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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최상의 소원은 최악의 소원 (마 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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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의 소원은 최악의 소원 (마 4:1-10)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이 쓴 동화가 하나 있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열 두 살의 착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이 소녀는 눈에 띄게 예쁜 것은 아니지만 귀여운 아이였습니다. 집안도 그런대로 꾸려갈 정도는 되었습니다. 이 소녀는 꽤 행복했습니다. 이 소녀에게 어느 날 천사가 나타납니다. “반드시 들어줄 테니까 소원을 말하라. 단 한 가지만 말해야한다.” 딱 한가지만이라고 당부합니다. 내일 밤에 다시 올 테니까 내일까지 준비해 두어라고 말하고 천사는 떠나갔습니다. 

소녀는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행복한 고민입니다. 어떤 소원을 말할까? 내 얼굴을 무지하게 예쁘게 만들어달라고 할까? 공부를 아주 잘하게 해달라고 할까? 입학시험을 없애달라고 할까? 아예 시험이라는 자체를 없애달라고 할까? 그런데 이 소녀는 이것을 소원으로 말하려고 하니까 저것이 걸리고 저것을 말하려고 하니까 이것이 걸립니다. 착한 소녀였나 봅니다. 돈 버는데 힘들어 하시는 아빠가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고 할까? 그러니까 또 엄마가 생각납니다. 엄마 체중이 더 이상 불어나지 않도록 소원을 말할까? 큰 집을 한 채 지어달라고 할까? 좋은 자동차를 한 대 달라고 할까? 

이 소녀는 천사에게 말하는 소원을 생각하다 깜짝 놀랍니다. 이 소원 저 소원 천사에게 말할 것을 생각하다 보니 지금까지 그런대로 넉넉하게 살던 자기가, 나름대로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자기가 갑자기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이 소원을 말하면 무언가 부족한 것이 있어서 말했을 것이고, 저 소원을 말하면 또 거기에 부족한 것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행복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갑자기 자기가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되고, 그 소원이 이루어져야지 행복할 것 같은 초라한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이 소녀는 무거운 고민을 합니다. 지금까지는 행복한 고민을 했는데 어두운 고민을 하게 됩니다. 밤새 고민하던 이 소녀는 그날 밤 다시 나타난 천사에게 “천사님,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지금보다 더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주셨던 약속을 도로 가지고 가세요. 저는 지금 이대로가 좋습니다. 저는 지금 이대로가 행복합니다. 천사님에게 말씀 드릴 소원을 생각하다보니 제가 막 불행해지는 느낌이 왔어요. 덕분에 한 가지를 깨달았어요. 처음에는 천사님이 이루어지게 해주겠다고 한 약속이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약속인줄 알았는데, 나중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약속은 이 세상에서 가장 심술궂은 약속이더라구요. 그러니까 주셨던 약속을 도로 가지고 가세요.” 이 소녀는 동화 제목을 ‘최상의 소원은 최악의 소원’ 이라고 지었습니다. 

