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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성 조율 (왕하 3: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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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조율 (왕하 3:13-20)


I. 싸이클 맞추기

아버지와 아들이 아침에 조깅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부자의 모습을 쳐다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비실비실 웃습니다. 아버지가 나올때 급하게 나오느라 아마 신발을 짝자기로 신고 나온 겁니다. “얘야 집에 들어가서 아빠 신발 좀 가지고 나올래?” 집에 뛰어들어갔던 아들이 헐레벌떡 빈손으로 나옵니다. “아빠 집에 있는 신발도 짝자기야.”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모든 단추가 잘못될 수밖에 없지요. 한짝 잘못 신고 나오면 다른 신발도 짝자기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지요. 오늘 설교 제목이 「영성조율」인데 이 말은 하나님과 우리의 삶이 짝이 잘 맞아야 된다는 얘기입니다. 오른발 왼발처럼. 

그리고 싸이클이 잘 맞아야 된다는 뜻입니다.

F.B. 마이어라는 성서학자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방법”이란 책에서 그가 예인선을 탔던 경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침 예인선은 커다란 원양 어선을 좁은 항구로 예인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인선이 잘못 인도하기라도 한다면 그 큰 원양어선이 부두에 부딪히는 큰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마이어는 안개낀 밤 조마조마하게 앞뒤를 살피고 있는데 선장은 콧노래를 부르며 노련하게 어선을 항구로 인도했습니다. 마이어가 물었지요. “선장님은 어떻게 이 좁은 길을, 그것도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이런 밤에 저 큰배를 인도하십니까?” “예, 선생님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저기 앞에 불빛들이 보이지요? 저기 세 개의 불빛이 일렬로 정열이 되면, ‘아 내가 올바른 길을 가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면 틀림이 없습니다. 만약 세 불빛 중 하나라도 삐뚤어지면 빨리 각도를 맞춰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나 말이 올바른 것인가를 판단하는데도 세 개의 불빛 싸이클이 맞아야 합니다. 첫째, 성경적 내적 확신입니다. 성경 말씀에 비추어 내 안에 기쁨과 평안 그리고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공동체의 유익과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내 안에 확신이 있어도 교회와 공동체내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쁨과 확신 그리고 유익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성경적 근거 그리고 교회 공동체의 유익에 더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 개의 불빛이 나란히 맞춰질 때 그것은 틀림없이 하나님께 싸이클이 잘 맞추어진 것입니다. 

묻습니다. 여러분은 삶의 싸이클이 하나님의 불빛에 잘 맞춰져 있습니까? 삶의 싸이클을 이 세상에 고정해 놓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상의 소리가 들립니다. 세상이 크게 보일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께 우리의 영성의 사이클을 맞추고 살아가면 하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영성은 사실 하나님께 내인생의 싸이클을 맞추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은 고인이 되었지만 한때 샘터사 편집부장이었던 작가  정채봉씨의 글 가운데 「첫 마음」이란 글이 있습니다.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며 새 책을 앞에 놓고 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 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이 맞던 날의 떨림으로 계속된다면, 첫 출근하는 날, 신발 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개업 날의 첫 마음으로 손님을 언제고 돈이 적으나, 밤이 늦으나 기쁨으로 맞는다면, 세례를 받던 날의 빈 마음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교회에 다닌다면, 나는 너, 너는 나라며 화해하던 그 날의 일치가 가시지 않는다면, 여행을 떠나는 날, 차표를 끊던 가슴 뜀이 식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그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가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이런 마음을 불교에서는 초심이라고 하지요. 무슨 뜻입니까? 잘 맞춰진 첫 싸이클을 흐트리지 말란 말입니다. 

영성훈련이 무엇인가? 싸이클을 하나님께 제대로 잘 맞추는 훈련입니다.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 사랑 많으신 우리 하나님께 인생의 사이클을 고정해 놓고 그분이 기뻐하는 것 나도 기뻐하고 그분이 좋아하는 것 나도 좋아하고 그분이 싫어하는 것 나도 싫어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정신에 나의 싸이클을 조율해 놓고 그분이 가는 곳에 나도 가고 그분이 쉴 때 나도 쉬고 그분이 죽는 곳에서 나도 죽고 그분이 사는 자리에서 나도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분이 하시고자 하시는 말을 나도 하고 그분이 침묵할 때 나도 침묵하는 법을 배워가는 것이 영성훈련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성령님에게 싸이클을 조율해 놓고 살아갈 때 그분의 능력이 나의 능력이 되고 그분의 비전이 나의 비전이 됩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내 인생을 잘 조율하는 것입니다. 

