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갈 1:20)

  • 잡초 잡초
  • 416
  • 0

첨부 1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갈 1:20)


성경에는 '하나님 앞에서'라는 표현이 많이 나타납니다. 최고의 능력을 가진 하나님을 증인으로 채택할 때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롬 1:9; 고후 1:23; 빌 1:8; 살전 2:5). 
우리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지칭할 때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이 사용되었습니다(신 12:12; 14:26; 딤후 2:14; 계 3:2; 행 8:21). 본문의 경우는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자신의 사도권에 대한 진정성을 밝힐 때 사용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라틴어로 코람데오(Coram Deo)라고 합니다. 이 코람데오 사상은 우리 교단의 정신사적 기초가 되었습니다. '코람데오의 삶'은 

Ⅰ. 하나님의 속성을 이해하는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출애굽기 3장 14절에 『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존재론적인 차원에서 영이십니다(고후 3:17; 요 4:24). 하나님은 생명이십니다(수 3:10; 시 84:2; 삼상 17:26; 마 16:16).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요일 4:12). 가까이 가지 못할 빛이십니다. 아무 사람도 볼 수 없는 자이십니다(딤전 6:16). 
하나님의 존재는 일반계시를 통해서 나타내시고(롬 1:20; 히 4:13), 특별계시를 통해 자신을 나타내십니다(요 1:18; 5:24; 5:39). 

① 하나님은 인격을 가지고 계십니다(출 3:14; 사 45:5; 욥 23:13; 롬 9:11). ② 하나님은 영원 자존자이십니다(시 90:2; 시 102:27). ③ 하나님은 스스로 계시는 분이십니다(출 3:14; 사 43:10). ④ 하나님은 장차 오실 자이시며 전능자이십니다(계 1:8). 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십니다(민 23:19; 말 3:6; 약 1:17; 히 6:17). ⑥ 하나님은 본질에 있어서 무한하시고(욥 11:7-10; 시 145:3; 마 5:48), 시간에 있어서 무한하시고(시 90:2), 공간에 있어서도(시 139:7-10; 렘 23:23-24) 제한을 받지 아니하십니다. 

⑦ 하나님은 단일하신 분이십니다(엡 4:5-6). ⑧ 하나님은 전지하십니다(삼상 2:3; 시 94:9; 잠 15:3, 11; 사 29:15; 42:9; 시 104:24). ⑨ 하나님은 진실하십니다(시 90:5; 97:7; 115:4-8; 사 44:9-10). ⑩ 하나님은 선하십니다(막 10:18; 시 145:9, 15, 16). ⑪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롬 3:24; 요 3:16; 고후 8:9; 행 14:3; 엡 2:8; 딛 2:11). ⑫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사 6:3; 출 15:11; 사 57:15; 호 11:9). ⑬ 하나님은 의로우십니다(히 11:6; 시 99:4; 사 33:22; 시 145:17; 벧전 1:17; 사 3:10, 11; 롬 2:6). ⑭ 하나님은 주권적이십니다(롬 11:36; 시 135:6; 계 4:11; 잠 21:1; 단 4:35; 행 18:21; 약 4:15; 마 10:29). 

하나님은 뜻을 세우심에 있어서 자유하시고 그 뜻을 실행함에 있어서 자유하시고 그 세우신 뜻을 성취하심에도 자유하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완전하시고 충족하시며 절대 주권적이십니다. 하나님은 만유를 소유하시고 만유를 통치하시고 보존하시고 섭리하십니다. 

하나님은 본질상 부족하거나 결핍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의 권능과 권세는 절대로 중단되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은 선을 무한히 소유하고 계시고 모든 미(美)는 하나님의 미(美)이고 모든 좋은 것은 하나님 안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본질적으로 소유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자신이 지으신 것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외부에 있는 그 어떤 것도 덧붙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속성으로 그것을 채우도록 하셨기 때문에 오직 존재할 뿐입니다(행 17:24-25). 하나님은 스스로 충만하시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십니다. 모든 일을 그의 뜻대로 결정하십니다(엡 1:11). 

인간은 하나님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피조성으로 인하여 우리의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합니다. 인간은 본질상 하나님 의존적 존재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대조만큼 큰 대조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충만을 소유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지으신 것을 필요로 하고 있지 않지만 인간은 하나님이 우리의 삶 속에 매 순간 제공하시는 것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독립적이나 우리는 절대 의존적입니다. 

Ⅱ. 코람데오의 삶은 기도의 삶입니다. 

느헤미야 1장 4절에 『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라고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수산궁에서 백성들이 사로잡힘을 당하고 남은 자가 큰 환란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성과 성문들이 소화(燒火)되었다는 말을 듣고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자신이 모르는 어떤 정보를 얻을 필요가 없습니다(시 147:5). 하나님의 지식 속에는 과거, 현재, 미래까지 다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과거의 하나님이시고, 현재의 하나님이시고, 미래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지식은 완전하고 충족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식은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알 수 있는 지식을 크게 능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을 아시고 우리가 말하기 전에 무슨 말을 할 지에 대해서도 미리 알고 계십니다(시 139:1-5). 그래서 다윗은 시편 139편 6절에 『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역대상 28장 9절에 『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뭇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아시나니 네가 저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버리면 저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고 했습니다. 
사무엘상 16장 7절에 『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마 6:11)라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6장 32절에 『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탁월성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기도도 필요 없습니다. 이사야 40장 14절에 『 그가 누구로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공평의 도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주었느뇨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필요로 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무슨 정보를 제공하는 일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기도는 왜 하라고 하셨는가? 그리고 왜 우리는 기도해야 하는가? 하나님은 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하시는가?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있으라(골 4:2)고 했는가?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자신의 충족성에 기초하고 하나님의 절대주권 사상에 기초해야 합니다. 

