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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먼저 복음의 맛을 보라! (마 2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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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복음의 맛을 보라! (마 23:1-13)   

 
“전도자의 삶을 삽시다.”

오늘은 우리나라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36년간 식민지 지배를 받다가 해방된 날을 기념하는 광복절입니다. 광복이란 빼앗긴 주권을 도로 찾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해방이후 매년 오늘을 기념하여 다양한 행사를 벌이는데 그 바탕에는 다시는 나라의 주권을 빼앗기지 말자는 의미가 있습니다. 

영적으로 볼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사단에게 빼앗긴 우리의 주권을 다시 찾는다는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영적, 육적 해방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아 하늘•땅•바다를 정복하고 다스리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천국을 누리며 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단의 꾐에 빠져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죄를 짓게 되어 저주를 받아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사단의 올무에 잡혀 종노릇하는 처참한 신분이 되어 영적, 정신적, 육신적 고통을 받게 되었고 이것이 자자손손 대물림 되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을 사랑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모든 저주를 대속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다가 다시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생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성령께서 내주하고 계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안에 계시면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기도 응답의 비밀을 누리게 하시며 어디를 가든지 지키고 보호하여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할 때마다 흑암과 저주가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러한 하나님 자녀의 영적 정체성이 회복되어 세계복음화라는 하나님 명령을 따라가는 축복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영적인 축복을 회복하고서도 계속해서 마치 주권을 빼앗긴 것과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바로 복음이 주는 참 축복을 제대로 맛보지 못하고 수박 겉핥기식 종교생활을 하기 때문입니다. 수박의 겉을 아무리 핥아봐야 그 맛을 알 수는 없는 일입니다.

오늘 살펴볼 마태복음 23장에는 이런 삶을 살던 대표적인 사람들인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강력한 책망과 경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영적 상태에 대해 아주 냉정하게 밝히시면서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임하게 될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우리 현장에도 이처럼 복음의 맛을 알지 못하고 종교생활을 하는 영혼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다니다가도 시험에 들기도 하고 문제와 사건이 일어나면 거기에 매여 눌리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먼저 복음의 맛을 보고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복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참된 맛을 보고 누림의 삶을 사는 영적 수준이 되어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속고 있는 현장의 실상

마태복음 22장에는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하기 위해 다양한 질문을 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도리어 그들의 질문을 활용하여 중요한 영적 진리를 말씀하시면서 그들을 꼼짝 못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런 후에 오늘 본문을 통해 이들의 영적 상태를 지적하시며 경고의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마 23:1~3)

예수님께서는 지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두 무리는 모두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 곧 십계명과 모세 오경의 전문가였습니다. 유대사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일컬어 말만하고 행치 아니하는 자들이라 하셨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이라면 누구보다 행위를 강조하는 자들인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데에는 무슨 뜻이 있는 것일까요? 이는 이들이 하나님 말씀의 본질은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형식에만 치우쳐 있음을 말합니다. 자신들의 행위를 사람들에게 보여 존경을 얻고 권위를 내세우고자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이들이 얼마나 위선적이었던지 오늘 본문 이후를 보면 계속해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라며 예수님께서 책망하시는 모습이 나옵니다.

이처럼 본문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복음의 맛이 아닌 다른 맛에 이미 길들여져 있는 자들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책망하시기에 앞서 마태복음 22장 마지막 부분에서 “정말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고 있느냐?”라는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너희가 기다리던 메시야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아느냐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 마태복음 16장에서와 같이,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답하면 곤란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복음의 본질에 접근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창세기 3장의 현장은 이렇게 참 복음의 맛이 아닌 다른 맛을 보고 있기 때문에 변화가 없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안타깝게도 가치 없는 것을 자꾸만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일은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수고하고 헌신하며 신앙생활 잘하고 있는 것 같은데도 응답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하는 행동을 보면 모두 서론에 매여 본론을 놓치고 있습니다.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복음의 맛을 보고 난 후에 해야 합니다. 그래야 넘어지지 않고 일평생 지속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맛을 제대로 본 대표적 인물이 바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 배설물로 여기겠다고 고백을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바울은 마지막 순교의 시간표까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붙잡는 삶을 살았습니다. 복음의 맛을 본 사람은 이렇게 구별된 삶을 살게 됩니다. 

