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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굴종하는 요나 (욘 1:17-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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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종하는 요나 (욘 1:17-2:10)


로라 슐레징어 박사가 쓴 '인생을 망치는 7가지 변명'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사람이 변명을 한다는 것은 그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비난이나 책임을 면하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변명만 늘어놓는 사람과, 그리고 생각은 있으나 결단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 책의 서문에서 이런 말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다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고집대로 살아 보고 싶어합니다.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다 얻고 꿈꾸던 그 환상을 모조리 이루어 보고 싶어합니다.  당신은 가능한 한 노력은 하지 않고 희생을 적게 하되 출세하고 성공하고 싶어합니다.  당신은 나쁜 짓을 하고서도 벌받지 않고 피해 가고 싶어합니다.  당신은 당신에게 상처 주고 피해를 입힌 사람에게 멋진 복수를 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이 글을 읽으면서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 보았으면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만약에 여러분의 원수가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면 여러분의 인생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리고 오늘 본문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입장을 바꾸어서 요나에게 철저하게 배반을 당하신 하나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은 요나를 다시 회복시키실 뿐만 아니라 너무나도 아름답게 당신의 사역자로 쓰임을 받게 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볼 때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나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을 이야기하고 있는 너무나도 감동적인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특별한 대우를 하시는 것도 아니요, 니느웨 사람이라고 해서 천대하는 것도 아닙니다.  악하다고 밀어내고, 선하다고 받아들이시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선한 자나 악한 자나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가리지 않고 무조건 사랑해주시는 하나님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무한한 자비를 가지고 우리를 감싸주시고 자기 품에 안으시는 하나님을 이 요나서가 보여 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영원한 자비를 가지고 우리를 대하시는 하나님을 인간이 얼마나 오해하기 쉬운가 하는 것도 이 요나서가 우리에게 던져 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교훈입니다.  하나님의 자비가 너무 크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다 이해하지 못해서 오해를 하는 것입니다.  요나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요나, 그는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해야 하는 선지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위대한 사명을 주십니다.  그런데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거역합니다.  요나는 실패자입니다.  그는 고난이 덮치기 전에 미리 실패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니느웨로 가서 외치라"는 명령을 거역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가는 길을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큰 폭풍이 휘몰아쳤고 그가 탔던 배는 거의 깨어질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모든 물건을 바다에 던져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폭풍은 전혀 그치지 않았고 결국 요나는 바다에 던져졌습니다.  그는 물고기 뱃속에서 고난을 당할 때 자기 자신의 고난이 실패자의 고난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고난이 덮치기 전에 그는 이미 실패자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린 실패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저버린 실패자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한 실패자였습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사명을 받고서도 그것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도망을 가다가 큰 폭풍을 만났던 하나님의 사람 요나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폭풍이 자기 때문임을 알고서는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고 고백하면서 현실의 문제 앞에 책임을 졌던 요나에 대해서도 살펴보았습니다.  요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토록 어려운 고난을 당하는 것이 자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문제에 책임을 지고 바다에 던져지게 됩니다.

바다에 던져진 요나, 그런데 하나님은 그를 어떻게 하셨습니까?
본문 1장 17절 말씀을 다같이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요나는 하나님을 등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피하여 도망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요나를 위해서 큰 물고기를 준비하셨습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를 위한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있습니다.  선교적인 사명을 포기하고 도망가는 요나,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배 밑으로 숨어들어 갔던 요나,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포기할 수가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끈질기게 요나를 추적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입니다.

솔직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요나 대신에 다른 사람을 불러서 얼마든지 니느웨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요나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요나에게 두 번째 응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를 하나님의 구원의 도구로 쓰시고자 끝까지 추적하십니다.  여기에 요나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때로 하나님의 명령 앞에 불순종했다는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여러분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독생자를 주시고 그를 십자가에 죽게 하시기까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에도 여러분을 사랑하셨고, 지금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미래에도 영원히 사랑하실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가는 것을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반역하는 사람들에게 폭풍을 보내기도 하고, 흉흉한 바다 가운데 던지기도 하십니다.  때로는 음부와 같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고통을 겪게도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아직도 나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내 삶의 수많은 역경을 통해서 마침내 나를 아름답게 사용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기왕이면 폭풍을 만나기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고통을 당하기 전에 하나님께로 돌아서시기를 바랍니다.

