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회복, 그 두 번째 말씀 (왕상 19:1-8)

  • 잡초 잡초
  • 310
  • 0

첨부 1


회복, 그 두 번째 말씀 (왕상 19:1-8) 
 
 
❚탈진의 회복

해마다 겨울이 되면 강원도 산간지역의 공무원과 군인장병들이 하는 일이 하나 있습니다. 사료와 생고기 등을 짊어지고 산골짜기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겨울이 되면 눈이 쌓이고 야생동물들이 먹이가 부족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떤 동물은 굶어죽거나 얼어 죽기도 하고 또 멧돼지 같은 동물은 인가까지 내려와 밭을 망치거나 피해를 줘서 포수의 총에 맞아 죽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해마다 겨울이 되면 강원 산간지역 공무원과 군인장병들이 이렇게 먹이를 짊어지고 산에 올라가 먹이를 뿌려주곤 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하는 일은 그렇게 먹이를 뿌려주다가 굶주려 탈진한 야생동물을 만나면 데려다가 강원도 가축위생시험소라는 곳에 데려갑니다. 이곳은 가축을 시험하는 곳이 아니라 이렇게 탈진한 야생동물들을 데려다가 배불리 먹여주고 따뜻하게 재워주고 푹 쉬게 해서 기력이 회복되면 돌려보내 주는 일을 합니다. 말하자면 야생동물들의 피난처요 안식처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동물만 탈진합니까? 아닙니다. 사람도 탈진합니다. 오히려 동물은 겨울에만 탈진하지만 사람은 시도 때도 없이 탈진합니다. 동물은 춥고 배고플 때만 탈진하는데 사람이라는 존재는 몸이 힘들 때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힘들 때 더 자주, 더 심하게 탈진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동물보다 더 문제입니다. 어쩌면 동물위생시험소가 아닌 사람위생시험소가 필요할지 모릅니다. 이렇게 인생을 살다가 탈진하고 지친 사람들이 찾아가 푹 쉬고 안식할 수 있는 피난처요 안식처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피난처요 안식처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아멘!

지난 시간 선지자 엘리야의 탈진과 그 세 가지 이유를 알아보았습니다. 세 가지가 무엇인지 기억나십니까? 첫째, 큰일을 이루고 나서, 큰 승리를 얻고 나서 모든 에너지가 일순간에 고갈되어 탈진상태에 빠진 엘리야, 탈진증후군(脫盡症候群=burnout syndrome)에 걸린 엘리야를 하나님이 어떻게 회복시키실까요? 둘째, 나를 미워하고 집요하게 공격하고 넘어뜨리려는 사람 앞에서, 꼬인 인간관계 때문에 탈진상태에 빠진 엘리야를 하나님이 어떻게 위로하고 회복시키실까요? 셋째, 내 마음 속에 있는 탈진의 세 가지 원인, 즉 두려움, 비교의식, 그리고 고독 때문에 죽고 싶다고, 하나님께 제발 죽여 달라고 한 엘리야, 하나님이 어떻게 이 마음의 병을 치유하고 회복시키실까요? 오늘 본문에는 이 세 가지 이유로 우리 인생에 갑자기 찾아온 탈진을 회복하는 하나님의 세 가지 방법이 잘 나타납니다.

❚첫 번째 회복방법, 피해가기

하나님의 첫 번째 회복방법은 피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어떨 때는 피해 도망하는 것이 가장 좋은 회복의 방법일 때가 있습니다. 엘리야는 자기 목숨을 건지기 위해(3절 “자기 생명을 위해”) 도망간 것이기에 비겁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떨 때는 도망가는 것이 비겁한 것이 아니라 가장 현명한 문제 해결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흔히 “36계 줄행랑 친다”는 말을 쓰지요? 무슨 뜻일까요? 중국의 병법서 중 가장 유명한 손자병법에 보면 적과 전쟁을 하는 36개의 계책이 나오는데 그 중에 처음 나오는 1계부터 6계까지는 압도적인 전력일 때 적과 정면으로 맞붙어 싸워 이기는 방법을 말하지만 맨 마지막 36번째 계략은 “전세가 대단히 불리할 때는 맞붙어 싸우지 말고 일단 후퇴하라”는 것입니다. 소위 ‘전략상 후퇴’인 셈이지요. 여기서 ‘36계’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36번째 계략이 바로 “일단 도망가라, 전략상 후퇴하라”기 때문입니다. 안 될 때는 맞붙어 싸우지 말고 피해가고 도망가는 것이 최고일 때도 있습니다.

