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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그리스도를 본 받는 기쁨 (빌 1:27-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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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본 받는 기쁨 (빌 1:27-2:18)
     

복음의 진보와 성도들의 신앙이 진보하는 것으로 기뻐하고 또 기뻐한다고 했던 바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기뻐하는 참 이유가 무엇인가를 빌립보서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의 매임을 인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이 계속 전파되고 있다는 말을 들을 때 바울은 감옥에서도 감사했습니다.   나를 염려해주는 교우들이 더 열심으로 믿음생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을 때 또 기뻐했습니다.   나의 매임을 기회로 여기고 나를 괴롭힐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 또한 복음의 진보를 위한 것이라면 나는 도리어 기쁘다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복음 전하는 일에 충성을 다했던 바울은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도 기쁨을 누리는 비결을 이렇게 간증합니다.  ‘내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높임을 받는다면 나는 기쁩니다.   내가 만일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는다면 그리스도와 영원히 함께 있을 것이니 더욱 좋습니다.   그러나 내가 살아서 여러분들과 함께 하면 여러분의 믿음 진보에 유익한 줄 알기에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러분을 만나게 될 것을 믿습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기쁨의 편지를 쓰고 있는 바울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 지침을 전합니다.  그것은‘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당부입니다.   신앙의 선배로서 사랑하는 후배들에게 진심으로 당부하는 말입니다.  ‘복음에 합당하게’라는 말은 하늘나라 복음을 받은 천국시민답게라는 말로 바꾸어 봅니다.   바울은 3장20절에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이 땅에 몸 담고 살지만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얻은 천국백성입니다.  

우리들 중에 영국 시민권을 얻은 분들이 있습니다.   몇 년 전만해도 영국에 오래 살고 있는 사람에게 자동적으로 시민권 얻을 자격을 주었는데, 지금은 Life in the UK라는 시험을 통과해야 영주권이나 시민권 신청 자격을 줍니다.  영국에서 영주 시민으로 살려면 영국을 알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영국생활의 기본적인 상식과 시민의 권리와 의무 등 규범들에 관한 테스트 합니다.   

들리는 말에 영국 정부가 앞으로 영주권이나 시민권 신청 자격조건을 더 강화한다고 하지요?   영국 시민으로서 국가에 대한 충성심은 물론 사회 적응에 문제가 없고 이 나라 백성으로 생활하는데 적합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있는지 살핀 후 합당한 사람에게 시민권을 주겠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시민권을 얻는 자리에서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의 충성스런 백성으로 살면서 이 나라의 법과 질서를 준수하겠다는 서약을 합니다.   

천국시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그 나라의 규칙을 알고 그 나라 방식대로 살아야 합니다.  천국시민은 왕되신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며 믿음직한 백성으로 살겠다는 약속으로 삽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삶 이것이 복음에 합당한 생활입니다.   빌립보 사람들은 로마 시민이라는 자부심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 누리는 특혜와 명예는 시민권이 없는 다른 식민지 백성들에게는 특별한 자랑거리였습니다.   바울 역시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천국시민의 특권은 그보다 더 귀한 것이라는 차원에서 이 말씀을 합니다. 

‘여러분이 로마 시민으로 황제를 존경하며 황제의 시민으로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면 그리스도인들은 그와 비길 수 없는 영광스런 나라의 백성들임을 기억하십시오.   왕중의 왕 하나님의 백성인 여러분은 구원의 기쁜 소식을 받은 천국시민답게 복음이 요구하는 거룩한 백성의 삶을 살아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 곁에 있을 때에나 멀리 떠나 있을 때에도 언제든지 한 마음, 한뜻이 되어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을 꼭 듣고 싶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로부터 꼭 듣고 싶었고 또 그렇게 살기를 원했던 천국시민의 두 가지 삶의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이 곧 복음에 합당한 생활입니다.  첫째, 믿음의 형제들이 한 마음으로 서로 하나 되어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를 대적하는 사람들을 두려워 말고 굳게 서있어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기쁘게 여기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믿음이 자라가며 든든히 서가는 모습을 보고 듣는 것이 목회자 바울의 기쁨이며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사도 요한도 사랑하는 믿음의 제자 가이오에게 보낸 편지 요한삼서에서 이런 기쁨을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참 기쁘다.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요3서 1:2-4).  사도 요한의 즐거움은 먼 곳으로 떠나간 자녀로부터 기쁜 소식을 들은 부모의 심정과 같습니다.   

공부 잘하고, 사업이 잘 되며,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큰 집으로 이사한 것도 즐거운 소식이지만 내 자녀들이 부모와 함께 있을 때나 떠나 있을 때나 항상 변함없이 주의 진리 안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다는 말입니다.   진리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활하는 자녀는 영혼이 잘 되는 자녀이며 삶의 우선순위가 올바르게 서있는 자녀입니다.   영혼이 바르게 된 자녀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부모에게 기쁨이고 하나님께 감사가 됩니다.   

