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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멸시받음에서 기쁨의 대상으로 (슥 4: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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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시받음에서 기쁨의 대상으로 (슥 4:6-10)


이런 유머가 있습니다. 어느 날 티코 탄 아줌마가 운전을 하다가 빨간 불이 들어오자 차를 멈추고 기다리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옆에서 그랜저를 탄 아줌마가 잘난체하려고 티코 탄 아줌마한테 물었습니다. “언니, 티코 얼마주고 샀어?” 그러자 티코 탄 아줌마는 무시하고 계속 달렸습니다. 그런데 또 빨간불이 들어와 티코 탄 아줌마가 멈추자 그랜저 타고 온 아줌마가 옆에 멈춰 서서 다시 물었습니다. “언니 그 티코 얼마주고 샀냐고?” 그러자 티코 탄 아줌마 왈 “야이 가시네야 벤츠 사니까 덤으로 끼워 주더라.” 

조금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없는 사람들을 멸시합니다. 멸시라는 말은 업신여기거나 하찮게 여겨 깔보는 것을 말합니다. 조금 배운 사람은 못 배운 사람들을 업신여기거나 하찮게 여겨 깔봅니다. “너 어느 학교 출신이야” 하며 업신여깁니다. “매출액 얼마야? 직원 몇 명이야? 아들 어느 학교 들어갔어?” 믿지 않는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목사님들도 “교인 몇 명 나와? 예산 얼마나 돼?” 그러면서 작은 교회를 멸시합니다. 어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들도 그렇습니다. “너의 집 몇 평이야? 너희 집 무슨 차 타고 다녀? 너희 아버지 무엇해?” 하면서 자신만 못하면 업신여기고 하찮게 여겨 깔봅니다. 그것은 개인 간에도 그렇지만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성경에 보보 스룹바벨이 멸시를 당하였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공사가 시시하게 시작되는 것을 보고 깔보던 사람들(현대어 번역)”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와 성전을 짓는데 솔로몬 성전과 비교할 때 형편없이 미미하게 보인다는 말입니다. “그것도 성전이라고 짓느냐?” “그것도 사업이라고 하냐?” “그것도 공부라고 하느냐?” “그것도 교회 다닌다고 다니느냐?” 멸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업신여기고 하찮게 여겨 깔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멸시가 멸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스룹바벨의 손에 의해 시작된 성전 재건 공사를 마치는 것을 보고서 크게 기뻐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다니면서 아파트 평수 적다고, 가방 끈 짧다고, 직업 변변 않다고 주눅 들며 신앙 생활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업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크게 기뻐할 때가 올 것입니다. 우리를 보며 깔보며 멸시하던 자들이 우리가 이룬 일을 보며 크게 기뻐할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가 이 땅에서 멸시받으며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공부의 현장에서, 사업의 현장에서, 신앙생활의 현장에서 우리가 멸시받는 살기 원치 않습니다. 우리 성도님의 아들딸들이 멸시 받으며 살기를 원하는 부모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멸시받는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성과를 다 이루어 멸시하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

1. 우리는 나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성공하여 멸시받음에서 기쁨의 대상이 되어야 하겠습니다(6)./능력

사람들이 멸시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능력 없다고 멸시합니다. 스룹바벨은 유대인의 제 1 차 포로 귀환 시에 백성들을 인솔하여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귀환시킨 정치적 지도자입니다. 페르시아의 다리오 왕이 그를 유대의 총독으로 임명하였습니다(학 1:1). 그는 바벨론 포로 시대 이후의 첫 번째 대제사장이었던 여호수아(3:1)와 함께 성전 재건에 착수하였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중도에 포기해야 했습니다. 백성들은 낙심하였고, 지도자 스룹바벨은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았습니다. 무능력자라고 멸시를 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때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8개의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오늘 보여 주시는 환상이 다섯 번째 환상입니다. 금으로 만든 등잔을 본 것입니다. 꼭대기에 등잔 받침대가 있고 그 위에는 일곱 등잔이 있는 것입니다. 등잔마다 기름구멍이 뚫려 있는 데 올리브 나무 두 그루가 등장 오른쪽과 왼쪽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 때 스가랴 선지자가 “이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어 봅니다. 이 때 천사가 하는 말입니다. 성전을 짓다가 멸시받은 스룹바벨에 대한 환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낙심한 스룹바벨에게 소망과 용기를 주는 것입니다. 순금 등대는 스룹바벨 성전을 가리키는 상징입니다. 

능력부족으로 중단한 그 성전 어떻게 성공적으로 공사를 마무리 하게 한다는 것입니까? 6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여기서 '힘'이라는 말과 '능'이라는 말은 서로 유사한 뜻을 지닌 동의어입니다. 그러나 굳이 구분하자면 힘은 군사적인 세력이나 경제적인 힘을 나타낼 때 주로 사용되고 능은 개인의 육체적 능력을 나타낼 때 주로 사용됩니다. 성전 재건이 세상적인 수단이나 인간적인 능력에 의해 가능한 것이 아니며 또한 적대적인 세력의 방해로 인해 결코 좌절되는 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신 성령으로 된다는 말입니다. 

