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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세례 (마 3: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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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세례 (마 3:5-15)


한국 기독교 초창기에 유명한 목사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김익두 목사님입니다. 이 분은 예수 믿기 전에는 깡패였습니다. 이 김익두가 믿고 회개한다고 하면서 맨 처음에 한 일은 사람들에게 자기의 부고장을 보내는 일이었습니다. ‘김익두 죽다.’ 라는 부고장을 자기가 보낸 것입니다. 김익두에게 많이 시달리던 사람들은 이 부고장을 받고 참 많이 기뻐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장 한 가운데 죽었다던 그 김익두가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은 많이 놀랐습니다. 그런데 하나 바뀐 것이 있었습니다. 목사가 되어 그의 손에 시커먼 성경책이 하나 들려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김익두가 정말로 변했는지 알고 싶어 시험을 하기로 했습니다. 김 목사님이 지나가는 길을 알아두었다가 지나가는 김 목사님의 머리 위에 미리 준비해둔 가득 담은 물동이의 물을 끼얹었습니다. 옛날 같으면 난리 났을 김 목사님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물을 툭툭 털면서 물 끼얹은 사람에게 한 마디 했습니다. 무슨 말을 했을 것 같습니까? “옛날의 나 같으면 너 죽었다. 옛날 김익두가 죽었다는 사실을 너는 다행인줄 알아라. 만약 살았다면 너는 오늘 요절이 났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옛날의 김익두는 죽고 새로운 김익두가 태어났다고 말한 것입니다. 세례의 의미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세례란 옛날의 나는 완전히 없어지고 새로운 사람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전혀 새로운 존재가 태어났다는 것이 세례입니다. 

주님께서 태어나신 지 어느덧 30년 세월이 지나고 유대 광야에 세례요한이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요단강에서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세례요한이 세례를 베푸는 자리에 예수님께서 오셔서 당신도 세례를 받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제가 주님에게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주님께서 어떻게 저에게 세례를 받으실 수 있습니까?” 라고 만류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아니다, 나에게 세례를 베풀어 달라.” 라고 요구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여러분, 세례가 언제부터 생겨났을까요? 성경의 기본은 오늘 본문에 있는 세례요한의 세례입니다. 이전에도 세례가 있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지만 성경 기록에는 오늘 본문이 처음입니다. 세례를 베푸는 데는 형식이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물에 다 잠기는 것입니다. ‘침수세례’ 라고 하는데, 이것을 줄여 침례라는 표현을 씁니다. 두 번째는 몸에 물을 뿌리는 것입니다. ‘살수세례’ 라고 이야기합니다. 세 번째는 물에 손을 담가 물을 적신 후, 세례 받는 사람의 머리에 묻히는 것입니다. ‘관수세례’ 라고 이야기합니다. 

세례의 의미는 간단합니다. 모든 것을 깨끗하게 씻는다는 의미입니다. 특별히 과거에 지은 죄를 씻는다는 것인데, 어떤 죄이든지 모든 죄를 다 씻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여기서 한 걸음 나가게 되어 죽는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과거의 모든 죄 뿐만 아니라 과거의 존재 자체가 다 죽었다는 것입니다. 악한 것, 다른 사람에게 잘못한 것 등 모든 것들이 다 죽고, 이제 그 사람은 없어졌다는 뜻에서 세례에는 죽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여기서 물에 대한 또 하나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은 죽음이라는 의미인데, 살아있는 사람을 완전히 죽인다는 뜻이 있습니다. 장례식 때 부르는 찬송가에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 만나리.’ 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죽음을 건너가서 천국에서 만난다는 찬송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세례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죽은 과거의 나 대신에 새로운 존재가 태어나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에 세례의 참된 의미가 있습니다. 세례를 받기 위해 물속에 들어가는 순간에 죽었고, 물속에서 다시 나올 때 새로 태어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과거의 그 존재가 아니라 과거의 그 존재는 완전히 죽고 새로운 사람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한자어로 중생, 다시 태어난다는 용어를 씁니다. 

세례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려면 이천 년 전의 로마시대의 입양제도를 생각하면 됩니다. 당시에는 아버지의 권리 즉 부권(父權)은 상당했습니다. 라틴어로 ‘Patria potestas’ 라는 용어를 쓰는데, 이때의 부권은 아버지가 그 아들, 딸에 대한 생살여탈의 권한을 가졌습니다. 살리든지 죽이든지 노예로 팔아먹든지 그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는 권리였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이지만 이런 권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집에 양자로 가게 되면 이전에 친아버지가 가졌던 모든 부권은 다 없어지고 새로운 아버지 즉 양부에게 그 모든 권한이 넘어가게 됩니다. 이 사람이 과거에 어떤 잘못을 했든지, 어떤 죄를 지었든지, 빚을 졌든지 간에 양자로 가면 다 없어지고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그냥 쉽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증인이 일곱 명이나 되고, 그 사람이 증언하여 그렇게 됩니다. 

