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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흥하는 사람과 망하는 사람 (삼상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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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하는 사람과 망하는 사람 (삼상 3:1-4) 
 
 
여러분! 저는 군대생활을 할 때 청와대를 경비하는 부대에서 근무했습니다. 대통령이 가끔 우리부대에 들어왔습니다. 대통령이 지나가다가 근무를 서고 있는 병사에게 “수고한다” 한 마디만 하면 14박 15일 휴가를 보내주었습니다. 군대에서 14박 15일 휴가는 엄청난 것입니다. 한번은 제가 근무를 서고 있는 방카에 부대장이 지나가다가 들렸습니다. 제 몸을 보더니 어께를 치며 “몸이 좋군”하고 지나갔는데 중대장이 3박 4일 휴가를 주었습니다. 

그런 일이 종종 있으니 부대원들은 자기 근무시간에 대통령이 나타나거나 부대장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여러분! 예배시간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이 내 영혼몸을 터치하는 시간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배를 사모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배 시간에 주님을 만나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복을 받아 누리기를 바랍니다. 

본문은 사무엘이 엘리제사장 밑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섬길 때의 영적 상황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본문에 두 사람이 나옵니다. 사무엘과 엘리입니다. 어린 사무엘은 흥하는 사람이 되었고, 엘리는 망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두 사람을 통해서 흥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망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를 믿는 사람들을 흥하게 만들어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반대로 사단은 자기를 추종하는 자들을 망하게 하려고 역사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사람들을 멸망으로 이끌고 갑니다(요10:10). 

내가 흥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내가 망하는 것은 마귀의 뜻이다. 그러므로 사무엘을 통해서는 흥하는 사람의 모습을 살펴보고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고, 엘리를 통해서는 망하는 사람의 모습을 살펴보고 경계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럼 흥하는 사람과 망하는 사람은 오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1. 흥하는 사람과 망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섬김에서 차이가 납니다. 

1절에 보니 아이 사무엘은 엘리 앞에서 하나님을 섬겼다고 말합니다. 2:11에는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고 말씀합니다. 그 결과 사무엘은 점점 흥하게 되고 이스라엘의 영적인 지도자로 우뚝 서게 됩니다. 
그럼 엘리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습니까? 그는 제사장의 일을 했으나 하나님을 섬기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결국 망하고 말았습니다. 

엘리가 얼마나 비참하게 망했는지는 그의 손자의 이름에 잘 나타나있습니다. 엘리의 며느리가 아들을 낳고 죽었습니다. 그녀는 죽을 때 자기 아들의 이름을 ‘이가봇’ 이라고 지었습니다. ‘이가봇’이라는 말은 ‘영광이 없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식의 이름을 지을 때 잘되고 성공하라는 의미가 담긴 좋은 이름을 짓습니다. 그런데 엘리의 며느리는 어찌하여 아들의 이름을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뜻인 ‘이가봇’으로 지었을까요? 

엘리 시대에 블레셋과전쟁이 있었습니다. 그 전쟁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법궤를 블레셋 사람들에게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엘리의 두 아들이 한 전투에서 사망합니다. 또 그 소식을 들은 엘리제사장은 의자에 앉아 있다가 충격으로 넘어져서 목이 부러져서 죽습니다. 졸지에 가문이 몰락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엘리의 며느리는 자식을 낳고 그 때의 상황을 고스란히 표현하는 ‘이가봇’이라는 이름을 지은 것입니다. 

엘리제사장의 아들들은 불량자들이였습니다. 그 아들들의 소행이 2:12이하에 나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드려져야 할 고기 가운데서 먼저 자신들의 입 맛에 맞는 부분을 떼어냈습니다. 고기를 삶을 때에는 갈고리를 넣어서 걸려나오는 것을 자신들을 위하여 취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리려고 하면 제사를 드리기 전에 자기들에게 고기를 달라고 해서 빼앗다시피 했습니다.