인간으로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을 당했던 욥은 욥기 5장 18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의 손으로 고치시나니"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범죄한 인간을 벌하시기 위하여 아프게도 하시고 상하게도 하시지만 그러나 다시 싸매시고 고쳐주시는 분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창세기를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명령하십니다.  이삭을 바치라고 요구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수양과 더 큰 믿음의 복을 준비하셨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도망가는 요나, 불순종한 요나에게 벌을 내려서 바다에 던짐을 당하게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큰 물고기를 예비하셔서 요나를 보호하여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요나, 하나님을 피하여 도망가는 요나, 배 밑층에서 잠을 자는 요나, 복을 주려고 해도 도무지 복 받을 짓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요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랑하셔서 큰 물고기를 준비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것을 아셔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때로는 불순종하여 도망을 가는 요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물고기를 준비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여호와 이레의 준비하시는 하나님은 아닙니다.  오직 그 문제 앞에서 책임을 지는 그 사람을 위해서 준비하십니다.  그 문제 앞에서 자신을 던지고자 하는 희생이 있는 그 사람을 위해서 물고기를 준비하십니다.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 변명이나 늘어놓는 사람을 하나님은 결코 기뻐하지 않습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의 말씀에서 우리는 요나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굴종하는 요나입니다.  그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고 범죄하여 바다에 던지워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물고기를 준비하셔서 그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장에서의 요나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 앞에 불순종하여 도망가는 선지자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반역하였던 요나도 거세게 불어닥치는 폭풍 앞에서는 그 자신도 어떻게 하지를 못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자니 큰 폭풍으로 인하여 죽게 될 것이고, 순종하자니 원수의 나라인 니느웨에 가는 것이 죽는 것 보다 싫습니다.

이러한 요나를 향해서 하나님은 요나로 하여금 순종하게 만드시고자 물고기의 현장으로 그를 불러 세우십니다.  자신의 뜻에 맞지 않는다고 거부하고 도망가는 요나에게 순종을 배우도록 하기 위해서 물고기 뱃속에서의 부흥회를 준비하십니다.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순종과 굴종의 차이가 어디에 있습니까?  국어 낱말사전에 보면 '순종'이란 '순순히 복종하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순종이란 부모님께서 어린아이에게 말씀하시는 그대로 그 아이가 순순히 복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에 '굴종'이란 무슨 뜻입니까?  국어 낱말사전에는 '굴종'이란 '자기의 뜻을 굽혀서 복종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원래 자기의 뜻은 그것이 아닌데, 어쩔 수 없이 복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굴종이라는 것은 부모님께서 어린아이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는데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야단을 맞을 것 같아서 어쩔 수 없이 억지로 복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은 순종과 굴종의 차이를 이해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께서는 요나가 처음부터 순순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명을 감당하지 아니하고 도망가는 요나를 향하여 큰 폭풍을 일으키십니다.  어쩔 수 없는 폭풍 앞에서 요나는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나는 여전히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로 향하고 있지 않습니다.

1장을 살펴보십시오.  요나가 하나님께 기도하고 회개했다는 말이 1장 어디에 있습니까?  그가 바다에 던져지는 그 순간에도 회개하고 기도했다는 말이 어디에 있습니까?  없습니다.  엄청난 폭풍이 일어났고 그가 바다에 던져지는 곤경에 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요나가 그의 얼굴을 하나님께로 향하여 기도했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1장 14절에 보니까 오히려 이방 뱃사람들이 하나님께 요나를 위하여 기도했다는 기록 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2장 1절을 보십시오.  1절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사랑하는 여러분, 요나가 하나님께 기도한 것은 배에서가 아니라 물고기 뱃속에서였습니다.  그렇게 엄청난 폭풍이 일어났을 때에도 요나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랬던 그가 물고기 뱃속에서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만약에 그가 배 갑판 위에서 하나님께 회개하고 기도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제대로 숨도 쉴 수 없는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살이 녹아 내리는 극심한 고통을 당하는 그 자리에서 몸부림을 치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생사의 확신이 없는 그 두려움의 고통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것에는 때가 있습니다.  회개해야 하는 것도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와 기도해야 하는 것도 때가 있습니다.  그 때를 놓치지 마십시오.  그 때를 놓치면 우리도 요나처럼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물고기 뱃속에서의 고난을 만나게 될는지도 모릅니다.  그 때를 놓치면 어쩌면 생사의 확신이 없는 인생의 가장 깊은 고통 속으로 몰아 넣으실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십시오.  그리고 그분의 긍휼을 구하며 기도하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엄청난 폭풍 가운데서도 회개하지 않는 요나를 이번에는 물고기 뱃속이라는 완전한 고난 가운데로 집어넣었습니다.  물고기 뱃속에 들어간 요나, 그제서야 그는 하나님을 찾으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요나는 그의 얼굴이 하나님을 향하기 시작했습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요나는 하나님을 향하는 새로운 삶의 자세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됩니다.  물고기 뱃속에 들어와서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이제는 영원히 죽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이것은 순종이 아닙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굴종입니다.  지금 요나는 캄캄한 물고기 뱃속에서 자신이 당한 비참한 처지를 돌아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그가 뭐라고 기도합니까?

