사건일 것입니다. 
이젠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죄에서 영혼이 구속함을 받으며 죄의 형벌인 영적인 영원한 죽음에서 놓임을 받습니다(행 2:21).

지금 구원함을 받은 것이 확실하다면 바로 이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따라서 이 구속의 은혜를 잊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도 결코 메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에 대한 사랑은 죄와 질병과 죽음 등의 파멸에서 구원하여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의 자녀들을 마치 왕같이 존귀하게 세워 주셨습니다.
멸망 받아 마땅한 죄인을 구원하시고 그 위에 하나님은 그의 인자하심 곧 영원한 사랑으로, 그분의 거룩한 속성에서 흘러나오는 애정으로 그의 자녀들을 영화롭게 관을 씌워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 선 그의 자녀들은 초라한 죄인들이 아니라 존귀와 영화로 관을 쓴 하나님의 후사들입니다(시 8:5).
   
만족함과 새롭게 하시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시 103: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것도 특별히 '좋은 것'으로 만족케하여 주십니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심이로다'(시 107:9; 사 55:1, 2).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의 생명이 하나님께 속해 있기 때문에 결코 속절없이 시들지 않고 측량할 수 없는 힘과 기쁨이 날마다 새롭게 넘쳐나게 하십니다.
   
미국 조지아주에 말터벨이라는 여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시골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너무 가난한 시골학교라 학교에 피아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은 당시에 미국 최고의 부자였던 자동차의 왕 헨리 포드에게 1000불만 보내달라고 간곡한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헨리 포드는 그 편지를 받고 마음이 상했습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헨리 포드에게 돈을 요구해서 받아갈 때는 사정해서 받아가지만 대부분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그것으로 끝났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일거라 생각하고는 그냥 거절할 수가 없으니까 10센트를 보내주었습니다. 1000불을 달라고 했는데 1달러도 아닌 10센트를 보냈으니 이게 되겠습니까, 

그런데 그 선생님은 그 돈을 감사히 받아서 10센트 만큼의 땅콩을 사서  운동장 한 구석에다 심었습니다. 얼마 후에 땅콩을 수확해서 얼마 정도의 이익금을 냈습니다. 그는 그 돈에서 얼마를 떼어서 헨리 포드에게 감사의 편지를 담아서 보내주었습니다. 

또 다음 해에도 더 많은 씨를 뿌리고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그 결과 5년만에 피아노를 살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헨리 포드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냈습니다. 

헨리 포드는 여 선생님의 편지를 받고 너무 기뻐서 선생님이 요구한 천불의 10배나 되는 만불을 보내면서 거기에 "당신이야말로 내가 미국에서 만난 유일한 사람이오. 나는 당신에게 돈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보내오, 나는 당신을 만나므로 감동을 받았소."라는 편지를 동봉했습니다. 

그 선생은 10센트를 받고 불평과 불만을 심은 것이 아니라 적게 주었다고 원망한 것이 아니라 감사의 씨를 심어서 엄청난 하늘의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땅콩의 수확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고침 받은 열 명의 나환병자들 가운데 오직 사마리아인 한 사람만이 돌아와 주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나환병이 나았음을 확인하자마자 주님께 나아와 큰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엎드려 사례했습니다. 여기에서 사례했다는 말은 깊은 환희와 감격으로 감사를 드리는 행위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랑의 감사를‘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18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감사 찬송케 하려는 목적으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엡 1:5-6)이라고 증언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분을 영화롭게 섬기려는 목적으로 지으심을 받았고, 구원함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의 목적에 합한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므로 진정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독일의 신비주의자 타울러가 하루는 거지를  만나서 "친구여, 오늘도 안녕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하니 그 거지가 대답하기를 "난 하루도 안녕하지 않은 날이 없어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타울러가 말하기를 "여보시오, 그러면 행복하시기를" 하자 거지의 대답이 "난 불행해본 적이 없어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타울러는 놀라서 "그것은 무슨 뜻이죠?"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거지는"날이 좋으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비가 와도 감사하고, 먹을 것이 넉넉하면 감사하고, 배 고파도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나의 뜻이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무엇이나 나를 기쁘게 하는데 무엇 때문에 내가 불행하지 않을 때 불행하다고 말해야 합니까"라고 대답했습니다. 타울러는 놀라서 그를 쳐다보고 "당신은 누구시오"라고 물었습니다. "나는 왕이오"라고 그 거지는 대답했습니다. "그럼 당신의 나라는 어디 있소"라는 타울러의 질문에 "내 마음속에…" 라고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진정한 감사를 드리는 자에게 온전한 구원을 이루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19절에 주님께서는 홀로 돌아와 사례하는 사마리아인에게“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사마리아인이 단순히 육체만 나환병에서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이제 그의 영혼도 영원한 죄사함을 받고 구원받았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러므로 열 명의 나환병자가 주님을 만나 나음을 얻었지만. 진정한 의미에서 온전한 구원을 받은 사람은 오직 한 사람, 바로 사마리아 사람뿐이었습니다. 