2:22절 이하에 보니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을 해서 회막을 더럽혔습니다. 엘리제사장은 이러한 일들에 대해서 듣고 자녀들에게 그렇게 하지 말 것을 말했으나 크게 책망하지는 않았습니다. 자식들이 그 정도라면 제사를 주관하는 일에서 제외시켜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2:27이하에 보면 엘리와 엘리의 자식들의 잘 못 때문에 하나님의 사람이 찾아와서 엘리 가문의 몰락에 대해서 예언을 합니다. 그 예언의 내용 중에 30절 하반절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이 내용으로 살펴볼 때 엘리는 하나님을 멸시했던 사람입니다. 

교회를 나온다고 해서 그 사람이 꼭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받았다고 해서 그 사람이 꼭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를 나오지만 자기의 목적만을 위하여 하나님을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 봉사도 단지 자신의 축복만을 위해서 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목사가 되어서 목회를 해도 그 목적이 자신의 목적 성취를 위해서만 하는 것이라면 목회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목적과 중심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일이 교회 일이든, 세상일이든 일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일의 목적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세워져 있다면 그 일은 교회일이든 세상일이든 하나님의 일입니다. 반대로 일의 목적이 자신과 자신의 환경의 풍성함만이 목적이라면 그 일이 교회의 일이라도 그 일은 하나님의 일이 아닙니다.

정읍에서 목회를 하시는 김종전 목사님께서 2008년 무안 여름 단기선교에 함께 참석을 하셨습니다. 그 목사님이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김종전 목사님이 섬기는 지역에 중학교 동창생이 사찰을 운영하는가 봅니다. 어느 날 사찰을 운영하는 그 동창생 중이 목사님에게 “여보게! 교회 사업 잘 되는가? 힘들면 나하고 절 사업이나 하세”라고 하더랍니다. 그 사람은 가짜 중입니다. 사찰을 사업으로 생각하니 가짜 중이죠. 그런데 목회도 이렇게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엘리제사장이 그랬던 것입니다. 

부산에 1천 명 정도 목회를 하는 목사님이 죽으면서 “나 예수 몰라”라고 하고 죽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녁 예배에 7,8백 명 정도 나오는 교회 목사님이 저녁 예배에 강사로 오신 분에게 “목사님은 천국이 믿어집니까? 나는 안 믿어집니다. 내 재산이 100억이 넘는데 내가 천국이 있다고 믿어지면 다 헌금할 수 있다”는 말을 해서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목사는 교회를 크게 짓고 많은 사람들을 모았을지 모르지만 교회 사업을 했던 것입니다. 엘리제사장이 그랬던 것입니다. 

마7:15-23에는 주님의 이름으로 엄청난 일을 했지만 주님과 상관없는 일군들이라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동기와 목적을 바로 하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일하십시오. 그 일이 교회 일이 되었든 세상 일이 되었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섬겼던 사무엘의 반열에 서게 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내면에 하나님의 일이 자기의 욕망 충족을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마음이라면 엘리의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2. 흥하는 사람과 망하는 사람의 차이는 하나님의 음성 듣기에서 차이가 납니다. 

3:1의 말씀에 보면 그 시대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했습니다. 이 말은 그 시대의 영적인 무능력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이 희귀하던 시대에 사무엘이 하나님의 궤가 있는 여호와의 전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사무엘아, 사무엘아”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엘리제자상이 자기를 부르는지 알고 엘리에게로 달려갔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세 번이나 사무엘을 부르신 후에야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부르시는 줄 알고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엘리제사장의 집안의 몰락에 대해서 예언의 말씀을 주시면서 사무엘과 대화를 시작하셨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시작하면서부터 놀라운 사역을 감당합니다. 3:19-21을 보면 그 이후로 사무엘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말했던 사무엘의 말을 하나님께서 책임져주셨던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이 사무엘이 하나님의 종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말씀으로 자기를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말씀이 희귀하던 시대에 흥하는 사람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망하는 사람 엘리제사장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했습니다. 2:27이하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를 찾아와서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엘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내신 것입니다. 3:15절 이하에 보면 사무엘을 통해서 자기 집안의 몰락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듣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엘리제사장은 사회적으로 볼 때는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실패한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인생의 기준이 되지 못한 사람은 성공 같은 인생을 살아도 실패한 것입니다. 

