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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가 말하였었노라 (스 7: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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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가 말하였었노라 (스 7:1-14)
  

우리나라 남자들은 모이면 흔히 군대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군대야말로 대한민국 남자들이 평생 겪을 수 있는 경험들 중에서 가장 공통적이면서도 아주 특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만, 제가 군복무를 할 당시에 가장 답답하고 괴로웠던 것 중에 하나는, 이 군대라는 사회에서는 무엇을 가르쳐 주기 전에 먼저 매나 기합부터 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무엇을 잘못했으면, 이렇게 저렇게 잘못했다고 일단 가르쳐 주고 그 후에 또 같은 잘못을 저지르면 그때야 정말 맞아도 싸겠지만, 군대에서는 그런 식으로 교육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몰라서 한 일이고 처음으로 저지른 잘못이라 하더라도 일단 주먹이 먼저 날아오고 기합이 먼저 주어진 후에야 비로소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가르쳐 주는 것이었습니다.
  
군대 안에만 통하는 이런 특이한 원칙을 간단한 속어로 표현한 것이 있는데 바로 '일단 맞고 시작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지금에 와서야 하나의 추억거리로 남게 되었지만 정작 당할 때에는 정말 보통 답답하고 억울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대하실 때에는 결코 벌부터 주시는 법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앗수르 제국과 바벨론 제국에 의하여 나라를 잃고 온 백성들이 죽거나 포로가 되는 큰 매를 맞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네들이 부당하고 억울한 벌을 받았다고 하나님께 원망하는 것은 절대로 할 수 없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벌을 내리시기 전에 이미 교훈하고 경고해 주셨기 때문이었는데, 그것이 바로 본문 13절에서 하나님께서 스스로 확인해 주시는 대로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었었노라"는 명백한 사실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북조 이스라엘과 남조 유다가 망하기 전에 오랜 기간 동안 여러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그들의 타락을 경책하고 그들에게 임박한 심판을 예고해 주셨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바로 그 점을 지금 막 바벨론 포로로부터 해방을 받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유다인들에게 다시 일깨워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과거에 그런 대실패와 치욕을 겪게 되었던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을 순종치 않음으로 인하여 야기된 것이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이 기록된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부단히 그리고 명백하게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을 때 과연 그 사람의 생활과 심령에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되는지를 이 시간 함께 상고하면서 우리 각자의 경종으로 삼고자 합니다.

1.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의 생활에는 형식적인 종교 의식만 남게 됩니다.

이것이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하던 당시의 유다인들의 실상이었습니다.
본문 1절부터 7절에 기록하기를 "1다리오 왕 사년 구월 곧 기슬래월 사일에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니라 2때에 벧엘 사람이 사레셀과 레겜멜렉과 그 종자를 보내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고 3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있는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물어 가로되 우리가 여러 해 동안에 행한 대로 오월 간에 울며 재계하리이까 하매 

4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5온 땅의 백성과 제사장들에게 이르라 너희가 칠십 년 동안 오월과 칠월에 금식하고 애통하였거니와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6너희의 먹으며 마심이 전혀 자기를 위하여 먹으며 자기를 위하여 마심이 아니냐 7여호와가 이전 선지자로 외친 말을 너희가 청종할 것이 아니냐 그 때에는 예루살렘과 사면 읍에 백성이 거하여 형통하였고 남방과 평원에도 사람이 거하였었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나타나는 "다리오 왕 사년 구월 곧 기슬래월"이란 6장 이전에 나타났던 여덟 개의 이상을 스가랴가 받은 후 2년가량 지났을 때였으며, 예루살렘 성전 재건 공사가 절반 이상 진척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시기였습니다.
그때 "벧엘 사람"들이 몇 명의 대표를 예루살렘에 보내어 한 가지 질문을 해왔습니다.
바벨론에서 돌아온 유다인들이 다 예루살렘 중심으로 살았던 것은 아니었고 부근의 각 성읍에도 조금씩 흩어져 있었으며, 벧엘에도 역시 귀환한 백성들의 일부가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 벧엘 사람들이 "여호와께 은혜를 구하고" 즉 어떤 신앙생활의 문제에 대하여 대답을 듣고자 하는 진지한 마음으로 예루살렘에 있던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게 자문을 구해 왔던 것이었습니다.