다섯 번째 환상 가운데 본 순금 등대가 두 감람나무에서 공급되는 기름에 의해 불을 밝힐 수 있듯(3절)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룹바벨의 지도하에 재건 중에 있는 성전 역시 오로지 삼위(三位) 하나님이신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만 완공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현대어 성경은 이 구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네가 하는 일은 인간적인 권력이나 군사적인 폭력으로 되지 않고 오직 내 영으로만 성공할 수 있다 온 세상의 주인이신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성전건축을 16년 동안 중단하고 멸시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이루지 못하면 얼마나 사람들이 멸시합니까? 친구도 부모도 형제도 멸시합니다. 학교에서 가서 공부 못하면 얼마나 사람들이 멸시합니까? 사업이 잘 못되면 얼마나 멸시합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멸시에서 기쁨의 대상이 되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 주십니까? 오직 나의 영, 성령으로 이루어 주십니다. 내 힘으로 못하고 다른 사람의 힘으로 못한다할 지라도 성령님의 힘으로 할 수 있습니다. 물리적인 힘으로 정신적인 힘으로 못한다 할지라도 영적인 힘 성령님의 능력으로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달란트를 주어 그것을 개발하여 주어지 과업을 이루도록 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는 달란트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이 때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은사를 주십니다. 때로는 병 고침의 은사를 주십니다. 능력의 은사를 주십니다. 지혜의 은사를 주십니다. 방언의 은사를 주십니다. 필요에 따라 갖가지 은사를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맡겨준 일을 성공적으로 이루도록 해 주십니다. 우리는 목적을 가지고 자녀를 양육하다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업을 하다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병을 치료하다가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할 수 없다, 아니다, 나는 할 수 있다.” 이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직 성령님은 하실 수 있다.”라는 믿음으로 주어진 과업을 성취해야 합니다. 힘으로 능으로 못하지만 성령님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말하는 스데반을 당할 자 없었고(행 6: 10), 성령에 충만하며 일하는(행 13: 9) 바울의 앞을 막을 자 없었습니다(행 13: 6-12). 내 힘이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해야 합니다. 

기드온 겁쟁이였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습니다. 모든 지파가 협력을 합니다. 300명의 군사로 적들을 물리칩니다.(삿6:34-35)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임하니까 미디안 군사가 아무 힘을 쓰지 못합니다. 미미한 것으로 위대한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농부인 엘리사도 여호와의 신이 임하니까 요단강 물을 가르고, 여리고성의 물을 달게 하고, 마른 도랑에 물을 채우고, 기름병의 기적을 행하고,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치고 죽은 아이를 살리는 기적의 사람으로 쓰임 받습니다. 그가 여호와의 신을 갑절 받았기 때문입니다(왕하2:9). 부인하고 도망간 베드로 성령의 충만하니까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설교하면 수천 명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세례요한 초라하고 미미한 존재인 것 같지만 성령의 충만을 받자 수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옵니다.(눅1:15).


2.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장애물을 극복하고 멸시받음에서 기쁨의 대상이 되어야 하겠습니다(7)./과정

왜 스룹바벨이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고 멸시를 받았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큰 산 때문입니다. 시작했지만 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장애물을 만난 것입니다. 큰 산이 무엇이겠습니까? 큰 산은 일차적으로 스룹바벨의 사역을 가로막는 세력들입니다. 에스라서 4장에 보면 사마리아 사람들 그리고 그곳에 이주한 이방인들입니다. 혈통과 신앙이 이방인과 혼합된 사마리아 사람들이 방해합니다. 그 땅의 소유주들이 방해합니다.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며 방해합니다. 

당시 최고 권력자 다리오 왕 2년까지 계속 방해합니다. 왕을 모반하여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반역을 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왕이 건축을 못하게 한 것입니다. 16년 동안을 짓지 못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데 방해하는 세력들이 많이 있습니다. 특히 가까이 있는 사람들, 능력있는 사람들이 방해합니다. 자신이 부담을 해야 하고, 희생을 해햐 할 사람들이 방해합니다. 왕과 같은 태산이 앞에 놓이게 되면 어쩔 수 없이 포기해 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넓은 의미에선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방해하는 자들이요 스스로 하늘에까지 높아져 하나님을 대적하고자 하는 사단의 세력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네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네까짓 것들이 무엇이냐?'라는 경멸조의 말입니다. 멸시하는 자들 “네까짓 것들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스룹바벨의 대적들이나 사단의 하수인들이 아무리 세상적으로 강력한 세력을 떨치고 있을지라도 한계가 있는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강력한 세력도 하나님을 대적하다가는 결국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살아질 것입니다. 

