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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의 포로를 돌리소서 (시 12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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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포로를 돌리소서 (시 126:1-6)
  

제가 지난 7월에 미국에서의 휴가를 마치고 우리나라로 돌아올 때였습니다.
비행기에 탑승하여 자리를 잡은 후에 승무원이 나누어 준 신문을 한 장 받아 펼쳤는데, 첫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한 아무개 목사의 방북'에 관한 대문짝만한 기사였습니다.
목사라는 사람이 불법적으로 북한에 입국하여 지금 전 세계에서 기독교 탄압의 제1인자인 공산독재자를 찬양하고 가지가지 매국노적인 언행을 하면서도 스스로는 마치 무슨 민족 통일을 위한 순교자나 되겠다는 듯이 꼴불견을 연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목사가 평양에 가서 내뱉은, 지금 이 설교 시간에 제가 인용할 가치조차 느끼지 않는 온갖 헛소리와 망언들을 읽게 된 순간 저는 모처럼 2주간의 휴가를 통하여 얻게 되었던 가뿐한 기분이 싹 달아나고 순식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답답해지는 스트레스로 꽉 차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 한 목사라는 사람은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지 지금에 와서는 그 날짜를 연기했지만 원래는 바로 오늘 8월 15일 광복절에 판문점을 넘어서 우리나라로 돌아오겠다고 공언을 하고 있었습니다.
  
주일에 예배도 드리지 않고 친북좌파 정치적인 쇼나 하려 했으니 그 목사가 우선 신앙적으로 어떤 사람인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습니다.
또한 김정일에게 절할 때에는 '경애하는 지도자'니 '국방 위원장님'이니 하고 깍듯이 불렀을 사람이 자기 나라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지칭할 때에는 '대통령'이라는 공식 직함조차 의도적으로 단 한 번도 붙이지 않을 뿐 아니라 기가 막히게도 '천안함 사건의 원흉'이라고까지 욕하고 있으니 분명히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음도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자기가 무슨 치외법권을 가지고 있다고 정식 출입국 관리소도 거치지 않고 군사회담 장소인 판문점을 거쳐서 마음대로 이 대한민국으로 돌아오겠다는 것입니까? 
판문점을 넘어오자마자 주민등록증을 압수한 후에 그 '위대하신 지도자'께서 다스리시는 지상낙원의 공민권이나 얻어서 거기서 영원히 살라고 북한으로 되돌려 보내야 마땅한 사람입니다.

저는 지금 이처럼 좌파들이 마치 자기 때를 만난 듯이 설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과연 우리나라의 미래가 앞으로 5년이나 10년이 채 못 가서 어떻게 될지 정말 두렵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제게 소망을 주는 것은 오직 이 조국을 저 위에서 살피시며 다스리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 시간 저와 여러분은 이스라엘을 바벨론의 포로에서 해방시켜 주셨던 그 하나님을 상고해 봄으로써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의 기독신자들이 조국을 향하여 지켜야 할 자세와 사명을 함께 재확인하고자 합니다.

1. '8.15 광복'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에게 베풀어 주신 대사(大事)이며 감사 제목입니다.