미국의 한 교수님이 이 시대의 최고 스타 100명을 조사했습니다. 헐리우드 배우들, 최고의 가수들, 최고의 운동 선수들, 최고의 예술인들을 비롯한 성공자 100명을 조사한 결과 성공자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스트레스를 4배로 더 받는다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성공자들은 대개 사생활이 거의 없고, 문만 나서면 스트레스를 받고, 삶이 목마르답니다. 그리고 그들의 평균 수명이 58세랍니다. 보통 사람은 대부분 72세까지 사는데, 스타의 자리를 차지한 인기인들은 대개 58세 전에 죽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없이 스타가 되고 성공하면 그것이 오히려 불행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타들이 자살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모시고 늘 말씀으로 충만한 사람을 살면 행복합니다. 스타가 되도 행복하고 스타가 되지 못해도 행복합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분입니다. 하나님은 태초에도 말씀하셨고, 2천 년 전에도 말씀하셨습니다. 작년에도 금년에도 어제도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도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입니다. 귀로만 듣지 마시고 영으로 들으시고 마음으로 들으셔서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레마의 음성을 듣기를 바랍니다. 

아모스는 암 8:11-14에 말세의 특징을 선포합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12 사람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북쪽에서 동쪽까지 비틀거리며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돌아다녀도 얻지 못하리니 13 그 날에 아름다운 처녀와 젊은 남자가 다 갈하여 쓰러지리라”

말세는 영적인 기근의 시대입니다. 들을 말씀도 희귀하고 백성들은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려고 이교회 저 교회, 이기도원, 저기도원을 헤매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얻지 못합니다. 그리고 영적인 기갈로 전에는 믿음을 가졌던 사람들도 영적으로 쓰러져가는 시대입니다. 말씀이 없어서 기근이면서 동시에 말씀을 듣지 않기 때문에 기갈입니다.
여러분! 어떤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까? 예배당이 큰 교회입니까? 교인수가 많은 교회입니까? 목사님이 많이 배운 교회입니까? 돈 많은 교인들이 있는 교회입니까? 아닙니다. 말세에는 말씀이 좋은 교회가 복된 교회요 좋은 교회입니다. 강단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성도들은 그 말씀 속에서 자신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말씀의 홍수 시대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보혜사로 친히 우리 가운데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수많은 설교를 들어도 내 마음에 감동이 없다면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의심해 보아야합니다. 숫하게 많은 예배를 들여도 예배를 통해서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면 심각하게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고민해야 합니다. 

설교를 판단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내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설교를 듣고 감동은 받습니다. 그러나 말씀대로 살기는 원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말씀을 찾아 헤매는 영적인 떠돌이들이 많습니다. 어디 새로운 말씀이 있다고 하면 “우~”하고 몰려갑니다. 어디 새로운 설교자가 뜬다고 하면 “우~”하고 몰려갑니다. 그러나 자신의 삶을 변화 시키려고는 하지 않습니다. 

나를 살펴야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인가? 설교를 통해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가?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살아간다면 나는 망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사무엘처럼 흥하는 사람입니다.
다윗과 사울의 큰 차이가 이것입니다. 다윗도 범죄한 일이 있고 사울도 범죄한 일이 있습니다. 범죄한 그들이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를 잃게 되니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서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고 우리야를 죽인 후에 나단 선지자가 찾아갑니다. 그리고 다윗을 책망합니다. 다윗은 나단을 통해서 들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즉시로 회개합니다. 그러기에 그는 흥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사사울은 어떻습니까? 사울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짐승을 멸하라고 하셨는데 양이나 소중에 좋은 것들을 남겨놓았습니다. 이 일로 사무엘이 찾아와서 책망하니 사울은 변명하기에 급급하고,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웠고, 백성들 앞에서 자기를 높여달라고 청합니다. 사울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망했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무슨 일을 하든지 그 일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 일에 대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어야 하며, 그 음성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흥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3. 흥하는 사람과 망하는 사람은 비전에서 차이가 납니다. 

