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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쁨으로 영접하고 존귀히 여기라 (빌 2: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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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으로 영접하고 존귀히 여기라 (빌립보서 2:19-30)

    
지난 주일에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1:27)는 말씀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천국시민다운 삶을 두 가지 행동원리로 정리했습니다.   첫째, 형제 자매가 한 마음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서로 협력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고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높여주며 자기의 관심사 뿐아니라 다른 사람의 관심사를 존중하는 자세로 섬기는 것입니다.   

둘째 원리는 우리를 대적하는 사람들을 두려워 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도 받을 줄 아는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겪는 선한 싸움입니다.   선한 싸움의 상대는 절대로 형제자매가 아닙니다.   이 세상의 어두운 세력과 공중권세를 잡은 악한 영들과의 싸움입니다(엡6:12).   형제가 서로 하나 되어야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서 제대로 힘을 발휘합니다.   동료들끼리의 라이벌 의식(분쟁)이나 나의 존재를 드러내고 과시하려는 의도에서 나오는 쓸데없는 자부심(허영)은 복음을 위한 협력을 방해합니다.   형제들 사이에 발생하는 다툼이나 허영은 형제들의 하나됨을 싫어하고 떼어놓으려는 사단의 전략에 이용당한 결과일 뿐입니다.   우리에게 피할 수 없는 싸움이 있다면 바로 사단의 이런 계략에 맞서는 것이며 반드시 이겨야만 할 싸움입니다. 

이상의 두 가지 행동 원리를 따라 살기 위하여 바울은 천국시민이 닮아야 할 완전한 모델을 제시합니다.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은 하늘나라의 모든 영광을 비우고 세상에 내려오신 마음입니다.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자기 몸을 십자가에 제물로 드려 아버지의 뜻을 이루신 겸손한 종의 마음입니다.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아버지의 뜻은 곧 아들의 뜻이었으며 이 뜻을 이루시려고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죄의 세력 앞에서는 한치의 물러섬도 없고 타협도 없으신 분이셨지만 그 죄의 세력 아래 신음하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서 제물로 드리신 사랑의 마음입니다.    

사람으로서는 어느 누구도 완벽한 모델이신 그리스도처럼 살 수 없지만 바울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이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는 것이라고 간곡하게 당부합니다.    그리스도를 본 받아 살기를 힘썼던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살았던 성도 두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였고 또 한 사람은 빌립보 교회가 바울에게 보낸 에바브로디도였습니다.   앞서 성도의 하나됨과 그리스도의 고난을 언급한 바울은 이 두 사람의 신앙생활을 모범으로 제시하며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이런 사람들을 기쁨으로 영접하고 존귀하게 여기라는 말을 합니다.   이런 아름다운 신앙의 모델들이 우리들 가운데도 있기를 바랍니다.  

목사가 교우들 앞에 그런 좋은 모델이 되어야 하고 장로와 집사와 교사들이 이런 역할을 담당하며, 먼저 믿는 사람들이 그리고 어른들이 먼저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교우들이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 새롭게 변화되는 기쁨으로 충만하기를 기대하며 오늘 말씀을 함께 묵상합니다. 

바울이 추천하는 첫번째 사람은 디모데입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어 그곳 사정을 자세히 살피고 돌아와 전해주는 소식을 듣고 싶었습니다.   오늘날처럼 통신이 발달된 시대라면 전화 한통으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겠지만 그 시절에는 사람이 직접 가서 확인하고 오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아무나 보낼 수 없고 믿을만한 사람을 보내야 양쪽 사정을 정확하게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 대사를 임명하여 다른 나라에 파견할 때는 전권을 위임하여 외교업무를 담당하도록 합니다.   이런 중요한 책임을 맡은 전권대사를 아무나 세워 보낼 수 없는 것처럼 바울은 믿을만한 사람 디모데에게 빌립보 교회를 살피고 돌아오는 책임을 맡기려고 했습니다.      

어떤 점에서 디모데가 바울에게 그토록 소중한 사람입니까?   나와 한 뜻이 되어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사람은 디모데 밖에 없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지만 디모데는 너희가 아는 것처럼 나와 함께 많은 연단을 받으며 자식이 아비에게 하는 것처럼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디모데는 바울에게 아들처럼 믿음직스럽고 든든한 사람이었습니다.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믿음 안에서 참 아들된 디모데’(딤전1:2) 라고 불렀고, ‘사랑하는 아들’(딤후1:2) 이라 불렀던 사람입니다.  