이러한 권한에 대한 말씀을 드리다 보니 오늘 아침 신문에 난 가슴 아픈 기사가 생각납니다. 여러분도 보았을 것인데, 코리안 드림을 가지고 한국남자에게 시집온 스무 살밖에 안 된 처녀가 일주일 만에 남편에게 흉기에 맞아 숨진 사건입니다. 그 아버지가 통곡하는 모습이 사진에 나왔는데, 참으로 가슴이 아팠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그 남편이 아내가 마치 자기의 소유물인 것처럼 생각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런 못된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참 가슴 아픈 일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들이 어떤 방면으로든지 가능하시다면 이런 사람들을 좀 많이 도와주십시오. 코리안 드림을 가지고 온 외국인들 가운데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병이 들어도 돌볼 사람이 없습니다. 잘못 되어도 챙겨줄 사람이 없습니다. 법을 하시는 분들, 혹은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이 일에 나서서 좀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한국인들이 다 일어설 때 이런 짐승 같은 일은 다시 생겨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는 이런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한국 사람들이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그 가족들의 모습을 오늘 아침 뉴스에서 보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우리 교회는 창립 때부터 되는대로 이 일을 해왔습니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잠시라도 마음이 편할 수 있도록 주일날 예배 드린 후, 그들에게 커피도 드리고, 빵도 드리고 우유도 드립니다. 또 우리 교회의 의사들, 의료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나가서 외국인 근로자들을 치료해주기도 합니다. 서울 시내에 가서 하기도 하고, 분당에서 하기도 하는데, 나름대로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도와주십시오. 물론 우리가 안산 등지에 도우려고 나름대로 많은 애를 쓰고 있지만 여러분들이 나서서 조금씩이라도 하게 되면 나라가 바뀌고 인식이 바뀌고,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조금 더 빨리 제대로 세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나에게 시집오면 내 소유가 되는 것으로 잘못 아는 이런 일들은 이천년 전이나 있었던 일이지만 잘못 생각하면 생길 수 있습니다. 

이것을 가장 잘 이해하려면 우리가 너무도 좋아하는 영화 ‘벤허’를 생각하면 됩니다. 벤허는 유대민족들이 존경받는 유복한 집안의 자손입니다. 어느 날 사랑하는 예쁜 여동생과 함께 로마 총독이 부임하는 것을 구경하다 실수를 하게 됩니다. 동생이 실수로 기왓장을 밀어 떨어뜨렸는데, 이것이 로마 총독을 살해하려는 의도라 하여 그들은 벤허의 친한 친구인 멧살라에게 체포되었습니다. 어머니와 여동생은 지하 감옥에 갇히고, 유다 벤허는 살아서는 돌아올 수 없는 노예선을 타게 됩니다. 

그런데 이 벤허에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로마의 최고 권력가인 집정관을 구해주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 벤허는 집정관 아리우스의 아들이 됩니다. 양자가 된 것입니다. 집정관의 아들이 된 벤허가 고향에 돌아가게 되는데, 어찌하다 자기 어머니와 여동생이 살아있다는 가느다란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그 소식을 들은 벤허는 옛날에 자기 어머니와 여동생을 감옥에 보냈고, 자기를 노예선으로 보냈던 호민관 멧살라를 찾아가서 여동생과 어머니를 찾아내라고 이야기합니다. 멧살라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이때 벤허가 했던 감격적인 장면을 여러분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벤허는 자기 아버지인 집정관 아리우스의 반지를 서판에 찍으면서 “벤허가 아니라 로마의 집정관 아리우스의 이름으로 너에게 명한다. 내 어머니와 여동생을 찾아내라.” 멧살라는 꼼짝 하지 못했습니다. 옛날에 그렇게 말도 안 되는 누명을 썼음에도 제대로 저항하지 못했던 유다 벤허가 이렇게 당당하게 호민관에게 명령한 것입니다. 옛날의 그 유대인이 아닙니다. 식민지 백성인 벤허가 아니라 로마 최고의 권력가 집정관 아리우스의 아들입니다. 그 권한으로 이야기한 것입니다. 사람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세례의 의미입니다. 옛날의 나는 없어지고 새로운 사람이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 세례를 우리 주님께서 받으신 것입니다. 

