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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복절] 해법 (느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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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법 (느 1:1-11)


언제가 저희 집 아이들 공부하는 것을 보니 <해법수학>이란 책을 보고 있었습니다. 아마 <수학문제를 푸는 해법이 담겨 있는 책>이란 의미인 것 같았습니다. 그 책을 보면서 <해법인생>이란 책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도 문제투성이고, 우리는 그 문제들을 풀어야만 합니다. 

느헤미야서에는 민족적인 큰 문제를 풀어 가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문제란 무너진 예루살렘을 재건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주전 586년에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처참하게 무너졌습니다. 

예루살렘이 어떤 곳입니까? 일찍이 다윗은 여부스 사람들이 살던 산성을 정복했고, 자기 이름을 따서 <다윗성>이라고 불렀는데, 그 성이 예루살렘입니다. 그 후 그 곳에 성전이 세워졌고,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치적인 중심지, 영적 중심지로서 고향 같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 당시에 예루살렘은 무너진 채로 성벽도, 성문도 없이 황폐하게 버려져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성을 재건하는 일이야말로 유다 백성들에게 민족적 소원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금 무너진 성벽을 재건해야 할 상황에 있습니다. 올  해는 우리가 일본에 강제 병합된 지 백년이 되는 해입니다. 비록 해방된 지 65년이 지났지만, 아직 우리는 완전한 광복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 우리는 민족이 둘로 나뉜 채로 통일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올해는 6.25전쟁 60주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평화 통일을 이루기는커녕, 올해는 천안함 사태 등으로 어느 때보다 긴장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은 국론이 분열되어 북한 문제를 비롯한 국가적 대 과제에 대하여 분열되어 갈등하고 있습니다.우리도 지금 재건해야 할 부분, 풀어야 할 문제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예루살렘의 재건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습니까? 그것은 단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더구나 그는 예루살렘 주민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멀리 있었고, 예루살렘성이 무너져 있다고 해서 아쉬울 게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한 사람이 다름 아닌 느헤미야였습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도착한 것은 주전 444년입니다. 예루살렘이 무너진 지 무려 142년이나 지난 후였습니다. 142년 전에 무너진 성에 대해 그가 무슨 책임이 있겠습니까? 또 그가 예루살렘성이 무너진 채로 방치되어 있다는 소식을 들은 곳은 수산궁이었습니다. 그 곳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수천 킬로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더구나 느헤미야는 왕의 술 맡은 관원으로서 아무런 부족함도 없이 잘 살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성의 재건이라는 놀라운 역사는 아무 상관도 없는 한 사람 느헤미야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위대한 일들은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 경우가 많습니다. 지난 5월에 <월드비전 선명회 합창단>이 우리 교회에서 연주회를 했습니다만, <월드 비전>도 한 사람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한 사람은 비극의 현장에 있지 않았고, 아무 상관도 없는 밥 피어스(Bob Pierce)목사님입니다. 

그 분은 6.25전쟁의 현장에서 죽어 가는 수많은 어린 생명들의 소식을 듣고, 그 어린이들을 돕는 전문 구호기관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목사님은 1950년,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사무실을 열고 교회 등에서 모금을 했고, 그 일을 함께 할 한국인 목회자를 찾던 중 한경직 목사님과 연결되었습니다. 그 후 피어스 목사님은 한경직 목사님과 함께 한국의 전쟁 고아들과 전쟁 미망인들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월드비전, 선명회의 첫 걸음이었습니다. 밥 피어스 목사님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들로 인해 나의 마음도 아프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일이 지금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구호단체가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 같은 역사적인 주일을 지키면서, 우리 모두가 한 사람 느헤미야, 밥 피어스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런 한 사람이 되겠다는 결단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성이 무너진 지 142년이 지나도 아무도 일으켜 세울 생각을 하지 않은 채로 방치해 두었던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인식했던 느헤미야처럼 우리도 오늘의 현실에 대하여 책임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국가에서도 이런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왜 느헤미야는 142년 전에 무너진 성, 그가 살고 있는 곳에서 수 천 킬로나 떨어진 곳에 있는 성을 재건하는 일에 자신을 바치기로 한 것입니까? 

