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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누림에서 이룸으로 (창 4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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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림에서 이룸으로 (창 46:1-7)


어제 신문을 보니까 프랑스로 입양된 우리나라 사람이 프랑스 녹색당 2인자가 되었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어린 시절 친부모로부터 버림을 받았지만 부유한 프랑스 가정에 입양돼 결국 녹색당 2인자가 된 플라세 부총장의 인생역정에 대한 기사였습니다. 인생 역정을 이룬 플라세 부총장처럼 만약 우리 성도님의 아들이 미국에 가 미국의 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수십 년 만에 연락이 와 미국에 와서 살자고 초청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나이가 130세가 되었고 아들들과 손자들을 합하여 70명쯤이 됩니다. 부동산도 많고, 선산에는 부모님의 묘가 있고, 아내의 묘도 있습니다. 그동안 기업도 잘 되어 부자로 잘 살았는데 2년 동안 가뭄으로 먹을 것이 없어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부통령이 된 아들이 전용기를 보내 주면서 온 식구가 다 풍부한 나라 미국으로 이민을 오라고 합니다. 살 땅도 마려되어 있고, 자녀교육도 보장되고, 집도, 비자도 다 마련되었으니 내가 보내 준 전용기를 타고 이민을 오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금 살고 있는 땅이 약속의 땅이니 떠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과거 할아버지께서도 가뭄 때문에 고향 땅을 떠나 그곳에 갔다가 험한 꼴을 당하고 돌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에게도 고향 땅을 떠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제안을 받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1. 누림의 택하는 인간의 본성(1)

이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민을 떠날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사람들은 “누림”이라는 기준으로 모든 것을 선택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보다 더 잘 누릴 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곳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가뭄을 피해 행복하게 물질의 풍요를 누릴 수 있는 곳, 권력을 가지고 좀 더 자유롭게 영향력을 행사하며 누릴 수 있는 곳, 골프도 마음대로 치고 좀 더 즐김을 자유스럽게 누릴 수 있는 곳을 택할 것입니다. 좀 더 교육의 혜택을 많이 누릴 수 있고, 사회 복지의 혜택을 많이 누릴 수 있는 곳을 택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결혼 대상자를 택할 때도 상대를 통해 얼마나 누릴 수 있는가를 보고 결정합니다. 회사를 들어갈 때도 그 회사를 통하여 얼마나 누릴 수 있느냐를 보고 선택합니다. 교회를 선택할 때도 그 교회를 통해 얼마나 누릴 수 있느냐를 보고 선택합니다. 오늘 성경에 나오는 야곱은 어떻게 선택했습니까? 중대한 선택의 순간입니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약속의 땅 가나안 시절을 마감하고 애굽 시대를 개막하는 시점입니다. 야곱은 “누림”을 기준으로 하여 선택합니다. 그렇게 큰 고민을 하지 않습니다. 

창세기 45장 27-28절을 보십시오. 죽은 줄 알았던 요셉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믿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자기를 태우기 위해 보내준 전용 수레, 요즈음 말하면 전용기를 보고는 기운이 소생하고 죽기 전에 가서 보리라고 다짐합니다. 