묻습니다. 하나님과 여러분의 관계가 제대로 조율되어 있습니까? 여러분의 인생은 제대로 조율되어 있습니까? 여러분의 신앙은 제대로 조율이 마쳐졌습니까? 나의 기도생활, 신앙생활을 조율해야 할 때입니다.

II. 본문 I : 문제의 현장에서

오늘 본문을 보십시다. 북왕국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이 모압이라는 나라와 한바탕 전쟁을 치르기 위하여 에돔 광야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전쟁이 한 일주일 쯤 지나갔을까요? 먹을 물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골짜기가 바짝 말라 있습니다. 땅은 메말랐고 물의 근원도 말랐습니다. 그렇다고 비가 올 징조가 보이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뜨거운 태양만 작렬하고 있었습니다. 이때에 메마른 골짜기, 마른 광야에서 이들이 취한 행동의 전모와 문제 해결의 방법,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막다른 골목에 부딪혀서 쩔쩔맬 때가 있지요. 내가 만난 문제가 너무 무겁고 견딜 수 없어서 신음할 때가 있습니다. 내 영혼이 황폐해져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실패의 언덕에서 울며 부르짖어야 될 때가 있습니다. 인간관계가 얽히고 설혀서 이렇게 하면 꼬이고 저렇게 하면 더 꼬이는 안타까운 문제가 있지요. 이때 우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여기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을 본문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반응이 9절 10절 11절에 나옵니다. 이스라엘 왕 여호람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리하여 불평과 원망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나 유다 여호사밧 왕은 오늘 본문 11절에서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라고 말합니다. 기도해야 되지 않겠느냐? 그 얘기입니다. 같은 왕이면서도 한사람은 문제 앞에서 당황하고 불평만 합니다. 그러나 유다 왕은 이때야 말로 기도할 때가 아니냐라고 말합니다. 

가끔 우리가 문제에 부딪혀 보면 제일 먼저 찾아오는게 낙심이요 절망입니다. 그러나 낙심하고 절망해서 문제를 해결 해 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불평하여 문제를 해결해 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또 어떤 사람들은 사람을 찾아다녀 봅니다. 이 사람에게 의논도 해보고 저 사람을 붙들고 애원도 해 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문제 해결의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그 문제를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과 의논해야 합니다. 왜요? 하나님은 천지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천하에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만이 역사의 운행자요 주관자이시기 때문입니다.

한 병사가 대답을 합니다.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 이 말을 듣고 유다왕과 이스라엘 왕이 직접 엘리사를 방문했습니다. 신하를 시켜서 방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하를 시킨 것이 아니라 직접 찾아갔습니다.

III. 본문 II : 거문고

두 왕의 내방을 받은 엘리사 선지자가 뭐라고 대답을 합니까? 오늘 본문 15절 말씀입니다. “이제 내게로 거문고 탈 자를 불러 오소서” 거문고 탈 자를 불러오랍니다. 예언의 말씀과 악기를 연결시킨 곳은 신구약 성경 가운데 이곳 밖에 없습니다.

1. 거문고가 무엇입니까?

잘 아시다시피 거문고는 현악기의 일종입니다. 줄을 퉁김으로 소리가 나는 악기입니다. 거문고는 줄이 생명입니다. 줄이 끊어지면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왜 이스라엘에 문제가 생겼느냐?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곤고하게 울부짖어야 하느냐? 하나님과 백성들과 관계의 줄이 끊어져버렸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바이올린 연주자 파가니니가 사계의 권위자들 앞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연주가 막 시작되었을까요? 줄이 뚝 하고 터졌습니다. 연주가 한참 계속되고 있는데 또 줄 하나가 뚝하고 터지는 겁니다. 연주가 절정에 다다랐을까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줄 하나가 뚝하고 또 터졌습니다. 파가니니는 그의 유명한 스트라디바리우스 바이올린을 높이 치켜들었습니다. 마지막 한 줄! 그 줄을 가지고 남은 곡을 멋지게 연주해 마쳤습니다. 조바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수많은 청중들이 일제히 일어나 우레와 같은 박수로 파가니니를 칭찬했습니다. 그를 격려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인생의 줄들이 터져갈 때가 있지요. 사람을 믿었는데 그 사람이 내게 배신합니다. 인간관계 줄이 터져 도망갑니다. 사업의 줄이 터집니다. 물질의 줄이 터집니다. 사랑의 줄이 터집니다. 건강의 줄이 터집니다.