본문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다같이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여기에서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삽더니"는 공동번역에서는 "죽음의 뱃속에서 살려 달라고 외쳤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스올'은 '음부', 혹은 '지옥'을 말합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처절하였던지 "이곳이 바로 지옥이구나" 싶어서 몸부림치며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고 했습니다.  우리말대로 한다면, 콧대가 높기로 유명하고, 자존심 강하고, 제 잘난 맛에 제 멋대로 사는 요나가 이제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살려달라고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고통이 너무 심하면 죽고 싶은 때에 죽을 수도 없는 고통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지옥의 고통입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고난이 있지만 요나가 당하는 이 음부의 고난은 인생의 가장 처절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처절한 고난 앞에서 그가 한 행동이 무엇입니까?  기도입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을 피하여 도망치던 요나가 하나님을 향하여 고개를 들고 하나님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기도는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리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기도는 자신의 운명을 바꾸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내게 어떤 고난이 찾아올 때 이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 깊이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오십시오.  그분의 보좌 앞에 나아와 기도하십시오.  요나는 처절한 고난 속에서 먼저 기도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고 도망가던 요나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들으셨을 뿐만 아니라 응답하셨습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도무지 우리의 생각과 이성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서 41장 17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련하고 가난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참으로 하나님은 가련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그들의 고난 중에서 죽기를 원치 아니하시고 그들을 도와주시고 구원하여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여러분도 깨닫고 체험하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는 요나의 상황은 그가 죽음의 일보 직전의 절망적인 상태였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5절을 보니까 "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라고 했고, 6절에서는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내려 갈 곳이 없는 곳까지 요나를 내려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가두어 자신의 의지를 꺾어서 온전히 순종하지를 못하면 굴종이라도 하게 만드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들어 사용하시기 위해서 때때로 가장 낮은 자리에까지 내려가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겸손을 배우게 하고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한 후에 크게 들어 쓰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믿음의 선지자들은 대부분 이러한 연단의 과정을 겪었습니다.

그렇다면 묻습니다.  오늘 여러분들도 솔직히 요나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기가 어렵습니까?
도무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싫어서 요나처럼 피하여 도망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내 생각하고는 너무나도 다르기에 그 말씀 그대로 순종하기가 어렵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몸된 교회에서 헌신하고 섬기는 것도 그렇습니다.  내가 마음에 있어서 하는 것은 그래도 괜찮은데 다른 사람이 하라고 하면 자존심이 상하는 것 같아서 하기가 싫은 때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사랑하는 여러분, 요나처럼 하나님 앞에서 굴종이라도 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여러분의 뜻이 비록 그것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여러분의 뜻을 굽혀서 하나님 앞에 굴종이라도 해 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여러분으로 인하여 덤으로 살아가는 여러분의 가족과 더 많은 인생들을 위해서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위해서 말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굴종이라도 하지 않으면 여러분의 가정이,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폭풍 앞에서 고난 당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나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내 뜻을 굽혀 굴종이라도 하게 된다면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여러분 주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덤으로 행복을 누릴 수가 있게 될 것입니다.

요나는 이러한 진리를 물고기 뱃속에서 배웠습니다.  그는 물고기 뱃속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굴종을 배웠습니다.  그렇게 도도하고 자기 뜻대로 살던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굴종을 배웠습니다.  그나마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굴종이라도 했다는 것은 천만다행입니다.  만약에 요나가 이것조차도 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물고기 뱃속에서 죽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물고기 뱃속에서 이 진리를 깨달았을 때, 그리고 하나님 앞에 굴종했을 때 그는 제 2의 멋진 인생을 살았습니다.

기억하십시오.  그가 불순종했을 때 그는 음부의 깊은 고통 속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가 굴종이라도 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광명한 세상으로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가 불순종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바다 깊은 곳으로 던지셨습니다.  그러나 그가 굴종이라도 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로 하여금 다시 사명을 감당하도록 사명의 현장으로 불러내셨습니다.