옥스포드에서 함께 믿음생활하다가 떠나간  옥포동 가족들로부터 소식이 들려옵니다.  여기서 지내던 시간들과 함께 지냈던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이야기, 그간 어떻게 살고 있는지 등등의 이야기들이 오고갑니다.   즐거운 소식도 있고 어려운 소식도 있습니다.   그런데 옥포동 가족들의 소식을 듣는 가장 큰 즐거움은 여기 있을 때보다 믿음생활을 더 열심히 하고 있다는 말을 들을 때입니다.   물론 어려운 시절을 지내는 분들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 안에 살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기도하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든든합니다.   

여기 있는 우리들도 언젠가 옥스포드를 떠나 어디론가 흩어져 살게 됩니다.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진리 안에 살면서 영혼이 잘되는 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이런 즐거운 소식이 자주 들려오기를 기도하며 기대합니다.   믿음의 부모님들은 자녀를 위한 기도의 우선순위와 소망을 자녀들의 건강한 영혼에 두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을 떠나 살고 있는 젊은이들과 출가한 자녀들은 영혼이 잘 되는 삶을 우선순위로 삼고 항상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하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의 부모님과 하나님을 즐겁게 해드리는 최상의 삶입니다.   

바울은 계속하여 복음에 합당한 생활 두 번째 원리를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여러분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입니다.   내가 전에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 내가 겪었던 고난이 무엇이며, 지금도 여전히 당하는 고난이 무엇인지 들어 잘 알고 있는 줄 압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이제 나와 같은 고난이 있으니 그것은 하나님께서 천국백성에게 주시는 특별한 은혜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복음에 합당하게 살고자 할 때 만나는 고난을 영적 싸움으로 비유합니다.   이 선한 싸움을 열심히 싸우는 바울은 대선배로서 사랑하는 후배들을, 또는 지휘관으로서 병사들을 격려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 선한 싸움을 잘 싸울 수 있을까요?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 무엇인지  2장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다면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십시오’(1-4)  이 말씀의 핵심은 서로 하나 되어 복음을 위하여 한 마음으로 협력하라는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마음을 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시급한 일이었으면 바울이 이처럼 같은 말을 반복 또 반복하였을까요?    잘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말로 강조 하고 또 강조할 필요가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빌립보 교회 안에 뭔가 서로 일치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바울은 이렇게 간곡한 말로 서로 하나가 되라고 당부합니다.    빌립보 교회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가는 4장에 언급된 몇 사람의 이름을 통해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교회의 중직으로 봉사하는 일군들이었는데 서로 의견이 달라 마음이 하나가 되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부분은 다음 기회에 자세하게 말씀드리기로 합니다.    

형제가 서로 하나 되어야 대적과의 싸움에서 힘을 발휘합니다.   동료들끼리의 분쟁과 불필요한 경쟁의식은 하나됨을 약화시키며 형제의 하나됨을 싫어하고 떼어놓으려는 사단의 전략에 불과합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무슨 선한 일을 하고 있다면 다툼과 허영으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복음 전하는 일은, 그리고 복음 안에 사는 그리스도의 섬김과 봉사는 복음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도록 함이며,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 무슨 다툼(라이벌 의식)이나 허영(나를 과시하려는 쓸데 없는 자부심)이 끼어들 필요가 없습니다.   

혹 그리스도인들이 싸워야 할 때가 있다면 그것은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니 그 힘을 엉뚱한 곳에 소진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사람들과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어두운 세력들과 공중의 권세를 잡은 악한 영들과의 싸움입니다(엡6:12).  이유야 어떻든 믿음의 동료와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싸우면서 일하면 기쁨이 있던가요?   싸워 이기면 승자의 통쾌감이 있는가요?   형제간 싸움에는 승자는 없고 오직 패자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대적과의 싸움에서는 승리의 기쁨이 있습니다.  싸움에는 고난이 따르기 마련이지만 견디고 통과한 사람에게는 승리의 기쁨도 있습니다.   

성도의 기쁨은 형제가 서로 마음을 같이 하는 것으로부터 옵니다.  그리스도 안에 사는 형제자매는 긍휼과 자비로 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는 말은 남을 나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라는 말입니다.   내가 나를 소중한 존재로 여기는 것처럼 다른 형제들을 또한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 일을 돌아볼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도 돌아볼 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기서 일이란 말은 관심사라는 말로 이해하면 좋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무슨 선한 일을 할 때 나의 생각, 나의 주장 그리고 나의 의견이 있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의 관심사도 동일한 수준에서 존중하는 자세입니다.   나의 관심사에만 몰두하여 다른 사람의 관심사를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생각이 중요한 것처럼 다른 사람의 생각도 존중하고 귀를 기울이며 전체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내 생각을 양보하고 협력하는 마음으로 주의 일을 해야 선한 열매가 맺힙니다.   이것이 주 안에서 서로 한마음, 한뜻이 되는 비결입니다.   

