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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탈진을 극복하는 방법 (왕상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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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진을 극복하는 방법 (왕상 19:5-9) 
  
5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 
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 
7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네가 갈 길을 다 가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 
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 
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 수제자 베드로가 열심히 사역하였습니다. 그러다가 너무 열심히 일하다가 몸과 마음이 지쳐 몸져누웠습니다. 그런데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기도를 해도 낫지 않습니다.
    
이 때 한국에서 간 한의사가 진맥을 하더니 말했습니다. 
“삼계탕을 먹으면 낫겠습니다.” 
    
그 말대로 닭을 잡아먹었더니 베드로는 거뜬하게 나았습니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가 대답했답니다. 
    
“예수님께서 잡혀가셨을 때,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였지요. 그런데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 밖에 나가서 울었지요. 그 후, 베드로는 닭이 울 때마다 자신이 예수님을 부인한 죄가 생각나 엄청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겠습니까! 그래서 그 놈의 닭을 잡아먹으면 몸과 마음이 회복될 것 같았지요.”
    
물론 성경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몸이 지쳐서 몸져누울 때는 닭을 잡아먹으면 거뜬하게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육체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육체뿐만 아니라 감정도 의지도 깨어지기 쉽습니다. 때로 우리는 영적으로도 흔들릴 수 있습니다.

기도하여 하늘에서 물을 내리기도 하고, 기도하여 하늘에서 불을 내리기도하였던 엘리야였지만 탈진하였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의 눈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고 그를 죽이겠다는 이세벨의 광기어린 모습만 보였습니다. 엘리야는 생명을 보전하기 위하여 도망쳤습니다. 살겠다고 도망쳐서는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을 거두시라고 죽기를 소원하였습니다.
    
우리도 때때로 탈진할 수 있음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위대한 능력의 사람이 보여주는 연약한 모습을 통하여 자신을 이해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여전히 흙으로 만들어진 깨어지기 쉬운 항아리에 불과 합니다.
    
그러나 자신과 이웃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해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탈진을 극복하고 사명을 감당하여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탈진을 극복할 수 있겠습니까? 
먼저, 일반적인 방법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I. 일반적 방법

5절 첫 번째 구절과 6절 두 번째 구절 말씀입니다.
 : 5a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 6b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갈멜산에서 브엘세바까지 내려가고 그곳에서 또 하룻길을 갔으니 얼마나 피곤하였겠습니까? 더욱이 하나님께 자신의 생명을 거두어 가시라고 넋두리까지 해댔으니 얼마나 기진맥진하였겠습니까? 그는 로뎀 나무 아래서 잠이 들었습니다. 6절 말씀에 ‘다시 누웠더니’한 것으로 보아 정신없이 골아 떨어졌습니다. 피곤하여 잠을 자기도 하지만 잠을 자면 피곤이 풀리는 것입니다. 
    
피곤에서 벗어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1. 잠을 자는 것입니다.
    
시편 말씀에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시 127:2)고 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잠을 잘 주무셨던 분 중에 한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밤새워 기도도 하셨지만, 잠을 잘 주무시기도 하셨습니다. 전도 사역에 피곤하셨을 때는 깊이 주무셨습니다(마 8:24). 

심지어 큰 광풍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부딪혀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을 때도 주무셨습니다. 배의 뒷부분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로부터 “선생님, 우리가 죽게 되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습니까?”하는 원망을 듣기도 하셨습니다.(눅 8:23-24)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위하여 텔레비전을 치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밤늦도록 텔레비전을 보는 것은 육체적인 건강을 위해서도 영적인 건강을 위해서도 삼가야 합니다. 잠을 잘 자는 것이 건강에 중요합니다. 그런데 설교시간에 습관적으로 주무시는 것은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잠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꾀이는 무엇일 수도 있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잠자리에 들면 단잠을 주무시기를 축복합니다. 

또 일반적인 방법이 무엇입니까?
5절 두 번째 구절과 6절 두 번째 구절입니다.
: 5b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 6b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엘리야는 잠을 자는 것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 흔들어 깨우면서 “일어나서 먹어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야가 깨어보니 머리맡에, 불에 달군 돌에 구워낸 과자와 물 한 병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는 음식을 먹고 또 물도 마셨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누워 잠이 들었다. 그런데 다시 깨웁니다.
    
7절 전반절과 8절 전반절입니다.
 : 7a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 8a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주님의 천사는 다시 엘리야를 깨우면서 “일어나서 먹어라.”고 하였고 그는 일어나서 먹고 마셨습니다. 그는 먹고 자고, 자고 먹고 하였습니다. 그는 음식을 먹고, 힘을 얻었습니다. 
피곤에서 벗어나는 또 하나의 일반적인 방법은
    
2. 밥을 먹는 것입니다.
    
엘리야에게 임한 하나님의 치유의 손길은 의외로 단순하였습니다. 그것은 지친 그를 자고 쉬고 먹고 마시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당나귀 한 마리를 샀습니다. 당나귀가 일을 잘합니다. 그런데 당나귀의 먹이 값이 아까웠습니다. 당나귀에게 먹이를 주지 않고도 일을 시키면 큰 이득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당나귀를 먹이지 않고 일하도록 훈련시키기로 하였습니다. 
    