우리 7절 같이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스룹바벨을 우리의 이름으로 바꾸어 읽어 보겠습니다. 여러분 앞에 놓여있는 큰 산이 무엇입니까? 고질적인 질병입니까? 돈입니까? 무능력입니까? 두려움입니까? 경쟁사입니까? 질투입니까? 고치지 못하는 못된 성격입니까? 우리를 가로막는 큰 산이 평지가 되는 역사가 있으시길 바랍니다. 

결국 어떻게 큰 산이 평지가 된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은총,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는 말입니다. 머리돌을 내놓을 때 멸시하던 무리들이 무엇이라고 외친다는 것입니까?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는 일차적으로 성전재건이 완수되는 순간을 의미합니다. 이 때 무리들이 무엇이라고 외칩니다. 이제 멸시하지 못합니다. 깔보지 못합니다. 업신여기지 못합니다.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라고 외칩니다. 

여기서 그는 스룹바벨이 아니라 성전을 가리킵니다. 현대어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어려운 장애물이라고 하여도 스룹바벨 앞을 가로막을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 앞에서는 태산준령도 납작해질 것입니다. 스룹바벨이 마침내 이 성전 건축을 완성할 때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며 모든 일이 은혜로만 성취되었다고 우렁찬 환호성을 지를 것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도전을 받고 성전 재선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반대합니다. 이 때 감독자에게 고레스 왕이 이미 성전 짓는 것을 허락했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그 사실을 다리오 왕에게 보고하고 결국 고서를 찾아보니 고레스의 칙령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성전을 지을 재물을 주어 완공하게 하였습니다(에스라6:7). 이것을 무엇으로 설명하겠습니까?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단어 밖에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은혜를 주면 과정에서 만나는 어떤 장애물이라도 넘어갈 수 있습니다. 태산준령도 납작해집니다. 마침내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 과업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관심 두 가지만 들라고 하면 부자 되는 것, 자녀 잘되는 것일 것입니다. [부자의 탄생]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미국 최고의 부자를 선정하는 "포브스 400" 명단을 발표한 25주년을 맞아, 1982년부터 2006년까지 이 명단에 오른 1302명의 부자들을 조사하여 지은 책입니다. 공동 저자인 피터 번스타인과 애널린 스완은 부자들의 특징으로 네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첫째는 학벌, 두뇌, 추진력입니다. 둘째, 모험, 셋째, 행운 그리고 타이밍입니다. 넷째가 승부욕입니다. 학력이 부자가 되는데 필요한 필요충분조건은 아니지만 기술 문명이 급속히 발전되는 지금은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은 필수적이라고 합니다. 지난 25년 간 명단에 오른 포브스 400대 부호들 중 약 10%는 고등학교 중퇴자이거나 대학은 들어갔으나 끝까지 학업을 마치지는 못한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1982년 400대 부호 중 50명 정도가 대학졸업자였던 반면에 2006년에는 244명으로 급증했다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는데도 학력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학력을 떠나 부호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원칙은 위험감수(Risk Taking)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부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시도한 끝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호들은 '승부욕'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운이 따라야 한다고 합니다. 하버드 대학 사회학과 크리스토퍼 젠크스 교수는 미국인의 소득을 결정짓는 요소로 개인의 능력이나 경험 못지않게 운도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대다수 '포브스 400'의 부호들도 그들이 정상에 오르는데 운이 중요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론이 없어 보인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행운'이라고 말하지 않고 '은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라고 받아들입니다. 신앙인은 그것을 우연이라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사업에 성공하는 것도, 원하는 대학 들어가는 것도, 건강해지는 것도, 꿈을 성취하는 것도, 부자가 되는 것도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부자가 된 후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나의 소유도 족하오니(창33:11)"라고 고백하였고, 솔로몬도 부귀영화를 누린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대하1:8). 

바울 역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15:10)"라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일을 성취하여 멸시의 자리에서 벗어나 기쁨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 예수여 은혜를 내려 주사 곧 충만케 하옵소서 이 주리고 목마른 나의 맘에 주 성령을 부으소서 주 예수여 충만한 은혜 내 영혼에 부으소서 주 예수만 나의 힘 되고 내 만족함 됩니다.(368장 1절)”


3. 우리는 나를 통해 시작한 작은 일이라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나를 통해 그 일을 이루게 하심으로 멸시 받음에서 기쁨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9)./일 자체

사람들이 왜 멸시합니까? 10절을 보십시오. 작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작다고 멸시합니다. 사람들은 아파트 작다고 멸시합니다. 차 작다고 멸시합니다. 키 작다고 멸시합니다. 변변치 못한 학교 다닌다고 멸시합니다. 직장 변변치 않다고, 직업 변변치 않다고 멸시합니다. 키 작다고 할 일 못합니까? 유명한 사람들 키 작은 사람들 많습니다. 눈 작다고 할 것 못합니까? 