그 질문의 내용은 "우리가 여러 해 동안에 행한 대로 오월 간에 울며 재계하리이까"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재계"란 말은 '금식하며 애통하는 회개'를 뜻합니다.
그리고 "오월"이란 바로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에게 함락되어 성전이 불타고 성벽이 폐허가 되었던 달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 기간 중, 그리고 해방을 받고 돌아온 후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계속해서 매년 오월마다 그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금식하며 애통하는 관습을 지켜 왔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해방을 받아 고국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으며 또한 이제는 예루살렘 성전까지 거의 다 재건되어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그 '오월의 금식과 애통'을 그만 해도 될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고, 그래서 '우리가 앞으로 언제까지 이 오월의 특별의식을 계속해야 하겠습니까?'라고 질문을 해 왔던 것이었습니다.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 스가랴 선지자를 통하여 대답해 주신 말씀이 바로 4절 이하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 첫마디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 내내 지켜왔던 5월과 7월의 금식 그 자체가 사실은 전혀 무의미한 것이었다고 정곡을 찔러 책망하셨습니다.
'5월의 금식'은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 앞에서 멸망당한 일을 두고 슬퍼한 것이었고, '7월의 금식'이란 예루살렘에 남아 있던 백성들이 바벨론 왕이 임명했던 총독을 죽이고 그 보복이 두려워서 모두 다 애굽으로 도망치게 됨으로써 예루살렘이 완전히 폐허가 된 때를 기억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칠십 년 이상 지켜 왔던 그 두 대표적인 금식 절기를 두고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정말 나를 위하여 한 것이었더냐?"라고 반복 강조하시면서 되물으셨습니다.
이것은 그 금식 절기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실로 '하나님 앞에서' 신전인격적인 자세로 자기들의 죄를 회개하며 슬퍼했던 절기였느냐고 반어법으로 추궁하시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두 금식 절기를 지킨 것은 순전히 자기 인생과 자기 나라에 일어난 재난 그 자체만을 슬퍼하는 것이었지 자기와 자기 민족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슬퍼하는 절기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의 금식 절기까지도 실상은 "전혀 자기를 위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마치 "먹으며 마시는 것이 전혀 자기를 위하여 먹고 마시는 것"과 같은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 생활 중의 금식 절기까지도 실상은 자기네의 처지를 한탄하고 자신의 감정을 위로하기 위한 것일 뿐이었으며, 도무지 "하나님을 위하여 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정말 원하신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은 그와 같은 자기 무마와 자기 위로를 위한 금식 행사가 아니라 7절에 기록된 대로 바로 "여호와가 이전 선지자로 외친 말을 청종"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말로 회개한다면 과거에 자기네 조국이 망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전해 주셨던 말씀을 이제라도 기억해내고 바벨론 포로 생활하게 된 지금부터라도 그 말씀을 순종해야 마땅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처럼 말씀을 청종하는 대신에 그저 형식적인 금식 절기나 두어 번 지키는 것만 가지고서 마치 자기네들은 참된 회개를 하고 있는 듯이, 포로 생활 중에도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 듯이 착각하고 살았던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를 바로 듣고 믿고 순종하는 것을 등한히 하게 될 때에 그 다음에 남는 것이라고는 그저 형식적인 예배의식과 외면적인 종교생활일 뿐입니다. 
그런 사람의 신앙생활이란 실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되고 맙니다.
  
예배에 참석하고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올리고 헌금을 바치고 봉사에 참여한다 해도, 그 모든 것들을 순전히 자기 기분 만족을 위해서 하게 됩니다.
심지어 회개나 금식 같은 간절한 행위까지도 '하나님 앞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입장 합리화'를 위한 것으로 전락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은 지금 어떤 신앙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내가 엿새 동안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을 하는 중에도 과연 '말씀을 생활에서 체험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주일예배 한 시간 참석하는 것만 가지고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각자가 솔직히 평가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함으로써 자신의 삶 속에 일어나는 변화의 기쁨과 감격이 어떤 것인 줄 모르고, 하나님 말씀을 순종함으로써 그 구체적인 열매를 얻게 되는 축복이 어떤 것인 줄을 체험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신앙생활이란 오직 형식적이며 외식적인 빈껍데기만 남게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 신앙생활이란 것은 우상 앞에서 삼천배를 올리는 것이나 본인은 알아듣지도 못할 라틴어로 사제가 중얼거리는 의식에 몸만 앉아 있는 것과 사실상 오십보백보가 아니겠습니까?
말씀 청종을 통하여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통하는 체험이 빠진 신앙생활이란 바로 사람 자기편의 입장과 체면만을 세우고자 하는 인본주의 종교이며 실상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신성 모독적인 외식 행위로 끝나게 될 뿐임을 꼭 기억하고 자신의 경고로 삼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의 심령은 하나님 앞에서 점점 더 강퍅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멸망당하기 직전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이었습니다.
8절 이하 12절 말씀에 "8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9만군의 여호와가 이미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진실한 재판을 행하며 피차에 인애와 긍휼을 베풀며 10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남을 해하려 하여 심중에 도모하지 말라 하였으나 11그들이 청종하기를 싫어하여 등으로 향하며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으며 12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여 율법과 만군의 여호와가 신으로 이전 선지자를 빙자하여 전한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큰 노가 나 만군의 여호와께로서 나왔도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는 "이전 선지자로 외친 말"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지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되새겨 주고 계십니다.
그것은 우선 "진실한 재판을 행하라"는 말씀으로서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라"는 말씀과 병행 대구가 됩니다.
  