그것은 <모든 것이 나 때문이다>란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이 방치되어 있다는 말을 들은 후 그 이유가 자신의 책임인 것처럼 느꼈습니다. 여러분, 본문 4-7절까지 함께 읽어봅시다.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는 <나와 내 아버지 집이 범죄하여>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모든 불행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을 인정한 것입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내가 생각할 때 인류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생각은 “나 때문이다”란 생각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문제들은 “나 때문이다”란 생각으로 접근하면 풀려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한 여인이 목사님을 찾아와서 더 이상 남편과 살지 못하겠다고 하면서 이혼할 뜻을 이야기했습니다. 목사님은 말했습니다. <그렇게 힘들면 헤어지도록 해요. 그런데 직장 동료나 이웃과 헤어질 때도 이별의 선물을 주는데, 아이까지 낳고 살던 남편과 헤어지려면 선물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나중에 후회되지 않도록, 그리고 당신의 품위 있는 인생이 망가지지 않도록, 헤어지더라도 마지막 선물을 멋지게 해 주고 헤어지세요>라고 충고하면서, 선물의 내용을 설명했습니다. 

여인은 <헤어지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3일 동안 목사님의 말씀대로 했습니다. 우선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했습니다. 거실에 꽃을 꽂았습니다. 저녁 밥상을 준비했습니다. 남편이 초인종을 울리자, 아이들과 함께 나가 맞이했습니다. 작은 아이는 아빠 볼에 뽀뽀를 했고, 큰 아이는 아빠를 안아 주었고, 여인은 옆에서 옷을 받아주며 “수고 많았다”고 인사했습니다. 남편은 어리둥절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남편이 입고 나갈 와이셔츠 주머니에 메모지를 하나 넣어두었습니다. <당신 고마워요. 지금까지 당신 덕에 과부 소리 듣지 않고 살았어요. 당신 덕에 귀여운 아이들도 얻었어요. 당신 덕에 가끔 친구들 앞에서 으쓱할 때도 있었어요> 같은 일을 3일 동안 했고, 날마다 세 가지 감사를 적은 메모지를 전달했습니다. 

며칠 후 목사님이 여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아니, 어떻게 아무 연락이 없습니까? 이혼할 때 나에게 오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3일이 벌써 지나고 며칠 더 지났는데, 이혼 안 합니까?> 그랬더니 여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지금 가족 여행 중이에요. 우리 잘 살고 있어요. 목사님 말씀대로 해 보니 다 제 잘못 때문이었어요. 남편은 사실 좋은 사람인데, 다 내가 좋은 아내가 아니어서 생긴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지금은 남편이 신혼 때처럼 잘 해준답니다. 여행 다녀와서 같이 목사님께 들리겠습니다.> 

여러분, 모든 문제의 원인은 우리 자신에게 있습니다. 자기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느헤미야는 자신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을 자기 때문이라고 고백했는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우리 민족의 아픔에 대해 전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 나라 안에서 살아왔습니다. 우리는 국민 중 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 안에 살면서 너무도 많이 법규를 어기고, 나라를 사랑하지 못한 적이 많았습니다. 많은 정치인을 원망했고, 기업인을 비방하면서, 우리는 그 동안 자칭 의인으로 살아왔습니다. 

가정과 교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자들은 교인들 원망할 거 하나도 없습니다. 다 목회자 자신이 부족해서 더 많이 성장하지 못한 것입니다. 수년 씩, 십 년, 이십 년씩 목회를 했는데도 성도들이 성숙하게 변화되지 못했다면 목회자 책임이지 누구 책임이겠습니까? 처음 부임한 목회자라면 교인들 원망을 할 수 있겠지만, 저처럼 오래 된 목사가 어떻게 원망하겠습니까? 이 강단에서 수없이 설교한 게 저이니, 우리의 부족함은 99%가 제 책임이라고 할 것입니다. 더 능력 있게, 더 성령 충만한, 강력한 설교를 하지 못한 책임입니다. 