그리고 46장 1절에 바로 출발합니다. 얼마나 빠르게 결단하고 진행됩니까? 아마 땅을 팔아 정리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려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땅입니다. 거듭된 흉년으로 먹을 것이 나오지 않습니다. 급히 처분했을 것입니다. 모든 소유를 이끌고 애굽을 향해 출발한 것입니다. 가나안은 지금 가뭄으로 먹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애굽은 풍요의 땅입니다. 먹을 것이 풍부합니다. 더군다나 아들이 당시 세계 최고의 패권국의 제 2인자 총리가 되어 있습니다. 그곳에 가면 호의호식하며 말년에 얼마나 인생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아들이 이미 구비해 놓은 부와 권력, 명예, 삶의 안락함을 얼마든지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중대한 결정을 할 때 상대가 만들어 놓은 누림의 조건을 보면서 쉽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삶입니다. 누가 이 선택의 기준에서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우리 성도님이 결혼을 하려고 하는데 두 사람의 상대가 생겼습니다. 두 분 다 경제적으로 원만하고, 신앙도 있고, 신체 건강한 남자입니다. 조건이 비슷합니다. 그런데 한 분은 시어머니를 모시며 살 집입니다. 한 분은 시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두 분이 자유롭게 살면 됩니다. 인생이 달라지는 중대한 결단의 순간입니다. 누구를 택하겠습니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자매들을 모아 놓고 성경 공부를 시키던 목사님이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신 이래 '가장 행복한 여자' 는 누구일까요? 라고 물었답니다. 두 사람만 예를 들어 보십시오. 그러자 자매가 말했습니다. "하와와 마리아" 입니다. 목사님께서 왜 그렇습니까? 물으니 그 자매가 “하와는 시어머니를 모신 적이 없었고 마리아는 며느리를 본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잘 누리는 쪽, 편안히 누리는 쪽, 부담없이 누리는 쪽, 고생하지 않고 누리는 쪽을 선택합니다. 


2. 이룸을 택하는 결단(1-3, 5-7)

한 한달 전에 아는 목사님께서 미국에 장년 한 300여명 교인이 출석하는데 그곳에 와서 목회할 생각이 없느냐고 제안이 왔습니다. 편하게, 쉽게, 누리면서 목회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제안이 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는 천 명, 만 명이 나오는 교회에서 청빙한다 해도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안락한 누림보다는 조금 힘들고 고달파도 이룸을 좋아하는 목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 이 교회에서 이룰 것이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양심과 이성, 윤리 의식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누림을 택하지 않습니다. 순간적으로 앞뒤 안 가리고 누림 쪽을 택했다가도 갈등이 생기는 것입니다. 

신문에 보니까 누림을 보고 선택했다가 29세 자매가 결혼한 지 1 개월 만에 헤어졌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 집에 들어가면 남자가 가지고 있는 것을 “충분히 누리겠지”하고 2월에 선보고, 3월에 약혼, 7월에 결혼, 8월에 이혼을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어떤 선택에 있어서, 어떤 결단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을 물어 보고 결단해야 합니다. 야곱은 누림을 따라 무작정 출발했다가 브엘세바에 와서 하나님께서 가나안을 버리고 애굽으로 이민을 가기를 원하시는 지를 물어 보게 됩니다. 이런 갈등이 있다는 것이 바로 신앙인이라는 증거입니다.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시어머니 안모시고 편안히 사는 집을 택할 것인지 시어머니 모시더라도 어려운 집을 택할 것인지 고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는 뜻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어려운 직장에 들어가 이룰 것인지 큰 기업에 들어가 누릴 것인지? 이루는 배우자와 결혼할 것인지 누리는 배우자와 결혼할 것인지? 이사하여 이루는 교회를 다닐 것인지 누리는 교회를 다닐 것인지? 믿음의 사람은 고민하는 것입니다. 이런 고민과 갈등 앞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야곱을 보십시오. 야곱은 중대한 결단을 하는 순간에 아무 생각 없이 아들을 보고 싶어, 기근을 회피하고 누림을 위해 애굽 행을 결단하고 50km를 왔지만 이제 국경선에 와서는 국경선을 넘어가지 않고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야곱이 거주했던 헤브론에서(37:14)서 언약의 우물이라는 뜻을 가진 브엘세바까지는 약 서남쪽으로 50km 쯤 되는 애굽으로 가는 최남단 마을이라는 것입니다. 