무엇보다도 그가 하나님 앞에서 굴종이라도 하고 나니까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회복과 응답의 감격을 허락하셨습니다.  그것이 4절 말씀입니다.  4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마음놓고 예배할 수 있을 때에 예배를 소홀히 하던 사람들이 고난을 당하면서 예배가 막혀질 때에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마음놓고 찬송할 수 있을 때에 찬송하기를 소홀히 했던 사람들이 축복의 통로가 막힐 때에 다시 찬송하려고 몸부림치기 시작합니다.  기도하여야 할 상황 속에서도 방황하면서 기도를 소홀히 하던 사람들이 문제가 생기고 두려움과 좌절에 휩싸였을 때에 다시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뜻대로 살면서 불순종하던 사람들이 음부의 고난을 당하면서 다시 순종하겠노라고 다짐해 봅니다.  문제가 생기고 환난을 당할 때에 다시 말씀을 가슴에 움켜쥐고 말씀대로 살아보려고 몸부림을 치기 시작합니다.  이것은 온전한 순종이 아니라 굴종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굴종이라도 하면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회복과 응답의 감격을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그렇게 굴종이라도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나를 더 깊은 수렁에로 몰아넣으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먼저 순종하십시오.  정말로 여러분이 순종하기 힘들거든 굴종이라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자신과 가정과 교회와 이웃을 위해서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환난이나 역경이 다가오면 쉽게 자신을 포기하거나 쉽게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역경이 다가 오더라도 더 하나님을 의지하셔야 합니다.  깊은 고난일수록 더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와 기도하셔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과거가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다시금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며 부르짖어 기도하면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용서하여 주십니다.  감당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굴종을 배웠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오늘 이 시간, 이곳에서 하나님을 향한 굴종을 배우시기를 바랍니다.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도망하던 요나 앞에서의 하나님은 징계의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굴종한 요나에게서의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은혜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벼랑 끝까지 갔던 요나, 그가 그곳에서 하나님 앞에 굴종이라도 하였지만, 그러나 그 굴종이라도 하고 난 요나는 9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본문 9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요나는 편안하게 살 때 일찍이 그의 입술에 감사의 언어가 없었습니다.  매일 매일 형통한 삶 가운데 있을 때에는 감사의 언어를 잃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그가 캄캄한 물고기 뱃속에서 감사의 언어를 회복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것들이 내 뜻대로 되어질 때에는 감사를 잃어버렸던 요나였습니다.  사람들이 내게 박수와 갈채를 아끼지 아니할 때에는 감사의 노래를 잃어버렸던 요나였습니다.  그러나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극심한 고통과 숨을 쉴 수 조차 없었던 물고기 뱃속에서 요나는 감사의 노래를 회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감사 노래의 주제는 '구원'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이 인생의 여정에서 부르는 노래의 주제가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좀더 오래 사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조금 더 가지고 편안하게 사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인생의 여정에서 불러야 할 노래는 구원입니다.  그토록 아픈 실패의 순간에도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한 가지 사실 때문에 그는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가 있었습니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절망감 속에서도 구원받은 백성으로 죽어갈 수 있다는 그 사실 때문에 그는 감사할 수가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절망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내 곁에 계신다는 그 사실 때문에 그는 감사의 노래를 부를 수가 있었습니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나님, 이대로 죽어도 좋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고 하면 이대로 내 인생이 끝장난다고 할지라도 감사합니다.  하나님, 나는 그대로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죽어갈 것입니다."  이것이 물고기 뱃속에서 굴종을 배웠던 요나의 고백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솔직히 요나의 인생이 그 실패의 자리에서 끝장났다고 할지라도 할 말이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 앞에서 굴종이라도 했을 때 그의 입술에서 감사가 회복되었습니다.  굴종이라도 했을 때에 구원의 감격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새로운 사명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 마지막 10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보십시오.  그가 물고기 뱃속에서 억지로라도 굴종을 했더니 입술에서 불평과 원망이 사라지고 감사가 회복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여호와께서는 요나를 물고 있는 바로 그 물고기에게 명령을 하십니다.
"물고기야, 토해 내라!"

사랑하는 여러분, 혹여 질병 가운데 신음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가운데 질병의 의미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순종이 아니라 굴종이라도 하는 순간 내 삶에서 감사가 회복되면서 하늘의 음성이 들려올 것입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을, 내 딸을 묶고 있는 질병의 마귀야, 그를 토해 내라."

실패의 자리에서 넘어지고 깨어져서 피투성이가 되신 분이 계십니까?  그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굴종하는 순간 내 안에 회복의 영이신 성령께서 임재하시면서 구원의 음성이 들려올 것입니다.
"사랑하는 내 자녀를 묶고 있는 낙심의 물고기야, 그를 토해 내라!"

사랑하는 여러분, 아직도 하나님 앞에서 전적으로 순종하기가 힘이 드십니까?  그렇다면 요나처럼 굴종이라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감사와 구원의 감격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당신에게도 새로운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새로운 축복의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이 축복이 우리 모두의 축복으로 체험되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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