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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 (고후 11: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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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 (고후 11:22-28)


마 16: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여러분,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자기 목숨과 바꿀 수 있는 것, 자기 목숨을 잃어도 그것 만은 놓칠 수 없다고 붙잡고 있는 것. 그것이 무엇인가? 만약 그것을 발견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소유한 사람은 오늘 죽어도 한이 없을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된다. 그는 바로 사도 바울이다. 22절의 말씀을 보면 그는 육체적으로 자랑할 만한 신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고후 11:22 그들이 히브리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이스라엘인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냐 나도 그러하며

그의 가문과 신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할 만한 가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그것들을 배설물과 같이 버렸다. 

빌 3: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예수님을 만난 후 그의 삶을 변화되었다. 자랑거리 많던 과거의 사울은 죽고 이제 그의 생애 가운데 가장 큰 자랑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되었다. 

갈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예수님을 제대로 만난 사람은 예수님이 자신의 인생에 최고의 가치임을 깨닫게 된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분명히 알고 믿는 사람은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한 분이심을 고백하게 된다. 
그 고백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한 단계 더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모습을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이 수고하고 고생한 것에 대하여 열거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고생하고 수고한 것이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님을 먼저 전제하고 있다. 고린도 교회 안에 사도 바울에 대하여 비난하면서 자신들의 공치사를 일삼는 일부 거짓 교사들에 대하여 변증하기 위함인 것을 알 수 있다. 

고후 11: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는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그가 당한 고난과 핍박을 묵상해보면 목숨이 3-4개 정도 되었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사선을 넘나드는 위험과 위기의 순간들이 여러 번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그가 당한 고난을 열거하면서 마지막 28절에 이렇게 증거하고 있다. 

고후 11:28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아직도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나는 이 말씀을 생각하면 숙연해지고, 전율이 느껴지고, 내 자신은 작아지고 부끄러워진다. 사도 바울 자신이 지금까지 당한 고통은 신경 쓸 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가 방문하여 전도한 곳마다 교회가 세워졌다. 사도 바울의 관심은 오직 교회이다. 그가 세운 교회들에 건재하고 있다면 자신이 당한 고난과 수고는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다. 그는 교회를 자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교회란 무엇인가? 자신의 생명이 위협을 당하는 가운데서도 먼저 교회를 생각하고 염려한다고 했는데 그에게 있어서 교회가 무엇이길래 생명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가? 그것은 그의 교회관을 통해 알 수 있다. 에베소서를 보면 그의 교회관이 잘 나타나고 있다.

엡 1:22-23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엡 2:20-23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1)그리스도와의 수직적 연합관계

교회는 건물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사람의 몸에 비유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 된다. 사람의 몸이 뇌를 통해서 통제되는 것처럼, 교회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움직이는 기관이 되는 것이다. 엄격하게 주종관계를 이루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속량하셨기 때문이다.

고전 6:19-20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행 20:28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값을 지불했는데 그 값이 그리스도의 피다. 그래서 교회를 피로 사신 교회라고 부르는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분신과 같은 존재이다. 교회를 핍박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2)지체들끼리의 수평적 연합관계
고전 12:12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고전 12:26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수평적 관계라는 말은, 모든 성도가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연합해야 하며, 서로 의존하는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지체는 다양하면서도 통일된 한 몸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성도들은 각자 자신이 받은 은사를 가지고 교회의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의 지시를 따라 한 몸으로서의 그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 

만약 한 지체가 자신의 우월성을 주장하면서 다른 지체와 협력하지 않으면 조화가 깨질뿐만 아니라 모두가 다 피해를 당할 것이다. 모든 지체는 다 동등하며 서로 존중하고 협력해야하는 수평적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도 바울의 교회관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그리스도의 몸’ 곧 ‘세상 가운데 현존하는 그리스도’인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육체로 이 땅에 계시지는 않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에게 당신의 사역을 위임하셨고 교회는 바로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기관이 된 것이다. 교회가 주님께서 위임하신 일(마 4:23, 9:35)을 감당할 때 비로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는 것이다. 

백범 김구 선생은 ‘교회 하나 세우는 것이 학교 열 개 세우는 것보다 낫고, 경찰서 100개 세우는 것보다 낫다’고 말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교회가 제 구실만 하면 교회로 인해 그 지역이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되기 때문이다. 교회의 중요성을 깨달은 발언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역할과 기능에 대해 알고 있는 터에 자신이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질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주요 관심사는 오직 주의 몸인 교회였다. 교회가 바로 세워지고 교회가 그 사명을 감당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깨어지고 죽어지는 것은 문제가 되질 않는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오늘날 이 시대에까지 구속함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이 교회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몸으로 보여준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오늘 우리는 교회의 일꾼을 뽑는 중요한 모임을 갖는다. 장로, 안수집사, 권사 교회 안에 매우 중요한 직분이다. 그러나 그 직분은 명예도 계급도 아니다. 교회 다닌지 오래된 사람이나 나이든 사람이 뽑혀야 되는 것도 아니다. 신중하게 뽑아 세워야 한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 근거하여 5가지 기준을 제시하고자 한다. 

1)교회를 바르게 아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요삼 1:9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 10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그가 악한 말로 우리를 비방하고도 오히려 부족하여 형제들을 맞아들이지도 아니하고 맞아들이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쫓는도다

2)경건에 본이 되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요삼 1:12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 너는 우리의 증언이 참된 줄을 아느니라

예)주기철목사와 조만식장로

3)일꾼을 뽑아야 한다(23절).
일꾼은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을 말한다. 일꾼은 일머리를 안다. 나이 많은 사람도 아니고, 사회적 지위와 경험이 많은 사람도 아니다. 재물이 많은 사람도 아니고, 학식이 많은 사람도 아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일을 할 줄 아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4)교회를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옥에 갇히고, 매도 맞고, 돌에도 맞고,... 교회보다 자기 몸, 자기 일, 자기 가정을 먼저 챙기는 사람은 장로나 권사로 적합하지 않다. 필요하면 집도 팔아드릴 수 있는 희생적 용기가 필요한 사람을 뽑아야 한다. 교회를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뽑혀야 한다.

5)덕이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천사의 말을 하고,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고, 구제를 잘 한다해도 사랑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고전 13장의 말씀대로, 오래 참고, 온유하고 투기하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무례하지 않고, 혈기부리지 않고, 약한 지체들을 돌아보고 덕을 세우는 사람이면 더 좋겠다.

이 기준들을 참고해서 투표하고, 세움을 받는 분들은 사도 바울의 심정으로 교회를 사랑하고 충성하는 일꾼들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 교회 역사에 남을 귀한 일꾼이 세워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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