1절에 보니 그 시대에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다고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이상은 ‘비전’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백성들뿐만 아니라 영적인 지도자 였던 엘리 제사장의 눈에도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이 없었던 것입니다. 비전이 없는 것은 망해가는 사람의 공통점이다. 
사무엘의 눈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이 보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나타나셨고 심지어 앞으로 되어 질 일까지 보여주셨습니다. 사울이 왕으로 뽑힐 것도 다윗이 왕으로 세워질 것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망해가는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비전이 없다는 것입니다. 망해가는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비전이 없다는 것입니다. 잠 29:18은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묵시’는 ‘비전’을 말합니다. 비전이 없으면 백성은 교만해집니다. 마음대로 행합니다. 방자히 행합니다. 그리고 결국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징기스칸의 리더십의 비밀 열 가지를 정리해 놓은 글을 읽어보니 그 첫 번째가 충분히 몽골족을 동기부여 시킬만한 ‘웅대한 비전’이라고 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몽고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교회의 모토가 “위대한 비전이 위대한 인생을 만든다”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위대한 비전은 바로 주님의 비전을 말합니다. 이 비전을 목양비전이고, 세계비전이고, 열방비전입니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히11:1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라고 말합니다. 

비전이 있는 사람은 성령충만한 사람입니다. 행 2:17에 보면 성령이 임하시면 주어지는 특징이 비전입니다. 자녀들은 예언을 하고, 청년들은 환상을 보고, 노인들은 꿈을 꾸게 됩니다. 
비전이 있는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빌2:13에 보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에 소원 즉 비전을 두고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엘리제사장은 하님의 소원, 하나님의 비전이 없었으니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의 소원,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이 자신 안에 충만했기 때문에 그 비전을 따라서 풍성하게 하나님의 일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확실한 비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지역과 민족과 열방을 섬기는 비전이 있습니다. 1,000명의 중보기도자와 1000명의 바르실래 그리고 1000명의 평신도 사역자를 세워서 함께 지역과 민족과 열방을 섬기는 비전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직업이나 재능으로 하나님의 일에 Tm임 받는 비전을 품으시기를 바랍니다. 비전이 분명하면 인생을 성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민족은 노벨상을 제일 많이 받고 과학자, 예술가 등 여러 분야에서 우수한 사람들을 배출하고 미국의 경제권을 가지고 정치를 움직이는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랍비, 부모, 학생이 앉아 장래를 설계한다고 합니다. ‘장차 어떤 인물이 될 것인가’를 의논하고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목표를 세워 그대로 전진하게 합니다. 설계를 빨리 하기 때문에 유대인 학생들을 따라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학생들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물어보면 두고 봐야 알겠다고 대답을 합니다. 고등학교 수험생들에게 어느 대학의 무슨 과를 갈 것인지를 물어 봐도 아직 잘 모르겠다고 대답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몇 년씩 뒤쳐져서 다른 나라의 우수한 학생들이 모두 자리를 잡은 후에야 뒤늦게 따라가느라 고생을 하는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바라보는 비전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위해서 사느냐 왜 사느냐에 대한 질문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정확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은 그 비전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까? 아니면 내가 만들어낸 것입니까? 내가 만들어 낸 것이라면 사무엘처럼 흥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에 사로잡혀 있다면 흥하게 될 것입니다.

몇 해 전, 하버드 대학의 심리연구소에서 사십 년간 직장에서 일하고 은퇴한 노인들을 조사했습니다. 그분들 중에서 존경을 받으며 경제적으로 여유 있게 사는 분들은 3%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웰빙 노인들, 행복하게 사는 노인들이 3%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도 않고 존경도 받지 않지만 그래도 살 만큼 사는 노인이 10%였습니다. 그리고 쪼들리지만 먹고사는 노인이 60%였습니다. 27%의 노인이 경제적으로 아무것도 없어서 자신의 힘으로 살 수 없었습니다. 몸이 아파도 노인 복지회나 사회 보장제도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노인이 미국에서 27%나 되었습니다. 