한 사회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 최소한으로 꼭 필요한 것이 바로 '공의'입니다.
부하고 능력 있는 사람보다는 정직하고 의로운 사람을 더 인정해 주고 귀히 여겨 줄 줄 아는 것이 한 공동체가 제대로 세워지고 유지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가치관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과부나 고아'는 보호자가 없는 존재였습니다.
  
'나그네'란 이방인으로서 이스라엘 중에 거하는 자를 가리키는 말인데, 이들은 법적 권리가 대단히 제한되어 있는 까닭에 어떤 불이익을 당해도 하소연할 길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궁핍한 자'는 가진 자와 무슨 공정한 흥정을 해 줄 변호사를 살 힘부터가 전혀 없는 무능력자였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이들은 모두가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자기 자신을 법적으로 지킬 능력이 전무한 계층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처럼 약한 자들의 권리까지도 정당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공의가 실현될 수 있어야 만이, 그 사회는 진정한 공동체, 정말 '사람이 모여 함께 살만한 곳'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피차에 인애와 긍휼을 베풀고" "남을 해하려 하여 심중에 도모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사람 사이에서 피차 지켜야 할 '사랑과 신의'를 뜻합니다.
공의가 인간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요소라면, 사랑과 신의는 바로 그 사회에 속한 인간관계 하나하나를 완성시키는 기본이 됩니다.
사랑과 신의야말로 부부나 가족, 친구나 이웃 사이를 진실한 인간관계로 만들어 주는 필수요소입니다.
공적으로 의가 있으며 개인적으로 사랑이 있는 이런 인간 공동체와 관계야말로 실로 이상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망국의 징벌을 눈앞에 두고도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이전 선지자를 빙자하여 전하신" 그 말씀을 전혀 듣지 아니했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들의 심령 속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습니까?
그 과정이 바로 11절로부터 12절 상반절에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 시작은 우선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기를 싫어"하는 것이었습니다.
  