그는 어릴 적에 바울에게 성경 말씀을 배운 제자였고 바울이 에베소에 3년간 머물며 복음을 전하여 세워진 에베소교회를 담임한 후배 목회자였습니다.   그는 거짓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딤후1:5)이었으며, 바울이 죽기 전에 곁에 가까이 두고 싶어‘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딤후4:9) 고 청했던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면 임종의 순간을 지켜봐주기를 원한 아들과 같은 사람이 디모데입니다.   나를 대신하여 나의 뜻을 정확하게 전하고 빌립보 교회의 사정을 진실하게 살펴주고 신앙적으로 도와줄 사람으로 디모데가 가장 적합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정이 급하다고 아무나 선발하여 편지 한 장 불쑥 내밀고 내 할 일을 다했다 하지 않습니다.  내가 꼭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대신 나와 동일한 마음을 가지고 성도들을 살피며 믿음성장을 위해 수고할 일군을 파송합니다.   디모데는 바울을 대신한 전권대사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편지를 쓸 때 공동 필자로 디모데의 이름을 언급합니다.   빌립보서 외에도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 데살로니가 교회, 그리고 빌레몬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디모데의 이름을 언급하여 바울과 함께 일하는 일군임을 강조합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신뢰하고 빌립보로 보내는 모습은 바울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이방인의 사도로 보내시던 그리스도의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뜻을 모두 전한 분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삶으로 보여주신 분이며, 아버지의 사랑을 몸으로 실천하신 분입니다.  아버지와 한 뜻이 되어 우리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하신 분입니다.  세상에 계실 때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에게 천국복음을 가르치셨으며 아버지의 뜻을 따라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세상에서 하실 모든 일을 완수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세상을 위한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시며 하신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해당하는 동일한 명령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28:18-20)

아버지께 받은 사명, 아버지께서 주신 권세로 제자들을 세상으로 보내신 주님은 바울을 불러 전권을 맡기며 이방인의 사도로 보내셨습니다.   이제 감옥에 갇혀 부자유한 몸이 된 바울은 자기 대신 다른 신실한 사람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 되심처럼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와 한 마음으로 수고하였습니다.   이런 신실한 사람들과 동역하는 바울은 행복한 목회자였습니다.   자식이 아비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한 믿음의 아들이라고 소개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추천서가 어디 있겠습니까?   

바울이 디모데를 보내며 이런 추천서를 쓸 수 있었던 근거는 무엇입니까?    디모데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자신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일을 구한 사람이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무엇인가 열심히 일하는데 다른 사람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나의 일 혹은 한 두 사람의 열심으로 그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울은 앞서 교우들에게 한 마음으로 일하라고 권면할 때 ‘자기의 일, 남의 일’이라는 말을 언급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일을 하려면 나의 관심사를 소중히 여길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관심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이 공동체 전체의 유익과 즐거움을 주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가 되는 일입니다.  

자기의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한다고 말한 배경에는 이런 어려움이 있음을 짐작합니다.   어떤 일이든 그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드러나고 그 복음으로 영혼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때 그리스도 예수의 일이 되지만 분열과 상처를 낳는 일은 결국 사람의 일이 되고 맙니다.  라이벌 의식과 헛된 자부심으로 하는 일, 내 이름을 드러내는 일, 다른 사람의 마음을 돌아보지 않고 나의 이익과 나의 만족에 치중하는 일은 자기의 일을 구하는 일입니다.      

디모데는 이런 점에서 선한 양심을 가지고 자기의 일보다 그리스도의 일이 무엇인가 먼저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디모데는 과연 그 선생의 그 제자입니다.  바울은 내가 죽으면 그리스도와 영원히 함께 있을 것이니 나 개인으로서는 좋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살아서 교우들과 더 오래 지냄으로 성도들의 믿음 진보에 유익한 줄 알기에 이 감옥에서 나가 성도들과 함께 지내고 싶다고 했습니다.   형제자매의 유익을 위한 것이라면 기꺼이 고난을 선택하는 이것이 나의 일보다는 그리스도의 일을 우선 생각하는 일군의 모습입니다.  