그러나 인생의 어떤 줄이 터져 도망간다 할지라도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 한 줄이 내게 있으면 우리의 연주는 계속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이 줄만 남아있으면 여러분들은 인생을 멋지게 연주해 가게 될 것입니다. 「우린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그분을 의지합니다. 그분을 믿습니다.」 믿음의 줄이 우리에게 남아 있으면 여러분은 인생을 멋지게 연주해 가게 될 것입니다. 

2. 조율을 잘해야 

거문고가 지닌 의미는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거문고는 현악기이기 때문에 조율을 제대로 해야 바른 연주를 할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였습니다. 이스라엘 왕들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의 줄이 풀어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잘 못 살아감으로 말미암아 영성의 줄이 느슨해지고 말았습니다. 백성들이 게으르고 나태함으로 말미암아 믿음의 줄이 헝클어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모압과의 전쟁 이전에 이스라엘 왕들의 문제요 지도자의 문제요 백성들의 영성의 문제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문제가 많고 많아 보이지만 모아보면 모두 한 가지입니다. 죄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입니다.

이 시간 당신의 거문고 줄은 팽팽히 조율이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과의 바른 위치에 서 있습니까? 찬송의 줄이 풀려있지는 않습니까? 신앙생활이 재미있고 행복하십니까? 기도의 줄은 팽팽하게 조율이 되어 있습니까? 사랑의 줄이 제 소리를 다 하고 있냐는 얘기입니다. 멋진 연주를 해 내야할 당신의 거문고 조율이 제대로 되어 있느냐 하는 얘기입니다.

다시 본문을 보십시다. 이제 조율을 마쳤습니다. 엘리사는 거문고 타는 사람으로 하여금 찬송을 연주하게 했습니다. 자신도 찬송소리를 들었습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던 이스라엘 왕도 찬송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자던 여호사밧도 찬송소리를 들었습니다. 장수들도 찬송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때 성령이 찾아오셨습니다. 성령이 역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율이 끝났으면 연주를 해야합니다. 

IV. 본문 III : 비전의 싸이클

여기에 참으로 깊고 신령한 뜻이 숨어있습니다. 메마른 에돔 골짜기에 샘이 터지기 전에 먼저 선지자와 이스라엘 가슴의 골짜기에 은혜의 개천이 터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생의 골짜기에 샘이 터지기 전에 내 마음의 골짜기에, 믿음의 골짜기에 샘이 터져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기도의 샘이 터지고, 눈물의 샘이 터지고, 꽁꽁 얼어붙었던 가슴에 샘이 터지고, 감사와 행복의 샘이 터져야 인생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전쟁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나였습니다. 세상이 변화되지 않는다고 넋두리하지 마십시오. 내가 변하면 세상은 변화되어 집니다. 세상이 위태하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내 가정이 행복하면 온 땅은 안정되게끔 되어있습니다. 한국교회 큰 일 났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섬기는 교회가 부흥을 체험하면 한국교회는 새로워질 수 있습니다.

옛날에 나무꾼들이 있었는데 미련한 나무꾼은 무딘 도끼를 가지고 산에 가서 나무를 찍습니다. 펑펑 소리만 나지 능률이 오르지 않습니다. 손바닥 껍질만 벗겨집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나무꾼은 아침마다 도끼 날을 벼루어서 산에 올라갑니다. 힘들이지 않고 나무가 쓰러집니다. 일에 능률이 오르게끔 되어있습니다. 

기도의 영성을 벼루는 것입니다. 말씀의 능력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찬송의 능력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내 능력의 도끼를 날카롭게 벼루어서 현장으로 나아가면 거기에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와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기적을 맛보게 될 줄로 믿습니다.