얼마 전 제가 이런 설교를 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다가 겪는 문제나 특히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이 성경에 네 가지가 나오는데 첫째는 ‘대면하기’(face)로 문제와 정면으로 맞붙어 싸워 해결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수용하기’(accept)로 내 생각은 일단 접어두고 상대방의 주장을 수용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기다리기’(waiting)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꾹 참고 인내하며 기다리는 것이지요. 그런데 마지막 방법이 ‘피하기’(flotation)입니다. 

‘flotation’이라는 말은 홍수 때 물 위에 둥둥 떠다니듯 슬슬 피해 다니는 것입니다. 이 ‘피해가기’ 방법은 대면도 수용도 어려울 때 쓰는 방법입니다. 다윗은 이 방법을 사울을 피해 다닐 때 사용합니다. 사울이 자기를 시기해서 죽이려 하자 다윗은 엔게디 광야로 도망가 이리저리 피해 다닙니다. 왜 그렇게 했겠습니까? 대면도 수용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대면해서 싸우자니 사울을 죽여야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내가 해칠 수 없다”는 믿음이 있어서(삼상 24:6, 10) 사울을 대면해 싸우거나 죽일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울을 수용하면 어떻게 됩니까? 

내가 죽어야 합니다. 그러니 이도 저도 안 될 때 택한 방법이 피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럴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대면해 싸우면 나도 상처받고 저 사람에게도 상처 주게 되니까 피해야 합니다. 수용하자니 내가 죽게 생겼습니다. 이럴 때 피하십시오. 참 좋은 방법입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무조건 피하는 것이 아니라 부딪히려 하고 갈등이 너무 커져서 폭발할지 모르는 순간만 잠시 피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면 상대방이 내 진심을 알아주거나 정 안 되면 하나님이 직접 해결하실 것입니다. 부부싸움 하다가도 너무 심해져서 수습이 안 되면 잠시 피하라고 했지요? 너무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으면 영원히는 말고 잠시 밖에 나가 한 바퀴 돌고 오세요. 놀랍게도 그 새 분노가 많이 사그라지고 이성을 되찾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갈등이 생기면 잠시 피하세요.

하나님은 지치고 탈진하고 두려움에 떠는 엘리야를 멀리 광야로 도망하게 하십니다. 광야는 아합 왕과 이세벨 왕비가 쫓아올 수 없는 척박한 땅이기도 하지만 또 한 편으로 성경에서 광야는 아주 좋은 피난처요 안식처이며 또한 재충전을 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엘리야를 이 광야 피난처로 보내 다시 재충전하고 힘을 얻어 돌아오게 하려고 일단 광야로 작전상 후퇴를 시키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온 이 광야를 하나님의 훈련과 재충전의 장소라고 해서 ‘광야학교’라고도 부릅니다. 애굽 사람을 쳐 죽이고 쫓기던 모세도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 40년 동안 지내면서 재충전하고 훈련을 받습니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잠시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고, 다윗도 사울을 피해 광야에서 10년을 지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 광야를 자주 이용하십니다. 우리의 피난처로, 때로는 휴식처로, 혹은 훈련장으로 말입니다. 우리가 너무 지치고 힘들 때, 큰 시련을 당할 때, 혹은 인간관계가 너무 어려워 질 때, 재충전이나 훈련이 필요할 때 종종 우리를 광야로 보내 잠시 피하게도 하시고, 또 그곳에서 다시 재충전을 받아 돌아오게도 하고, 세상을 이기는 능력을 훈련하는 장소로도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광야 같은 인생이 힘들기는 하지만 이 광야학교 졸업장을 가진 분들은 어떤 시련도 이기고 극복할 수 있는 끈끈한 야성(野性)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온실의 화초나 새장 속의 새처럼 얌전하게 곱게만 믿지 말고 강한 야성, 좀 터프하게 강인하게 믿는 것도 필요합니다. 오늘 하나님은 엘리야를 광야로 도망하게 하여 위험에서 잠시 피해 보호도 하시지만 나중에 나오는 것처럼 광야학교의 훈련을 통해 엘리야를 더욱 강하고 야성이 있는, 더 능력 있고 위대한 종으로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번째 회복방법, 만지심