즉 선지자들이 하나님 말씀을 전해 주어도 들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등으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선지자가 무슨 말을 하면 그 앞에서 듣는 척이라도 했었지만 이제는 아예 등을 돌리고 돌아서는 단계로 악화된 것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듣지 아니하려고 귀를 막게" 되었습니다.
자리를 피해 가는 그들의 등 뒤에서 선지자들이 더 크게 외치면 그 소리도 듣지 않으려고 아예 자기 손으로 귀를 막으면서 떠나 버렸던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의 마지막 단계는 어디까지 가게 되었습니까?
바로 "그 마음을 금강석 같게 하는" 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선지자들이 목이 터져라 외치며 전한 하나님 말씀을 듣고도 순종치 않는 날이 하루 이틀 지나갈수록 그들의 심령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막히고 고집스러워져 갔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그 심령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문자 그대로 '쇠보다 더 딱딱하고 강한' 금강석 즉 다이아몬드처럼 최악의 강퍅한 수준에까지 이르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 아니할 때 자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는 악화일로의 과정입니다.
성경 말씀을 눈과 입으로만 읽고 넘어 가는 것이 버릇이 되면, 그 사람은 그 손에 들린 성경책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점점 더 잊어 먹게 되고 종내에는 아예 믿지 않게 됩니다.
설교 말씀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리는 것이 매주일 반복되면, 그 사람은 개그맨들의 우스갯소리에는 귀가 솔깃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점점 더 졸리고 지겹게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와 사도를 통하여 우리 귀에 육성처럼 외치시며 불러 주시는 이 음성을 무심하게 듣고만 앉아 있으면, 그 사람은 결국 하나님 앞에서 세속의 자랑과 자기 고집만으로 딱딱하게 굳어 버린 금강석 같은 심령의 소유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심령은 본성적으로 '악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성선설'이 바른 것이라면 사람의 마음이란 외부로부터의 아무 자극이나 교육이 없어도 절로 옳은 판단, 착한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에덴동산에서의 타락 이후 모든 사람은 완전타락, 전적무능력 상태에 빠지게 되었으며 이 점에 대해서는 그 어느 누구 한 사람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즉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바로 그 출생의 순간부터 이미 죄성으로 물들어 있고 스스로는 결코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찾으려고도 하지 않는 영적 무지 상태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의 심령을 순화시키고 성화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성경 말씀밖에 없습니다.
바로 디모데후서 3장 16절과 17절에서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증거하고 있는 그대로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 말씀만이 사람의 악한 심령을 변화시켜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거룩하시고 의로우시고 온전한 것들을 배우고 익히게 만들어 주는 유일한 방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인생 경험이 많고 아무리 세상 지식 배운 것이 풍부하고 아무리 스스로 도통한 바가 깊다 해도, 그 사람의 심령이 하나님의 말씀에 자극되고 변화되고 순종하게 되지 않으면, 바로 그 머리야말로 최악의 무지로 앞뒤가 꽉 막힌 머리이며 그 마음이야말로 최악의 교만으로 딱딱하게 굳어버린 마음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한 시라도 잊지 않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사람 사이에서도 대화가 끊어지면 관계가 두절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아무리 한 지붕 밑에 살아도 서로 대화가 없는 관계란 것은 분명히 금이 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가까웠던 사람을 미워하게 되면 제일 먼저 우리는 그 사람과 말부터 하지 않게 됩니다.
꼭 마찬가지로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게 되면 그것은 곧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 사람의 신앙생활이란 것은 오직 형식만 남게 될 뿐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 사람의 심령의 목은 더욱 곧아지고 점점 더 강퍅해질 뿐입니다.
그런 신앙생활이란 것은 사실상 바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이며 그런 인격이란 실제로는 하나님과 완전히 단절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처럼 하나님 말씀을 청종치 않은 자의 마지막은 어떻게 되는 것이겠습니까?
바로 13절과 14절에 "13만군의 여호와가 말하였었노라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은즉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고 14회리바람으로 그들을 그 알지 못하던 모든 열국에 헤치리라 한 후로 이 땅이 황무하여 왕래하는 사람이 없었나니 이는 그들이 아름다운 땅으로 황무하게 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말씀을 청종치 않았을 때 그 남은 순서는 단 한 가지, 하나님의 심판일 뿐이었습니다.
"내가 불러도 듣지 아니하였은즉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고"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에 듣지 아니하면 나중에 심판받게 될 때 가서 하나님을 부르는 것은 아무 짝에도 소용없는 것입니다.

영어에 'point of no return'(돌아갈 수 없는 지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단 거기를 지나면 다시는 돌아올 길도 없고 정지할 수도 없이 그냥 완전히 망하거나 죽게 되는 길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마지막 지점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Back To The Future' 같은 영화에 보면 타임머신 차를 타고 가속을 하다가 일정한 지점을 지나면 브레이크를 밟아도 설 수 없게 되는 위치에다 깃발 같은 것으로 미리 표시를 해 두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그런 것이 바로 'point of no return'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불순종함으로써 바로 그처럼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지점마저 통과하고 멸망의 나락으로 치닫게 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인생에서 절대로 지나쳐서는 아니 될 지점인 것입니다.

'내가 불러도 듣지 아니하였다' - 하나님의 입에서 이 말씀 떨어지는 순간이란 우리에게는 정말 두려운 'point of no return'이 아니겠습니까?
이 말씀이 떨어지는 때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참고 기다려 주시던 시간이 이미 끝났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떨어지는 때란 바로 하나님을 멸시하고 미워하던 자에게 당연히 내려질 수밖에 없는 심판의 시간만 남아 있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여호와 하나님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항상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성자 하나님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이 땅에 오셨으며, 성령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우리로 하여금 깨닫고 믿도록 역사해 주고 계십니다. 
  
사람의 가장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과 완벽한 의사소통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이 기록된 계시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실로 인자하게 가르치시며 명백하게 외쳐 주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부르시는 이 은혜로운 복음의 소리를 듣지 않는 것이야말로 바로 '성령을 거스리는 죄' 즉 다시는 용서받을 길이 없는 '사함이 없는 죄'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벌부터 먼저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당장 죽어 마땅한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우리에게 '아직은 은혜 받을 만한 때'를 허락해 주고 계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를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 사죄와 구원의 길이 약속되어 있다는 이 복음의 말씀으로써 우리를 지금도 부르시고 찾아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말씀하고 계실 때 귀 기울여 듣고 가르쳐 주고 계실 때 순종하고 불러 주고 계실 때 응답함으로써, 바로 이 말씀을 통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진실하게 섬기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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