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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쳐다본즉 살더라 (민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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쳐다본즉 살더라 (민 21:4-9)


스펄전(C. H. Spurgeon) 목사의 간증집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1850년 1월 6일 세찬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주일이었습니다. 스펄전은 예배에 참석하고자 나섰지만, 눈보라로 마차를 움직일 수 없어 근처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머리와 옷에 묻은 눈을 털고 들어가니 교인이 10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 작은 예배당이었습니다. 담임목사가 눈보라로 오지 못하자 집사 한 사람이 강단 위로 올라갔습니다. 초라한 옷차림에 얼굴은 창백해 보였습니다. 예배를 시작한 그는 이사야서 45장 22절을 읽었습니다. "땅 끝들에 있는 모든 자들아, 나를 쳐다보고 구원을 받으라. 

이는 내가 하나님이요, 다른 이가 없음이니라" 이어 발음이 분명치 않는 단순한 말들로 열심히 외쳤습니다. "여러분, 간단한 말씀입니다. 주를 바라보라고 했습니다. 바라보는 데 무슨 힘이 듭니까? 손발을 움직이지 않아도 됩니다. 바라보는데 지식을 가져야 합니까? 무식한 자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바라보는데 기간이 필요합니까? 나이가 많아야 바라 볼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어린아이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단순하였지만 설교는 호소력이 있었습니다. "무엇을 바라보아야 합니까? 여러분은 자신만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보십시오. 

예수를 바라보십시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를 바라보라. 내가 피를 흘리노라. 나를 보라. 내가 십자가에 매달려 있노라. 나를 보라. 내가 무덤에 묻혔느니라. 나를 보라. 내가 부활하였노라. 나를 보라. 하늘로 올라가노라. 나를 보라. 아버지 보좌 우편에 앉아있노라. 죄인들아! 나를 바라보라! 나를 바라보고 구원을 받으라!" 30여분 동안 외치는 말씀들은 스펄젼 자신을 향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스펄젼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청년이여! 힘이 없어 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스펄젼은 그 순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았습니다. 죄인된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비로소 스펄젼은 예수께서 모든 죄악을 담당하셨다는 말씀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이는 스펄젼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구원받지 못한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일어날 수 있는 사건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40년 광야 생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쳐버렸습니다. 남은 여정이 그리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백성들이었으나 불평의 봇물이 터져버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원망하는 백성들에게 불뱀을 보내어 물게 함으로 죽은 자가 많아졌습니다. 그후 백성들이 회개하였을 때 모세는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았습니다. 

불뱀에 물린 자들이 놋뱀을 쳐다보았을 때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본문9절은 증거합니다.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불뱀은 불평할 때 나타나지만 놋뱀은 회개할 때 나타나는 증거입니다. 본문은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메세지입니다. 쳐다본즉 살아나는 이유는 과연 무엇입니까?
 
첫째로 상한 마음이 고쳐지기에

린다(Linda)가 캐나다 북쪽을 여행하게 되었습니다. 일 년 내내 눈이 덮인 산악지대를 오르려고 오랫동안 계획을 세워서 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현지에 가보니 불편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날씨가 너무 추웠습니다. 언어도 잘 통하지 않았습니다. 잠자리도 불편했습니다. 돈도 많이 들었습니다. 음식도 달랐습니다. 사람들의 태도도 서툴렀습니다. 마음이 상해 불평을 잔뜩 늘어놓자 린다의 친구가 여행 안내책자를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이라며 건네주었습니다. 첫 페이지를 여니 빨간 줄이 쳐진 문장이 눈에 먼저 들어왔습니다. "여행을 할 때는 내가 살던 곳과 다른 것들을 기대하시오" 그리고 그 다음 문장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습니다. 

"만일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당신의 마음을 바꾸시오!" (And if things are not to your liking. Change your liking!) 이 말은 린다의 인생 방향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오랫동안 계획하고 원했던 여행지이기에 비록 힘들어도 여행의 목적을 저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다른 것들을 경험하면서 그 험한 길을 즐길 수 있어야 눈이 덮인 산악지대의 정상에 이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생의 목적이요, 목표입니다. 그 길을 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마음을 바꾸어야 합니다. 방법은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행복을 찾는 인생이 되기 때문입니다. 

본문 4절입니다.“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여기서 '상하니라'의 뜻은 히브리어 '카차르' 인데 '짧다'라는 뜻입니다. 즉 마음에 여유가 없어졌다는 뜻입니다.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니 매사에 분노가 생기고, 조그만 일에도 참지 못하게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에돔의 방해로 평탄한 왕의 대로가 있는 곳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홍해로 향하는 바란 광야로 들어가 시작된 긴 광야 생활에 분노를 참지 못하고 마음이 상하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상한 것처럼 현대인들의 마음이 상했습니다. 많은 상처가 있습니다. 때로는 상처 때문에 죽고, 눕고, 울고, 아파하고,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40년이라는 긴 광야 생활, 지름길을 방해하는 에돔으로 인해 몸과 마음이 상했습니다. 여러분에게 인생의 에돔은 무엇입니까? 에돔을 쳐다보고 싸우면 상처는 더 크고 심해집니다. 그러므로 놋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쳐다봄으로 상한 마음이 치유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원망의 입술이 변하기에

이츠하크 펄먼(Itzhak Perlman)은 양쪽 다리에 보조 장치를 하고 목발에 의존하는 세계적인 바이올린 연주자입니다. 여러 해 전 펄먼이 뉴욕 링컨 센터의 애버리 피셔 홀(Avery Fisher Hall)에서 초청 연주회를 가졌을 때 일입니다. 그는 힘겹지만 무대 중앙 의자가 놓인 곳까지 걸어가 앉아 목발을 내려놓고 다리의 보조 장치를 푼 뒤 한 쪽 다리를 뒤로 잡아당기고 다른 쪽 다리를 앞으로 뻗어 몸의 균형을 잡았습니다. 그런 다음 바이올린을 턱에 받치고 지휘자를 향해 준비가 되었음을 알렸습니다. 