여러분은 연결되어 있는 쇠사슬의 강도가 무엇으로 결정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냥 보면 다 강합니다. 이 쇠사슬의 강도는 우리가 볼 때 아주 잘 되어있는 굵은 쇠사슬의 강도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고리 고리 연결되어 있는 부분 중에서 제일 약한 부분끼리 연결되어있는 그 부분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강한 부분에서 터지는 것이 아니라 약한 부분에서 터지므로 쇠사슬의 강도를 약한 부분의 강도를 보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도 마찬가지이고,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당히 강한 사람이 있습니다. 아주 완벽한 사람도 있고, 단단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정말로 얼마나 강한 사람인가, 단단한 사람인가 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 있는 약한 부분, 결점을 보고나서야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다른 부분에 아무리 강해도 약한 부분에 걸리면 여지없이 넘어지게 됩니다. 권투선수가 그렇습니다. 아무리 강해도 약한 부분이 있는 거기가 그 사람의 능력을 결정해줍니다. 한 대 맞으면 끝이 납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온 식구들이 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한데 그 중에서 하나가 약하면 약한 사람에 따라 그 가정의 건강함이 결정됩니다. 우리가 얼마가 강한 사람인가? 그 사람이 얼마나 강한 사람인가? 어떤 가정이 건강한 가정인가? 평소에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쉽게 생각해서 저 집은 건강하겠다, 저 사람은 탄탄하다고 말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 다른 가정을 볼 때 늘 건강하고 강한 면만 보기 때문에 우리 자신 혹은 우리 자녀, 내 사랑하는 사람들, 내 문제에 들어오면 한없이 위축감에 젖어들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제대로 알고 보면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보통 때는 어느 가정 어떤 사람의 약한 부분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결점이 언제 드러나는가? 그 가정의 약한 부분이 언제 드러나는가? 시험이 오면 여지없이 드러나게 됩니다. 시험을 당하면 그때서야 알 수 있습니다. ‘아, 저 정도 였구나!’ 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자기 가정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내 가정이 얼마나 건강한 가정인가? 내가 얼마나 약한 사람인가? 잘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시험을 거쳐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시험이 예수님께로 다가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신 후에 시험이 왔습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했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세 가지로 시험을 했는데, 하나는 돌을 떡덩이로 만들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높은 성전 꼭대기에서 한 번 뛰어내려보라고 시험했고, 세 번째는 마귀가 나에게 엎드려서 경배하고 절하면 내가 세상의 모든 영광을 주겠다고 시험하게 됩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받으신 시험은 어떤 것이며, 시험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하시는가를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생이 살면서 거의 이 시험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약간 변형되고 약간 응용될 뿐이지 이것을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시험을 보면서 관심을 가질 첫 번째는 예수님에게 이 시험이 어떤 시점에 다가왔는가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볼 것은 낚시에 미끼가 따르는 것처럼 시험에는 항상 시험의 미끼가 따르게 됩니다. 예수님에게는 미끼가 어떤 것이었나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첫 번째 시험을 봅니다. 언제 예수님께 첫 번째 시험이 왔습니까? 성경 2절은 사십 일간 금식을 하셨다고 말씀하시면서 말씀의 마지막에 주리신지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많은 허기가 졌다는 것입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몸만 인간이 아니라 완전한 인간, 굶으면 배고플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 활동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사십 일간 굶으셨기 때문에 무지무지 배고팠다고 성경은 그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금식해 보신 분들이 계시겠지만 금식을 하게 되면 정말 배고픕니다. 평소에는 하루 이틀 한 사흘 굶어도 괜찮을 때가 있는데 금식한다고 하면 갑자기 배가 고파집니다. 저는 며칠 하지도 못하지만 금식할 때 집사람에게 미리 부탁하는 것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동치미를 잘 먹지 않는데, 금식을 하고나면 보호식을 해야 하기 때문에 동치미 국물을 담가달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리고 난 후 금식에 들어가는데, 금식 첫날부터 생각나는 것이 동치미 국물입니다. 그러다 조금 있으면 호떡, 양념통닭 등 온갖 먹는 것만 생각납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 교우들에게 금식을 잘 권하지 않습니다. 저 자신도 먹는 것밖에 생각나지 않는데 어떻게 금식하라고 하겠습니까? 

저는 사흘이나 닷새쯤 금식하게 되면 마지막 날 저녁 무렵부터는 시계만 봅니다. 언제 밤 열두 시가 되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사실 다음날 아침이 되어야 되는데 날짜로 계산하는 것입니다. 오늘 밤 열두시가 되면 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때부터 시계를 봅니다. 하나님께 죄송하기 때문에 시계를 보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자꾸 시계가 보입니다. 그러다 열두시 ‘땡’하면 집사람에게 이야기하여 동치미를 마십니다. 기도를 했는지 밥 먹는 훈련을 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금식하면 정말로 배가 고픕니다. 이상하게 그렇습니다. 시장이 일부러 달려드는 것 같습니다. 

사십 일간 금식하신 예수님께서도 얼마나 배가 고프시겠습니까? 성경에도 주리신지라 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이때 마귀가 예수님께 시험하려고 달려들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그리고 이때 예수님께 무엇을 미끼로 던졌습니까? 돌을 떡 덩어리로 만들라고 했습니다. 떡덩이로 만들면 예수님께서도 잡수실 수 있지 않습니까? 한참 시장하여 절박할 때 그 사람에게 제일 필요한 것, 제일 원하는 것을 미끼로 던지는 것입니다. 

두 번째,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는데, 세례의 의미 중에는 하나의 선언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세례에는 나는 지금까지는 개인적인 삶을 살았지만 앞으로는 공적인 삶을 살겠다는 선언이 있었습니다. 이제부터 인류를 구하고 세상을 구하려는 일을 해야 하므로 이런 일을 할 때, 많은 지지자들이 있어 환호해주면 일이 얼마나 수월하겠습니까? 지금 마귀는 이것을 생각합니다. 

