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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일어나라! 일으키라! (행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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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라! 일으키라!  (행 3:1-10)


생애 최고의 순간을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불행한 한 사람이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하반신 마비입니다. 40이 되도록 일어서 본 적이 없습니다. 한 발짝도 걸어보지 못했습니다. 가난합니다. 할 수 없이 구걸합니다. 걸을 수 없으니 사람들이 날마다 성전 문 앞에 메어다 줍니다. 거기 주저앉아서 구걸을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입에 풀칠을 하며 살 수 있습니다. 
내일이면 나아지겠지... 희망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냥 체념하고 살아가는 겁니다. 하루하루 억지로 버티면서 살아온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예배드리러 성전으로 들어갑니다. 그는 성전 문 밖에서 구걸해야 합니다.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영적으로, 인생 전체가 주저앉은 사람입니다. 자기 잘못으로 장애인이 된 게 아닙니다. 그렇다고 부모 잘못도 아닌 겁니다. 그렇게 태어났고, 그렇게 살아가는 겁니다. 살다보면 그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이 사람은 주저앉은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불행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건강이 무너진 분들이 있습니다. 지난주에 암 수술을 받은 분이 계십니다. 이번 주에 암 수술을 받는 분도 있습니다. 질병으로 고생하는 분, 장애를 가진 분, 사고를 당한 분... 
몸은 건강한데 마음이 주저앉은 분들도 있습니다. 마음이 장애인입니다. 경제적으로 주저앉은 분들도 있습니다. 사람관계가 무너져 내려 주저앉은 상태입니다. 그 사람만 싫어요. 꼴도 보기가 싫습니다. 

영적인 상태가 하반신 마비신자입니다. 예배에도 스스로 못 옵니다. 끌려서 간신히 옵니다. 
찬양하고 기도할 때면 입술마비 현상이 옵니다. 설교시간에는 귀에 마비현상이 옵니다. 
전도하는 일에는 아예 전신마비 현상이 옵니다. 꼼짝달싹 안 합니다. 
날마다 성전 문 앞에까지 오고 성전 안에는 들어간 적이 없던 사람처럼, 주일마다 예배시간에 오긴 했지만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는 드려본 기억이 없습니다. 
문에서 사람에게 구걸만 했지 안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예배한 적인 없던 사람처럼, 내 필요만 생각했지 하나님의 소원을 위해서 살지 않습니다. 은과 금은 먼저 구하면서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지 않습니다. 
주저앉아 있는 신자의 모습입니다. 주저앉아 있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기도하러 성전에 들어가다가 한 사람을 만납니다. 베드로와 요한에게 구걸을 합니다. 사도들이 줄 돈이 없습니다. 천 원짜리 한 장도 없습니다. 참 무능한 사람들입니다. 구걸하고 있는 거지보다 형편이 더 못합니다. 
그러나 베드로 사도는 돈보다 백배나 더 좋은 것으로 채워줍니다. 평생을 주저앉아 있던 사람을 일으켜 세워줍니다. 정말 꿈같은 일이 일어난 겁니다. 40년 동안 성전 문 밖에만 있었는데 이제는 베드로와 요한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갑니다. 전에는 사람들의 동정심을 사기 위해서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이제는 너무 감격스러워서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주저앉았던 몸만 일어선 게 아닙니다. 영혼이 일어선 겁니다. 인생전체가 일어선 겁니다. 
하나님은 주저앉은 사람을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사람을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셔서 일으켜 세우는 일을 하십니다. 누가 주저앉은 사람을 일으켜 세워줄 수 있을까요? 

일어서는 사람이 일으킬 수 있다. 
베드로와 요한 사도도 한 때는 주저앉은 제자들이었습니다. 
50여일 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날 저녁일입니다. 제자들은 서로 높아지겠다고 심하게 다퉜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실 때 다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심한 말로 부인했습니다. 예수님이 사흘 만에 부활하시겠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는데도 한 사람도 믿질 않았습니다. 주저앉은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제자들이 일어섭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주신 비전을 붙잡고 일어섭니다. 
비전을 붙잡고 한 마음이 되어 기도함으로 일어섭니다. 성령충만을 받고 벌떡 일어섭니다. 
이제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방안에 숨어있지 않습니다. 침묵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을 만나서 복음을 선포합니다. 담대하게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그 중에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성전으로 기도하러 갑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이름만 나오는 걸 보면서 생각을 해 봅니다. 마10장에는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순서로 이름이 나옵니다. 나중에는 안드레가 빠지고 베드로 야고보 요한의 순서로 이름이 나옵니다. 행1장에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 순서이다. 야고보와 요한의 이름 순서가 바뀝니다. 행3장에는 베드로 요한만 나옵니다. 왜 그럴까? 
베드로는 항상 앞장서는 사람인 걸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은 갈수록 점점 더 열심을 냈던 사람 같습니다. 아마도 안드레와 야고보는 그 반대였던 모양입니다. 
베드로처럼 항상 앞장서서 열심을 내십시다. 요한처럼 갈수록 더 열심을 내시길 바랍니다. 

