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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준비하는 성도 (눅 12:40) - 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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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하는 성도 (눅 12:40)

(눅 12:40)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대학 졸업을 앞둔 젊은이들에게 드리운 우울한 그림자는 대부분 취업의 희망이 요원하다는 데서 비롯된다합니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의 희망과 좌절을 갈라 놓고 있는 것이 쓸 만한 일자리리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취업을 위해 그토록 치열한 준비를 하지만 수백 대 일이라는 경쟁률 앞에선 그저 작아질 뿐이라 합니다.

매우 다른 각도에서 취업 지도를 하도록 주문하고 있다하기도 합니다. 현란한 말솜씨를 바탕으로 자신의 취업 실적을 홍보한 첫 강사는 전략적인 측면에서 기업에 접근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합니다. 자신을 겸손하게 소개하는 것은 탈락의 원인이 될 뿐이며 취업에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다고 하였다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을 써야 할까? 할 때  A라는 회사에 취업을 희망하는 사람이라면 면접관에게 A의 경쟁상대는 B라는 기업이며, B라는 적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이런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이 전략을 수행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최대한 알리도록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한다 합니다.

가령 나이키라는 신발 회사를 목표로 삼았다면 ‘나이키’의 적은‘ 아디다스’가 아니라 ‘닌텐도’라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

닌텐도는 일본의 유명한 비디오 게임기 제작회사인데 이것이 어떻게 신발 제조회사의 적이 될 수 있을까? 그의 대답은 이렇다 합니다. 

젊은이들이 나이키를 신고 농구나 조깅 등 열심히 뛰어야 판로가 열릴 텐데 거실에 앉아 닌텐도 게임에 빠져들기 때문에 신발의 매출이 감소하게 된다고 분석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를 펴고 나서 그 대안으로는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MP3를 나이키 신발에 장착하여 운동하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고 말하라 했다 합니다. 또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운동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만큼 나이키 신발에 만보기를 부착하는 아이디어도 제안하라는 것이라 합니다.

두 번째 강사는 전혀 다른 방법을 말했다 합니다. 기업을 경영하는 이들 앞에서 자신이 높은 윤리의식을 갖고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고 했다 합니다. 복도에 떨어진 휴지를 줍는 행동은 물론이거니와, 말을 통해서도 자신은 윤리관이 투철한 직장인이 되는 것이 목표라는 점을 강조하라 하였다 합니다.  

이 시대의 기업은 윤리적인 사람을 요구하고 있다는 논리였다 합니다. 기업은 무슨 일이든지 확실하게 믿고 맡길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합니다. 

예컨대 먼 나라의 사업 현장에 내보낼 직원은 어떤 인물이어야 하는가? 할 때 두말할 것도 없이 청렴하고 윤리적인 사람이 뽑힌다는 것입니다. 공적인 물건이라면 복사용지 한 장이라도 함부로 하지 않는 직원, 기업에 단 한 푼의 손해도 끼치지 않겠다는 정신으로 일하는 사원을 요구하는 세상이 왔다고 하였다합니다.

기업윤리는 유교적인 정(情)을 중심으로 했던 데서 떠나 기독교적인 책임과 의를 수행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분석을 곁들였다 합니다.
유교적인 정은 따뜻해서 좋은 것 같지만 부패의 원천이 되고, 의로움이 비록 차갑다 할지라도 이를 추구해야 올바른 기업과 구성원이 될 수 있음을 말했다 합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직업의 직무에서 정을 추구한 나머지 부패를 추방하지 못했다 합니다.
기독교적인 청렴은 인격에 정직과 의가 더하여 이루어진 최상의 개념이라는 것이며 취업을 원하는 사람은 청렴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합니다.
윤리가 문제입니다. 취업에도 윤리가 문제이고, 취업 이후에는 윤리적인 직장인으로 굳게 서야 합니다.  그리고 취업 이전에 이 세상의 문제도 윤리와 관련되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배낭은 물건들을 이것저것 넣어 등에 짊어지도록 만든 주머니의 일종입니다. 여행을 떠나려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준비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꼭 필요한 것만 골라 넣어야지 각종 화장품이니 헤어드라이어 등 전열기구들까지 챙기다 보면 마치 이민 보따리처럼 불룩해지고 맙니다. 인생길을 가는 나그네의 배낭이 이처럼 무거워서는 안 됩니다.

