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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벧엘로 올라가자 (창 3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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벧엘로 올라가자 (창 35:1-11)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은 구속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표본입니다. 야곱이 아비의 집을 떠나 밧단 아람에 있는 라반의 집에서 20년을 지냈습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고 그에게 복을 주셔서 여러 명의 처자식과 많은 가축을 거느린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 시기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가나안으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야곱이 가족들과 함께 가나안 땅에 있는 벧엘로 가기로 하였으나 도중에 길을 바꾸어 숙곳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그곳의 입지 조건이 저희가 살기에 마땅한 곳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큰 환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서 벧엘로 올라가라고 지시하였습니다. 벧엘은 애당초 야곱이 가야될 목적지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가족들과 함께 벧엘로 올라가자고 선언하였습니다.

1. 큰 위험에 처했을 때입니다.

세겜 성에 들어간 야곱에게 뜻하지 않는 시험이 닥쳤습니다. 외동 딸 디나가 그곳 성주 세겜에게 끌려가 강간을 당했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야곱의 아들들이 칼을 들고 성을 도륙하여 그곳의 남자들을 죽였습니다. 야곱은 진퇴양난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1) 목표를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밧단 아람을 출발하기 앞서 자기의 아내 라헬과 레아를 불러놓고 그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했습니다. 창세기 31:13에 “나는 벧엘의 하나님이라 네가 거기서 기둥에 기름을 붓고 거기서 내게 서원하였으니 지금 일어나 이곳을 떠나서 네 출생지로 돌아가라 하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지금 벧엘이 아닌 숙곳에 장막을 쳤습니다. 그곳 세겜 성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히위 족속의 땅으로서 우상과 세상 문명의 상징적인 지역입니다. 야곱이 그곳으로 가게 된 것은 신앙보다 육신의 영달을 꾀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3:17에 “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그의 가축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었으므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고 하였습니다.

2) 세상적인 정욕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4:1-2 에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더니 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 그 땅의 추장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 풍속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면 그것이 시험의 빌미가 됩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그 땅 여인들의 모습을 보려고 나갔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 문화에 매력을 가지고 거기에 치우치며 탈선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그는 결국 세겜에게 끌려가서 강간을 당하고 치욕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에 야곱의 아들들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그 성읍을 기습하여 무참하게 살육을 감행하였습니다. 세상적인 쾌락과 정욕이 발동하고 혈기와 분노가 폭발하여 무자비한 보복으로 얼룩지고 말았습니다.

3) 받은 은혜를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밧단 아람에서 돌아오는 야곱이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고 하였습니다(창32:10). 물질적인 축복말고도 그는 하나님의 특별한 총애를 받았습니다. 야곱이 밧단 아람을 떠나오게 되자 그의 외삼촌 라반이 군대를 거느리고 쫓아 왔으나 하나님께서 야곱을 해하지 못하게 막아 주셨습니다(창31:29). 또 그가 돌아오는 길에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데리고 온다는 말을 듣고 눈앞이 캄캄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을 감동시켜 극적인 화해를 하게 하였습니다(창 33:1-4). 이런 은혜를 받고도 그는 자기 육신의 소욕을 좇아 행동하였습니다.

2. 하나님의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곁길을 가게 되면 하나님의 진노와 징벌을 받게 되지만 그 가운데도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작용합니다(고전 10:13). 진퇴양난의 위기에 처한 야곱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심은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에게 돌파구를 열어 주신 것입니다.

1)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라는 뜻입니다.

1절에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거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고 하였습니다. 에서가 야곱에게 분노를 품고 죽이려 하자 야곱은 그의 낯을 피하여 도망을 나왔습니다. 벧엘 광야에서 돌베개를 베고 잠이 들었을 때 거기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임재하신 그곳을 ‘하나님의 집’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창 28:19).지금도 에서의 낯을 피해 도망하던 때와 같이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김없이 찾아 주셨고 하나님과 만남이 있었던 벧엘로 올라가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초심(初心)으로 돌아가라는 뜻입니다. 벌거벗은 자기의 모습으로 돌아가면 새로운 돌파구가 보이는 것입니다. 
 
2) 하나님과의 약속을 이행하라는 뜻입니다.

야곱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은 자기를 ‘벧엘의 하나님’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벧엘은 야곱이 하나님과 만남이 있었고 또 서원을 하였던 곳입니다. 그가 아비 집을 떠나오던 날, 벧엘 들판에서 잠을 자다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닥다리 환상을 보았습니다. 거기 나타난 하나님의 사자가 야곱에게 축복을 약속하였습니다. 거기서 야곱은 하나님께서 저의 길을 지켜 주시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시며 무사히 아비집으로 돌아오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섬길 것이며 기둥으로 세운 돌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전을 짓겠고 또 십일조를 바치겠다고 서원하였습니다(창 28:10-22).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기도를 다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야곱은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3) 제단 중심의 삶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1절에 “......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분부를 따라서 벧엘로 올라가고자 한 것은 그 앞에 닥친 환난을 모면하기 위한 목적만이 아닙니다. 그가 일찍이 돌베개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의 전을 짓겠다고 한 약속을 이행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이야 말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단 중심의 삶을 다짐하는 적극적인 행동입니다. 성도는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자입니다. 곧 하나님께 대한 예배적 삶을 실천하는 것입니다(롬 12:1). 야곱의 경우 밧단 아람에서 살아온 20년의 세월이나 파란만장했던 생애가 오직 제단 중심의 삶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환상이요, 축복입니다(히 11:21).

3. 새로운 역사가 전개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였습니다(롬 8:28). 중생한 성도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인에 따라 행동을 하게 되면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가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1) 야곱의 결연한 행동입니다.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자 야곱은 지체 없이 행동에 옮겼습니다. 2절에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그들 중에 있는 이방 신상을 버리라고 했습니다. 이는 아마 라헬이 친정에서 훔쳐온 드라빔을 염두에 둔 발언일 것입니다(창 31:19).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잔재를 정리하려는 행동입니다. 또 몸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게 하는 것도 철저한 회개와 새로운 삶을 뜻합니다. 그동안 처자식을 위하고 재물을 모으는 일에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하나님께 대한 약속을 소홀히 한 것을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실천하는 의지입니다.

2) 하나님의 확실한 보장입니다. 

지금 야곱은 세겜 땅에서 그의 아들들이 저지른 일로 인하여 그곳 원주민들로부터 보복을 당할 위기에 놓였습니다. 그와 가족들이 도망가는 것을 알면 그곳 사람들이 그냥 두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34:30에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의 판단은 정확합니다. 그렇지만 그에게 벧엘로 올라가라고 명하신 하나님께서 뒷감당을 해 주셨습니다. 본문 5절에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입니다. 야곱처럼 자기가 할 일만 분명히 하게 되면 다음 문제는 하나님께서 확실하게 책임져 주시는 것입니다.

3) 희망찬 이스라엘의 시대가 예고되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거기에 부응하는 삶을 실천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상상할 수 없는 축복으로 새로운 세계를 열어 주십니다. 9절에 보면 야곱이 밧단 아람에서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사 복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 축복의 의미는 ‘이스라엘’입니다. 10절에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말은 ‘승리자’란 뜻입니다(창 32:28).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인생을 승리자로 살게 하였습니다. 그 이름은 야곱 한 사람 뿐만 아니라 오고오는 그의 후손들을 통칭하는 이름입니다. 천하만민 가운데서 구별받은 거룩한 민족의 이름이며 역사의 주역이 되는 축복의 대명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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