1) 하나님은 기도를 하나님 자신과 친밀한 관계를 갖도록 우리를 이끄시는 수단으로 계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떠한 유익을 얻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요구를 자신 앞에 가지고 나오도록 간절히 원하십니다. 
베드로전서 5장 7절에 『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 』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4장 6-7절에 『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간절한 기도를 통해 자신에게 나아오기를 원하십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가 자신을 의존하고 있다는 것과 자신의 여러 속성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를 원하십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어떤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는 단 한 가지, 곧 코람데오와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도를 정하신 중요한 일차적 이유는 우리를 하나님 자신에게로 이끌고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지 알게 하는데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는 하나님 자신이 우리에게 전부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깨닫도록 하기 위한 장치입니다. 

하나님은 강하고 인간은 약합니다. 하나님은 충족하시지만 인간은 공허합니다. 하나님은 독존하시지만 인간은 의존적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살전 5:17). 이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필요가 중단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로마서 11장 36절에 『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7장 25절에 『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1장 17절에 『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고 했습니다. 
코람데오의 관계 속에 한 편은 전부 가지고 있고, 다른 한 편은 철저히 궁핍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 계신 주님의 환상을 보고 외쳤습니다. 
이사야 6장 5절에 『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베풀기를 좋아하신다는 사실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수여자가 되는 것을 즐거워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겸손하게 의지하는 자녀들에게 최상의 것을 제공하시기를 좋아하십니다(시 84:11). 
따라서 기도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고자 마련한 수단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나아오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사 55:1-3). 

2) 하나님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참여시키는 수단으로 기도를 계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통해 우리의 요구에 응답하도록 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도하게 하시고 그 기도를 통해 자신의 것을 공급하기로 한 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 사상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한나의 기도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가 됩니다. 하나님은 한나를 성태치 못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기도하게 하시고 그 기도를 통해 사무엘을 드린다는 서원을 받고 사무엘을 주신 것입니다(삼상 1:6). 

Ⅲ. 코람데오의 삶은 전도의 삶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1절에 『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사역자로 삼으시는가? 하나님의 능력이 무한하신데 무엇이 아쉬워서 우리를 부르시는가?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골 4:3)고 했는가? 하나님은 사람을 통하지 않고는 다른 방법으로 택자를 부르지 않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서 복음을 듣고 그 복음을 믿고 주의 이름을 부르고 구원 받도록 계획하신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3-15절에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정하실 때 능력 있는 방법이 많으실 텐데도 인간을 통하여 하셨을까? 모든 사람이 의구심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예측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사상에 의존해서 사고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그렇게 하기로 정하신 것입니다. 비록 더디고 답답하고 때로는 아무 쓸데 없이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 같을지라도 그렇게 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처럼 전도가 자신이 계획한 목적을 이루는 수단이 되도록 정하신 것입니다. 

기도할 때만 이루어지고 전도할 때만 택자를 찾도록 정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5장 14-15절에 『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고 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2절에 『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자신의 충족성과 절대주권은 코람데오 사상의 압권입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심치 말라고 했습니다(눅 18:1). 항상 기도하여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눅 21:36). 시편 기자는 『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라고 했습니다(시 116:2). 힘쓰고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고 했습니다(렘 29:7). 시험에 들지 않기를 기도하라고 했습니다(눅 22:40). 하나님은 항상 자신의 뜻이 우선 되도록 기도할 것을 말씀 하셨습니다(마 6:10, 33).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의 사역에 참여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그 사역의 최전선에 배치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기도와 전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전략의 outside에 두지 않고 inside에 두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충만이시고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인간의 도움은 불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기도와 전도의 도구를 통하여 더 크고 은혜로운 선물이 되도록 정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자기 역사의 구경꾼으로 두지 아니하셨습니다. 우리를 동역자, 사역자로 참여시키시기로 정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3장 9절에 『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고 했습니다. 계속해서 주의 사역자들과 성도들을 동역자 관계로 말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6장 3절에 『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고 했습니다.

로마서 16장 21절 에『 나의 동역자 디모데와 나의 친척 누기오와 야손과 소시바더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23절에 『 디도로 말하면 나의 동무요 너희를 위한 나의 동역자요 우리 형제들로 말하면 여러 교회의 사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니라 』고 했습니다. 
빌레몬서 1장 24절에 『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사는 것이 얼마나 만족스러운 일입니까? 
하나님은 완전 충족이시고 절대 주권적으로 행하시지만 우리를 부르시고 자신이 이루기를 원하시는 사역에 우리를 동원시키는 것은 우리에게 놀라운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확실하고 분명히 하기 위하여 사랑하는 아들을 사람의 모양으로 이 땅에 보내신 젓입니다. 그리스도는 이 땅에 오셔서 친히 기도를 가르쳐 주시고(주기도)친히 사랑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참여가 바로 요한일서 3장 16절에 『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코람데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옷깃이나 가슴에 달려 있는 표식에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를 요동치게 하는 놀라운 은혜이며 감격입니다.

-아 멘 -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