하루 세 번 주던 먹이를 두 번 주었습니다. 그런대도 당나귀가 일을 잘합니다. 그는 속으로 ‘옳거니!’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하루 두 번 주던 먹이를 한 번 주는 훈련을 시작하였습니다. 하루에 한 번 주는 먹이를 먹고 당나귀는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하루에 한 번 주던 먹이도 주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당나귀가 죽었습니다. 그러자 이 주인이 땅을 치면서 울더랍니다. 왜요? 이제 막 하루에 한 번도 먹지 않고도 일 잘하는 당나귀가 생겨나려는 참이었는데 죽어소 아깝다고!
    
그런데 왜 죽었습니까? 먹이를 주지 않고 일을 시켰으니까! 세 번 주던 것에서 두 번으로 줄일 때 당나귀는 지쳤습니다. 두 번 주던 것을 한 번으로 줄일 때 이미 당나귀는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결론, 먹어야 산다.
우리 주님 예수님께서는 금식하셨습니다. 돌로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사탄의 유혹을 이기셨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마 11:19)이라는 비난받으시기도 하셨습니다. 이것은 잘 잡수셨다는 것입니다. 자신뿐만 아니라 제자들과 사람들을 먹이셨습니다(요 21:12, 마 15:32). 
    
탈진에는 먹고 자고 쉬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히 물을 잘 마시는 것이 건강에 필요합니다. 잘 잡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남의 살 먹고 자기 살 빼느라고 고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자고 먹는 것으로 다스릴 수 없는 탈진이 있습니다. 의료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열왕기하 20:7 말씀입니다.
왕하 20:7 이사야가 이르되 무화과 반죽을 가져오라 하매 무리가 가져다가 그 상처에 놓으니 나으니라.
    
유다 왕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 이사야 선지자가 그의 상처에 무화과 반죽, 무화가 나무 가루로 고약을 가져다 붙이자 그의 병이 나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가 병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에게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딤전 5:23)고 권면하였습니다. 
    
질병에서 벗어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3. 약을 쓰는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약을 쓰는 것을 불신앙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병을 고치기 위하여 기도하여야 할 것과 마찬가지로 치료하기 위하여 필요한 의료적 조치를 취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사마리아 사람이 다가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눅 10:34) 하였던 것은 당시로써 가장 훌륭한 의료행위였습니다. 
    
정확하게 진단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질병으로 고생하는 분들에게 적절한 치료의 기회가 열려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자고 먹고 쉬고 약을 쓰는 것으로 육체적인 힘을 회복하고 마음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하는 광고 카피가 있듯이 건강을 위하여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잠을 자야하고 먹어야 하고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건강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건강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이 필요합니다. 보다 더 근원적인 치유가 필요합니다. 흙으로 지음을 받았기에 먹고 마시고 자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 인간답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관계에서 회복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방법이라는 뜻에서 계시적 방법이라고 하겠습니다.

II. 계시적 방법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5절입니다.
 : 5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7절입니다.
 : 7 여호와의 천사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여기에서 ‘어루만지다’는 단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어루만지다[[g"n/나가]는 말은 간단하게 ‘손을 대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잠자는 사람을 깨우기 위하여 흔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특별히 하나님의 어루만지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사람을 만지시면 심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을 만지시면 상황을 변하게 하시며 능력을 주시는 것입니다. 
    
회복되어야 할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1. 하나님의 터치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믿음이 강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형편에 굴복하여 낙심하면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 그것을 뚫고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손길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어루만져 주심을 경험하였던 대표적인 사람은 구약 성경에서 다니엘입니다.
다니엘이 세이레, 이십 일일 동안 좋은 음식을 삼가고, 고기와 포도주도 입에 대지 않았으며, 몸에 기름을 전혀 바르지 않고 고행하였습니다. 그 후 그는 환상을 보고 정신을 잃고 땅에 쓰러졌습니다. 
    
그 때, 갑자기 한 손이 다니엘을 어루만지면서, 떨리는 손과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하나님께 큰 사랑을 받은 사람 다니엘아!”(단 10:11)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 다니엘이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환상을 보고 충격 받아 맥이 풀려 버렸을 때, 다시 다니엘을 어루만지시며, 그를 강하게 하시면서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평안하여라. 강건하고 강건하여라.”(단 10:19)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대시자 문둥병이 깨끗하여졌습니다(마 8:3). 예수님께서 병이 걸린 이의 손을 만지시자 열병이 떠나갔습니다(마 8:15). 예수님께서 죽은 소녀의 손을 잡으시자 일어났습니다(마 9:25).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손을 잡아주실 때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마 17:7). 예수님께서 각색 병든 사람들에게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어 고쳐주셨습니다(눅 4:40). 예수님께서 죽은 자의 관에 손을 대시고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시자 살아났습니다(눅 7:14). 예수님의 손길은 능력의 손길입니다. 축복의 손길입니다. 치료의 손길입니다. 생명의 손길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예수님의 어루만져 주심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또 어떻게 하셨습니까? 
    
