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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는 그와 함께 있다 (창 4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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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와 함께 있다 (창 40:1-8)


(1절) 그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그들의 주인 애굽 왕에게 범죄한지라
(2절) 바로가 그 두 관원장 곧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노하여
(3절) 그드을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
(4절) 친위대장이 요셉에게 그들을 수종들게 하매 요셉이 그들을 섬겼더라 그들이 갇힌지 여러날이라
(5절) 옥에 갇힌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자 두 사람이 하룻 밤에 꿈을 꾸니 각기 그 내용이 다르더라
(6절) 아침에 요셉이 들어가 보니 그들에게 근심의 빛이 있는지라
(7절) 요셉이 그 주인의 집에 자기와 함께 갇힌 바로의 신하들에게 묻되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에 빛이 있나이까
(8절)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나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톨스토이는 그의 작품 “참회록”에서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논하고 있습니다. 영화 “쇼생크탈출”도 ‘인생이란 과연 무엇인가?’가 그 주제입니다. 이 과정에서 톨스토이는 ‘마른 우물’을, 쇼생크탈출은 ‘감옥’을 설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마른 우물과 깊은 감옥을 연이어 경험한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요셉입니다(창 37:23-24; 39:20). 요셉, 그가 ‘마른 우물’에 던져졌습니다. 요셉, 그가 ‘깊은 감옥’에 던져졌습니다. 요셉드라마는 모든 인생의 축소판,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이란 요셉처럼 예외 없이 마른 우물에 던져져 있습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進退兩難)입니다. 인생은 예외 없이 이런저런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유명한 심리학자인 케이체프 노이드는 말하기를, 사람들은 여섯 가지 감옥중 하나에 갇혀있는 존재라고 규정한바 있습니다. “자기도취”의 감옥, “비판”의 감옥, “과거지향”의 감옥, “선망”의 감옥, “질투”의 감옥, “절망”의 감옥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여섯 가지 감옥 중에서 몇 개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까? 최근 필 맥그로란 사람이 쓴 ‘리얼 라이프’(문학동네)란 책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가 삶의 현장에서 부딪치게 될 가장 보편적이고 결정적인 위기의 날을 ‘7일’로 설정합니다. 제1일은 ‘상실’, 제2일은 ‘공포’, 제3일은 ‘적응성 붕괴’, 제4일은 ‘질병과 사고’, 제5일은 ‘정신질환’, 제6일은 ‘중독’, 제7일은 ‘존재의 위기’입니다. 필 맥그로가 말하는 ‘7일’이 곧 마른 우물이요, 깊은 감옥입니다. 이 감옥 앞에 서 있거나 이미 던져진 상태가 우리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7일중에 며칠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요셉, 그는 지금 더 이상 꿈과 희망을 가지려야 가질 수 없는 절망의 감옥에 갇혀있습니다. 그는 지금 상실, 공포, 존재 위기의 날에 봉착해 있습니다. 절망의 감옥에 던져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어떤 태도를 취합니까? 그가 어떻게 하여 캄캄한 감옥에서 빠져나옵니까? 

이 요셉을 통하여 오늘 우리가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 그 마른 우물에서, 그리고 깊은 감옥에서 빠져나오게 되었는지 말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가 예외 없이 이런 저런 ‘마른 우물’, 그리고 ‘감옥’에 갇혀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어디에 서 있습니까? 어떤 환경에 던져져 있습니까? 오늘 한 가지 더 요셉에게서 배워야 할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자들을 바라보는 영적 눈입니다.

요셉이 지금 여기까지 달려오는 과정에 어떤 사람들을 만났습니까? 아버지, 형제들, 상인, 보디발, 보디발의 아내, 간수장, 술 맡은 자, 떡 굽는 자 등입니다. 아버지 야곱은 자식들을 편애했습니다. 자식을 그렇게 키우면 안 됩니다. 형제들은 피를 나누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기와 질투가 가득하여 어린 동생을 죽이려는 모의를 했습니다. 이스마엘 상인들은 상황을 뻔히 알면서 오로지 돈이면 못할 일이 없다는 스크루지 영감과 같은 자들입니다. 

보디발은 요셉으로 하여금 죄수들을 섬기도록 하였습니다(창 40:4). 감옥에서 만났던 술 맡은 자는 어떠했습니까? 그는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잊어버렸습니다(창 40:23). 이렇게 볼 때 요셉은 지지리도 복이 없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단 한 사람도 요셉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피해만 입히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가 만난 그 누구에게도 불평, 원망하지 않았단 사실입니다. 그는 한 사람도 소홀히 대하지 않았습니다. 멀리 홀로 심부름가면서 아버지를, 팔려가면서 형들을, 종살이하면서 보디발을, 파렴치범으로 몰려 감옥에 던져지면서 보디발의 아내를, 섬기면서 두 관원장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배반당하면서 술 맡은 자를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가 내 곁에 있는 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지 교훈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곁에는 지금 어떤 자들이 있습니까? 어떤 자들과 만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까? 어떤 부모, 형제, 이웃, 직장상사, 동료, 친구들을 만나면서 여기까지 왔습니까? 그들에 대하여 어떤 감정, 생각들을 갖고 있습니까? 

지혜자는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잠 16:4).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요셉이 만났던 그 사람들, 겉으로 볼 때, 나타난 현상만으로 볼 때, ‘저런 나쁜 사람이 있냐?’ 이런 생각이 들면서 같이 울분을 토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배후에서 그 모든 사람들을 주관하고 간섭하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그 사람들의 모나고 악한 성품까지도 이용하셔서 요셉을 요셉 되게 하신 것입니다. 이 놀라운 사실을 믿고 확신했던 요셉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꿈을 꾸었으나 이를 해석할 자가 없도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창 40:8). 하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신다는 뜻이 아닙니까!

지금 내가 함께 있는 ‘그’는 누구입니까? 그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자랑스럽게, 귀하게,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왜, 왜, 껄껄’하면서 부끄러워하거나 후회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 하나님을 신뢰하며 감사할 수만 있다면 내가 처한 환경, 그리고 내가 만난 사람도 다 ‘축복의 현장’,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하루하루가 힘들다고 투정하며 원망하고 지쳐 쓰러진다면 미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힘듦을 감사함으로 이긴다면 내 삶은 아름답게 펼쳐집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일하십니다. 일하시되 내가 처한 환경, 그리고 특별히 내 곁의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그가 혹시 나를 힘들게 하고, 배신을 하며, 손해를 입히고, 잠을 이루지 못하게 할지라도 그는 ‘축복의 통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지금 ‘축복의 통로’인 그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내 곁의 환경, 사람에게 탓을 돌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삶은 정직하게 움직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정직하신 분이십니다. 환경 앞에서, 사람 앞에서 올바른 반응을 보이기만 하면 우리에게 영광을 허락해 주실 줄 확신합니다. 

우리는 사방으로 에워싸임을 당하여도, 에워싸이지 않는 자들입니다(고후 4:8). 혹시 시험을 당하여도 피할 길이 있는 자들입니다(고전 10:13). 하나님이 내 환경, 내 곁의 사람들을 통해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영적 눈으로 내가 처한 환경, 내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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