복음의 맛을 보아야 그 맛을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 인생 모든 문제 해결자”라는 영적인 사실이 실제 삶 속에, 생각 속에, 잠재의식 속에 뿌리가 내려져 있어야 복음의 맛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을 해방시킵니다. 이것이 여러분을 자유케 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을 누리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성경 66권을 통해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합니다. 삶의 현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를 분명히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흑암 권세가 예수 그리스도 이름 앞에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복음의 맛을 본 사람은 어떤 시험도 다 넘어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감당치 못할 시험을 주시지 않습니다. 모든 시험을 이겨낼 능력을 주십니다. 이것이 복음의 힘입니다. 

여러분은 인생의 과거에 매여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복음의 맛을 보고 누리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이 이러한 하나님 자녀 된 신분과 권세를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천국 문을 여는 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마 23:13) 예수님께서는 본문을 시작으로 36절까지 반복해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는 메시지를 선포하셨습니다. 어찌 보면 책망이라는 말보다 저주라는 표현이 더 적절해보입니다. 

본문 내용은 이들이 왜 저주를 받아야만 하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천국 문을 닫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위선적인 종교생활은 사람들이 천국 백성의 자리로 나아가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었습니다. 

제가 메시지를 통해 영적 규모와 삶의 규모를 균형 있게 갖추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보장받았음에도 바로 천국에 가지 않고 이 땅에 사는 까닭이 무엇일까요? 구원받은 우리를 통해 또 다른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또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이 삶의 현장에서의 모습입니다. 

아무리 교회 안에서 믿음이 좋다고 인정을 받더라도 삶의 현장에서 증거가 없으면 무슨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요? 렘넌트들이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 직장인들이 직장에서 인정받아야 하는 이유, 산업인이 산업 현장에서 증거를 보여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천국 문을 여는 중요한 열쇠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께서 살아계심과 예수가 그리스도 되심이 증거되면 그것이 바로 천국 문을 여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배 때마다 복음의 맛을 보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맛을 알게 되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힘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면 삶의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천국 문을 여는 전도의 맛을 보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이 이런 신앙생활을 해 나감으로 영적 영향력을 입혀 수많은 영혼을 주님께로 돌아오게 만드는 현장 전도 제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난 남아공월드컵의 경기 결과에 따라 감독들의 리더십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 중 하나가 Enabling leadership이었습니다. 이는 구성원들의 능력과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리더십을 말합니다. 대표적인 감독이 독일의 뢰프 감독이었습니다. 그는 외칠과 뮐러 등 젊은 선수들이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또 소속 클럽에서 골 부족에 시달리던 클로제가 많은 골을 넣도록 만든 것이 바로 뢰프 감독의 Enabling leadership 덕이었다는 평이 있습니다. 

복음이 무엇일까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잠재되어있는 무한한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비교의식, 열등의식 또는 환경의 문제로 말미암아 그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잠재력을 깨우치게 하는 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복음을 통해 어마어마한 잠재력이 회복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제대로 알고 누리게 되면 Enabling leader의 삶을 살게 됩니다. 불신자들은 하나님 형상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 형상을 회복시키고 영적 정체성을 심어 주어 잠재력을 끄집어내어 그 능력을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Enabling leader가 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참 복음의 맛을 본 사람의 역할입니다. 

여러분은 삶의 현장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 모든 사람들은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가능성을 사장시키고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통하여 그들의 잠재력을 일깨우고 하나님 형상으로 회복시키는 것이 제자화 인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세계복음화에 사용하십니다. 이러한 삶을 살아감으로 성도 여러분이 복음의 맛, 기도의 맛, 전도의 맛, 세계화의 맛을 보는 축복을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성도들이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릴 때마다 먼저 복음의 맛을 보게 하여 주옵소서. 그럼으로 현장에서 천국 문을 여는 자로서 살게 하심으로 성령이 함께하는 자의 증거를 보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 받들어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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