내 믿음의 조율이 급한 것입니다. 풀어진 영성의 악기를 다듬는 일이 시급한 일입니다. 환경의 변화 이전에 내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환경에 혁명을 일으키려고 하지 마십시오. 믿음의 혁명을 경험하게 될 때에 여러분들은 기적의 사람들이 될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V. 조율이 끝났으면 개천을 많이 파라

자, 이제 거문고 줄이 조율되었습니다. 악기가 연주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이 감동합니다. 엘리사가 이제 뭐라고 말합니까?

본문 16절입니다. “그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 하나님이 이제 말씀하기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그 음성이 무엇입니까? 개천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  

1. 절망의 골짜기

그 골짜기가 어떤 골짜기입니까? 절망의 골짜기입니다. 시냇물이 흐르고 샘이 솟아야할 골짜기임에도 불구하고 물이 말라 버린 절망의 골짜기였습니다. 숲이 우거지고 맑은 물이 흐르는 대신 돌멩이만 뒹구는 골짜기입니다. 물없는 골짜기는 사막이 되어버려졌습니다. 제구실 못하는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골짜기였다 하더라도 목마른 연합군에게,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물을 주지 못하는 메말라 빠진 골짜기라면 존재 의미를 이미 상실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제 아무리 훌륭한 학력과 가정과 배경과 사명을 가졌다할지라도 아무리 그럴듯한 인물을 가졌다할지라도 아무리 찬란한 신앙의 경륜을 가졌다할지라도 직분을 가졌다하더라도 그 사람 영혼 속에 생명의 샘, 은혜의 샘, 구원의 샘이 흐르지 못하면 그의 인생은 의미 없는 인생, 메마른 골짜기입니다. 교회가 교회 구실을 못하면 마른 골짜기가 된 거지요. 성도가 성도 구실을 못하면 메마른 광야로 바뀌고 만 것이지요. 이 땅에서 방황하는 불신자들에게 구원의 물을 줄 수 없고 내 이웃들에게 행복과 기쁨의 물을 줄 수 없는 사람이라면 그는 메마른 골짜기이지요. 

2. 많이 파라

실험삼아 한두 번 삽질 흉내만 내지 말고 메마른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하십니다. 잡초 우거진 믿음의 밭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시는 분들 계십니까? 감사하고 울며 행복해야 될 여러분의 삶이 헝클어져 있습니까? 하나님께 영광스럽게 쓰임 받아야 될 여러분의 삶이 거친 모래 벌에 바람이 일고 있습니까? 모래가 흩날리고 있습니까? 개천을 파라 많이 파라! 말씀하십니다. 많이 파면 많이 고이게 될 것입니다. 적게 파면 적은 물을 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너희가 믿으면 기적을 보리라! 큰 꿈을 꾸고 큰 역사를 이루라!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사업이 어렵습니까? 조율이 끝났으면 이제 괜찮습니다. 건강을 잃어버렸습니까?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노라. 신앙의 조율, 영혼의 조율이 끝났으면 괜찮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어리고 어린 초신자입니까? 괜찮습니다. 하나님과 여러분의 관계가 조율되어졌으면 여러분은 신앙의 기적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교회생활 가운데에 실패한 경험이 있습니까? 지금까지 믿음생활 하는 가운데에 커다란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분들이 계십니까? 메마른 시대, 마른 골짜기라고 낙심만 하고 있지 마십시다. 샘을 파십시요. 크게 기도하세요. 크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위대한 계획을 하시고 위대한 기도를 시작 하십시오. 그분에게 큰 것을 기대하고 크게 기도하십시요.

개천을 많이 파라고 하십니다. 

3. 믿음의 샘을 파라

이때 17절은 이렇게 이어져가고 있습니다.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가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믿고 샘을 파라는 것입니다. 기대감을 가지고 샘을 파라고 말씀하십니다.