그 연구소에서 역으로 조사해 보았습니다. 은퇴한 후에도 훌륭한 삶, 빛나는 삶을 사는 3%의 행복한 노인들은 어떻게 살아왔을까를 조사해 보니 이구동성으로 ‘분명한 삶의 목표를 기록해 놓고, 희망을 품고 그 목표에 다다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살았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그냥 살 만한 10%의 노인들 중에서는 목표를 기록해 놓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나는 이렇게 살 것이다.’라고 목표는 정했지만 기록해 놓지 않고 마음에만 두고 살면서 노력하다 말다가 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겨우 살고 있는 60%의 노인들은 목표 없이 막연하게 ‘잘 되어야 할 텐데……. 성공해야 될 텐데…….’ 하며 그날 그날 그냥 살았다고 응답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나 기관에 의지해서 사는 27%의 노인들은 꿈도 비전도 희망도 없이 그냥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연구결과가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성공적인 인생, 승리하는 인생을 살려면 확실한 꿈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거기에 중요한 한 가지가 더 포함되어야 합니다. 그 비전이 누구로부터 만들어졌는가입니다. 내가 만든 비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에게 영향력 있는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 비전도 안 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여야 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비전이어야 합니다.
목적지가 없이 길을 떠나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어디로 가고 있다는 분명한 목적지가 있습니다. 우리 인생도 그렇습니다. 망하는 사람은 비전이 없습니다. 흥하는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분명한 비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비전을 받았다면 열심히 사십시오. 치열하게 사십시오. 남이나 의지하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 세월의 흐름이 자신을 던지고 여유작작하며 살아서도 안됩니다.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야 합니다.
미국의 저명한 은행의 은행장인 다우링이 상이용사들의 초청을 받아 특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특강을 하면서 상이용사들을 막 공격했습니다. “당신들은 패배주의자들, 남을 의지하고 국가의 연금을 축내며 되는 대로 먹고 마시며 놀기만 하는 나쁜 사람들입니다. 

왜 열심히 일하지 않고 자꾸 의지하려고만 ….” 나라를 위해 싸우다 부상당한 상이용사들을 면전에서 그렇게 공격하니 그들이 화가 나서 그에게 맥주병과 재떨이를 던지며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당신들이 잘못하고 있고, 당신들의 자세가 잘못된 것입니다.”라고 계속해서 공격했습니다. 그러자 상이용사들이 미친 듯이 일어섰습니다. 그때 그는 자신의 한쪽 옷소매를 걷어 올렸습니다. 쇠갈고리가 나왔습니다. 다른 소매도 걷어 올렸습니다. 양팔 모두 가짜 팔이었습니다. 

그는 바지도 걷어 올렸습니다. 양다리도 다 나무다리였습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졌습니다. “여러분, 나는 열두 살 때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눈 위에 10시간 동안 버려져 있었습니다. 그 바람에 두 팔과 두 다리를 다 잘라야만 했습니다. 나는 열두 살에 두 팔과 두 다리를 다 잃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의욕을 갖고 ‘이대로 최선을 다하며 살리라. 남에게 신세지지 않고 살리라. 나는 성공하리라.’라고 각오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서 이렇게 은행장이 되었습니다. 양팔과 양다리가 없는 나도 노력해서 은행장이 되었는데 당신들은 나보다 낫지 않습니까? 왜 그냥 먹고 놀기만 합니까?” 모든 상이용사들이 유구무언이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겠습니까? 

박찬호 선수가 '하루에 천 번의 스윙을 한다. 내 몸을 해치는 술을 절대로 마시지 않는다. 나를 돌아보기 위해 매일 일기를 쓴다. 이 세 가지를 지키지 않으면 나는 절대로 잠을 자지 않는다.'라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때부터 아무리 피곤해도 일기를 쓰고, 아무리 피곤해도 스윙을 천 번 하고, 아무리 운동이 잘 안 되어도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박찬호 선수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붙잡읍시다. 그리고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 몸을 아끼지 말고 최선을 다하며 달려갑시다.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을 사시고 사무엘처럼 흥하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1. 흥하는 사람과 망하는 사람의 차이는 하나님을 섬김입니다.
2. 흥하는 사람과 망하는 사람의 차이는 하나님의 음성 듣기입니다. 
3. 흥하는 사람과 망하는 사람의 차이는 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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