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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는 기도하고 있습니까? (창 18: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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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기도하고 있습니까? (창 18:22-32)


예수 믿는 사람들이 무엇을 가장 많이 하는 것이 같습니까? 아마 기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 교회 성도들은 기도에 있어서 특히 열심인 것 같습니다. 세계 교회 역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새벽기도회라는 전통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매일새벽기도회, 삼일기도회, 심야기도회, 금요철야기도회, 산상기도회 등 지금도 얼마나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까? 한국 교회의 놀라운 부흥과 성장의 비결도 바로 그렇게 열심히 한 기도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고 있지만 과연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는 것은 별로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대체로 우리의 생각만 앞세우며 기도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입니다. 일방적으로 우리 자신의 소원이나 주장만 장황하게 늘어놓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과연 나의 기도를 어떻게 생각하실까?’고 진지하게 고민하며 기도하는 것을 별로 보지 못한 것 같아서 하는 말입니다.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은 우리가 아주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더불어 심각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기도가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기도하고 있느냐 하는 것은 의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이야기는 바람직한 기도에 대해서 아주 좋은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오늘 우리는 간절한 기도의 모범 답안을 발견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이 살고 있는 소돔 성에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임할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그 즉시 기도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는 소돔 성의 죄악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는 소돔 성의 죄악이 아무리 심해도 그래도 거기에 의인들이 어느 정도 있을 줄로 알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악인들과 함께 의인들까지 멸하시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도합니다.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창 18:24) 그 당시 소돔 성은 비옥한 평지에 있는 제법 큰 성이었기 때문에 꽤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오십 명은 아주 적은 수입니다. 때문에 아무리 없어도 의인이 오십 명은 있을 것이라고 아브라함이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브라함의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소돔 성에는 의인 오십 명이 없었습니다. 그 성에는 의인 사십오 명도 없었습니다. 사십 명의 의인도, 삼십 명의 의인도, 이십 명의 의인도, 열 명의 의인도 없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타락한 도시일지라도 의인 열 명이 없다는 것은 그 성이 아주 심각하게 타락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타락한 소돔 성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받게 됩니다. 

단순하게 그 결과만을 놓고 보면 아브라함의 기도는 실패한 기도, 응답받지 못한 기도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그의 기도는 진짜 바람직한 기도였습니다. 그의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기도가 과연 어떤 기도인가 하는 것을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에 결코 실패한 기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초점을 맞춰야 할 부분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오늘 우리의 관심의 초점도 아브라함의 기도가 응답받았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어떻게 기도했느냐 하는 것에 맞춰야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의인 오십 명이 있어도 그 성을 멸하시겠냐고 묻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결코 벌하지 않고 용서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다시금 묻습니다.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창 18:27) 아브라함은 자신을 티끌이나 재와 같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람직한 기도는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히 아는 것에서부터 출발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티끌이나 재 같은 존재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즉 그는 자신이 미약한 존재임을 아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이 바로 그의 기도가 출발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오십 명에서 숫자를 줄여 갈 때마다 아주 간절히 호소합니다. “내 주여 노하지 마시옵고 말씀하게 하옵소서.”(창 18:30 상반절) “내가 감히 내 주께 아뢰나이다.”(창 18:31 상반절)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아뢰리이다.”(창 18:32 상반절) 이 거듭되는 그의 간절한 호소는 매우 겸손하지만 또한 매우 끈질긴 태도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의 기도는 겸손하지만 끈질기게 최선을 다하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이 그렇지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오십 명, 사십오 명, 사십 명, 삼십 명, 이십 명, 그리고 의인 열 명이라도 있으면 소돔 성을 용서하실 수 있겠느냐고 계속해서 묻는다는 것이 얼마나 민망했겠습니까? 어쩌면 자존심이 상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를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해 보는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정말 간절한 기도였다는 말입니다. 오십 명에서 시작해서 열 명이 될 때까지 이어진 그의 간절한 기도는 소돔 성에 임할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어떻게 해서든지 멈추게 하려고 발버둥치는 것과 같지 않습니까? 때문에 그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자존심이나 체면 따위는 그에게 있어서 문제가 될 수 없었습니다. 살고 죽는 것보다 더 절박한 문제가 어디 있습니까?

아브라함은 정말 끈질기게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어떻게 기도하고 있습니까? 어떤 문제가 있어서 기도하는데 우리 생각에 도저히 이뤄질 수 없다고 판단하면 기도를 중단하거나 아예 기도하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인간적인 판단에 따른 연약한 행위는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믿고 기도하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능히 하시지 못할 일이 전혀 없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끈질기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어떻게 그렇게 끈질기게 기도할 수 있었습니까? 먼저 그는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믿고 기도했습니다. 그의 기도의 출발점은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지는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의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의지하여 의인들을 살려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의 간구는 자신이 잘못은 저지르고 하나님의 긍휼하심만 의지하려는 그런 나약한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의로우신 하나님의 속성을 알고 있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기를 구하는 기도가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인 것입니다. 왜냐 하면 자신의 필요와 기대가 아닌 하나님의 필요와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아브라함은 소돔 성 사람들을 사랑했습니다. 때문에 그들을 위해서 끈질기게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그들에 대한 사랑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끈질기게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생명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입니다. 비록 조카라고는 하지만 롯은 괘씸한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13장의 기록을 보면 아브람이 롯에게 서로 헤어질 것을 제안하자 롯은 삼촌보다 먼저 물이 풍부하고 비옥한 땅을 택하지 않았습니까? 아주 이기적인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사랑했습니다. 또한 롯과 함께 사는 가족들을 불쌍하게 생각했습니다. 아니 더 나아가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백성들을 측은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끈질기게 기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리의 기도도 좀 더 바람직한 기도로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실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기 위해서 먼저 우리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좀 더 겸손해져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바리새인의 기도와 세리의 기도 중에 어떤 기도가 응답을 받았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겸손하게 기도하되 좀 더 끈질기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불의한 재판장과 과부의 관한 비유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기도할 때 누군가의 잘못을 용서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아니 단순히 잘못을 용서할 뿐 아니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가족과 이웃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분단된 조국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와 복음 전파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항상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겸손히, 그리고 열심히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놀라운 능력을 날마다 체험하는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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