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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온전하게 하시는 온전자 예수 (히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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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하게 하시는 온전자 예수 (히 12:1-4)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이런 이야기를 말씀을 열려고 합니다.

요즈음 우리나라에 여기저기 다니면서 간증하며 다니는 시각장애자 강 우영 박사 이야기가 감명을 주고 있습니다.

그는 부시 대통령 밑에서 차관보로 7년을 지냈습니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축구를 하다가 눈에 공을 맞으면서 실명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실명하자 기절하였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충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절망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공부하여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장애자들을 돌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백악관 사회 봉사부 자문 위원이 되었습니다.
강 박사는 시각 장애자라는 장애물과 이민자라는 두가지 약점을 극복하였습니다. 큰 장점이 되었습니다.

그가 시각 장애자로 방황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미 언급한 대로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가족을 뿔뿔히 흩어져서 그를 돌보아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절망속에서 예수님을 잘 섬겼습니다. 기도 생활에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그 때 대학을 나온 박은옥이 그에게 자원 봉사자가 되어 도와 주었습니다. 누나 노릇을 하여 주다가 나중에 그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그 후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서 남편을 박사 학위를 받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어느 철학자는 이 세상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이 세상은 가격표를 헝크러뜨려 놓은 슈퍼 마켇같다. 비싼 물건이 싸지고, 싼 물건 비싼 물건이 되었다. 질서가 없다. 가치관이 파괴되어 무엇이 귀중하고 무엇이 귀중하지 않은 지를 알지 못 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습니다.

1,500만원이면 사람을 감쪽같이 죽여 주는 청부살인이 생겼습니다. 1,500만원 가격표와 사람 가격표가 바뀌었습니다.
온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 1,500만원이면 해결됩니다.
카드 여인이란 말이 있습니다. 정신없이 카드를 쓰다가 돈을 못 갚게 되니까 몸을 팝니다. 어느 것이 귀한 지 모릅니다. 이런 때 온전하게 모든 것을 정상으로 만드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정상적인 세상, 온전한 사람들이 요구되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모든 것을 온전케 하여 주시는 분이라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책을 쓴다면 이 세상에 다 둘 수 없을 정도로 많다고 요한은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요 21;25)

그런데 예수님에 대하여 이렇게 간략하면서도 핵심적으로 기록한 부분이 그렇게 많이 않습니다. 이 부분만 잘 이해하게 되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확실히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히브리서 기자가 말하는 본문의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1. 예수님은 믿음의 주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은 믿음의 주이십니다. 이 한 마디 속에는 예수님에 대하여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주>라는 말은 <아르케곤>이라는 말로 되어 있습니다. 아르케곤이라는 말은 아르코에서 나왔는 데 아르코라는 말은 <지배한다>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지배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그 분의 지배아래 들어간다는 뜻입니다. 정말 여러분은 그 분의 지배아래 들어가 있습니까?
그 분이 시키는 대로 살고 있습니다.

힘들고 고단하고 피곤하여도 새벽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아까워도 십일조를 온전히 드리고 있습니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까?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있습니까?
진실로 예수님을 믿음의 주로 여기고 있습니까?

스펄젼 목사님은 교회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예수님에게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부터 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계신 집이니까 하나님을 보는 듯이 늘 인사부터 하였습니다. 그리고 늘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것처럼 행동하였다고 합니다.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이 곳에 계신 것으로 알고 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그 분의 지배를 받는 생활입니다.

2. 예수님은 온전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예수님은 온전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온전케 하는 이의 헬라어 원어는 <텔레이오텐>입니다. 텔레이오텐이라는 말은 <완성자><완전자>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완성자이십니다. 온전케 하시는 이입니다. 무엇을 온전케 하시는 이입니까?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모든 것이 온전케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는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엇을 온전케 하시는 분이십니까?

(1) 영을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우리의 영을 온전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아담은 죽이는 영이고 예수님은 살리는 영입니다. 불을 붙인 촛대는 빛을 내는 것처럼 예수님에게 닿은 영혼은 산 영이 된다고 요한은 말하고 있습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요6;63)

예수님은 영을 온전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일본 가토릭 작가 엘도 슈사꾸가 쓴 소설 <침묵>은 세계적인 명작입니다. 물론 베스트 셀러입니다. 일본 기독교인들의 순교하는 장면을 그린 작품입니다. 이 소설속에 후미에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기독교인들을 모두 체포하여 세워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서 예수님 얼굴을 동판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님을 얼굴을 밟고 지나가면 살려주고 거냥 지나가면 사형을 시키는 순간이었습니다. 예수교도 판별법이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포르투갈 신부 로드리고도 후미에 앞에 섰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밟혀서 일그러진 예수님의 얼굴을 울고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는 차마 예수님 얼굴을 밟을 수가 없어서 주저하고 있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 상이 속삭이는 것이었습니다.

