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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고난 당하는 자를 부르라 (요 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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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당하는 자를 부르라 (요 9:1-3)

  
저주로부터 해방을 위하여 

죄를 지어서 하나님께서 저주하실까? 

유대교 랍비 큐쉬너 (Harold S. Kushner)의 아들은 빨리 늙는 병에 걸렸다고 합니다. 키는 1미터 이상 자라지 않고 10살도 되기 전에 이마에 주름이 생기고, 머리는 백발이 되고, 이빨은 빠지고, 눈이 침침해 하다가 결국 10대 초반에 죽었습니다. 큐쉬너는 이런 아들을 지켜보면서 ‘도대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나의 아들에게 이런 저주를 주셔야 하는지를 알고 싶다,’ 고 탄식하면서 세월을 보냈다고 합니다. 

랍비는 이러한 상황들을 『나쁜 일들이 좋은 사람들에게 발생할 때』(When bad things happen to good people)라는 책으로 출판했습니다. 이 책은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되어 4백 만 부가 팔렸다고 합니다. 그 책에 소개된 내용 중에 하나를 소개합니다. 

어느 십대 소년이 눈에 치명적인 병이 걸려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얼마동안 치료를 받은 후 기적적으로 시력이 좋아져서 의사가 더 이상 병원에 올 필요가 없다고 할 만큼 시력이 회복되었습니다. 시력이 회복되고 상당한 기간이 지난 뒤 다시 시력이 나빠지자 소년은 자신의 상태를 자학하다가 우울증에 빠지더니 그만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죽기 직전에 “하나님이 내 눈을 다시 잘 볼 수 있게 해 주셨는데, 내가 성인잡지 Playboy를 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벌주셔서 눈이 나빠졌다. 나는 하나님이 미워하는 존재이므로 더 이상 이 세상을 살 가치가 없다!” 는 편지를 써 놓았습니다. 죄가 원인이고, 저주와 고난이 결과라는 것은 종교에서 온 것이지 복음이 아닙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를 명확하게 알아야 저주에서 해방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면서 맹인 된 사람을 치유하는 사건을 통해서 이 문제를 완벽하게 소화하시기를 바랍니다. 


고난에 대한 해석 

1] 종교적 해석 : 예수님과 제자들이 지나가는 길에 태어나면서 소경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일행이 소경을 바라보았을 때 제자들이 예수님께『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하고 질문했습니다. 적어도 제자들은 나면서 맹인된 것은 맹인 그 사람 자체의 죄이거나 부모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사상은 동양 종교에서 강하게 가르치는 사상입니다. 

또한 구약 성경에 ‘돌이키라 돌이키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 고 하는 내용과도 일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는 분들 중에도 이러한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들으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주장은 종교이지 복음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종교를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음을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2] 복음적 해석 :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이나 그의 부모가 죄를 지어 이렇게 된 것이 아니다』고 말씀하시면서 이 사람이 나면서 앞을 보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일을 그 사람의 생애를 통해 나타내기 위함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독일의 나치 히틀러에 대항한 독일 신학자인 본회퍼는 창세기 3장을 조금 다르게 설명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에서 한 가지를 제한하고 모든 자유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 먹어서 선악을 구별하는 것까지 인간이 선택했다고 해석했습니다. 이 논리에 의하면 인간의 타락된 선택과 행동 때문에 지진이나, 홍수, 쓰나미, 토네이도, 폭풍 등이 오고 있는 것입니다. 본회퍼의 모든 사상을 다 수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해석은 상당한 일리가 있습니다. 

자세히 생각해 보면 저주스러운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선택을 우리가 스스로 해 놓고는, 하나님께서 저주를 주셨다고 불평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도 가죽옷을 만들어 입혀주신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저주를 하시느냐 안하시느냐, 그렇다면 누가 저주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을 주도하느냐는 문제의 답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욥기서를 통해서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저주스러운 고통을 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마귀가 우리에게 고통과 저주를 준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여러분! 저주스러운 일이나 오래도록 해결되지 않는 고통스러운 일이 있더라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벌을 주셨다는 생각을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할렐루야! 

(롬10: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벌주셨다는 생각이 들면 도마뱀이 꼬리를 잘라내듯이 과감하게 잘라내시기를 바랍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예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났으니 이전 것은 지나갔고 새사람이 되었다고 선언하시기를 바랍니다. 

저주에서 벗어나고 싶으십니까? 나면서 맹인 된 사람이 고침을 받고나서 한 행동이 주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행동이므로 이 사람의 고침 받은 이후 행보에 관심을 가지고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땅에 침을 뱉어 그것으로 진흙을 만드신 뒤 그것을 맹인의 눈에 바른 후 그리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맹인이 순종하자 갑자기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당한 어려움 외에도 주변사람들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은 자라는 생각 때문에 어려움을 당했던 고통을 다시 겪지 않게 되었습니다. 기뻐하는 그를 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들이 알고 있던  맹인이라고 말했고, 어떤 사람은 그럴 리 없고 비슷한 사람일 거라고 말했습니다. 드디어 치료 받는 사람을 불러서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느냐고 묻자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고 자신이 체험한 경험을 증거 했습니다. 이 사람은 바리새인 앞에서도 출교라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당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계속 예수님이 선지자라고 말했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기 때문에 자신이 눈을 뜨게 되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고난을 오래 당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고난을 통해서 우리에게서 이런 고백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 중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저주하셨다는 생각을 끊어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보다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이루시고, 어떤 고백을 듣기 위해서 이러한 저주스러운 고통을 주시고, 해결하지 않으신 채 놔두시는가를 묵상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당하는 큰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때 가능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노력해야 저주와 고난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맹인이 고침 받은 것도 예수님께서 직접 그가 있는 곳에 가까이 가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영적인 구원까지 베푸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또 그 사람에게 다가 가셨습니다. 그 사람의 노력은 없었고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 고침 받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저주스러운 문제도 결국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이 온 것도 자학하거나,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는 생각을 뛰어 넘어서 고난의 의미를 찾으시기기 바랍니다. 또한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그 것을 하나님께 물으시기를 바랍니다. 


고난의 유익 

저 역시 나름대로 까칠한 성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만큼이라도 다듬어 진 것은 교인 때문도 아니었고, 모친이나 아내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돌이켜 보니 저의 아들과 딸 때문이었습니다. 이들에게는 제가 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녀이기 때문에 때로는 이해가 되지 않을 때도 참다보니 과거보다 조금은 더 다듬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저주스러운 일들이 계속 되십니까? (시119:71) 『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우리교회 입구에 핀 능수화가 금년에 제가 본 꽃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겨울에는 죽은 것 같던 나무에서 많은 줄기가 나오더니, 줄기마다 엄청난 꽃 봉우리를 탄생시켜서 장관을 이루었습니다. 그 능수화에 제가 감탄하고 있는 그 순간에도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하긴 세상에 바람에 흔들림 없이 피어난 꽃은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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