옥수수 박사 김순권 박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분은 사범학교에 가고 싶었답니다. 그러나 농업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결국 열심히 공부하여 유학을 갔습니다. 옥수수 실험을 하는데 미국 사람은 수술을 암술에 접붙이는데 그 꽃가루가 날리기 때문에 1분에 몇 개를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김순권 박사는 그 사람들보다 4배 5섯 배를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그들이 물었답니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잘하는냐?" 내 눈을 보아라 이렇게 와이사스 구멍만하게 하나님께서 만들었기 때문에 꽃가루가 날리도 잘 들어가지 않는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크고 작은 것 보시지 않습니다. 직장 때문에 직업 때문에 주눅들 필요 없습니다. 키가 작은 것 그것이 뭐 문제가 됩니까? 장애가 있는 것 뭐 그렇게 큰 문제입니까? 독일 사람 란게이이히바움이라는 사람이 서양 천재를 78명을 조사해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중 83%가 육체적, 정신적, 가족 관계의 결함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시인 바이런은 기형아였고, 줄리어스 시저는 간질병 환자였고, 베토벤은 청각 장애자였고, 나폴레옹(155cm), 등소평(150cm)은 키가 작았습니다. 토스카니니는 눈이 안 좋았고 모차르트는 폐병환자, 루스벨트는 소아마비 환자였습니다. 

옳고 그름에 대하여는 우리가 민감해야 하지만 크고 작음에 대하여 그렇게 민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일인가 하나님 마음에 합하지 않는 일인가에 대하여 민감하여야 합니다. 생명이 있는 것이 처음부터 큰 것이 어디 있습니까? 물방울 하나가 모여 강물을 이루는 것입니다. 작은 씨가 자가 큰 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회사도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적인 신화를 몰고 온 아이팟(iPOD) 신화의 애플도 스티브 잡스가 중고차를 팔아 마련한 1,300달러로 시작한 조그만 회사였습니다. 연간 매출 41조 원, 52개 계열사를 거느린 롯데그룹의 시작점은 바로 작은 껌이었습니다. 삼성그룹도 조그만 상회에서 시작했으며, '눈높이 교육' 으로 유명한 대교도 회장이 과외교사로 시작했습니다. 피에르가르뎅은 2 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먹고 잘 곳도 없는 한 청년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작다고 멸시받는 스룹바벨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9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스룹바벨의 손이 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은즉 그의 손이 또한 그것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느니라 (슥 4:9)” 우리 하나님께서 미미하게 시작하였지만 우리의 손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일들을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다시 스룹바벨에 자신의 이름을 넣어 읽어 보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시작하게 하신 것 반드시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 주실 날이 올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만천하에 보여주실 날이 올 것입니다. 자녀를 낳아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하려고 시작하게 하신 것 이루어 주실 날이 옵니다. 사업을 시작하여 보다 좋은 기업 만들려고 한 것 이루어 주실 날이 올 것입니다. 

병든 몸을 치료하여 건강한 몸으로 살려고 치료를 시작하신 것 완치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릴 날이 올 것입니다. 교회에 등록하여 보람 있게 봉사하고 섬기려고 시작하신 것 그 비전과 꿈이 이루어 주실 날이 올 것입니다. 전도하리고 마음먹고 시작한 일, 봉사하기로 마음먹고 시작한 일 이루어 아무리 미약하게 시작했더라도 이루어지는 날이 옵니다. 약 20년 만에 bc 516년 완공(에스라6:15)하게 됩니다.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이 능히 성취하게 하는 것입니다(빌1:6)

현대어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이 성전의 주춧돌을 놓은 스룹바벨이 그 손으로 이 공사를 완성할 것이다. 그 때는 온 세상의 주인이신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는 것을 너희가 깨달을 것이다.” 그 날이 반드시 저와 우리 성도님들에게 올 줄 믿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공사가 시시하게 시작되는 것을 보고 깔보던 사람들도 스룹바벨이 공사를 끝마치려고 머릿돌을 놓을 때는 함께 보고 기뻐할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하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멸시 받지 않습니다(10). 하찮은 일, 미미한 일지라고 위대한 일을 만드는 씨앗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보잘 것 없고 작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계획하시고 성취시켜 가시는 분이 전능하신 하나님 자신이시기에 반드시 훌륭하게 이루어져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때가옵니다. 

온 세상을 두루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에 부르심을 받은 우리들은 세상으로부터 비웃음이나 멸시나 천대가 있더라도 낙망하거나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어진 소명 붙들고 나가면 언젠가 우리의 손으로 완성될 날이 옵니다.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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