저는 우리들이 우리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게 되길 원합니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사회에서도 그렇게 하길 원합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인정하는 모습은 이미 예수님에게서 보여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예수님의 죄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모든 것을 당신의 죄 때문인 것처럼 모든 것을 짊어지셨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회개입니다. 책임을 인정하는 사람은 회개합니다. 회개는 고통이지만, 반드시 겪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고통은 십자가에서 죽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당신 자신을 죽이기까지 우리 대신 책임을 지셨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의료 드라마 중에서 이런 장면을 보았습니다. 젊은 레지던트가 실수를 해서 환자를 제대로 진찰하지 못했습니다. 제때 제대로 처방을 내리지 못해서 환자가 죽을지도 모를 상황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깊이 자책합니다. 심각할 정도로 고통을 받습니다. 그 때 그를 지도하는 고참 의사가 그를 위로합니다. <힘내. 나도 그랬어. 내가 치료해서 살려낸 사람은 생각나지 않고, 내가 잘못해서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사람, 죽은 사람만 생각난다> 저는 그 대목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살려낸 사람은 생각나지 않고, 나 때문에 고통받은 사람, 병세가 악화된 사람, 죽은 사람만 기억난다>는 말이 가슴에 와서 닿았습니다. 
잘못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사람, <다 나 때문>이라고 자책하는 의사, 그런 사람들은 훌륭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우리 현실의 고통에 대하여 우리 책임을 깨닫고 회개하길 원합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할 일은 <재건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반드시 재건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회개는 행동입니다. 회개하는 사람은 울면서 앉아있지 않습니다. 벌떡 일어섭니다. 
느헤미야를 보십시오. 그의 회개는 눈물과 탄식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회개는 술 맡은 관원의 자리를 사직하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무너진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그 폐허 위에 자신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가진 모든 것을 투자하여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회개는 재건입니다. 재건하지 않는 회개는 회개가 아닙니다. 우리도 재건해야 합니다. 한국 교회는 과거에 무너진 나라를 재건하는 데 열심을 냈습니다. 학교를 세워 국민 정신을 재건했습니다. 주민들의 생활 교육을 통해 마을을 재건했습니다. 심훈의 <상록수>같은 소설은 그 당시의 일을 잘 보여줍니다. 

대한민국 건국의 공로자들의 대부분이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부인하고, 인간의 생명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공산주의와 맞서 싸웠습니다. 지금도 기독교인들이 이 나라의 재건을 위해 일어나야 합니다. 이 재건의 사명을 하나님을 거역하는 사람들, 진리를 왜곡하는 사람들의 손에 맡길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재건해야 할까요? 우선 우리 신앙부터 재건해야 합니다. 시시한 신앙을 버리고, 확실한 신앙의 바탕 위에 서야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하여 <예배>가 재건되어야 합니다. 충실한 예배자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예배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 중의 기초요, 으뜸입니다. 예배 없는 사역, 예배 없는 헌신은 잘못된 것입니다. 주일의 모든 예배, 새벽기도회, 수요예배 등, 모든 예배가 재건되길 기원합니다. 

또 <기도>를 재건해야 합니다. 과거에 우리 선배들은 산골 곳곳에 기도원을 세워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원들은 요즘처럼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기도원>이 아니었습니다. 그 기도원들은 <구국기도원>이라 불렸습니다. 기도원에서는 밤낮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기도를 통해 성벽 재건을 이루었습니다. 본문 11절을 보십시오. <주여 구하오니 귀를 기울이사 종의 기도와 주의 이름을 경외하기를 기뻐하는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오늘 종이 형통하여 이 사람들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옵소서>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기도생활이 재건되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땅에 복음 <전도 운동>을 재건해야 하겠습니다. 현재 한국 교회는 성장이 정체되어 있습니다. 특정한 몇몇 교회를 제외한 대부문의 교회들이 부흥과 성장의 영적 동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고여 있는 물은 썩습니다. 부흥과 성장이 정체되면 교회를 분열시키고 타락시키는 악령들이 역사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일본에 강제 합병될 무렵 우리 선배들은 나라는 무너져가지만, 한국인은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백만인 구령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나라는 잃어도 백성들의 가슴에 복음을 심어 언젠가는 독립의 초석이 되게 하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1909년 스톡스 선교사, 갬블 선교사, 리드 선교사가 사경회와 기도회를 인도했습니다. 이 집회에 참석했던 이들이 감리교연회에 참석하여 <20만 명의 영혼을 그리스도에게로>라는 주제를 채택했습니다. 그 후 <복음주의선교연합공의회>에서 <일백 만 심령을 그리스도에게로>라는 목표를 정했습니다. 1910년 4월, 일본에 합병되기 석 달 전에 열린 <장로교 독로회>에서도 같은 주제를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물질을 드렸고, 물질이 없는 사람들은 날을 드려 전도에 힘썼습니다. 

