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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계화의 비전 (마 22: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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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의 비전 (마 22:15-22)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세계복음화의 주역이 됩시다.”

마태복음 22장은 21장에서와 같이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계속해서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공격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1장에서는 예수님께서 성전을 청결케 하시고 성전에서 말씀을 증거하시는 것을 두고 누구에게 권위를 받아서 그런 일을 하느냐고 공격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 그들을 꼼짝 못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세금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사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자부하는 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극히 자기중심적 종교생활을 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자기 의지와 자기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 인도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는 정반대의 삶을 산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만의 틀을 가지고 그 안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셔서 그들을 통해 세계복음화할 계획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선민의식에 빠져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을 뿐이었습니다.
 
이런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눈을 열어 전 세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참 복음의 비밀을 깨닫게 하신 이유를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지역·민족·세계복음화를 이루어 나가시겠다는 비전을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세계화할 영적 수준이 되어야 합니다.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시리라는 2010년 원단메시지는 이러한 세계화의 응답을 맛보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지난 주간에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전도캠프가 진행되었습니다. 인도네시아는 인구의 90%가 모슬렘입니다. 그리고 발리 섬은 80%이상의 주민이 힌두교를 믿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예수를 믿는 순간 가족과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됩니다. 완전히 혼자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번 캠프를 통해 128명이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이는 보통 사건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이런 고생 없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처럼 정확한 복음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세계화의 응답을 받아야만 합니다.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습니다. 이는 반드시 성취됩니다. 말씀을 믿음으로 붙잡을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성도 여러분이 말씀을 믿음으로 붙잡아 하늘·땅·바다·열방이 진동하는 역사를 체험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은혜 받는 것이 우선
 
이에 바리새인들이 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를 말의 올무에 걸리게 할까 상의하고 자기 제자들을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께 보내어 말하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심이니이다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는 어떠한지 우리에게 이르소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하니 (마 22:15~17) 본문을 보면 두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바리새인들이고 다른 하나는 헤롯 당원들입니다. 사실 이 두 부류는 서로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집단입니다. 바리새인은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어 자신들만이 누구보다 하나님을 경건하게 섬긴다고 주장하는 이들이었고 헤롯당은 지극히 정치적인 집단으로 헤롯을 지지하는 친 로마 세력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지금 그 헤롯 당원들을 찾아가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하기 위해 힘을 합친 것입니다. 그들이 꺼낸 비장의 카드는 바로 세금 문제였습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라는 물음을 예수님께 던진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가능하면 자신들을 지배하고 있는 로마에 세금을 내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예수님께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다고 하신다면 당장 유대인들의 반감을 불러오게 될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렇다고 반대로 세금을 바치지 말아야 한다고 하신다면 그것은 로마의 실정법을 위반하는 것이 됩니다. 바리새인들의 입장에서는 이번만큼은 예수님께서 이 올무에 걸려들게 되실 것이라 확신하여 세금 문제를 꺼내든 것입니다. 
 
바리새인을 비롯한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영적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나온 근원적인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지 못하니까 결국 극단적인 율법주의로 흐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마침내 다른 사람을 살리기는커녕 자기도 죽고 남도 죽이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백성이 은혜를 받지 못하면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노예 되고, 포로 되고, 속국이 됩니다. 물질의 노예, 세상 권력의 포로, 세상 속에 잡힌 속국이 되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는 사단이 쳐놓은 올무에 걸려든 결과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이 예배의 자리에 나와 있는 것만 해도 실로 대단한 일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성공입니다. 나머지 절반을 채우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풍성히 받는 것입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 것은 그 뿌리를 통해 시냇가의 물을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이는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공급되는 은혜가 바로 영적인 삶의 생명수입니다. 
 