하나님의 두 번째 회복방법은 만지심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광야 로뎀 나무 아래 털썩 주저앉아 차라리 날 죽여 달라고 협박한 뒤 지쳐 잠든 엘리야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천사를 보내 어루만지십니다. 5절과 7절 두 번이나 그렇게 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만지심(touch)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힘들고 지쳐 탈진하고 쓰러질 때 잔소리 안 하십니다. 우리 앉혀놓고 몇 시간 씩 설교 안 합니다. 우리가 지치고 탈진한 자녀에게 잔소리하면 받아들이던가요? 그냥 아무 말 없이 두거나 위로해야지요. 하나님도 그냥 우리를 만져주십니다. 

이사야 6장에 선지자 이사야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 죄인인 내가 하나님을 뵈었으니 화(禍)로다, 내가 죽게 생겼다 탄식하는데 이 때 하나님은 스랍(천사와 비슷한 존재)을 보내 제단에 핀 숯을 가져다가 이사야의 입술에 대게하며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고 선포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천사를 통해 우리를 만지시는 것입니다. 다니엘 10장에 보면 다니엘이 이런 환상을 봅니다. 한 손이 자신을 어루만지며 미가엘 천사가 너를 도와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다니엘이 이런 체험을 하면서 너무 놀라고 두려워 말문이 막히자 천사가 다니엘의 입술을 만지면서 말문을 열어줍니다. 그리고 또다시 그를 만지면서 “너는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라”고(11절), 힘을 내서 신앙의 고독한 싸움을 이겨내라고 격려하십니다. 힘을 주십니다.

온종일 광야에서 도망하다 완전히 탈진해 잠이 든 엘리야를 천사가 어루만집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성령님을 통해 우리를 만지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만지심은 우리를 위로하고 힘주시는 만지심입니다. 죄에 지쳐, 삶에 지쳐, 고통과 실패에 지쳐 낙망하고 절망한 우리를 위로하고 힘주시는 만지심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지치고 낙심하여 쓰러지려 할 때, 무언가 큰일을 앞두고 두려워 할 때, 세상에서 외롭게 신앙을 지키며 싸워나가야 할 때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만지시고 안아주십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만지심, touch를 통해 힘을 얻고 위로와 소망을 얻습니다. 여러분도 이 하나님의 만지심을 꼭 체험하기 바랍니다.

❚세 번째 회복방법, 쉼(안식)

마지막 하나님의 세 번째 회복방법은 쉼입니다. 안식 말입니다. 하나님은 로뎀 나무 아래서 지쳐 쓰러져 잠이 든 엘리야에게 천사를 보내 어루만지게 하시고 또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을 두고 먹고 마시게 하십니다(6절). 이렇게 하루 종일 광야로 도망하느라 지치고 배고픈 엘리야는 말 그대로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워 잡니다. 그랬더니 다시 천사가 와서 어루만지며 떡과 물을 먹고 마시게 합니다. 이렇게 잘 먹고 잘 쉰 엘리야는 힘을 얻어 사십일을 밤낮으로 걸어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러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렇게 지치고 탈진할 때 잘 먹고 잘 쉬는 것이 정말 좋은 회복 방법입니다. 우리가 엘리야처럼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쳤을 때 영적으로 탈진하게 됩니다. 기계도 열심히 돌린 후에는 반드시 쉬게 하고 기름도 쳐주어야 합니다. 24시간 잠시도 쉬지 않고 돌리면 기계도 배겨날 수 없는데 하물며 사람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큰일을 한 뒤에는 반드시 적절한 쉼과 휴식이 필요합니다. 우선 엘리야처럼 잘 자고 잘 먹으면서 몸도 마음도 다 쉬어야 합니다. 재충전을 하는 것입니다. 

간혹 먹는 것 자는 것 다 마다하고 죽어라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일 중독증입니다. 직장에서 인정받겠다고, 승진하겠다고, 돈 더 벌겠다고 이렇게 쉼도 없이 일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하루 이틀 살고 말 것도 아닌데 왜 그래요? 교회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쉬지도 않고 죽어라 교회일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틀림없이 하나님이 이러실 것입니다. “이 사람아 내 일을 왜 그렇게 죽어라고 해? 한두 해만 일하고 끝내려고 그러냐? 좀 쉬면서 해라”고 말입니다. 교회 일도 중요하고 하나님 일도 중요하지만 너무 그렇게 아등바등 하지 마십시오. 저도 잘 쉬면서 목회합니다. 