당시 성전에는 항상 국내외 순례객들이 많았고, 그 순례객들이 제사드릴 물건들을 파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관리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전은 항상 북적거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는 성전 꼭대기에 예수님께서 올라가셔서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뛰어내린다면 얼마나 멋지겠습니까?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했을 것입니다. 마귀는 이것을 노렸습니다. 예수님에게는 인간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환호가 필요한 때였습니다. 마귀가 이것을 알고 그 사람들의 환호, 지지를 미끼로 예수님께 던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의 일이기 때문에 쉽게 넘어갈 수 있겠지만 만약 이것이 내 일이라면 이것이 얼마나 절박한지 모릅니다. 국회의원이나 다른 선거에 나오시는 분들에게 이런 일들은 백이면 백, 천이면 천 다 넘어가게 됩니다. 한 사람이라도 지지해주면 얼마나 큰 힘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난번에 선거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시장에 출마한 분인지 의원에 출마한 분인지 지금도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떤 분이 오픈된 트럭 위에서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미리 선거 홍보용 자료를 보고 누구를 찍을까 집사람과 합의하여 쪽지를 두 개 만들어 이름을 외웠는데, 제가 적은 이름의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창문을 열고 손을 흔들어주었더니 그 사람이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릅니다. 아마 그 때 그 사람은 저 때문에 행복했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때 이런 지지가 얼마나 필요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미끼로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 시험을 봅니다. 그런 큰일을 하려고 할 때 돈이 많으면 얼마나 쉽겠습니까? 또 권력이 있으면 얼마나 쉽겠습니까? 그래서 권력자들의 부인, 아들이 대통령에 나오는 일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실제 우리나라에도 결국 감옥에 갔지만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일들은 자주 있습니다. 이런 재력이나 권력이 뒷받침되어준다면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이 얼마나 수월한지 모릅니다. 우리나라에도 최고 재벌가가 대통령에 나갔다가 아주 혼이 난 일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것들이 받쳐준다면 그 분이 하는 일이 얼마나 수월하겠습니까? 

이런 것이 참으로 필요하고 아쉬운 때에 마귀가 다가간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님께 다가가서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준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세상의 재물과 권력을 다 주면서 이것을 주겠다고 제안한 것입니다. 이것을 참 잘 보아야 합니다. 우리들에게도 꼭 그대로 이런 시험이 다가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귀가 하는 이 시험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아쉬운 것이 없었기 때문에 얼마든지 거부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국회의원이 인사하려고 하면 거절하는데 그 사람에게 아쉬운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도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에 거부할 수 있으셨지만 그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들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도 예수님이 시험받으신 것을 수락하셨습니다. 본문 1절에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성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예수님은 아직 승천하시지 않으셨기 때문에 영을 보내실 수 없었고, 하나님만이 영을 보내실 수 있으셨으므로 이 성령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예수님이 시험받으신 것을 찬성하시고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바로 우리 때문입니다. 앞으로 올 세대의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시험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 살면서 시험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도 이것을 잘 생각하고 대비하셔야 합니다.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 마음 속에 하나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요즈음 학생들의 시험 보는 일, 교원 평가에 대한 일에 대해서 논란이 많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도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저의 생각을 분명하게 밝힙니다.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 양측 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든지 나름대로 다 배웠겠지만 교육감이면 진보이든 보수이든 나름대로 전문가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경험을 가지고 계신 분들입니다. 그런 분들이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옳다 그르다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둘 다 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만약 꼭 하면 안 되는 일이라면 국민들이 따라가지도 않습니다. 나누어지는 것은 이것을 해도 되고, 저것을 해도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에는 저는 결정권자의 의견을 따릅니다. 

