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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라 (왕상 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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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음성을 들어라 (왕상 5:1-14) 

  
(1)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나아만(    )은 즐거움이라는 뜻이다. 그는 아람나라의 군대장관으로, 아람을 구원했기에, 크고 존귀한 자였다 

또 큰 용사였다고 했다. 이는 용감한 영웅이라는 뜻이다. 아람(  )은 지금 시리아지역인데, 뜻은 '높여지다'는 뜻이다. 전설에 의하면 나아만은, 이스라엘의 악한 왕, 아합의 갑옷에 화살을 쏘아, 그를 죽게 만든, 아주 뛰어난 역전의 무사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 같은 사람이었다. 

나아만은 좋은 신분을 가졌지만, 나병환자였다. 그의 지위와 명예는, 나아만을 아름답게 보였다. 그러나 그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나병환자였다. 가장 멋있고, 행복한 사람으로 보였지만, 당시 하나님의 저주로 여기던, 불치의 나병을 앓고 있었다. 

이처럼 사람은 겉으로만 봐서, 판단하기 어렵다. 남들이 보기에 부러워할 만한, 학벌과 외모, 재산, 명예나 권력을 다 가졌다고 해서, 그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한 것은 아니다. 한 꺼풀만 벗기고 보면, 사람은 다 가슴속에 아프고 힘든, 가시 하나씩은 가지고 사는 법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절실히 필요하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으로 나병환자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모두 죄로 더럽혀져 있으며, 악하고 추해서, 썩어 가는 자신을 숨기고, 평생을 살아가고 있다. 아무도 치료할 수 없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려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진단하셨다. 

발바닥부터 머리까지, 성한대가 없어, 상하고, 터지고 맞은 흔적뿐이라고 하셨다(사1:6). 만약 이 사실을 부정하고 거절하면, 결국 하나님을 심판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그때부터 소망이 시작된다. 나아만은 자신이 나병환자였음을 받아들였기에, 문제를 해결하였다. 

1. 나병과 같은 죄 

나병은 자기를 파괴시키기 시작한다. 전염성이 강해, 하나님과 사람에게서 철저히 격리 당하며, 병이 깊어지면, 손상된 신경은 재생이 안 되는 치료 불가능한 병이다. 

(1) 나병의 시작은, 알 수 없을 정도로 작게 시작된다. 
(레13:2) "만일 사람이, 그의 피부에 무엇이 돋거나, 뾰루지가 나거나, 색점이 생겨서, 그의 피부에 나병 같은 것이 생기거든…" 이렇게 작은 피부병처럼 시작하기에,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이 병의 초기는 아무 고통이 없고, 병이 완벽하게 몸을 장악한 이후에, 비참한 증세가 시작된다. 동일하게 죄 역시, 조용하고 은밀하게 시작되고 진행되기에, 알아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결과는 잔인하다. 모든 것을 다 빼앗아간다. 이것은 죄악이 처음 우리에게 들어올 때와, 동일하다. 

하나님이 금지한 열매를 아담이 먹었을 때, 그 시작은 아주 작고, 사소한 일처럼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모든 인류를 죄와 사망 가운데 몰아넣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끔찍한 죄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조롱하다, 결국 사망에 이른다. 

(2) 나병은 급속하게 전염되며, 그 속도를 멈출 수 없다. 
(레13:46)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영 밖에서 살지니라." 이 병은 처음에는 작은 피부병에서 시작하지만, 이후에는 몸 전체로, 다른 사람에게로 퍼진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퍼지지 않도록, 진영 밖에서 분리해 살게 했다. 죄는 이처럼 쉽게 전염된다. 학생들이 죄짓는 곳에 함께 있으면, 쉽게 물들게 된다. 그러니까 이런 아이들과 분리되어야만 한다. 어떤 사람이 화투를 치면, 그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쉽게 화투를 치게 된다. 

나병은 내부에서 시작하여, 외부로 나타나는데, 피부뿐만 아니라, 몸 속의 모든 장기와 뼈까지, 다 썩어가게 만든다. 작은 개미들이 동물의 사체를 완벽하게 먹어치우듯이, 나병은 산자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썩어 없어지게 만든다. 이것이 죄의 영향력과 동일하다. 

죄는 우리의 모든 것을 병들게 하고, 점차로 빠르게 완전하게 부패하게 한다. 내가 가진 능력이나 어떠한 외부적인 힘도, 이것을 멈추게 할 수 없다. 죄는 영혼과 육신을 부패하고 타락시킨다. 따라서 전염되지 않으려면, 죄를 나병과 같이 취급하시기 바란다. 

(3) 나병은 조롱과 수치의 대상이 된다. 
(레13:45) "나병 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이 병처럼 수치를 주는 병은 없다. 병으로 몸을 잃어야 하고, 사람들에게 외면당해야 한다. 

그래서 살던 마을을 떠나야 하고, 하나님의 제사에도 참여할 수 없으며, 자신을 향해 부정하다고 외쳐야 한다. 나병은 외부적인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서, 끔찍한 모습으로 만든다. 이처럼 죄는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과 거룩함을 파괴하며, 하나님의 사람을, 사단의 종으로 만든다. 