이에 대해 베어드 선교사(W.M.Baird)가 <코리아 미션 필드, Korea Mission Field>에 실은 보고서에 보면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옵니다. <고되고 가난한 생활을 하는 한국 사람들은 도급 10만 날을 이 사업에 바쳤는데, 지난겨울에 개인전도에 사용한 날 수는 7만 6천 일이었고, 금년 가을에도 수백 명의 한인 전도인들이 가가호호를 심방하는 활동과 대 집회에 출석한 구도인들과의 개인 접촉을 위하여 한 달을 온통 바쳤다. 수백 만 매의 전도지와 한인 신자들이 대금을 내고서 믿지 아니하는 동포들에게 70만 권의 마가복음을 무료로 배부하면서 복음을 읽고 믿으라는 간곡한 권고와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한국인 가정치고 심방 받지 아니한 가정이 거의 없었고, 심방의 결과를 얻기 위하여 수천 명의 한국인들이 매일 기도를 올리고 있다.> 

이로 인해 기독교인들이 엄청나게 증가했고, 후에 이들은 일제와 맞서 싸우는 데 기초가 되었습니다. 그 후의 3.1 운동, 국채보상운동, 교육운동, 경제 부흥운동의 밑바닥에는 이 때 얻어진 기독교인들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해방 후에도 대한민국의 건국, 새마을운동, 현대화의 과정에 수많은 기독교인들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전도 재건을 위해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는 <양심>을 재건해야 합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참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분열, 갈등과 대립, 타락, 세속화, 교권 다툼, 정직하지 못한 부분, 목회자의 부패, 상류층 인사들의 부정에 등장하는 기독교인들의 이야기 등 너무도 부끄럽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살아나야 합니다. 사회 규범을 지켜야 합니다. 정직해야 합니다. 성실해야 합니다. 반듯해야 합니다. 이 민족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역>을 재건해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어린이 교육, 보육시설, 양로원 시설, 사회복지 시설의 70-80%를 운영해 왔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곁에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점차 이런 사역으로부터 후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입니다. 우리는 더욱 더 세상을 위한 교회로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 비전 센터가 그 중심이 되길 원합니다. 저는 우리교회가 요람에서 천국까지 책임지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태어난 아기가 유아세례를 받고, 아기 학교에 다니고, 어린이집에 다니고, 청소년공부방, 청소년문화광장에 다니고, 대안학교를 세우게 되면 대안학교에 다니고, 교회학교와 청년부를 거쳐 교회의 일군이 되고, 선교사역자가 되고, 세상의 일군이 되어 열심히 살고, 늙으면 노인대학에 다니고, 요양훈련 받은 분들을 통해 도움을 받고, 양로원이 세워지면 거기서 호스피스 사역을 통해 도움을 받고, 천국까지 함께 동행하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이런 사역이 한국 교회 전체로 파급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한국 교회가 재건될 줄 믿습니다. 대한민국이 재건될 줄 믿습니다. 복음과 사랑을 통한 자유민주적 방법으로 통일 조국이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 개인도, 가정도 재건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회개하면서 돌아와 매달리면 회복시키시는 분입니다. 5절을 다 같이 읽읍시다. <이르되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이여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언약을 지키시며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간구하나이다>, 아멘, 또 9절을 읽겠습니다. <만일 내게로 돌아와 내 계명을 지켜 행하면 너희 쫓긴 자가 하늘 끝에 있을지라도 내가 거기서부터 그들을 모아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곳에 돌아오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이제 청하건대 기억하옵소서> 

우리 모두 오늘의 느헤미야가 되고, 우리 함께 한국교회, 대한민국, 한국민족이란 성벽을 재건하게 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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