그런데 최근에 언론을 통해서 본 글이 있는데 그것은 제 마음을 상당히 두들겼습니다. 이런 저런 전제를 들어 아이들이 시험을 보게 하지 말자고 이야기합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이 자라서 사회에 나가면 그 아이들이 원하든 원하지 아니하든 간에 실제 생활에 있어서, 인생에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가장 현실적인 시험을 수없이 보아야합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여러분들이 연세가 적든 많든 간에 여러분도 시험을 보지 않았습니까? 계속해서 시험을 당하고 있습니다. 인생 살다보면 시험에 꼭 통과하는 것이 아니라 떨어지기도 합니다. 좌절하고 절망하기도 합니다. 이런 준비가 하나도 안 되어 있다가 어느 날 좌절과 실망이라는 테스트에 걸리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물론 나름대로 이런저런 이유도 있겠지만 걱정스러운 일이 있습니다. 우리 사랑하는 아이들, 사랑하는 손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벽에 부딪혀서 다시 한 번 재기할 기회도 갖지 못하고 좌절하고 절망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라는 것입니다. 차라리 좀 상처가 되더라도 아직 기회가 있을 때, 다시 한 번 노력하고 시도할 기회가 있을 때 그런 시험을 갖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이 어떤 것에 대해서 지지하는 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아이들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합니까? 오늘 이 기사에 나온 교육감은 체벌을 금지하였는데, 이것은 성경과 완전히 다릅니다. 성경은 아이의 미련한 것을 회초리로 벗겨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어떤 경험과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가를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는 것인지 잘 보아야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께서는 시험을 받으신 것인데, 이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다 옳을 때, 이것도 괜찮고 저것도 괜찮다고 할 때 무엇보다도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을 받아야하고 절대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더더욱 그렇게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기꺼이 시험을 받으셨고, 성부 하나님께서도 그 아들 예수로 하여금 시험을 받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목적은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계속 시험을 당할 테니까 그 예수님이 받으시는 시험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가르치려고 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첫 번째 가르치는 것은 인생이란 결점이 있는데 그 인생의 결점, 최대의 약점이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엇일 것 같습니까? 성경에서 첫 번째로 말씀하시는 바는 우리의 절박함입니다. 나에게 정말로 필요하고 절박한 것이 우리 최대의 약점입니다. 내가 간절하게 가지고 있는 기도의 제목이 한편으로는 최대의 약점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리고 내가 제일 잘 하는 것, 내가 너무나도 쉽게 할 수 있는 그것이 우리의 큰 약점입니다. 또 있습니다. 나에게 누구보다도 넉넉하게 있는 그 무엇, 이것이 최대의 약점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특별한 재능이 있습니다. 이 재능이 얼마나 약점인지 아십니까? 나에게 재산이 많이 있으면 참 좋지만 그것이 무서운 약점으로 우리들에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돌을 떡덩이로 만드는 것은 너무도 쉬웠습니다. 그리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것도 너무도 쉬웠습니다. 한평생을 험한 물결에서 살았던 제자들이 절절매는 물위에서 예수님께서 펀하게 주무신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제자들이 감당하지 못하여 도와달라고 하니 일어나셔서 잠잠하라고 하니 바다가 잠잠하지 않았습니까? 이런 예수님께서 무엇을 못하시겠습니까? 무엇보다도 마귀에게 한 번 엎드려 절하는 것이 얼마나 쉽습니까? 제사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내가 귀신에게 절하는 것도 아닌데 눈 찔끔 감고 절하는 것이 무엇이 그리 어려운가? 라고 이야기하는데, 이처럼 이런 일은 너무도 쉬운 것이었습니다. 

머리가 잘 돌아가는 사람은 그 머리 잘 돌아가는 것이 그 사람에게 최대의 약점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나라에서 제일 똑똑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인 곳이 어딘지 아십니까? 감옥소에 대한민국에서 똑똑한 사람들이 제일 많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제일 정직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인 곳이 어딘지 아십니까? 그곳도 감옥소입니다. 물어보면 다 죄가 없다고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는 그가 가진 권력이 그 사람의 최대의 약점이 될 수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것을 통해서 우리 예수님은 너무도 자주 내가 꼭 소원하는 것, 내가 잘 하는 것, 이런 것들이 여러분들을 파멸의 길로 끌고 간다고 경고하십니다. 첫 번째 하시는 말씀이 바로 이것입니다. 시험은 반드시 그런 것들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내가 많이 가지고 있는 것, 내가 소원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 때문에 다가옵니다. 

이스라엘의 최고 악했던 왕, 그 왕보다 더 악했던 그 아내 이세벨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세벨은 죽어 그 시체가 개들에게 먹힙니다. 그리고 그 피를 개들이 핥습니다. 왜 이런 무서운 일이 일어났는지 다시 한 번 기억하십시오. 그가 왕의 아내라는 권력을 가졌기 때문이 이 무서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만약 이세벨에게 왕의 권력, 왕비의 권력이 없었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나니아, 삽비라를 다시 생각합니다. 이들 부부가 세 시간 만에 즉사했습니다. 만약에 그 부부에게 그런 재산이 없었다면 이런 비참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삼손은 마지막에 두 눈알이 다 빠지고 짐승처럼 맷돌을 돌리다가 죽었습니다. 차라리 삼손에게 그 힘이 없었다면 그런 무서운 변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우리가 받는 시험은 우리 자신의 재능을 통해서 온다고 말합니다. 아주 바른 말입니다. 