고대 사회에서는 나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기술이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탄식하며, 사람들을 피해 다녀야 했다. 이러한 상황을 욥이 잘 고백했다. (욥19:17-19) "내 아내도 내 숨결을 싫어하며, 내 허리의 자식들도, 나를 가련하게 여기는구나, 어린 아이들까지도 나를 업신여기고, 내가 일어나면 

나를 조롱하는구나, 나의 가까운 친구들이 나를 미워하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돌이켜, 나의 원수가 되었구나" 구약시대에는 나병이 발생하면, 제사장은 병자를 자세히 살피고, 병이 확인되면, 사람들로부터 격리해야 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에게 은혜를 베풀기를 기다려야 한다. 

치료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주님뿐이다. 인간의 어떠한 노력과 수고도, 방법과 계획, 이 병을 고칠 수 없다.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결정된다. 나병이 나아만 장군의 모든 것을 무너뜨리듯이, 죄는 우리를 완전히 타락한 모습으로 만들어 버린다. 

2. 그러나 복된 사람은 기쁜 소식, 복음을 놓치지 않는다. 

나아만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을 줄 아는, 복된 귀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인간적으로 자신보다 부족해 보이는 사람을 통해 들려오는, 바른 소리를 들을 줄 아는, 겸손한 귀를 가졌다. 

(2-3)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나아만의 집에는, 전쟁터에서 사로잡혀온 어린 소녀, 종이 있었다. 이 어린 종이 무심코 치료법을, 장군의 아내에게 전했다. 나아만의 아내는 어린 종의 이야기를 듣고, 자기 남편에게 전했다. 나아만 장군은, 이 기쁜 소식을 흘려보내지 않았다. 어리다, 여자다, 종이 하는 소리다 하지 않았다. 

우리는 남의 이야기라도, 좋은 소식이라면, 들을 줄 알아야 한다. 일개 어린 소녀, 너무나 보잘것없는 어린 여종이라도, 하나님이 들어 쓰실 수 있다. 하나님은 나귀나, 길거리에 버려진 돌 하나를 통해서도, 말씀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남들을 무시하고, 하찮게 대하는 자들을, 가장 싫어하신다. 

또 우리 하나님의 사람들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늘 하나님 이야기를 입버릇처럼 해야만 한다. 본문의 어린 여종처럼, 지나가는 말로라도, 항상 하나님의 뜻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한다. 위기에 처한 자들이, 언제, 어느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를 겸손하게 낮추려고, 미련하고, 약하고, 멸시받는 자를 택하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신다(고전1:27). 나아만이 왕에게 나아가 말하자 (5-7) "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하더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약70kg), 의복 10벌을 가지고 가서,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 하였더라.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 이스라엘 왕에게 정중하게 친서를 전했는데, 이스라엘 왕은 옷을 찢으며, 화를 냈다. 

이처럼 말하는 쪽과 듣는 쪽은, 자기가 처한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아람 왕은 어린 여자 종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3)라 했으니, 그 이야기를 듣고, 왕은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자기 신하 나아만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도움의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이스라엘 쪽은 그게 아니었다. 당시의 나병은, 하나님의 저주로 여겨지던 병으로,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병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것을 고쳐달라고 하니까, 이것을 핑계삼아 전쟁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고, 왕은 생각했다. 이스라엘 왕은 영적 분별력이 없었다. 

그 엄청난 영적 자원인, 엘리사에 대해 무지했다. 사람은 위기 상황이 닥치면, 그 사람의 저력이 드러난다. 그는 자신의 땅에 있는 영적 자원의 소중함을 알지 못했기에, 인간적인 상황을 판단하며, 옷을 찢고 고함을 지르는 못난 모습을 보였다.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었다면, 당장 엘리사를 생각했을 것이다. 당장 생각이 안 났다고 해도, 기도했으면, 하나님이 생각나게 해 주셔서, '우리나라에 하나님의 사람이 있다.'면서 나아만을 안내했을 것이다. 그러면 얼마나 권위가 있고 위엄이 서겠는가? 

하지만 영적으로 메마르면, 위기 상황 앞에서, 못난 모습을 보이게 되어 있다. (마14:26) "제자들이 그가(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믿음이 없으면 유령이 보인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정신을 차리면, 주님이 보인다. 

믿음이 없는 이스라엘 왕은, 엘리사의 존재를 보지 못했다. 그래서 상대의 의도를 곡해하여, 트집 잡아서 전쟁하자는 줄로 알았다. 그렇다면 어려움에 빠진 우리 눈에는, 무엇이 보이는가? 우리 안에 계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보이는가? 그런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 바란다. 

3. 나아만이 문둥병이 치료받다. 

(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고 하였다. 옷은 찢는 행위는,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지어서, 국가가 엄청난 재앙을 당할 때, 하나님께 회개할 때 해야지, 아무 때나 옷을 찢느냐는 꾸짖음이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에, 어떤 일 앞에도 당당했다. 