1.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이 사람을 세웁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제9시에 기도하러 성전으로 가는 길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루 세 번-오전9시, 낮12시, 오후3시-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이지만 유대인의 전통을 따라 기도합니다. 신앙의 좋은 전통은 잘 지키는 게 좋습니다.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하십시오. 지속적으로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손을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움직일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기적을 주십니다.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에게 예비된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십니다. 기도하러 가는 그 시간에 구걸하는 장애인을 만납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그냥 우연한 만남이라고 말할 겁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인 걸 압니다. 
*영혼사랑 페스티발에 초대할 분을 위해 지속적으로 기도하십시다. 주님께서 예비된 사람을 만나게 해 주실 것입니다. 

2.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이 사람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으면 돈이 없어도 못 본체 하고 지나갑니다. 돈이 없으면 당연히 그냥 지나갑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돈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냥 지나가지 않습니다. 
구걸하는 사람 앞에 멈춰 섭니다. 주저앉아 구걸하는 사람을 주목하여 바라봅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겁니다. 
*마음에 품은 VIP를 긍휼히 여기며 바라보십시다.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그와 함께 머물러 있으세요.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주목하여 보십시오. 그러면 그의 필요를 보는 눈이 열릴 것입니다. 내가 무엇으로 도울 수 있을지 알려 주실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는 사람이 사람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하반신 장애인에게 말합니다. “우리를 보라” 뭘 주시려나 쳐다봅니다. 
베드로 사도가 선포합니다. 6절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돈은 없어서 주지 못합니다. 이 사람을 일으켜 세워줄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포하면 예수님이 역사하십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역사하십니다. 
베드로 사도가 조바심이 있었을지 모릅니다. 혹시 선포했는데 일어서지 못하면 창피하잖아? 그러나 침묵하지 않고 선포합니다. 믿음으로 선포합니다. 
민14:27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마16:19 “내가 천국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제도 해야 합니다. 도와드리기도 해야 합니다. 할 수 있는 한 사랑을 많이 베풀어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인생을 세워줄 수 있습니다. 변화시켜 주실 수 있습니다. 다른 것으로는 무너진 주저앉은 인생을 세워드릴 수가 없습니다. 

4. 손을 내밀어 붙잡아 주는 사람이 일으킬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오른손을 내밀어 그 사람의 손을 붙잡아 일으킵니다. 악수하고 놓지 않습니다. 붙잡고 일으켜 세웁니다. 세울때 까지 붙잡고 놓치지 않는 겁니다. 
베드로가 손으로 붙잡아 일으킵니다. 그 순간 발과 발목에 힘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무릎이 펴지기 시작합니다. 일어서니 서집니다. 걸으니 걸어집니다. 뛰어보니 뛰어집니다. 40년 만에 걸어보는 겁니다. 40년 동안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놀라운 일입니다 

영혼이 회복됩니다. 40년 동안 성전 문 밖에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이제는 걸으면서 뛰면서 성전에 들어갑니다. 한 푼 보태주세요 구걸하는 입술이 이제는 회복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입술이 됩니다. 영혼이 회복된 겁니다. 인생이 송두리째 회복된 것입니다. 

5. 일어선 사람이 또 다른 사람들을 일으킵니다. 

성전에 들어가던 사람들이 특별한 찬양을 듣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인생이 통째로 변한 사람의 찬양을 듣습니다. 
돌아보니 날마다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이 일어서서 찬양을 하는 겁니다.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 자리에서 베드로가 설교를 합니다. 복음을 전합니다. 설교를 들은 사람 중에 남자만 5천명이나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맺는 말 
어떤 분이 친구의 전화를 받으면서 나눈 대화입니다. 
<나 부탁이 있는데! 뭔데? 내일 오후에 무조건 시간을 비워둬? 
무슨 일인데? 스케쥴을 봐야 하는데. 내일 오후에 우리 교회와요. 
왜 내가 교회를 가야 하는데? 나 교인 아닌데. 
그냥 오라면 와요. 스케쥴 봐야 하는데... 그런데 가면 좋은 거야? 좋은 일이야? 스케쥴 포기하고 갈만큼 좋은 거야? 당연히 좋아... 그러니까 질문하지 말고 그냥와요. 
스케쥴 봐야 한다니까... 당신 스스로 스케쥴 조정이 가능한 거 알고 있거든... 그러니까 핑계대지 말고 그냥 와! 
스케쥴 포기하고 갔는데 안 좋으면? 안 좋으면... 그냥 날 죽여! 
알았어! 에이 내가 왜 전화를 했냐. 아우... 나에게 낚인 거야. 낼 봐!!!> 

파스칼의 말입니다. “사람이 혼자서 결혼하지 못하는 것처럼 사람은 혼자서 크리스천이 될 수 없다.” 
주저앉아 있는 성도 여러분!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십시다. 
베드로 요한 사도처럼 이제는 주저앉은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주십시다. 
은과 금은 없더라도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십시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으켜 세워주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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