1절부터 3절에 기록하기를 "1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에 우리가 꿈꾸는 것 같았도다 2그 때에 우리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고 우리 혀에는 찬양이 찼었도다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다 하였도다 3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라고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리실 때"란 바로 바벨론 제국에 의하여 멸망을 당하고 포로로 잡혀가 있던 유다 백성들이 해방을 받고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 날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귀환하게 된 유다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꿈꾸는 것"같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조국을 잃고 이역만리 바벨론 땅에서 포로 생활을 하는 가운데 그들 스스로 민족 해방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이 7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실로 해방에 대한 실낱같은 희망조차 이미 다 사라진 지 오래되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 제국을 무찌르고 바사 제국을 세운 새 왕 고레스가 특별 칙령을 내려 유다인들에게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자유를 주었으니 그것을 그야말로 '꿈같은 기적'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바벨론의 유다인들은 세 차례에 걸쳐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당시로서는 적어도 몇 달이 걸린 여행길이었습니다.
하지만 물론 그 길은 결코 피곤하거나 괴로울 리 만무한 즐거운 여정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조국으로 귀환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제 바벨론에서 흘렸던 눈물 대신에 "웃음"이, 포로생활로 인한 탄식 대신에 "찬양"이 그 귀향길 내내 가득 차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어지는 2절 하반절의 "열방 중에서 말하기를"이라는 말은 그런 이스라엘의 해방과 유다 백성의 고국 귀환을 보고 주변의 이방 민족들도 감탄해 마지않았다는 뜻입니다.
즉 나라를 잃고 바벨론을 위시하여 주변 이방국가로 뿔뿔이 강제이주된 유다인들을 볼 때에 그들 모두의 눈에도 이스라엘의 재건이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불가능했던 일이 실제로 벌어지게 되었으니 그 이방인들조차 유다 민족의 해방은 오직 "여호와께서 저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신" 것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유다 백성들이야 두말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대사를 행하셨으니 우리는 기쁘도다"라는 '찬양'이 고국으로 귀환하는 기나긴 행군 내내 그들의 입술과 마음에 넘쳐흐르고 있었습니다.
"대사" 즉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베풀어 주셨던 '출애굽'과 맞먹는 위대한 역사를 그들 몸소 체험하고 그들의 전 인격이 마음껏 즐기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시편의 1, 2, 3절의 곳곳에서 "여호와께서"라는 말이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가 보아도 하나님께서만 행하실 수 있는 기적 중의 기적이었으며 그런 까닭에 적어도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마땅히 뜨겁게 감사드리고 소리 높여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의 큰 역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민족 역시 이런 '하나님의 대사'를 지난 1945년 8월 15일에 똑같이 체험했었습니다.
지난주에 일본 총리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한국인들의 뜻에 반한 강제적인 것"이었다고 인정하면서 "사죄의 심정을 표명한다"는 담화문을 발표했습니다.
이전의 태도보다는 그래도 많이 나아진 것이지만 이명박 대통령께서 "일본이 이를 어떻게 행동으로 실천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일본 총리에게 말했듯이 그것은 몇 마디의 사과로서 끝낼 수 있을 만큼 가벼운 일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일제는 우리나라를 '강점'했을 뿐 아니라 '강탈'했습니다.
특히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에 일제는 조선총독부를 중심으로 하고 친일세력들을 수족으로 동원하여 전 조선을 철저하게 수탈했습니다.
쌀부터 시작해서 부엌의 놋그릇에 이르기까지 전쟁물자 조달에 필요한 모든 것을 모조리 빼앗아갔고, 상세한 통계숫자는 알 길이 없지만 수많은 청년들과 학생들이 병역 혹은 노역에 강제징집을 당했으며, 여성들 역시 '정신대'나 '군 위안부'로 끌려가서 온갖 육체적 성적 착취를 당했습니다.
  
더구나 조선어 사용금지나 창씨개명 같은 것은 다른 식민통치의 경우에서도 찾기 어려운, 철저한 민족 말살 정책이었습니다.
실로 그것은 전쟁에서 이긴 나라가 진 나라의 백성들을 노예로 써 먹고 모든 재화를 마음껏 약탈하는 것과 조금도 다름없었습니다.
즉 당시의 조선인들은 그야말로 일제의 압제 하에 영락없는 '포로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으며, 그런 세월이 36년을 흘러가는 동안 조선이 스스로 해방을 쟁취할 수 있는 가망성이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되어갔던 것이었습니다.

국가적으로도 그랬지만 기독교 신앙적인 면에서는 더욱 비참하고 위태로웠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제암리교회 방화 학살 사건이나 소위 '105인 사건' 등은 그 작은 일부분일 뿐입니다.
일제는 처음부터 기독교를 조선을 통치하는 일에 써 먹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회유책을 받아들이는 기독교 지도자들은 자연히 '친일파'가 되었고, 끝까지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철저한 탄압이 가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탄압은 바로 '신사참배 강요'를 통하여 절정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 기간에 약 2천 명의 목사와 기독신자들이 체포 및 구금되었고 정확한 수자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 중에서 약 50여 명이 옥중에서 순교했습니다.
특히 태평양 전쟁의 말기에 가서 패색이 짙어진 일제는 그때까지 옥중에 갇혀 있던 20여 명을 비롯한 기독교 지도자 다수를 한꺼번에 학살할 음모를 꾸미고 있었는데, 당시 "조선총독부 보호 관찰령 제3호"에 기록되어 있는 지령에 의하면 그 예정일은 1945년 8월 18일이었습니다.