이곳은 할아버지 아브라함(21:33)과 아버지 이삭(26:25)이 상당 기간 동안 머물면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던 곳입니다. 이곳에 와서 제단을 쌓은 것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을 통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애굽으로 이주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한 번 애굽 땅으로 들어가면 인생이 달라질 텐데 그저 하나님의 뜻과는 맞지 않을 수도 있는 “누림”을 위해서 가는 것이 부담이 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가나안 땅은 약속의 땅입니다. 말씀을 풍성하게 받았던 땅입니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에게도, 아버지 이삭에게도, 자신에게도 약속한 땅입니다. 조부 아브라함이 기근으로 그 땅을 떠나 애굽에 갔다가 애굽에서 큰 위험에 빠질 뻔한 일이 있었습니다(12:14-20) 부친 이삭에게는 애굽 이주가 금지된 적이 있었습니다(26:2). 그러니 살기 좋고, 먹을 것 많고, 대접받을 수 있다고, 손자들 교육 보장되고 한다고 해서 쉽게 떠날 수 있는 형편이 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물어 보았을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밤 즉시 응답해 주었습니다. 그 밤에 하나님이 이상 중에 나타나셨습니다. 꿈속에 나타나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지 3절 말씀을 보십시오. 오늘 이 말씀이 “누림과 이룸”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는 저와 우리 성도님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하나님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이니 애굽으로 내려가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창 46:3)”

여기서 중요한 말씀은 “내가 거기서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라는 말씀입니다. 밑줄을 그어 놓고 마음에 담으시길 바랍니다. 지금 누림과 이룸 사이에서 갈등하고 계시는 성도님이 계시면 이 시간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명쾌한 응답으로 받으시길 바랍니다. 안주와 모험 사이에서 갈등하고 계시는 성도님 계시면 이 말씀이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이룸도 나의 이룸이 있습니다. 사탄의 이룸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이룸이나 사탄의 이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루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끝까지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데 인생을 바쳤습니다. 그리고 다 이루었다고 십자가에서 고백했습니다. 다윗도 자기 일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런 방법이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방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왜 나는 이런 집에 시집와서 이런 고생을 하느냐? 왜 나는 이런 교회에 다니면서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하느냐? 왜 나는 이런 회사에 들어와 누리지 못하고 고생만 하느냐?” 이런 마음이 있다면 이 말씀을 마음에 하나님 말씀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애굽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야곱을 향하여 애굽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고민하며 망설이지 말고 애굽으로 담대히 내려가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 애굽에서 야곱을 통하여 큰 민족을 이루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큰 민족을 이루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벧엘에서 언약(28:14)해 주었습니다. 이후 거듭 약속(35:11)해주었습니다. 야곱은 그것이 가나안 땅에서 이루어 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애굽에서 그 약속을 이루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이룸에 동참하라는 것입니다. 그 때 야곱은 어떻게 합니까? 

5절부터 7절까지를 보십시오. 즉시 그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합니다.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납니다. 홀로 떠난 것이 아닙니다. 6절을 보십시오. 다함께 애굽으로 떠납니다. 야곱과 그 자손들이 다 함께 떠났습니다. 자부(子婦) 외에 66명입니다(26절). 자부들과 종들이 상당수가 되었을 것입니다. 70명보다 훨씬 많은 수였을 것입니다. “다함께, 모든 자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돌아 올 것 생각하고 사람을 남겨 놓지 않고 믿음의 결단을 하고 떠났다는 것입니다. 자신을 통한 하나님의 이룸에 전적으로 순종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가나안 시대를 접고 애굽 시대를 펼쳐가는 하나님의 이룸에 온 가족이 동참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 약 215년이 경과한 때입니다(12:4). 이미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약속이 야곱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창15:13-14)” 하나님의 약속은 일점 일회도 변함이 없이 정확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때 야곱의 나이는 130세입니다(47:9). 이 나이에 그냥 적당이 누리고 살아야 하지 하나님의 이룸에 뭐 동참하겠느냐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브라함도 75세에 하나님의 이룸에 동참하였습니다. 모세도 80세에 하나님의 이룸에 동참하였습니다. 갈렙은 85세에 소원의 산지를 바라보며 정복했습니다. 여호수아는 80세가 넘어서 가나안으로 들어가 그 땅을 정복하였습니다. 윈스턴 처칠은 76세 때에도 수상에 다시 올랐고, 78세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시바이처는 77세에도 선교 사역을 감당하였고, 77세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습니다. 맥아더 장군은 70세에 주한 유엔군 사령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리고 찰즈 맥코이 목사는 71세에 선교사가 되어 86세에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15년간을 중국의 아편 중독자들을 위하여 사랑을 쏟았던 것입니다. 타티안은 98세에 그의 거작 "르판트의 전쟁"을 그렸으며 미켈란젤로는 80이 넘어서 그의 대작을 만들어 냈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룸에는 나이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룸에 동참할 수 있는 것은 얼마든지 많이 있습니다. 위대한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는 80세에도 여전히 명작을 그렸는데, 하루에 12시간씩 일했다고 합니다. 