8절 후반절 말씀입니다.
 : 8b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엘리야는 천사의 도움을 받아 일어나서, 먹고 마셨습니다. 음식을 먹고, 힘을 얻어서, 밤낮 사십 일 동안을 걸어, 하나님의 산 호렙산에 도착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두 가지를 주목하여야 합니다. 하나는 왜 사십 일인가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왜 호렙산인가 하는 것입니다. 
    
브엘세바에서 호렙산까지는 대략 350km로 정상적으로 꾸준히 걸으면 십여 일 정도면 넉넉하게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그런데 40일 걸렸다는 것은 40일이라는 날 수 보다 40이라는 숫자가 주는 의미가 더욱 큽니다. 40은 모세가 율법을 받기 위하여 호렙산에서 지낸 날 수입니다. 또 40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에 들어갈 때까지 걸린 년 수입니다. 그리고 40은 예수님께서 금식기도하신 날 수이기도 합니다. 40은 인내의 한계를 채우는 수입니다. 40은 그 이후엔 상황의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수입니다. 40은 고난을 통하여 거룩한 변화를 이루는 기간입니다. 엘리야는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더욱 깊이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의 산 호렙(Mount Horeb)’은 미디안의 목자 모세가 이스라엘을 해방하도록 부름 받은 산입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그 산 밑에서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근원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모세를 부르시고 말씀하셨던 그곳으로 엘리야를 이끌어가셨습니다. 비행기에 태워서 날라 간 것이 아니라 그의 두 발로 걷고 또 걷는 인내와 훈련을 통하여 신앙의 근원으로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회복되어야 할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2. 하나님의 인도가 필요합니다.
    
엘리야가 자신의 형편, 자신을 죽이려는 사악한 이세벨을 바라볼 때는 도망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엘리야를 하나님께서는 이끌어 주셨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로 하여금 광야 40일을 지나게 하셨습니다.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훈련을 하셨습니다. 고난을 통과하여 존재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나아감이 바로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탈진하고 낙심하고 절망하는 것이 결코 기쁜 일이 아니지만 이를 통하여 하나님께로 나아간다면 은총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롬8:28).
    
여러분을 우울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까? 정말로 힘들고 어렵게 하는 것이 있습니까?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다고 여겨지는 순간을 살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여러분 자신을 바라보는 것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는 훈련으로 여기십시오.
엘리야를 이끌어 주셨던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또한 이끌어 승리하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회복시키기 위하여 또 어떻게 하셨습니까? 
9절입니다.
 : 9 엘리야가 그 곳 굴에 들어가 거기서 머물더니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엘리야가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러 거기에 있는 한 동굴에 들어가 그 날 밤을 지내는데 갑자기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의 음성이 다시 그에게 들려졌습니다. 
    
회복되어야 할 하나님의 사람에게는
    
3.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어루만지심도, 하나님께로 이끄심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흙으로 만들어졌기에 약하지만 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지라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것은 영원한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선지자 아모스는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 8:11)고 하였습니다. 영적인 존재인 사람에게는 먹고 마시고 자고 치료 받는 것으로 회복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우리의 영이 살 수 있습니다. 아무리 귀가 밝아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아무리 눈이 밝아도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죽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비로소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할 수가 있습니다(요삼1:2).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모하는 부흥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로뎀나무는 어떤 나무입니까? 로뎀나무는 싯딤나무와 함께 팔레스틴 인근 사막지대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입니다. 로뎀나무는 사막지대에서 사는 나무답게 뿌리를 땅속 깊숙이 내립니다. 이것은 우리가 삶의 뿌리를 어디에 내려야 할지를 깨닫게 합니다. 
    
우리의 삶에는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 하는 일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위하여 기도하라고(마 6:11) 가르쳐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기적으로 만드신 빵을 먹고 또 먹기 위해서 찾아 온 사람들에게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요 6:27)고 말씀하셨습니다. 생수를 향하여 깊이 뿌리를 내린 로뎀 나무가 사막에서도 살아가듯이 우리는 하나님께 깊은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그 분께 나아가 말씀 듣기를 사모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사막과 같은 세상 속에서 기쁘게 감사하며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26년 동안 한국에서 활동하였던 오대원선교사는 그의 경험에서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여백은 하나님을 찾는 시간이다. 그 시간을 통해 선교에 대한 소명을 재확인했고, 인생과 선교에서 ‘여백(Space)’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도 사람들에게 ‘자신을 성찰하기 위해 여백의 시간을 가지세요.’라고 강조하곤 한다. 태평양 한가운데서 가진 여백의 시간 속에서 선교의 핵심은 ‘하나님을 좀 더 진실 되게 만나기 위해 구하는 과정’이란 것을 알게 됐었다. 내 안에 내(자아)가 너무 많으면 하나님이 계실 곳이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도록 우린 자신을 비워내야 한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이라면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신 여백이라고 생각하십시오. 탈진도 하나님의 은총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영과 혼과 육을 건강하게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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