그처럼 우리나라 민족의 소망이 사라지고 우리 선조 기독신자들의 명맥이 끊어지기 직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십니까?
그것이 바로 미군의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사건이었습니다.
물론 그 원폭이 없었다 해도 미군이 이길 것은 분명했지만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고 그 동안 우리나라는 더욱 황폐해지고 '옥중 성도'를 비롯한 수많은 목사와 신자들이 영락없이 대학살을 당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사실 미군이 원폭을 사용한 것은 필리핀 상륙 작전 등에서 일본의 가미가제 특공대의 자살 공격과 지상군의 소위 '옥쇄'를 각오한 결사적인 저항에 의하여 너무나 많은 병력 손실을 입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미군은 순전히 자국 군인들의 생명을 보호하고자 원폭 투하를 감행했던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이 바로 우리나라 기독교 신자들의 생명을 살리게 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어디 우연이겠습니까?
그것이야말로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대사'였으며 사람으로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절망의 끝에서 오직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신 기적'이 아니었겠습니까?

실로 '8.15 광복'은 조국과 민족과 우리 신앙의 선배들에게 있어서 '꿈꾸는 듯한' 기쁨이었습니다.
그것은 정치적 해방일 뿐 아니라 순교 직전에 얻게 된 구원의 기적이었으며, 비단 우리 조상들만 누린 것이 아니라 지금 저와 여러분에게까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는 축복인 것입니다.
바로 그 '8.15 광복' 때문에 오늘날의 우리들까지 누리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독립국으로서의 국권'과 '신앙의 자유'를 생각하면서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북한 동포의 해방'은 오늘 대한민국 신자들의 사명인 동시에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합니다.

4절 이하 6절의 말씀에 "4여호와여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리소서 5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6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고 기록했습니다.

첫 문단에서 과거에 "여호와께서" 이미 행해 주신 해방을 감사드렸던 유다 백성들은 이제 여기서부터는 "여호와여"라고 하나님을 부르면서 새로운 간구를 올리고 있습니다.
그 기도의 내용은 "우리의 포로를 남방 시내들 같이 돌리소서"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포로"란 그때까지 여전히 귀환하지 못하고 바벨론에 남아 있던 유다인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아마도 이 시편은 아직도 포로 귀환이 진행되고 있던 기간, 즉 제1차 포로 귀환과 제2차 포로 귀환 어간에 지어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먼저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은 자기네들만 무사히 도착했다고 만족하지 않고 아직도 바벨론에서 고국 귀환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동포들을 잊지 않고서 그들을 위하여 기도를 올렸던 것이었습니다.  "남방 시내"는 팔레스틴의 남쪽에 있던 '네게브' 지역을 가리킵니다.
  
이곳은 여름철 건기에는 바짝 말라 있다가 겨울의 우기가 되면 많은 물이 넘쳐나면서 곳곳에서 급류의 시냇물이 흐르게 되는 특수한 지형이었는데, 그 시냇물은 주변의 동식물의 생존을 비롯하여 지역 주민의 식수 공급에 필수적인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처럼 메말랐던 '남방' 지역에 생명의 기운을 가져다주는 '시내'가 다시 흐르게 되듯이 모든 포로 된 유다 백성들이 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해 달라는 뜻인 것입니다.
  
실제로 제2차 포로 귀환은 1차 포로 귀환이 있은 후 무려 79년이 지난 다음에 이루어졌으며 전체적인 포로 귀환은 거의 100년 가까운 세월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먼저 귀환한 유다 백성들은 여러 가지 이유와 사정으로 인하여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바벨론 땅에 남아 있는 자기 동포들을 위하여 이처럼 간절한 기도를 계속 올렸던 것이었습니다.