도전하라는 것입니다. 기도했습니까? 도전하십시오. 믿음이 생겼습니까? 새로운 도전을 하십시오. 인생조율이 끝났습니까? 믿음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비결입니다. 그러나 의심과 불신앙은 이를 망치는 지름길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 말씀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신앙의 길은 무조건 두 손 들고 “주여 믿습니다.”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한번의 실패가 영원한 실패인 양 넋두리하지 마십시오. 어제 실패했다고 오늘 또 실패할 것인 양 좌절하지 마십시오. 인생조율 끝났으면 새로운 역사,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어제까지 사업이 안 되었다고 오늘도 내일도 안 되란 법이 있습니까? 어제까지 길이 막혀 있었다고 내일도 막히란 법이 있습니까? 믿음과 소망의 끈을 놓지 마십시오.

VII. 조율된 악기는 승리를 연주한다

조율된 악기는 준비된 곡을 연주하게 됩니다. 조율된 악기는 이제 멋진 승리를 연주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그 순종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마지막 본문 20절 말씀입니다. “아침이 되어 소제 드릴 때에 물이 에돔 쪽에서부터 흘러와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아침 소제 드릴 때에 즉, 공동체가 함께 예배하고 기도하는 그 장소, 그 시간이 중요합니다. 온 백성이 일어나 아침에 기도하는 그 시간, 하나님은 기적을 베풀기 시작했습니다.  

문제 있다고 보따리 싸들고 홀로 산에 들어가려고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우리가 모이는 이 자리 하나님이 임재하는 자리입니다. 하나님이 영광스럽게 역사하는 자리입니다. 온갖 문제, 오만가지 문제가 해결되는 자리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른 아침 골짜기에 흘러 넘쳐나는 물에 아침해가 비취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신선한 아침이었습니다.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이었습니다. 물 한방울 없던 메마른 골짜기에 물이 흘러 넘치고 거기 아침햇살이 비치니까 물이 빛이 나며 붉은 빛을 띄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모압 사람들은 이스라엘 연합군, 저들이 자중지란을 일으켰구나. 서로 죽이고 죽었구나. 피를 흘렸구나. 그리고 쳐들어 왔다가 연합군의 반격을 받아 크게 패하고 도주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이 험한 역사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을 괴롭히려고 찾아왔던 악한 사탄의 역사가 원수가 물러가게 될 것입니다. 불가능하게만 보이던 문제가 해결됩니다. 

「어게인」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는 정성일이라는 분이 기록한 간증의 글입니다. 그는 사업가로서 촉망받던 시절, 교통사고로 하반신마비 척수장애 1급 판정을 받고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지만 살아나 극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도 한때는 교회를 다닌 사람이었는데 교회보다는 자꾸 세상의 즐거움이 좋아 보였습니다. 세상 친구들과 어울리는 사이에 교회생활, 신앙생활은 멀어져만 갔습니다. 사업을 핑계로 늘 자정까지 술에 만취되어 쾌락을 탐닉했고 오직 세상 성공만을 위해 달려갔습니다. 

그러던 그가 친구와 영동고속도로를 고속질주하며 추월하다가 죽음의 위기를 맞는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그 이후 병실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이제는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다시 태어나 인생을 새롭게 출발하고 「어게인」- 다시 라는 책을 쓰게 됩니다. 지금은 직원 10명 정도 되는 건설업체인 홀리랜드 종합건설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일류기업으로 도약하는 그 날을 꿈꾸며 오늘도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채 건설현장을 종횡무진으로 사업에 전념하고 있답니다. 

그는 책의 서문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건강이라면 누구보다도 자신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람과 인생을 즐길 줄도 알았습니다. 술집에 가면 최고의 인기를 누리며 밤이 새는 줄도 모른 채 사람들과 어울려 지냈습니다. 내게 주어진 인생이니 맘껏 살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제게 불현듯 찾아온 교통사고, 그리고 1급 척수장애 판정은 제게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인생임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하반신마비, 대소변조절 불가,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불가항력적 통증들... 저는 이런 장애와 고통 앞에 인생을 저주했습니다. “인생이여, 죽어버려라!”라고 침을 뱉고 싶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계획하심이 얼마나 위대하신 지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이 책을 쓰는 이유와 목적이 있습니다. 건강한 이들이 이 책을 읽고 건강할 때, 복을 누릴 때,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며 그분께서 주신 사명을 감사함으로 감당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어려운 시절에 비록 벼랑 끝에 선 절망을 만났다 할지라도 사지를 움직일수만 있다면 우린 얼마든지 하나님 안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류영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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