본래 유대민족들은 세례를 받지 않았습니다. 세례는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는 것인데,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민족, 선민이므로 세례를 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믿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할 때에만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뜻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던 유대민족들이 나라를 잃었습니다.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졌는지 모릅니다. 가장 처참했던 하나의 예가 유대 이스라엘의 왕을 포로로 끌고 갈 때 눈알을 다 빼고 끌고 간 일 입니다. 이런 처참한 일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이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받은 민족인 자신들에게 이런 일이 생긴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이 제대로 살 수가 있겠습니까? 70 년이나 포로로 살다 겨우 겨우 돌아왔지만 조국의 독립은 여전히 찾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처참하게 당하고 아직까지 나라를 찾지 못한 채 침탈을 당하는 민족이 되었는가? 왜 그런가?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가?’ 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또 그동안 당신의 선지자를 통해서 그렇게 많은 말씀을 해주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아무런 말씀을 해주지 않으셨습니다. 유대민족들은 지금까지 늘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셔서 말씀해주셨기 때문에 그것이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는데, 막상 말씀하시지 않으시니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지금은 교회가 사방에 깔려 있고 목사님들이 많이 계시니까 얼마든지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절대로 그것이 아닙니다. 어느 날 아무리 예배를 드리려고 해도 예배드리지 못할 수 있습니다. 

저도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맨 처음 미국으로 갈 때 한 보름동안 배를 타고 갔습니다. 3천 톤이 되는 상당히 큰 배였습니다. 보름동안 배를 타고 갔으니, 주일이 두 번 끼어있었습니다. 제가 20대 마지막이나 30대 초반쯤이었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믿음이 그렇게 시원치 않았습니다. 막상 주일이 되었는데 예배드릴 예배당이 없었습니다. 배에 교회가 없지 않습니까? 가슴이 답답해서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당시 그렇게 대단한 믿음을 가진 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예배를 드리지 못하니 견디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온 배를 찾아다녔습니다. 

배에는 사관들이 있고 일반 선원들이 있습니다. 둘은 차이가 많이 납니다. 사관들은 잠자는 곳, 식당도 다릅니다. 배를 돌아다니면서 교회 나가는 사람이 없는지 찾아다녔습니다. 한 20-30명 쯤 되었는데, 그들에게 다 물어보았더니 교회 나가는 사람이 몇 사람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 기관장이 교회에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배에서 기관장이란 직책은 상당히 높습니다. 정치상으로는 선박의 선장이 제일 높지만 실제 내용으로 보면 기관장과 선장은 거의 대등한 위치에 있습니다. 이런 높은 분의 이름으로 예배를 드리자고 하니 한 번도 나오지 못하던 사람들이 좋아서 왔습니다. 겁이 많은 사람을 제외한 여덟 명 정도 기관장 방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얼마나 마음이 좋았는지 모릅니다. 

유대민족들이 그러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말씀을 늘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은 하나님이 보내주신 선지자의 말씀을 대강 대강 듣다가 이제 그 말씀을 주시지 않으니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틀림없이 자기에게 죄가 있어서 그렇게 처참한 고난을 당하게 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동안은 자기들은 세례 받을만한 죄가 없는 민족이라고 생각하였지만, 그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 주님도 세례를 받으셨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주님도 세례를 통해서 죄를 씻어야만 되는 그런 존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분이기 때문에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오늘 15절에는 주님께서 왜 세례를 받으셨는지 그 이유를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의(righteousness)를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처음에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렇게 좋으셨습니다. ‘심히 좋았더라’ 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으로 말미암아 행복하실 줄 알았는데 하는 일들이 너무 죄만 짓는 것 같았습니다. 그대로 두었다간 도저히 구원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멸망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특단의 조치를 취하셨습니다. 새로운 방법, 새로운 정의를 하나 세우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내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서 여러분 대신에 죄를 짊어지고 죽게 하는데, 이 예수를 믿기만 하면 과거에는 이런 이런 일을 하면 주겠다는 그 구원을 주겠다는 정의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아무 죄가 없는 예수님께서 죄 있는 인간이 되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땅에 내려오셔서 죄 있는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것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우리주님께서는 다른 모든 인간들이 받아야할, 죄 있는 사람들이 받아야할 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의(all righteousness)’입니다. 

오늘 우리 주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신 것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아주 귀한 말씀을 하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실 때에는 말씀하시는 방법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말로 하는 말씀입니다. 독어로는 Rede Wort 라고 합니다. 두 번째는 행동을 통해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독어로 Tat Wort 라고 하고, 세 번째는 주님의 인격, 주님의 삶을 통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Person Wort 라고 합니다. 