이어지는 5절과 6절에서 반복되는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로다'라는 말은 찬송가에도 나오는 유명한 구절입니다.
봄에 씨를 뿌리는 자만이 가을에 수확을 거두게 되는 것은 농사의 철칙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열심히 일하면 일한만큼 큰 물질적 축복을 얻게 된다.'는 일반적인 뜻으로 흔히 인용되고 있지만, 이 본문의 문맥에서 나타나는 원래의 구체적인 의미는 '민족 해방과 조국 재건을 위한 노력과 그 결과'를 비유하는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민족은 아직도 해방을 받지 못하고 남아 있는 "우리의 포로"를 위해서 계속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드려야 마땅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먼저 귀환한 백성들은 여전히 폐허로만 남아 있는 예루살렘 성에서 그야말로 땀을 흘리며 노력해야만 완전한 조국 재건 즉 지금의 해방 그 자체보다 더 큰 '기쁨의 단'을 거둘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자기만 고국으로 돌아왔다고 안주하지 않고 여전히 '포로 된' 동포들의 해방을 위하여 '울며' 기도하고, 과거에 자기 민족에게 해방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가운데 더욱 '열심히 씨를 뿌림'으로써 조국이 받게 될 더 큰 미래의 축복을 확신하고 나아가는 자세 역시 오늘날 저와 여러분이 본받아야 할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8.15 광복'을 맞이한 이후에도 우리 민족 중에는 여전히 '포로'로 남아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저 북한의 2천만 동포들입니다.
이들은 지금까지도 저 악하고도 적기독교적인 김정일에 의하여 인간의 생존권을 비롯한 모든 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한 채로 '독재자의 종'이 되어 있습니다.

북한 인민들의 경제적 사정은 특히 작년 말에 단행했던 화폐개혁이 실패로 끝나면서 더욱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고 합니다.
화폐개혁을 주도한 당 계획재정부장을 간첩으로 몰아서 공개 처형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실패의 여파를 막을 길은 없는 것입니다.
  
최근의 뉴욕타임스의 인터넷판에 실린 탈북자들의 증언, 국제엠네스티의 북한 보건의료 상황 보고서, 지난 5월 26일에 북한 노동당 조직지도부에서 '국가 차원의 식량 공급이 어려운 관계로 주민들이 각자 알아서 식량을 구하고 당, 내각, 국가보위부 등 관련 기관들은 필요한 대책을 강구하라'는 내용의 특별 지시 등은 북한의 식량 위기가 더욱 심화되고만 있음을 역력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

바로 지척에 있는 저 북녘에는 아직도 '우리의 포로'들이 남아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살고 있는 우리는 '먼저 해방을 받은 자'들임에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저와 여러분들은 최소한 저 북한 동포들을 기억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진정으로 남한이나 북한이나 다 같은 '한민족'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지금 공산독재 치하에 사로잡혀 저토록 고통당하고 있는 2천만 명이나 되는 '우리의 포로'들을 '남방 시내 같이 돌려달라고' 단 하루도 잊지 않고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는 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지금 우리나라의 청년들 중에는 "남북한이 통일이 되면 가난한 북한 사람들과 나누어 먹어야 하니까 우리가 더 못 살게 될 것이 아닌가?"라는 말을 정말 기가 막히게도 태연히 입에서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보다 조금 덜 먹고 덜 입고 살게 될까 겁이 나서 통일이 되면 안 된다고요?
민족애는커녕 사람의 기본양심만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정말 그게 할 수 있는 소리입니까?

여러분은 쌀밥을 많이 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다고 일부러 다이어트라는 것을 하고 있으면서도, 저 북한 동포들이 옥수수죽조차 제대로 못 먹어서 피골이 상접해 있는 얼굴들을 볼 때에 아무 감정의 반응도 생기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컬러텔레비전으로 온갖 '아이돌 그룹'들의 노래와 댄스를 마음껏 즐기고 있지만, 지금도 평양의 어린이들은 소위 '아리랑 공연'을 하느라고 운동장 한가운데에 선 채로 소변을 보면서 종일 자리를 지켜야 하는데도 전혀 상관할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까?
  
여러분들은 서울시 한복판에서 교통을 두절시키고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노란색 띠'를 두르고 '촛불 집회'를 하면서 이 대한민국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를 만끽할 동안에, 바로 이 순간에도 자유의 땅을 찾아 결사적으로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다가 총에 맞아 죽든지, 도하 후에 중국 공안에 의하여 북한으로 압송되어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서 모진 고초를 당하든지, 혹은 무사히 대한민국에까지 들어와서도 북한에 남겨 두고 온 가족들에 대한 염려 때문에 하룻밤도 발 뻗고 잘 수 없는 탈북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르는데, 그 사람들은 나와 아무 관계없는 남일 뿐이라는 말입니까? 
이들이 돌아와야 할 '우리의 포로들'이 아니면 도대체 어느 민족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까?
같은 핏줄을 나눈 동포를 두고 그렇게 매정한, 그런 진짜 반민족적인 말이나 생각을 해서는 정말 안 됩니다.