다같이 주님의 은혜를 입었지만, 아홉 사람은 육신적인 구원, 일시적인 구원을 받은 반면, 사마리아 사람은 영육이 모두 구원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육신은 구원받았으나 그 받은 바 은혜를 감사하지도 않고, 하나님께 영광도 돌리지 않은 아홉 명은 얼마나 불쌍한 사람들인가요? 그러나 영원한 대제사장 되시는 예수님께 찾아와 감사를 표하고 그 앞에 영광을 돌린 사마리아 사람은 영원한 천국 도성으로 들어가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은혜 위에 은혜인가요? 그렇습니다. 바로 여기에 감사하는 자와 감사하지 않는 자의 영원한 구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어리석은 아홉 명처럼 받은바 은혜를 감사하지도 않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은 채 그저 일시적인 구원함을 받았던 유대인들처럼 되지 말고, 받은 바 은혜를 항상 기억하며, 하나님께 나아가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전도자 존 하갈이 목회자가 되려고 준비하던 기간에 그는 쓰디쓴 고통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그의 아들이 1950년에 뇌성마비로 갑자기 쓰러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낙담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 아들의 병으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이 일로 인해 주께서는 나를 겸손하게 하셨고 남을 도울 수 있는 마음과 내 아들처럼 병고에 시달리는 이웃을 돌아볼 수 있는 사랑을 주셔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기도 드렸습니다. 그 후로 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흥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이런 감사의 삶을 살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과 천국을 선물로 예비하시고, 때가 되면 반드시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어떤 사람이 등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산을 오르다 급한 일이 생겨 어디에다 볼일을 볼까 두리번거렸습니다. 마침 제법 큰 바위가 있어 그 옆에서 보면 다른 사람의 눈에 띠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볼일을 보았습니다. 보고 나서 돌아보니 좀 그랬습니다. 그래서 돌들을 주어다가 똥을 덮으려 탑처럼 쌓았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산을 올랐습니다. 정상에 올라 시원한 시야를 보며 유쾌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산을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내려오면서 보니 웬 사람들이 모여서 고개를 숙이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사람들이 왜 저기서 그러는가 하고 가까이 가 보았습니다. 아까 자신이 급해서 볼일을 본 자리였습니다. 뒤따라 산에 오른 사람들이 거기에다 돌을 하나 둘 던지다 보니 제법 큰 탑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거기가 무엇을 비는 곳이라고 착각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지나가다 돌을 집어 던지며 손을 비비며 소원을 빌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 사람들은 똥에다 소원을 빌고 있었습니다. 너무 민망하고 당황스럽기도 하여 못 본체하고 빠른 걸음으로 산을 내려왔습니다. 

때로 사람들은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웃는 돼지 머리에다 복을 기원하는 사람들 나무나 돌 또는 쇠로 만든 우상에서 복을 기원하는 사람들, 모르고 하는 일이긴 하나 똥에게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고 믿고 그 분에게 구하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것인지를 고백하여야 합니다. 

감사의 이유가 세상이나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께 있기에 언제나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가 신앙이고 축복입니다. 감사하는 성도가 되고 영광돌리며 사명 감당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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