은혜가 마르면 그 삶은 불충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윤활유 없는 바퀴는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다가 결국 멈추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은혜가 없는 삶은 문제와 사건이 터질 때마다 원망과 불평이 쏟아지게 됩니다. 자신이 메말라 있는데 다른 사람을 살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성도 여러분은 항상 은혜 받는 것에 최우선순위를 두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백성이 은혜를 받으면 문제가 오히려 세상을 살리는 기회가 됩니다. 모든 시각이 달라지고 판단과 일이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는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동행의식을 날마다 삶 속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이라는 책을 보면 주인공이 어렸을 때 목장을 하는 친구의 집에서 잠을 자게 됩니다. 그런데 주인공 자신은 친구의 아버지를 처음 봤는데 그 분은 자신이 친구와 함께 있자 마치 아들처럼 대접을 잘해주더라는 것입니다. 친구의 아버지가 밥을 챙겨주고 잠자리를 제공해 주었던 까닭은 바로 아들과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아들과 함께 있으니 대접을 잘해주었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러분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축복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를 사용하며 기도하고 응답받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주의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개인화와 제자화를 넘어 세계화의 응답을 맛보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이 이러한 은혜 충만한 삶을 살아가며 현장에서 영적 영향력을 입히는 현장 전도 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세금 낼 돈을 내게 보이라 하시니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왔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이르되 가이사의 것이니이다 이에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마 22:18~21)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아주 간결하면서도 정확한 답을 주셨습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이 말씀 앞에 그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인간적인 머리를 써서 공격을 해 보았자 창조주의 능력을 가지신 예수님을 이길 수 없었던 것입니다.
 
가이사는 로마의 황제입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는 말은 세상의 질서를 지키는 것 또한 마땅함을 이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은 우리가 잠시 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우리의 모든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구체적으로 보자면 세상의 세금도 제대로 내고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 생활도 분명히 하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성도 여러분은 이 두 가지에 모두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세금을 많이 낼 정도로 축복을 받고 자신의 일에 전문성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특별히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 생활에 성공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계화의 응답을 받기 위해 중요한 부분이 바로 경제 회복입니다. 기본적으로 십일조, RUTC, 렘넌트 문화센터와 성전 건축, 선교 및 감사 헌금은 어렸을 때부터 체질화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록펠러가 십일조를 계산하는 계리사 43명을 둘 정도로 헌금 규모가 커졌지만 늘 감사함으로 드릴 수 있었던 것은 어렸을 때부터 헌금 생활을 철저히 했던 것이 그 바탕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헌금에 대한 말씀을 드릴 때 절대 시험에 들지 마시고 축복받는 그릇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하늘 창고를 열어 여러분에 쏟아부으실 수 있을 정도의 영적 수준이 되라는 것입니다. 헌금은 축복의 씨를 뿌리는 시간입니다. 

성 어거스틴은 “축복받을 때는 우리의 열망보다 우리에게 축복을 해 주시려는 하나님의 열망이 더 크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성경은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눅 6:38)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이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부요체계를 확립하여 세계화의 굳건한 발판이 되는 경제 회복의 증거가 임하게 되시기를 주님이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놀랍게 여겨 예수를 떠나가니라 (마 22:22) 이 말씀은 성경에 나오는 아주 안타까운 장면 중의 하나입니다. 바리새인과 헤롯 당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크게 놀랐으면 그 말씀을 하신 예수님을 떠날 것이 아니라 무릎을 꿇고 회개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마가복음 10장에도 이와 비슷한 안타까운 장면이 나옵니다. 재물이 많은 한 청년이 예수님께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네게 있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와서 나를 따르라.”라고 답하시자 그 청년은 슬픈 기색으로 근심하며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성도 여러분, 절대 예수님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문제와 사건이 올수록 더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느 날 세계화할 영적 수준으로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문제와 사건이 왔을 때 언약의 땅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큰 수치를 당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언약을 다시 회복하고 돌아와서 롯과 같은 육신적 선택을 하지 않고 완전히 믿음의 선택을 하였던 것을 지난 금요예배에서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전 세계를 향한 비전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을 통해서 세계복음화를 하시겠다는 언약이 우리에게까지 전달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통하여 지역·민족·세계를 살릴 축복을 준비해 놓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영적인 아브라함의 후손임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여러분이 가정·직장·지역의 현장에서 개인화·제자화·세계화로 나아가려면 움직여야 합니다. 

지난 22일 미국 암학회에서 건강한 남녀 12만 3216명을 대상으로 13년 동안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연구결과는 앉아있는 시간이 길수록 수명이 짧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은혜 받고도 앉아만 있고 활용하지 않으면 수명이 짧습니다. 사역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붙들고 개인화했으면 제자화시키고 가든지 보내든지 선교에 동참하여 세계화의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이를 통해 모든 성도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비밀을 통해 세계화의 응답을 확실히 누리며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는 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세계화의 비전을 심어 주시니 감사합니다. 말씀이 개인화되어지고 그 말씀을 현장에 증거하는 제자화되어져서 우리가 스스로 알지도 못한 사이에 세계화의 축복을 받게 되는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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