아직도 우리는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울며 씨를 뿌려야 할' 때입니다.
지금 마치 6.25 전쟁 직전처럼 좌파들이 고개를 쳐들고 활개를 치고 있는 이 위태로운 시대에 우리의 대한민국을 정말 바른 민주주의 국가, 공산주의가 발도 붙이지 못할 나라로 똑바로 세우기 위하여서는 더욱 간절한 눈물의 기도와 뼈를 깎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아직도 저 북한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의 포로'들을 '남방 시내들 같이 돌려주실' 완전한 해방의 날, 최고의 기쁜 날을 맞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8.15 광복 때보다 더 큰 '기쁨의 단'을 이 한반도의 남과 북 모두가 같이 거두게 될 그날을 간절히 소망하면서 먼저 해방 받은 자가 지극히 당연히 감당해야 할 민족적인 사명에 기도와 힘을 합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한 아무개 목사가 평양에 가서 그런 매국적이며 반민족적인 행위를 '민족 화합' 어쩌고 하는 미명으로 행하던 바로 그 평양에서 그리 멀지 않은 평안남도 평성시에서 바로 몇 달 전에만 해도 3명의 지하교회 지도자들이 처형을 당했고 20명의 교인들이 요덕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한 목사 같은 사람은 이런 북한의 지하교회 성도들을 과연 어떻게 생각하고 있겠습니까?
  
결코 '순교자'라고 부르지 않을 것은 물론이고 김정일이 말하는 대로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며 기독신자는 최악질의 반동분자'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실제로는 북한의 기독교를 오직 허수아비로만 사용하는 김정일에게 머리를 숙이고 포옹을 하는 목사는 바로 일제 때에 신사참배에 앞장섰던 매국적이요 배교적인 목사들과 '같은 통속'임에 두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답답한 일은 바로 그 한 목사와 똑같은 친북, 아니 종북 좌파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 대한민국 안에 점점 더 늘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마 그 한목사가 돌아오는 날이 되면 소위 '민족의 영웅'을 환영한답시고 판문점에 몰려간 무리들이 그를 체포하려는 검찰을 향하여 '정치적 탄압'이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를 것입니다. 
실로 저와 여러분은 '6.25 전쟁'을 북침이라고 혹은 통일전쟁이었다고 왜곡할 뿐 아니라 이 '8.15 광복절'까지도 좌파의 정치쇼를 위한 무대로 전락시키려 하는 자들이 이 땅에 득실거리는 가운데 오늘을 맞이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까닭에 이 대한민국의 기독신자의 사명은 더욱 분명해지며 또한 요긴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기독신자들이야말로 조국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깨닫고 감사드릴 줄 아는 이 땅의 진정한 '파수꾼'들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야말로 저 북한의 2천만 동포들을 '우리의 포로'로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간구드리기를 쉬지 아니하는 '의인 십 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시편 서두에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평소에 예배를 드릴 때에도 과거에 하나님께서 자기 민족을 위하여 행해 주신 대사를 기억하면서 뜨거운 감사 찬양을 드렸으며, 또한 앞으로도 자기 민족을 위하여 더 크게 베풀어 주실 미래의 축복을 위하여 간절한 기도를 올렸던 것이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바로 우리 민족을 위해서도 '시온의 포로를 돌리시는' '8.15 광복'의 대사를 행해 주셨습니다.
그런 까닭에 바로 같은 그 하나님께서 또한 '남아 있는 우리의 포로를 다 돌아오게 해 주시는' 더 큰 기쁨의 광복절을 반드시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이 세상 통치자들의 머릿속까지 주장하셔서 당신의 택자 구원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시며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당신의 선하신 뜻을 이 땅 위에도 이루고야 마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간구함으로써, 이 조국과 우리 민족이 진정 '여호와께서 베풀어 주시는 더 큰 구원'을 누리게 될 그 한 날을 소망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석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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