세상적인 기쁨은 내가 다른 사람을 이기고 나 홀로 상을 받을 때 얻습니다.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는 것이 기쁨이 되고 권력으로 약자를 부리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정반대의 행동지침을 제시합니다.  내가 낮아지고 남을 높여줌으로 서로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가 영광을 받으시는 기쁨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이렇게 하나가 되어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해달라고 당부합니다.   

지난 시간 말씀드린 것처럼, 바울은 투기와 다툼으로 일하는 반대자들의 경쟁적 행동을 넓은 마음으로 품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빌립보 교회 성도들 중에는 이것을 감당치 못하는 연약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나보다 남을 더 높여주고 인정하는 마음이 부족한 사람들에게는 정말 감당키 어려운 부분입니다.   바울 자신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신앙의 선배로서 좋은 모델이 되고 있지만 바울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아 살기를 힘쓴 사람이었습니다.   나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최고의 본보기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찾아야 했습니다.   ‘여러분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품어야 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무엇입니까?  

‘예수께서는 본래 하나님과 동등한 분이시지만 아버지와 똑같은 자리에 있지 않고 자기를 비어 낮은 곳으로 임하셨습니다.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시고 종과 같이 겸손한 모습을 가지셨습니다.   아버지께 순종하시되 자기를 낮추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아버지의 뜻을 따르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이런 아들을 가장 높은 자리에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영광을 돌렸다는 말씀은 아버지께 기쁨이 되셨다는 말과 같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을 낮추시고 고난을 받으신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기쁨이 되시고 우리의 기쁨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려면 먼저 이런 마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사단과의 싸움에서는 한치의 양보도 없이 맞서 싸워 물리치셨지만 사랑하는 형제들을 위하여는 자기 목숨까지 주셨습니다.  하늘 영광을 사양하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순종하였던 아들이십니다.  사람의 방식으로 말한다면 개인의 안일이나 영광, 편리함을 모두 포기하고 모든 죄인들을 위하여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습니다.   아버지께 순종하심으로 아버지와 한마음 되신 성자 예수님의 마음, 죄인들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는 사랑의 마음, 곧 연약한 우리와 하나 되신 겸손한 마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을 모델로 제시한 바울은 다시 한번 성도들의 하나됨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여러분 곁에 있을 때 뿐아니라 내가 없을 때에도 항상 순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여러분의 구원을 이루어가시기 바랍니다.’   누군가 보는 사람이 있으면 순종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보는 사람이 없으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그런 생활이 아니라 처음과 나중이 동일한 열심을 가지고 생활하십시오.  이것이 복음에 합당한 성도다운 행동입니다.   도대체 이런 능력이 어디서 옵니까?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런 일을 충분히 해낼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내가 나의 힘으로 나의 능으로 하려면 원망도 생기고 시비도 일어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봉사하면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나고 모두에게 기쁨이 될 것입니다.    

바울은 계속 권면합니다.  ‘비뚤어지고 뒤틀린 이 세대에서 흠이 없고 순전한 하나님의 자녀로 살면서 이 어두운 세상을 향한 빛이 되십시오.   생명의 말씀을 굳게 붙드십시오.   그리하면 나의 달려온 인생 걸음과 나의 수고가 헛되지 않고 주님 오시는 그날에 여러분들로 인하여 나에게 자랑할 것이 있게 될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기뻐하고 여러분과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나와 함께 이 기쁨을 나누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일에 관제에 대하여 말씀드린 것처럼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곧 나를 드림입니다.   제물이 완전히 태워져 연기가 되어 하늘로 오르는 것처럼 제물을 드리는 내가 하나님께 완전히 드림이 되었다면 나는 사라지고 나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나의 삶을 믿음과 봉사의 제물로 드릴 때 나의 존재는 사라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다면 하나님께 기쁨이며 또한 나의 기쁨입니다.   

매주일 함께 모여 드리는 우리의 예배와 섬김과 성도의 교제가 그리고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기 바랍니다.   제물로 드려지는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계시도록 나를 비우고 나를 낮추고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는 삶을 삽시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천국시민의 삶이요 복음에 합당한 생활입니다.   나를 태우는 거룩한 향이 하나님의 보좌를 향해 오를 때 형제자매들이 나와 하나가 되어 드려진다면 그보다 기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믿음과 봉사 위에 자신의 피를 드린다 할지라도 나는 기쁘다고 한 것처럼, 우리 삶의 제물 위에 서로의 생명을 드리는 마음으로 하나가 되기 바랍니다.    이것이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는 성도들, 그리스도를 본 받는 성도들이 주 안에서 하나 되어 함께 누리는 천국의 기쁨입니다.   우리를 대적하는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이기는 능력이며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을 은혜로 여길 수 있는 천국시민의 기쁨입니다.   이 한 주간도 주가 주신 기쁨으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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