바울의 이런 멋진 행동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본 받아 그의 마음을 품는데서 나왔습니다.  바울은 철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그의 겸손한 마음을 닮아 살기를 힘쓴 일군입니다.   이런 충성스런 일군에게 디모데와 같은 헌신된 제자와 후배가 있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선교여행에 동참하여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며 목회할 때 수많은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믿음의 선배요 아버지인 바울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배웠으며 빌립보 교회가 이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먼저 된 사람들의 책임과 사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 번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 목회자들이 그리고 장로님들과 먼저 예수를 믿은 신앙의 선배들이 이런 아름다운 본을 보여 우리 다음 세대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스런 일군들로 세워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한국교회가 제자훈련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제자훈련 프로그램이 없는 교회는 뭔가 덜 세련되고 부족한 교회로 여길만큼 제자훈련이 보편화되고 있습니다.   과연 누구의 제자를 양육하는 걸까요?    바울이나 베드로의 제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가르치는 사람의 제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를 낳고 기르며 세상으로 보내는 일이 제자훈련입니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단계별 훈련 코스를 수료했다고 다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본 받아 살아가는 사람이 정말 제자입니다.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을 품고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서로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을 위하여 살기를 힘쓰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참 제자입니다.   이것을 위해 먼저 된 사람이 그리스도의 모습을 잘 닮아 살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닮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뿐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였던 바울처럼, 베드로처럼 사는 것조차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잘 알기에 두렵고 죄송스럽기만 합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기 위하여 내려놓고 포기하고 버리고 양보하며 잊어버려야 할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며 행동으로 실천해야 할 제자의 삶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란 점을 잘 알기에 선뜻 헌신을 결단하고 나서기 쉽지 않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일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구하며 제자로 살겠다고 말하는 우리의 현실적인 고민이고 거룩한 부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좋은 제자 되기를 힘쓰고 동시에 좋은 제자를 양육하는 모범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지금 우리의 시대에도 제자로 부르시고 전권을 위임하여 세상으로 보낼 일군을 찾고 계십니다.   이 부르심에 기쁨으로 응답하고 헌신하는 주의 일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두번째 사람 에바브로디도를 추천합니다.   디모데를 속히 보내고 싶지만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이 있어 그 일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곧 보낼 것이며 나도 속히 여러분에게 가고 싶다고 합니다.   그러나 빌립보 교회를 생각하는 바울의 마음은 급합니다.   하루라도 빨리 교우들에게 자신의 뜻을 전하고 싶었던 바울은 디모데를 보내기 전에 먼저 에바브로디도를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알아 이 편지를 그의 손에 맡겨 보냅니다.   

바울이 평가하는 에바브로디도는 어떤 사람입니까?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가 바울에게 선교헌금을 전달하고 잠시 바울 곁에 머물며 도와주는 임무를 맡도록 파송한 일군이었습니다.   바울이 디모데를 빌립보에 전권대사로 보내려고 한 것처럼,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가 바울에게 보낸 전권대사였습니다.   빌립보 교회 온 성도들이 바울에게 와서 함께 일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형편에 에바브로디도를 대표로 보냈으며 그는 빌립보 교회를 대표하여 더욱 충성스럽게 섬겼을 것입니다.  30절에, 그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하였다’고 한 말씀에서 그의 열심을 충분히 짐작합니다.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고후11:29)  고 했던 목회자 바울의 심정은 부모의 심정과 같습니다.   부모의 사랑은 모든 자녀들에게 골고루 미치지만 그 중에 연약하고 부족한 자녀에게 더 마음이 가기 마련입니다.   아프고 곤란을 당한 자녀들이 늘 마음에 걸립니다.   멀리 떠나간 자식 생각에 맛있는 음식을 보면 마음이 걸립니다.   

축하하고 기뻐해야 할 자리에 힘들고 곤란 중에 있는 교우들이 있으면 혹시라도 그 사람에게 상처가 될까봐 기쁨을 마음으로만 간직하고 약한 자들의 마음을 헤아려 절제해야 하는 때도 있습니다.  자녀를 갖지 못하는 부부가 있는데 다른 교우의 임신이나 출산 소식을 드러내어 축하하기 어려운 적도 있습니다.   성공적으로 학위를 취득하고 진로가 확정된 사람을 맘껏 축복하지만 아직 어려운 과정을 남겨두고 심신이 쇠약해지도록 공부하는 교우들을 보면 금방 측은한 마음이 들며 그를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에바브로디도가 와서 봉사하다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빌립보 성도들에게 대한 바울의 마음이 얼마나 부담스러웠을까 상상해 봅니다.   아픈 환자를 지켜보는 마음도 힘들지만 그를 위해 멀리서 근심하며 기도하는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하니 바울의 마음이 더욱 아팠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이 그를 불쌍히 여겼고 또 바울을 불쌍히 여겨 그의 건강이 회복되어 근심을 면하게 하셨습니다.   건강해진 에바브로디도를 곁에 머물러 두면 바울에게 위로와 힘이 되어 좋지만 그의 건강을 염려하고 있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염려를 덜어주기 위하여 속히 돌려보냅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온 그를 보며 기뻐할 가족들과 교우들을 생각하여 하루라도 빨리 돌려보냅니다.   나의 편리함과 유익을 먼저 생각합니까?   다른 사람의 형편과 그리스도의 영광을 앞세웁니까?   나의 일과 그리스도의 일을 구분하는 기준이 여기에 있습니다.  