<주저하지 말고 나를 밟아라. 본래 나는 밟히기 위하여 이 땅에 온 몸이다.>
로드리고가 말했습니다.
<주님! 주님은 언제까지나 결정적인 순간에도 침묵하셨기에 나는 괴로웠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침묵한 것이 아다. 너화 함께 괴로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로드리고가 예수님 상을 밟는 순간에 닭이 울었습니다. 새벽이었습니다. 베드로에게 들려 주었던 닭울음소리였습니다. 모든 것을 용서하시고 사랑하신 주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베드로처럼 그는 통곡을 하면서 나중에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영이 온전하여 지는 순간이었습니다.

(2) 혼을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

사람들은 영혼육으로 되어 있습니다. 어떤 이는 영혼와 육, 둘로 되어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분설이든 삼분설이든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혼은 정신입니다.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에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는 모든 면에 온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따먹지 말라고 하시는 선악과를 따먹은 후에는 영이 파괴되고 혼이 파괴되고 육이 파괴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살던 영이 파괴되어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신 즉 혼이 파괴되었습니다. 아담이 하와를 처음 부부로 맺어 졌을 때에는 <내 살중에 살이요 뼈중에 뼈>라고 고백하였던 아담이 하와를 향하여 <저 여자가   선악과를 따먹으로 하여서 따먹었나이다>라고 여자 핑계를 댔습니다.

하와는 <내 책임입니다> 라고 말하지 않고 뱀이 따먹으라고 하여서 따먹었다고 뱀 핑계를 댔습니다. 사랑의 관계가 증오의 관계로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영이 파괴된 후부터 정신 혼은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만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이 아니라 혼도 온전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비정상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정상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으로 온전케 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임재하시면 악한 생각이 선한 생각으로 회복됩니다. 부정적인 정신이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뀌게 됩니다. 절망이 소망으로, 문제가 해결로 바뀌게 됩니다. 예수님은 혼을 온전케 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얼마 전 미국 어떤 지역에 가서 3일간 집회하고 돌아 왔습니다. 

교인들 100 여명중에 99%가 국제 결혼한 여자들이었습니다. 성질이 거칠고 막 되먹은 여자들 같았습니다. 그러나 속을 보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의 영속에 조용히 흐르고 있는 아름다움은 눈시울을 적시게 하였습니다.

어떤 여자는 미국인과 살면서 한국인 그리우니까 남동생이라고 데리고 와서 한 집에서 미국인 남편 눈치채지 못 하게 같이 살았습니다. 
어떤 여인은 미국인 남편이 바람을 피는 데도 바람피지 말라는 말을 영어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여자는 자다가 도마와 칼을 들고 와서 <짤라>라고 소리를 지르니까 놀라서 그 다음부터는 바람을 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여인도 있었습니다.

미국인 남편이 한국인 아내가 싫증이 나니까 꽁꽁 묶어서 밤이면 영하로 내려가는 산속에 버렸습니다. 그러나 사투 끝에 묶었던 끈을 푸르고 살아 났습니다. 정신병자가 되었습니다. 정신이 가끔 들어오면 미국인 남편에 대한 증오로 살인할 것같은 분노가 끓어 올랐습니다. 담임목사님은 내 앞에서 그 여자에게 안수하면서 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 이 여자 정신이 올바로 돌아 오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같이 울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거친 여인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는 마음을 모으고 물질을 모으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없으면 결코 위로 받을 곳이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이었습니다. 앞으로 예수님을 만날 것을 유일의 소망으로 안고 주님을 위하여 희생하며 교회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여인들이었습니다.

톨스토이가 <나의 회심>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5년 전에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진정으로 받아 드렸다. 그러자 나의 전생애가 변화되었다. 이전에 바라던 것, 이제는 바라지 않게 되었고, 이전에 좋게 보이던 것 이제는 시시하게 보이고, 이전에 중요하게 여기던 것이 이제는 시시하게 보이고, 이전에 내가 찾던 행복의 무지개가 허무함을 알게 되었고, 거짓을 자기를 꾸민 것이나, 여인들과 즐겁게 지내던 것이 더 이상 즐겁지 않게 되었다.>
예수님은 정신을 온전케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3) 육을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