두 번째, 우리 주님께서는 시험은 언제 닥쳐오는가를 가르치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절박하게 필요로 할 때 시험이 닥쳐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때 조심해야합니다. 예수님은 사십 일간 굶었으므로 얼마나 배가 고프시겠습니까? 최고의 굶주림이 있을 때 시험이 닥쳐왔습니다. 또 간절하게 지지자, 후원자, 도와주는 사람들이 필요할 이런 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내가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고 난 뒤에 이 시험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십시오. 

오늘 본문 4장 첫머리에는 ‘예수님께서 시험받으시는데 그 때에’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 중의 그때는 언제입니까? 이 말씀 바로 앞에 그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나오시는데 이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이 사람은 내가 기뻐하는 자라는 하늘의 하나님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 소리를 들은 예수님은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충분히 고무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것을 마귀가 놓치지 않고 덤벼들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종 엘리야가 그러했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850명 이방 선지자와 대결하여 통쾌하게 승리하였습니다. 그리고 난 후, 이방 선지자들을 강가로 끌고 나가 사람들에게 처단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3년 6개월 동안 오지 않았던 비가 엘리야가 기도하자 왔습니다. 얼마나 통쾌합니까? 그런데 바로 그 다음에 엘리야가 얼마나 초라한 모습을 보였는지 모릅니다. 이세벨이라는 왕비가 보냈던 850명의 이방 선지자들과 싸워 이겨놓고도 내가 반드시 당신을 죽이겠다는 이세벨의 공갈 협박에 “하나님 나 이제 그만 살겠습니다.” 라며 한없이 약해졌습니다. 시험이 든 것입니다. 이렇게 위대한 일을 하고 난 뒤에는 이런 시험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이렇게 찾아오는 시험을 성경에서는 ‘마귀’ 라는 말을 하고 있는데 마귀는 귀신들의 대장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마귀라고 또 귀신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기가 막히게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우리가 절박할 때 그리고 내가 많이 가지고 있고 내가 고무되었을 때에 귀신같이 찾아오기 때문에 마귀라는 표현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베드로 전서 5장 8절에서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항상 깨어있고 정신 차려야 합니다. 그러나 특별히 정신 차리고 깨어 있어야할 때가 있는데, 이때는 정말로 정신 차리고 깨어 있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지없이 당하게 되어있습니다. 이때 한번 당하고 나면 회복하기 참 어렵습니다. 다시 일어서기 너무너무 어렵습니다. 특별할 때는 정말로 특별하게 정신 차려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럴 때가 언제인가를 다시 세 가지로 정리해서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는 우리에게 간절한 소원이 있고 특별한 기도제목이 있을 때 정신 바짝 차려야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이것을 꼭 이루어주십시오.” 라고 하나님께 기도는 하십시오. 그러나 꼭 그것이 이루어져야지 내게 좋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이루어져서 정말로 나에게 좋은 것인지 아닌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루어지면 그것이 나에게 좋은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셨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것 또한 나에게 좋은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너무 매달릴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이 문제 꼭 해결해주십시오.” 라고 기도해도 됩니다. 그러나 그 뒤에 우리도 예수님처럼 진실된 마음으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십시오.’ 라고 붙이십시오. 

두 번째 나에게 뛰어난 능력이 있을 때, 특별한 재주가 있을 때, 내가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많은 그 무언가가 있을 때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그러나 그 때 우리가 감사하듯이 마귀도 감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하십시오. 마귀가 왜 감사할까요? 여러분들을 공격할 틈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어떤 틈입니까? 여러분의 재주, 능력, 재산 이러한 것들이 마귀가 하는 공격의 길입니다. 길이 생겼기 때문에 마귀도 ‘고맙습니다.’ 라고 하면서 공격합니다. 잘 알아야합니다. 

그러므로 좋은 일이 있을 때 순간순간 생각해야합니다. ‘하나님 내가 보아도 내 재주가 좋습니다. 내 머리가 잘 돌아갑니다. 참으로 넉넉하게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다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잠시 맡겨두신 것이기 때문이 그동안 제가 잘 보관하겠습니다.’ 이런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넘어집니다. 넘어져서 자빠지면 일어서기 참으로 힘듭니다. 

세 번째 우리가 어쩌다 대단한 일을 할 때가 있습니다. 놀라운 어떤 일을 이룰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정신 바짝 차려야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그 때가 마귀가 정말로 달려들 때이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절대로 놓치지 않고 달려듭니다. 그럴 때마다 여러분들도 잊지 마시고 하나님께 말씀하십시오.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하신 것입니다. 그저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 라고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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