목사도 휴식이 필요하고 재충전이 필요합니다. 저도 너무 지치고 힘들면 맛있는 것 먹고 잘 잡니다. 기도원 가서 기도하며 쉬며 재충전을 합니다. 이것이 롱런하는 비결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일 하다가 죽으면 순교 아닙니다. 하늘나라 가면 하나님이 “너 쉬면서 일하면 평생 수십 년 일할 텐데 왜 벌써 왔냐?” 하실 것입니다. 교회일 열심히 하는 것은 좋지만 적절하게 쉬고 잘 자고 잘 먹으면서 즐겁게 행복하게 하십시오. 안 그러면 금세 탈진하고 지칩니다. 그러면 오래 못갑니다.

여기에 아주 중요한 안식의 원리가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여유가 있는 분입니다. 그래서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신 후 일곱 째 날에 쉬시며 안식일을 지키십니다. 하나님이 지치고 힘들어서 그렇게 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쉬어가면서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욕심이 지나치면 과로하고 지쳐 쓰러집니다. 여유를 좀 가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더 선하고 좋은 것이 나오고 발전적인 것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단순한 쉼과 휴식을 넘어 안식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휴식과 안식은 어떻게 다를까요? 휴식은 일을 잠시 놓는 것이지만 안식은 하나님이 직접 세우신 개념입니다. 안식은 하나님의 품 안에서 재충전을 받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잠시 일을 내려놓고, 예수님처럼 잠시 바쁘고 분주한 일상에서 뒤로 물러나 하나님 품 안에서 안식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야 회복이 있습니다.

❚혼자가 아니야!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은 지치고 탈진한 엘리야에게 세 가지 방법으로 회복을 허락하십니다. 도망하여 피하게 하시고, 어루만지시고, 쉬게 하십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 방법으로 엘리야를 회복시키신 후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최종적인 회복방법은 엘리야를 만나주신 것입니다.

엘리야의 영적 탈진은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그의 내면에서 온 것입니다. 두려움, 비교의식, 외로움입니다. 다른 어떤 이유보다 이 내면의 문제, 마음의 문제가 가장 큰 원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특히 외로움은 참 심각한 문제입니다. 850명의 우상 숭배자들과 혼자 멋지게 싸워 이기기는 했지만 아무도 없이 혼자 싸운 까닭에 그 엄청난 일을 마친 후 그에게는 깊은 외로움과 고독이 닥쳐옵니다. 그래서 현실로부터 도망합니다. 그러나 도망가는 것은 잠시의 해결방법은 되지만 결코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될 수 없지요. 우리도 혼자 하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들과 잘 협력하고 힘을 모아 해야 건강합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외롭지 않고, 지치지 않고 새 힘을 얻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엘리야의 탈진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그를 만나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8절에 먹고 마시고 힘을 얻은 엘리야가 사십일 밤낮을 걸어 하나님의 산 호렙(시내산)에 이릅니다. 거기서 무엇을 합니까? 다음 시간에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호렙산, 시내산은 언제나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엘리야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다시 새 힘과 능력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은 지쳐 쓰러진 엘리야를 “선지자라는 놈이 왜 그 모양이야?” 하고 꾸짖지 않으시고 쉬게 하고 새 힘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지치고 탈진해 하나님 앞에 나아오면 하나님은 우리를 꾸짖지 않고, 세상에서 지쳐 집으로 돌아온 탕자를 끌어안은 아버지처럼 품어주고 새 힘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외롭니? 힘드니? 지치고 넘어질 것 같니? 그러나 이것 하나만은 분명히 알아두어라. 너는 혼자가 아니란다. 내가 너를 찾겠다. 내가 너를 만나주겠다. 너와 함께 하겠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까닭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약속해 주십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이 가운데 세상에서 힘들고 지친 분들 계십니까? 탈진해 넘어진 분 있습니까? 외롭고 낙심한 분 있습니까? 분명히 계실 것입니다. 결코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분이 우리와 동행하시고, 우리를 만나주시고, 만져주시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조차 두렵지 않습니다. 그 하나님을 꼭 만나십시오. 반드시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아멘!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