아담과 하와가 영이 파괴된 된 후 혼이 파괴되고 육이 파괴되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 갈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흙이니 흙으로 돌아 가려면 병들어 주어야 했습니다. 그 때부터 육체가 파괴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영혼을 온전케 하시는 분이시자 육도 온전하게 만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병에 들었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온전하게 회복시켜 주십니다. 기계를 제일 잘 고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그 기계를 만든 사람입니다. 그 건물을 지은 사람이 그 건물에 하자가 있을 때 가장 잘 고칠 수가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 정비공장도 없는 시골길을 달리다가 자동차가 고장이 났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하여 보아도 도저히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난감하였습니다. 그 때 한 신사가 지나가다가 왜 그러느냐고 물었습니다. 자동차가 고장이 나서 그런다고 말했습니다. 신사는 차에서 내리더니 본네트를 열어 보라고 하였습니다. 
<당신같은 신사가 자동차를 고칠 수가 있습니까?>

그는 비웃으면서 본네트를 열었습니다. 그 신사가 몇 가지 만지더니 시동을 걸어 보라고 하였습니다. 시동을 걸었더니 걸렸습니다. 
그는 고맙다고 말하면서 물었습니다.
<어떻게 당신같은 신사가 이렇게 쉽게 자동차를 고칠 수 있습니까?>
그 신사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내가 이 자동차를 만든 헨리 포드요.>

자동차를 만든 사람이 자동차를 가장 잘 고칠 수 있는 것처럼 우리 몸을 만드신 예수님은   우리 몸을 가장 잘 고칠 수가 있습니다. 채찍에 맞으면서까지 우리의 병을 고쳐 주신 예수님이십니다.

얼마 전에 미국 집회에 갔었던 곳은 두 번째 방문한 곳이었습니다.
2년전에 부흥회를 인도할 때에는 아주 조그만 개척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2년만에 가서 보니 건물도 마련하고 아주 좋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저에게 자랑하고 싶어서 다시 초청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지역 13 교회 중에 가장 작은 교회였었는 데 가장 큰 교회로 당당히 자리 잡고 있는 모습이 대견스러웠습니다.

그 지역에서 제일 큰 건물을 사게 된 동기를 들었습니다.

작년이었습니다. 그 곳은 군사도시입니다. 걸프 전쟁때에 군사 훈련소가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국제 결혼한 여자들이 남편 따라 미국으로 귀국하여 이 곳에 많이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그 곳 한인 교회 13 개는 거의 다 이런 여자 분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이 교회에 군의관 한 분이 있습니다. 그 분에게 남자 환자 한 명이 병원에서 배정되었는 데 아내가 한국 여자였습니다. 60세가 된 여자였습니다. 이미 의학적으로는 기울어진 남자 환자였습니다. 

의학적으로 불가능이니까 목사님을 소개하여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생을 정리하라는 의미였습니다. 그 때까지 한국인 아내도 예수님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남편의 병 때문에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내도 종합병원이었습니다. 자궁암, 유방암   그리고 감상선 암에 심장은 박동기계를 끼고 사는 여인이었습니다. 남편의 병, 자기 병중에 하나님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온 교인들이 정성을 다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남편이 한 달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님은 미국에서 살면서 남편이 모든 것을 다 하여 주었습니다. 

주유소에서 기름 한번 넣을 줄 모르는 여자였습니다. 한 마디로 사회생활에는 캄캄한 여자였습니다. 남자도 여자도 친척이라고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났을 때 도와 줄 이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교인들이 정성을 다 하여 모두 합하여 장례를 치루어 주고 나서 조사하여 보니 엄청나게 보험을 많이 들어 놓고 죽었습니다. 그 자매는 보험을 어떻게 신청하여 타는 지도 모르는 여자였습니다. 교인들이 서둘러 세밀하게 모든 것을 다 찾아 주었습니다. 그는 2500만원을 헌금하였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온 교인들이 하나가 되어 헌금을 하였습니다. 마침 큰 교회 건물을 가진 미국 교회가 더 부흥되어 더 큰 건물을 지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자매는 집사가 되었습니다.

그는 나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 땅에서 얼마나 살지 모르겠습니다. 의사는 나에게 사형선고를 내렸습니다. 내가 죽으면 내 재산을 모두 하나님께 바치기로 서원을 합니다.>
그래서 그를 판사 앞에 세웠습니다. 오른 손을 들고 서약한 후 판사가 싸인하였습니다.