주님께서 세례를 통해서 첫 번째로 말씀하시는 것은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세례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아무도 나는 세례를 받지 않겠습니다. 나는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세례 받을 아무런 까닭이 없는 내가 세례를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단지 인간의 죄를 대신 지기 위해서 “내가 인간이 되었다는 그 이유하나만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렇다면 본래 인간인 여러분들은 누구든지 세례를 받아야 되지 않겠는가?”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들 가운데는 여러 가지 이유를 댈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죄가 너무 커 세례를 받지 않겠습니다.’ ‘나는 세례를 받고 난 뒤에 잘할 자신이 없어서 세례를 받지 못하겠습니다.’ 이것은 세례의 의미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믿으면 되지 구태여 세례 받을 필요가 있는가?’ 라고 이야기하는데, 이것도 세례의 의미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이 내 제자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란 뜻이 무엇입니까? 뒤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스승이신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셨다면 제자인 우리도 마땅히 스승을 따라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믿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세례를 받아야 한다. 나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세례를 계기로 하나의 중대한 선언을 하십니다. 이것이 두 번째 의미입니다. 이 시점부터, 세례를 받는 이 순간부터 나는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지금까지 30년 동안 당신 개인 삶을 사셨지만 이제부터 죽으시기까지 3년 동안에는 개인적인 삶을 버리시고 공적인 삶, 공생애를 사셨습니다. 오늘 이것을 말씀하십니다. 세례의 의미는 세례 받고 난 뒤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전에 세례를 받으신 분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주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계기로 우리도 새롭게 결단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 누구든지 혹시 이전과는 다른 삶의 전환점이 필요하신 분들은 선언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세례 받으신 것을 통해 나도 오늘 내 인생의 전환점을 삼겠다, 나는 이제부터 이렇게 살겠다는 결단을 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감동을 받으신 분은 이 시간에 ‘오늘 이 시점을 기점으로 이렇게 살겠습니다.’ 라고 선언, 결단, 선포하십시오. 

이 세례의 일을 통해서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조금 의미 있는 다른 분에게 세례를 받으실 수 있는데 왜 주님의 길을 예비하러 온, 주님의 심부름을 하기 위해서 온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을까?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세례를 준 세례요한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께 내가 당신에게서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에 네게로 오시니이까(14절) 라고 했을 때 주님께서 그냥 나에게 세례를 베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일을 통해서 우리 주님께서 각자 자기가 하는 일을 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무 중요한 말씀입니다. “자네가 나에게 세례를 베풀었다고 해도 세례 주는 사람 그 이상도 아니고 대단한 사람도 아니다.” 라는 것입니다. 당신은 나에게 세례를 주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세례를 줄 뿐이고, 나는 지금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할 사람이기 때문에 머리를 숙여서 세례를 받는 것이지 두 사람 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을 전하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일 뿐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닙니다. 피차간 여기에 대해 잘못 알면 안 됩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종 목사일 뿐입니다. 저는 그 일을 충실하게 해나가면 되고, 여러분도 저에게 말씀을 받을 때는 이 순간만은 저 분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우리의 작은 목자로서 나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참 중요합니다. 이것 때문에 ‘나’ 라는 존재가, 여러분의 존재가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대로입니다. 말씀을 전하고 받는 그것으로 끝나면 됩니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세상 살면서 대단한 일을 했을 때에도 그것뿐입니다. 내가 누구를 크게 도와주었을 때에도 그것으로 끝내야합니다. 내가 도와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잠시 나에게 맡겨주신 나의 능력, 하나님의 능력으로 도와주었고, 혹시 물질로 도와주었다면 하나님께서 저 사람을 도와주라고 잠시 맡겨주신 그것으로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알아야합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배의 식당에는 선원들 식당과 사관들 식당이 따로 있습니다. 사관 식당에 가면 여러 테이블과 의자를 고정시켜 놓는데, 상석에는 선장의 자리가 있습니다. 다른 자리는 아무나 앉아도 되지만 선장의 자리는 다릅니다. 여러분, 큰 선박의 선장이 회사에서의 직급이 어느 정도일 것 같습니까? 물론 회사에 따라 다르지만 2만 톤 정도 되는 작은 배는 과장, 차장급이고, 3만 톤 이상이 되면 부장급입니다. 회사의 회장님과 이 최고의 큰 배의 선장과의 계급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이 선장의 인사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회장이 그 배의 식당에 들어갔을 때 하늘같은 회장님이라도 선장자리는 절대로 앉지 않습니다. 이 배 안에서의 최고의 어른은 선장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선장이 바깥에 나와서 회장님 앞에서 고개나 한 번 들 수 있습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 안에서 최고의 어른은 당신이라는 것을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인식해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여러분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많은 사람을 돕는다고 하더라도 그것뿐입니다. 내가 그런 귀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영광이지 그것으로 교만해지거나 자기 스스로를 잘못 알게 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특별히 귀한 일을 할 때 생각하실 것이 이 부분입니다. 

언젠가 우리 주님께서 누가복음에서 할 일을 다 한 후에 나는 무익한 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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