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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는 사람들의 삶의 방향 (눅 12: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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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사람들의 삶의 방향 (눅 12:13-21) 

 
어떤 사람이 세상의 모든 욕심을 다 버리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고자 산에 올라가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때, 마귀가 나타나서 기도를 중단하도록 그를 유혹했습니다. 마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서 내려가면 당신의 아들과 딸을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오!” 하지만, 기도하던 사람은 마귀가 하는 말에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이에, 마귀는 다시금 그를 이렇게 유혹했습니다. “당신이 지금 즉시 내려가면, 고급승용차는 물론이요, 강남에 있는 최고급 아파트를 가질 수 있도록 해 줄 것이오.” 그러나 굳게 마음을 먹은 그 사람은 마귀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 때, 마귀는 그 얼굴에 이상야릇한 회심의 미소를 띠면서 마지막 카드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한테 준다고 했던 것들 모두 다, 당신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줘도 되겠소?”하고 말입니다. 이 말을 듣게 되자, 굳게 결심하고 기도하던 그 사람은 그만 기도하기를 중단하고 하산했다고 합니다.

예수를 믿는 저와 여러분은 천국 가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사는 삶이란 순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땅에서 사는 그 짧은 생애 동안에 누리는 명예나 부귀와 같은 것들이 얼마나 헛되고 허무한 지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자가용을 끌고 다녀도, 그리고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로 높은 지위에 있게 될지라도, 다 일시적인 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물질적으로 좀 여유가 있어서 맛있는 것도 맘껏 사먹고, 이곳저곳 여행도 다니면서 인생을 즐겁게 살아간다 할지라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시간이란 그다지 길지 않습니다. 오죽하면, 우리 인생을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고 했겠습니까? 

 옛날, ‘순우분’이라는 사람이 술에 취해 선잠이 들었습니다. 꿈속에서, 그는 괴안국(槐安國)의 초청을 받아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그 나라 왕녀와 결혼하고, 남가군(南柯郡)의 태수가 되어 호강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그 부인이 죽는 바람에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었는데, 깨어보니 자기 집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순우분’이라는 사람이 봄날에 잠깐 선잠을 자는 동안에 그 모든 일들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도 ‘봄날에 선잠 자며 꿈을 꾸는 것’처럼 순식간에 끝나게 된다는 것을, 교훈해주고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은, 우리 인생이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는 것으로 완전히 다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생을 마치면, 우리의 육신은 그 왔던 곳 흙으로 돌아가고, 우리 영혼은 그 왔던 곳인 하늘나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던 사람이 죽으면, 이미 하늘나라로 돌아간 그 고인을 추면하면서, 우리가 부르는 찬송이 있습니다.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평안히 쉬일 곳 아주 없네. 걱정과 고생이 어디는 없으리. 돌아갈 내 고향 하늘나라’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고 사는 사람들은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없습니다. 물론, 예수를 믿더라도 천국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이 세상에 대한 집착이 무척 강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이 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는 것으로 모든 게 다 끝나는 줄로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든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좀 더 많은 것을 누리면서 좀 더 즐겁고 좀 더 재미나게 살아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만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그런 사람들은, 그 쓸데없는 욕심 때문에 불행하게 되고, 그 주어진 수명조차 제대로 다 살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천국에 대한 소망이 굳건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까닭에, 그런 사람들은 예수를 믿으면서도 세상적인 욕심에 얽매여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그런 사람들은 사람다운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할뿐더러, 원치 않는 불행이나 아픔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대개 자기 자신의 잘못을 쉽게 깨닫지 못합니다. 자신의 불행을 남 탓으로 돌리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2장 13절 이하에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가 나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비유를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너희는 세상적인 모든 욕심을 멀리하라. 제 아무리 넉넉하게 산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와 재산에 달려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들려주신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어떤 부자가 기름진 농토를 많이 가지고 있었는데, 그가 죽던 해에 큰 풍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소유한 곡간을 가득 다 채우고도 곡식이 남아서 더 넣어둘 데가 없었습니다. 그는 어떻게 할까 하고 궁리하다가, 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의 곡간을 헐고 더 크게 다시 지어야겠다. 그러면, 충분히 쌓아 둘 수 있겠지. 그리고 내 영혼에게 이렇게 말하리라. 나는 이제 곡식을 몇 해 동안 쓰고도 남을 만큼 많이 쌓아두었다. 이제부터는 편안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기도록 하자.’ 

그러나 이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이 어리석은 사람아! 오늘밤에, 내가 네 영혼을 찾아가리라. 그러고 나면, 네가 모아놓은 재산이 다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신 다음에, “그렇다. 재물을 하늘에 쌓아두지 않고 땅에 쌓아두는 사람은 모두 다 이와 같이 어리석은 사람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리석은 그 부자에게는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큰 풍년이 들었을 때에, 어렵게 사는 형제와 가난한 이웃은 전혀 돌볼 생각을 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홀로 먹고 마시면서 즐겁게 살 생각만 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 선생은 골로새서 3장에서 ‘이 세상 것을 흠모하는 것은 우상숭배이고,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내릴 것이다(7)’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악하고 수치스러운 욕망을 죽여야 한다(5)’고, 바울은 말했던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진노가 두렵지 않은 사람은 바울 선생의 권고를 귀담아 들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언젠가는 죽어야 하고, 죽은 다음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바울 선생의 권고를 절대로 외면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만일 인간이 죽은 다음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라면, 바울 선생이 하신 말씀에 좀 더 귀를 기울여주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골로새서 3장에서 말하기를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하늘에 있는 보화와 기쁨에다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하면서 ‘하늘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을 생각하지 마라.’고 했던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땅에 있는 것들을 무시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땅에 있는 것에 마음을 빼앗겨 하늘에 있는 보화를 잊어버리면, 그처럼 불행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것’처럼 미련한 짓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물질에 대한 지나친 욕심 때문에 사랑하는 형제나 이웃을 멀리하면서 자기중심적으로만 계속 살다가 영원히 멸망하는 길을 가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서 하늘에 있는 보화를 사모하면서, 그 보화를 얻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애쓰겠습니까?