선서를 하고 싸인하고 돌아 왔는 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갑상선 암이 나았습니다.   그리고 온 몸에 퍼져 있던 암세포들이 죽기 시작하였습니다. 내가 그 집사님을 붙들고 안수기도하는 데 온 몸이 불덩어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쳐 주신다는 확신이 왔습니다. 새벽 예배까지 결석하지 않고 집회에 참석할 정도로 건강하여졌습니다. 나는 그 분과 같이 멕시코 여행을 다녀 왔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몸도 온전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한 창녀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몸을 팔고 있었지만 죄책감은 천근만근 날마다 때마다 언제나 그의 마음을 무겁게 억누르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이 죄책감은 육체적인 병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이제 배는 불룩하여 치료불능의 판결을 받고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인생이 너무나 허무하였습니다. 이대로 죽는다고 생각하니 인생이 억울하였습니다. 그 창녀는 병석에서 전도를 받았습니다. 어느 부흥회에 참여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그 분이 모든 사람의 죄를 다 짊어지고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말씀이 신비롭게 들렸습니다. 그 창녀는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예수님! 정말 모든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고 죽으셨다면 내 죄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다는 말입니까? 정말 그렇다면 내 죄도 받아주시옵소서!>
정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이런 기도를 하는 순간 배가 편안해짐을 확실하게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배가 점점 정상을 찾고 있었습니다. 순간 그는 죄사함과 고침의 편안함이 그를 덮어 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정말이다. 그 분 예수는 내 죄도 짊어지셨다.>
그의 배에 평안이 왔습니다. 순간적으로 그 창녀에게는 기쁨이 강물처럼 찾아들었고 병에서도 놓임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을 온전케 하여 주시는 순간이었습니다.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 이야기입니다.
루터의 딸 마그데리나가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루터는 딸을 품에 안고 조용히 물었습니다.
<딸아! 하나님 앞에 가서 편안하게 지내는 것이 좋겠니? 아니면 아픈 몸을 가지고 아빠와 같이 사는 것이 좋겠니?>

딸이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아빠! 언젠가는 아빠도 하나님 앞으로 오실 텐데 먼저 가서 편안히 살며 아빠를 기다리고 싶어요. 이 말을 듣고 루터도 딸도 마음이 편안하여졌습니다. 
<그래라.>
이 순간 딸은 하나님앞으로 갔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영도, 마음도 다 편안하여 짐을 느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완전케 하시는 완전자이십니다.

(4) 모든 일을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육을 온전케 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 영혼육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일도 온전하게 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면 안 되던 일이 됩니다. 막힌 일이 뚫어 집니다. 사방으로 우겨싸임을 당한 일이 풀어 집니다. 도저히 전진할 수 없는 일들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만사를 다 주관하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사실 우리 교회에는 이런 간증이 들어 있습니다. 주일 낮예배 30명쯤 모일 때였습니다. 철야기도를 하는 데 한 분이 100만원짜리 수표를 한 장 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오늘 밤에 기도하는 데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크게 부흥시키셔서 세계선교의 도구로 쓰시는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빨리 건축을 하십시오. 가진 것이 이것밖에 없어서 죄송합니다.>
나는 이 수표를 받아 쥐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가 30명밖에 안 모이는 데 어떻게 교회를 짓습니까? 그러나 이 분이 이런 믿음을 가지고 드렸으니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그 후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축복하셔서 2년만에 땅을 사고 교회를 건축하게 하셨습니다.   2년만에 그 분이 나타나셨습니다. 
<목사님! 저를 기억하시나요?>
<그럼은요? 우리 교회 제1호 건축헌금자인 데 어찌 잊을 수 있습니까? 지금 그 헌금이 들어가서 건축이 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실은 목사님 저 부탁이 있어서 왔습니다. 내일 아파트 추첨이 있습니다. 1동부터 18동까지 있습니다. 당첨이 되면 2,500만원 프래미엄이 있습니다. 특히 9동과 10동은 한강을 내려다 보고 있기 때문에 너무 경치가 좋아 5,000만원 프래미엄이랍니다. 기도받으려고 왔어요.> 
나는 오른 손을 엊고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이튿날이었습니다. 이 분이 추첨장에 나갔습니다. 인산인해였습니다. 그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구슬을 집는 데 두 개가 잡혔습니다. 하나를 버려야 했습니다. 순간적으로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어떤 것을 버릴가요?> 

이 때 어제 밤 기도받을 때 오른 손을 얹고 기도받던 생각이 났습니다. 그는 왼 쪽 것을 버렸습니다. 꺼내고 보니 9동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쳤습니다.
그는 박수소리를 뒤로하고 공중전화로 뛰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그 기쁨의 소식을 알려주었습니다. 첫 마디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됐어요.>
예수님은 영혼육을 다 온전케 하시는 분이시면서 어떤 일이든지 잘 풀어지게 만들어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히브리서 기자는 결론으로 분명하게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이제부터는 믿음의 주요 영혼육을 온전케 하시고 모든 일을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전진하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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