옛날에 길 떠나는 사람들은 며칠 동안 먹을 양식을 몸에 짊어졌을 뿐 아니라 구리로 만든 엽전들까지 배낭에 넣거나 허리에 둘러야 했습니다. 얼마나 무거웠을지 짐작이 갑니다.
여러 날을 지나면서 그 배낭은 손때가 묻고 비바람에 젖어 낡아집니다. 더 이상 무거운 물건들을 담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인생들의 배낭이 이렇게 무겁거나 낡아졌다면 제자의 행로를 걷기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최고의 보물만 담는 것이 여행길을 가볍게 하고 배낭도 낡아지지 않게 하는 방법입니다.
더구나 그 보물은 하늘에 속한 것으로서 도둑도 가까이 하지 못하고 좀도 먹지 않는 신비한 것이라 하였습니다.

그 배낭은 어떻게 만드는 것일까요?
(눅 12:33)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직설적으로 구제의 배낭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리석은 부자에 대하여 말씀하고 그 후에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별다른 언급 없이 '한 부자'(눅12:16)라고 한 것으로 보아 이 사람은 어떤 부정한 방법으로 농장을 획득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몇 년 동안 그야말로 부지런히 벌어서 막대한 농장과 재산을 얻은 그러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 부자의 고민은 사실 여기서부터 출발합니다. 그 고민은 결코 하나님께서 악인에게 주시는 올무가 아니라, 자신의 노력으로 얻어진 '내 것'의 풍부함에서 오는 행복한 고민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아무리 많은 노력을 하고 공을 들여도 이 세상에 '내 것'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학 2:8)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것'을 '내 것'으로 여기는 사람에게 고민이 아니 생길 수 없으며, 정신적인 혼란이 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아가 부자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었으므로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가 소출을 많이 거둬들였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햇빛과 비를 알맞게 내리시지 않으면 소출을 많이 거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자는 하나님의 복을 받되 그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할 줄은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부의 편중이 아니라 분배입니다. 그러나 그는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자기 손 안에만 넣으려 했기 때문에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놀라운 복을 받았음에도 그 복이 그의 소욕으로 인해 오히려 고민이 되었던 것입니다. 욕심은 복을 저주로 바꾸어 놓습니다.

부자는 자신을 위하여 배낭 정도가 아니라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지었습니다. 

(눅 12: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눅 12: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이런 사람을 가리켜 예수님께서는‘어리석은 자’라 하신 후, 제자들에게 오직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적은 무리’에게 만들도록 명하신‘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 은 자기의 욕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이웃을 생각하는 중에 이루어진 사랑과 봉사, 그리고 선행과 윤리를 가리킵니다.
진정한 보물을 담는 작은 배낭을 만들어야 합니다.

머나먼 광야를 향하여 기약 없는 여행길에 나서야 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월절을 지키며 하나님의 명령을 새겼습니다.