 두말 할 것도 없이, 이 자리에 계신 저와 여러분은 후자를 택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믿는 우리는 영생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살다가 죽는 순간, 모든 인생을 마칠 사람들이야,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으므로, 돈에 대한 욕심과, 먹고 마시고 즐기는 일에 집착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이미 천국백성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잠깐 이 세상에서 살다가 완전히 다 끝내고 말 것처럼 살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고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적인 욕심을 다 버리고 하늘나라에다가 참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고대 로마의 수사학자인 세네카는, 그가 쓴 ‘행복론’에서 말하기를 ‘만일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면, 그에게서 삶의 욕심을 줄여주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세상적인 욕심을 줄이는 것이 행복의 관건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무엇을 더 많이 얻거나 소유해야만 행복하게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소유에 대한 욕심을 줄여야만 행복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소유를 늘리는 데 너무나 많이 집착하고 있습니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정한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욕심의 풍선을 무제한으로 팽창시키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 풍선이 터질 순간이 임박했다는 것도 느끼지 못한 채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잠언 15장 16-17절 말씀을 보면 ‘재물이 없어도 여호와를 모시고 사는 삶이, 많은 재산을 갖고 있으면서 문제가 많은 것보다 낫다. 채소만 먹어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쇠고기로 잔치하면서 싸우는 것보다 낫다.’고, 지혜자는 말했습니다. 솔로몬은 말하기를 ‘평생 수고하여도 근심과 고통뿐이며,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된 것이다. 사람이 먹고 마시며 자기 일에 만족을 느끼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으나, 나는 이것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임을 깨달았다(전도서2:23-24)’고 하면서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그 누가 기쁨으로 먹고 마실 수 있겠는가?’하고 말했습니다. 

요컨대, 사람이 수고하고 애쓴다고 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믿고, 그분께 감사하면서 그분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사람답게 살 수 있거니와, 죽은 다음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참으로 미련하게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살아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돈이 전부입니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게 다 가능하다고 확신한 나머지 제멋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사도 바울은 ‘이 세상의 금전과 쾌락을 흠모하지 말라(골3:5)’고 경고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상숭배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내릴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물론, 이 경고의 말씀을 믿던지 아니 믿던지, 그것은 각 사람의 자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없이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이와 비슷한 경고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경고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이렇게 한탄하셨습니다. “내가 예언자를 보내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나를 떠나 바알우상을 섬겼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그들은 내가 키워준 것도, 그리고 죽을 고비에서 건져준 것도 알지 못한다. 농부가 자기 소를 키우듯이, 나는 이스라엘을 사랑의 밧줄에 매어 끌고 다녔다. 나는 고삐를 늦추어 편히 쉬고 잘 먹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데도, 내 백성은 내게로 돌아오려고 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사랑의 채찍을 드셨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이 앗수르의 지배를 받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 결과, 헛된 계획을 세우며 큰소리치던 그들이 남김없이 죽임을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을 완전히 버리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정의의 심판을 내리시지만, 그 잘못을 깨닫고 회개한 사람들에게는 무한한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어떻게 너희를 내버릴 수가 있으며 포기할 수가 있겠는가? 너를 돕고 싶은 마음이 불붙듯 타오르고 있다(호11: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찌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등질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의 백성이 된 저와 여러분 모두는, 언제나 항상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옳고 바른 일을 배우려고 힘쓰면서 예수를 닮아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어느 부자가 하나님께 간절히 부탁하기를 ‘자기 재산을 천국으로 가져가겠다.’고 졸랐다고 합니다. 그가 아주 끈질기게 졸라대는 통에, 하나님께서는 마지못해 허락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네 재산을 다 가져와도 되지만, 가방 하나에만 담아야 하느니라.” 그 부자는 재산을 모두 팔아 비싼 금으로 다 바꿨습니다. 그런 다음, 그 부자는 속으로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렇게 할 줄 미처 모르셨겠지….’하면서 무척 흐뭇하게 생각했습니다. 

마침내, 그 부자는 천국 문에 도달했습니다. 그 부자가 천국 문에 이르자, 베드로가 소지품 검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부자의 가방을 열어 본 베드로는 깜짝 놀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도로포장 재료는 무엇 하러 잔뜩 가져왔단 말이오?” 그러니까, 천국에서는 금을 가지고 도로포장을 하는데, 어리석은 그 부자는 그런 금을 가지고 천국에 갔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고 힘써야 할 것은 재산을 모으는 일이 아닙니다. 물론, 열심히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먹고사는 일보다 더욱 힘써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바르게 사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뜻에 따라 바르게 사는 것이 곧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생명’이란, 주님의 뜻에 따라 가치 있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시기를 “너를 돕고 싶은 마음이 불붙듯 타오르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너’란 이스라엘 백성을 말하는데, 오늘날에는 예수를 믿는 저와 여러분을 뜻하는 것입니다.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에 따라 바르게 살고자 마음을 기울일 때, 하나님은 불붙듯 타오는 마음으로 우리를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그 반대로, 주님의 뜻을 외면한 채, 수치스러운 세상 욕망에 이끌려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언제나,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신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부단히 노력합시다. 그래서 이 땅 위에서 살아가는 동안, 부지런히 주님의 뜻을 이루어감으로써, 우리의 영원한 본향인 천국에 들어가는 그 날까지, 참으로 행복한 인생을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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