에바브로디도 편에 편지를 보내는 바울은 그를 마음껏 축복하고 칭찬합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습니다.   여러분을 대신하여 여러분의 몫까지 채우려고 나를 섬기는 그의 사랑과 헌신은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그를 주 안에서 기쁨으로 영접하고 이렇게 충성스런 사람들을 존귀하게 여기십시오.’   교회 안에 이런 일군들이 있을 때 그들을 알아주고 존경하며 격려하는 일은 서로의 신앙성장을 위하여 귀한 일입니다.   말없이 헌신하는 일군들은 하나님께서 이미 그 수고를 알아주시지만 믿음의 형제들도 그런 사람들을 인정하고 격려하며 그의 수고를 함께 나누는 것이 옳습니다.   그것 또한 그리스도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동역자들의 아름다운 관계를 찾아봅니다.  첫째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관계이며, 둘째는 그리스도와 바울의 관계, 셋째는 바울과 디모데 그리고 에바브로디도의 관계입니다.  그리고 바울과 빌립보 교회, 빌립보 교회와 에바브로디도의 사랑스런 관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김의 모습이 여기에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한 뜻으로 일하심으로 기쁨이 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심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신 섬김의 본을 보이셨으니 우리에게 큰 기쁨입니다.  그리스도의 충성스런 종이었던 바울은 디모데와 같은 신실한 제자와 에바브로디도 같은 일군을 곁에 두었으며 서로 한 뜻이 되어 주님을 위하여 기쁨으로 섬겼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만남과 섬김의 기쁨을 우리도 함께 나누기를 바랍니다.   나의 일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일을 힘차게 이루어 가시기 바랍니다.   자기 일을 앞세우지 않고 그리스도의 일을 먼저 생각하는 성숙한 일군의 자세로 맡은 일에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할 정도로 헌신해보시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시고 근심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뜻을 같이하여 함께 수고하는 일군들을 기쁨으로 영접하고 이런 사람들을 존귀하게 여기는 교회와 교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교우들이 보는 앞에서 섬기는 우리 목회자들 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드러나지도 않는 일을 위하여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섬기는 장로님들, 집사님들과 주일학교 교사들, 찬양팀, 전도회 임원들, 그리고 예배를 위해 음향시설을 담당하는 일군, 순서를 담당하는 봉사자들, 주보 편집과 인쇄, 교회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일군들, 매주일 점심식사를 위해 정성껏 준비하시는 자매님들과 주방정리와 식탁 정리 등 궂은 일을 위해 수고하는 일군들, 구역 모임이 잘 이루어지도록 마음 졸이며 수고하는 구역장들 등 한 사람 한 사람을 생각하면 정말 하나님께 감사하고 수고하는 일군들에게 감사할 뿐입니다.  매주일마다 그리고 주중에 교회 밖에서 헌신하는 충성스런 일군들의 수고가 교회라는 공동체를 지금까지 이어오게 하였습니다.   

그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우리 교회에 속한 모든 분들이 교회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주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주의 거룩한 몸을 아름답게 세워가기 바랍니다.  주의 긍휼과 사랑으로 상한 마음들이 깨끗하게 치료되고 닫힌 마음이 활짝 열리며 염려와 근심이 기쁨으로 변하는 은혜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사랑의 줄로 단단하게 묶여진 건강한 힘으로 교회 밖의 세상을 섬기며 아직 주를 알지 못하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함께 나누는 일군들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기대하고 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일입니다.  

우리들만의 교회가 아니라 다른 민족을 가슴에 품을 수 있는 넓은 마음, 교회 안의 사람들만 아니라 교회 밖의 이웃을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나누시기 바랍니다.   이 한 주간도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제자로서 세상에 들어가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는 기쁨을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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