(출 12:11)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이것이 유월절 음식을 먹는 자세로서 즉시 떠날 준비를 마친 사람들의 복장과 관련된 말씀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정착한 후, 항상 어떤 일이 닥쳐오더라도 그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하는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으로부터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눅 12:35)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주님은 앞에서는 탐심을 버려야 함을 가르치시고 이어서 그러면 왜 성도는 재물 축적에 무관심해야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곧 종말이 언제 이를 것인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 할 때 롯의 아내는 소돔성의 물질을 잊지 못해 뒤를 돌아다 보다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도적처럼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마치 주인이 돌아오기를 고대하는 충실한 종처럼 준비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썩어질 것들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유대 나라의 의복은 겉옷이 무릎 아래까지 오는 긴 옷이었기 때문에 허리에 띠를 띠었다는 말씀은 민첩하게 움직일 준비, 즉 주인이 오실 때를 놓치지 아니하고 주인을 맞이하고 시중들 준비가 다 되어 있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또한 때가 밤이라 함은 밤이라 하여 옷매무새를 허술하게 하지 않고 주인이 올 것을 대비해 철저히 섬기는 자의 자세를 갖추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등불을 켠다는 것은 상황이 매우 임박한 것을 의미합니다.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성도의 자세는 이러해야 합니다. 밤이나 낮이나 구분 없이 언제라도 오시면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라고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혜로운 종이 주인을 만족시켜 드리기 위해 긴장을 풀지 않고 주인을 기다리듯 성도는 잠시라도 방심하지 말고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하면 그 날에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유대의 혼인 예식은 밤에 이루어졌으므로 따라서 하객들이 각기 자기 집으로 도착하는 시간도 늦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혜로운 종은 이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즉 밤이 깊어지자 주인이 곧 도착할 시간이 되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만일 주인이 좀 늦거나, 더디 올 것이라고 종이 예상했다면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는 준비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종은 비록 조금 늦더라도 반드시 주인이 그 밤에 도착할 것을 알고 기다렸습니다. 이것은 그 종만의 지혜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이 종이 가지고 있는 지혜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쾌락과 욕망의 깊은 잠에 빠져들 때 잠들지 않고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세상이 쾌락과 욕망의 잠에 깊이 빠져들수록 주님의 재림이 임박함을 깨닫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잠들어 있을 때 혼자 깨어 있는 것은 커다란 고통입니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같이 깨어 있으면 그 고통은 훨씬 감소됩니다.
그러나 낮에 똑같은 일을 하고도 밤에도 자지 못하는 일은 정말로 감수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고통과 함께 고독이 밀려듭니다. 그러나 종은 주인이 오신다고 했으므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 역시도 이와 같은 고통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주님이 기뻐하실 일을 생각하면 그것은 고통스럽지 않을 것이며 종극적으로는 복이 됩니다.

주인이 종에게 대해 시중드는 것은 유대의 풍속에서는 매우 생소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즉 주인이 종의 시중을 드는 것은 인간사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수종드는 본을 보이셨습니다

이것은 먼저 가신 예수님께서 그의 종들을 위해 마련할, 그들이 받을 하늘나라의 기쁨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자신의 직분을 다한 종을 향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입니다

(요 12:26)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남의 발을 씻기는 것은 종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주(主)로서 선생으로서 제자들의 발을 씻은 것은 제자들도 서로 씻겨주는 것이 옳다는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라고 하시면서 상전보다 큰 종이 없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한데, 그런 이치를 알면서 이 일을 행하면 복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13: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요 13: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복이 있으리로다.' 이 말씀은 주님이 사용하시는 칭호 중에서 가장 높은 칭호이며, 이 칭호가 주어지는 자는 어떤 고귀하고 진귀한 미덕을 지니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따라서 종에게 '복이 있으리라'는 선포를 하신 것은 다른 이들에게선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영광이 내려질 것을 의미합니다.

그 종이 받을 복은 이미 창세전부터 영원토록 있는 준비되고 예비된 나라의 상속자의 복인 동시에 거룩한 자로 구별되는 성도의 복인 것입니다.

(마 25: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엡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엡 1: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나라의 위계질서는 많이 섬기는 자가 위에 있는 자이며 낮아지는 자가 존귀한 자입니다.
종의 윤리를 다하여야 합니다. 종이 아직 얼마나 지혜로운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묵묵히 담당하면서 윤리의 띠를 띠고 있습니다.

주인은 그런 종들에게 신뢰를 보내며 그들을 식탁에 앉히고 손수 대접하며 복을 내립니다.
지혜로운 종들은 주인을 향해 재산을 많이 모을 방법을 제안하기도 했을 것이고, 도둑을 막을 방식도 고안하여 내놓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지혜로운 종이라 하더라도 도둑이 올 때를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을 모르는 한 종의 윤리를 다하여 묵묵히 준비하며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혜의 배낭에 많은 학식과 재산을 쌓은들 주님 오시는 날에 아무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내 자신의 중한 것을 포기하고라도 종의 윤리를 다하겠다는 그 한 가지 보물만을 선택하여야 합니다.
인생의 여행길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허리에 띠를 띠고 밤늦게까지 종의 본분을 다하여야 합니다.
다시 오실 주님께서 칭찬하실 사람은 윤리의 배낭을 메고 종의 띠를 띠고 있는 바로 우리들입니다. 교육하고 선교하고 봉사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되 다시 오실 주님 맞을 준비하며 영광돌리며 사명 감당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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