연주가 시작되고 불과 두세 소절밖에 진행되지 않았는데 갑자기 바이올린의 현 하나가 끊어졌습니다. 청중들은 펄먼이 힘겹게 일어나 바이올린을 바꾸거나 줄을 고쳐 무대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눈을 감고 있던 펄먼은 지휘자에게 연주를 시작하라고 신호를 보냅니다. 이윽고 오케스트라 연주는 재개 되었고 펄먼도 바이올린 연주를 이어나갔습니다. 현 하나가 끊어진 채 청중들이 들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곡을 연주해 나갔습니다. 남아 있는 세 줄만으로 곡을 연주하기 위해 머릿속에서는 매 순간 편곡을 하고 변화를 시도하고 재 작곡을 해 나간 것입니다. 

연주를 마치자 잠시 경이에 찬 침묵이 흘렀습니다. 이윽고 청중은 일제히 일어나 열광적 박수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미소를 지으며 이마의 땀을 닦은 펄먼은 침착하게 말했습니다. “때로는 자신에게 남아 있는 것을 갖고 아름다운 작품을 창조하는 것이 예술가가 하는 일입니다.” 펄먼은 다리 보조대를 묶은 뒤 목발을 짚고 열광적인 박수갈채 속에 무대를 떠났습니다. 가진 것이 없다고 혹 갖지 못했다고 원망만 해서는 안됩니다. 있는 것을 감사함으로 잘 사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본문 5절입니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애굽에서 인도해 낸 사실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노예를 구원하여 가나안으로 가게 해 준 것이 못마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감사를 잃어버린 사람은 자칫 원망하게 되고 원망하면 불뱀에 물려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원망과 불평이 체질화되어 있는 사람은 어떤 환경 속에서도 원망합니다. 원망하면 모든 것이 깨지고 무너집니다. 파멸과 멸망입니다. 가지고 있는 것도 빼앗겨 초라하게 됩니다. 부디 놋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쳐다봄으로 원망하는 입술이 감사하는 입술이 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감긴 눈이 열려지기에

리챠드 바크 (Richard Bach)가 쓴 '갈매기의 꿈(Jonathan Livingston seagull)' 에서 주인공 갈매기 조나단은 많은 감동을 줍니다. 그는 고독한 선구자였습니다. 모든 갈매기들이 자기들이 살던 해변에서 겨우 먹이를 찾고, 먹이를 찾은 다음에 제자리에 앉아 있다 배가 고프면 또 다시 가서 먹이를 찾곤 합니다. 그것이 갈매기 생(生)의 전부입니다. 그러나 꿈을 가진 조나단은 모험을 시도하며 친구들에게 이르기를 "우리는 더 높이 날 수 있어. 더 멀리 바라 볼 수 있어. 그러니 미지의 세계를 찾아 가보자" 라고 말합니다. 그랬더니 동료 갈매기들이 조나단이 돌았다고 그들 세계에서 추방시켜버렸습니다. 갈매기 조나단은 너무나 슬펐습니다. 

그의 슬픔은 동료사회에서 추방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더 높이 날 수가 있는데, 그래야 멀리 볼 수 있는데 동료들이 그 비상하는 영광을 보지 못하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것을 거부하는 짧은 안목에 대한 슬픔이었습니다. 답답한 오늘이지만 내일을 보아야 합니다. 질병과 슬픔 건너편에서 기다리는 기쁨을 보아야 합니다. 고통스러운 상황 다음에 붙드시는 주님의 손길을 보아야 합니다. 눈이 열려야 일, 사람, 돈, 사명도 보입니다. 눈을 감으면 늘 어둡고 힘들게 살게 됩니다. 무엇을 탓하기 전에 눈을 뜨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주님을 바라볼 때 감긴 눈이 열려집니다.

본문 8-9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백성들이 뉘우치고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였을 때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아 쳐다보면 살게 하셨습니다. 쳐다보는 순간 불뱀의 독성이 사라지며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되었습니다. 불순종하며 계속 마음이 상해 입으로 원망하며 바라보지 않는 자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그러나 순종하며 쳐다보는 순간 눈이 열려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믿음의 눈이 열려 하나님의 치유를 입게 되었습니다.  

수탉이 물을 먹는 모습을 보고 인도주의자가 말했습니다. "저렇게 고개를 올렸다 숙였다 하니 얼마나 힘이 들까? 측은한 일이로다." 그러자 현실주의자가 이를 받아서 말했습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것 아니겠소. 목을 쳐들지 않으면 그나마 한 방울 물이라도 목구멍으로 넘어가겠습니까?" 이 때 가만히 듣고 있던 크리스챤이 말했습니다. "두 분의 말씀이 맞기는 하지만 저 수탉은 한 모금 물을 마실 때마다 하늘을 쳐다보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시각이 바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과 사람을 보는 시각이 바뀌지 않기에 아무것도 변화되지 않는 것입니다. 

신앙(信仰)의 한자어는 무슨 뜻입니까? 신(信)은 '믿을 신'입니다. 앙(仰)은 '우러를 앙'입니다. 즉 신앙이란 믿음으로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믿음으로 놋뱀을 바라보았을 때 구원의 역사가 나타난 것처럼, 믿음으로 예수님을 바라볼 때 구원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순종하는 자에게 치료와 구원이 임하게 됩니다. 세상에서 힘들게 살아가십니까? 부디 상한 마음, 원망하는 입, 감긴 눈이 놋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쳐다봄으로 치료되어 살아나는 역사가 임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광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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