엘리사는 이 일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엘리사는 나아만에게 이스라엘에 선지자가 있음을 알리겠다고 하였다. 우상이 가득한 아람 사람들에게,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이 되심을, 알게 하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엘리사의 기별을 받은 나아만은, 너무 좋아서 부하들과 함께, 거창한 행렬을 거느리고서, 엘리사의 집에 도착하였다. 아마 나아만은 자기 같은 VIP가 가면, 엘리사가 버선발로 달려나와서, 극진한 환대를 해 주리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런데 환대는커녕, 집 안에 들이지도 않았다. 

(10-11)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엘리사는 문 밖에도 나와, 얼굴도 보이지 않고 종을 보내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하자,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불만을 쏟아냈다. 내가오면 마중 나와, 내 상처 위에 손을 얹고, 안수를 해야지, 요단강에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하면서, 마음이 아주 상했다. 

여기서 우리는, 말씀을 전하는 자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요즘 목사들이 잘못하기에, 실망하는 분들이 있다. 그러나 목사가 잘못했다고, 주님까지 버리면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막으면, 안 된다. 

엘리사는 원래, 냉정한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했나? 나아만은 항상 최고 대접만 받아 온, 권력자였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순종해야 함을 가르치는 훈련이었다. 믿음과 순종의 훈련이 필요했다. '내 생각에는'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치료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으로 구원받으려고 하면 신념이다. 그러나 말씀에 의지함은 신앙이다. 나아만이 지금까지 보아 왔던 방식은 주술자들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나아만은 엘리사가 그런 주술사가 아니며, 하나님 또한 그들이 비는, 이상한 우상 신이 아님을 알아야 했다. 그래서 훈련을 시켰다. 
환자가 의사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것이 옳지 못한 태도이듯,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 문제를 이렇게, 저렇게 해결해 달라고 요구함은, 분수를 모르는 행동이다. 나아만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겸손하게 듣는 태도를 가져야 했다. 

나아만은 엘리사라는 인물이, 그 어떤 인간적인 권력 밑에 있는, 존재가 아님을 알아야 했다. 한 나라의 군대 장관이라 할 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무조건적인 은혜를 필요로 하는, 죄인일 뿐임을 알아야 했다. 이 깨달음이 없으면, 병을 치료해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에, 불쌍한 인간일 뿐이다. 

우리가 가정과 교회를 이끌어 갈 때도, 사람마다 방법에 대한 주장이, 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잘되는 가정과 교회일수록, 자기 방법에 대해 철저하게 깨진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의 뜻에 벗어나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순종하고 따를 수 있다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래야 희망이 있다. 

우리가 교회 나오는 목적이 무엇인가? 예수 믿고 구원받고, 변화되는 일이다. 그런데 그 일에는 관심이 없고, 교회가 나를 인정하나 안 하나, 목사가 나를 알아주나 안 알아주나, 이것에 더 관심이 많은 분들이 있다. 교회에 와서 인정받기를 원한다면, 장소를 잘못 택했다. 

인정받기 원한다면, 라이온스 클럽 같은데 가서, 인정을 받아야 한다. 교회에 와서,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상처받지 마시기 바란다.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하지말고, 하나님께 인정받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런 분들이 되시기 바란다. 

나아만은 (12)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이 요단강은 혼탁한 강인데, 어떻게 더러운 요단강에서 씻으라는 말이냐, 자기 기대가 완전히 산산조각 났다고 분노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도, 자존심을 세우는 존재다. 그런데 그의 곁에는, 지혜로운 종들이 있었다. (13)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화를 내면서 그냥 돌아가려는 나아만을, 그의 종들이 다시 설득했다. 선지자가 큰 일을 행하라고 명령해도 해야 하는데, 강에 내려가 씻는 일쯤이야, 왜 못하겠느냐고 하였다. 그래서 마음을 돌이켜, 늦게나마 요단강에 가서 몸을 씻고, 병이 깨끗이 나았다. 어린아이 피부처럼 되었다. 

의학적으로 불가능하다던, 그 무서운 나병이, 요단강에 몸을 7번 담그는 것으로, 완전히 나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온전히 순종할 때, 순종하는 자에게는 이적이 되고, 복이 임한다. 그러므로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해 보라. 이적이 나타나고, 복이 임할 것이다. 

이 놀라운 이적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을 설명하는 모형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놀라운 이적이 일어난다. 여기서 나아만은, 나병을 고침 받기 위해, 엘리사에게 왔지만, 자기 생각대로 움직이려고 했다. 

결론이다. 사마리아에 있는 엘리사 선지자는, 우리 영혼을 지키시고,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나아만의 나병에 대한 처방이, 요단강에 있었다. 요단강(    )은    (내려오다, 잠기다) +  (심판)의 합성어다. 심판에 잠겼다는 말이다. 우리는 온전히 주님과 함께 죽었다가 살아나야 한다. 

이처럼 우리의 죄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영적 나병에 걸린 우리가 치료받기 위해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건과 연결하면, 그 뜻이 분명해진다. 영적 나병에 걸린 우리가, 치료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마련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온전히 씻어야 한다. 

이적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순종할 때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나아만의 병은, 한 번에 고침을 받았다. 더 이상 고침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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