인상주의 이후 최고의 화가라고 할 수 있는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는 90세가 넘어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렸습니다. 20세기 가장 위대한 첼로 연주자인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 1876~1973)는 97세의 나이로 죽는 그날에도 새로운 곡을 연주할 계획을 세웠고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이룸이 남아 있는 한 80도 청춘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이룸에 동참하고자 하는 대한 강인한 의지, 풍부한 상상력, 불타는 열정이 있다면 청춘입니다. 세월은 우리의 주름살을 늘게 하지만 복음에 대한 열정을 가진 마음은 시들지 않습니다. 고뇌, 공포, 실망 때문에 안주와 누림의 땅으로 들어가면 마음은 시들어 버립니다. 

경제가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흑자 부도의 순간입니다. 70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이고 살아야 하는데 먹을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이룸에 동참하지 못합니까?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어느 권사님은 믿지 않는 가난한 집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시집갔다가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이룸을 합니까? 온 가족을 변화시킵니다. 자식들을 박사 만듭니다. 일가친척들을 예수 믿게 만듭니다. 남편을 도와 사업을 크게 번창시킵니다. 야곱이 가나안을 떠나니까 가나안을 패역한 땅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출애굽 하여 가나안을 정복할 때는 가나안 사람들을 진멸하라고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이룸을 이루는 주인공이 가는 곳이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의 이룸을 이루는 사람이 복덩어리인 것입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가는 곳마다 형통케 합니다. 

우리는 내 생각으로 하나님의 뜻을 제한하지 말고 하나님의 이룸에 동참하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누림에 매혹되어 이룸을 회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야곱은 누림을 생각하고 떠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의 애굽 이주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은 누림을 목적으로 사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룸에 평생 동참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이룸 속에서 누림은 선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결혼을 앞에 둔 자매가 시집 가서 어떻게 누려야 할 것을 생각하기 보다는 시집에 가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룰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직장 선택을 앞에 둔 사람이 직장에 가서 어떻게 누릴 것보다는 그 직장에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이루어 드릴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교회 선택을 앞에 둔 사람들은 그 교회에 가서 어떻게 누릴 것인가 보다는 그 교회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까를 선택해야 합니다. 

3. 이룸을 택한 결단에 대한 하나님의 보증

이렇게 누림보다는 하나님의 이룸에 동참을 하면 우리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 주십니까?
4절을 보십시오. 세 가지 약속을 해 주십니다. 

첫째가 '내가 너와 함께 애굽으로 내려 가겠다.'는 것입니다. 큰 민족을 이루는데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동행 이룸의 관건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것을 이루려면 자본과 인재, 기술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들이 있을 때 이룰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동행 여부입니다. 어떤 일을 이루는데 자본이 없다고 인재가 없다고 두려워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동행하지 않는 것이 더 두려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동행하지 않는 것은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고 자본만 없다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요셉의 이룸도 하나님이 함께 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이룸도, 모세의 이룸도, 바울의 이룸도 하나님이 함께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말아야 합니다. 야곱 홀로 큰 민족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애굽에 내려가서 큰 민족을 이루겠다는 것입니다. 나 중에 큰 민족을 이루지 못하도록 얼마나 바로가 핍박을 합니까? 남자 아이들을 죽입니다. 노예 삼아 핍박합니다. 그러나 야곱의 후손들이 소멸되었습니까? 아닙니다. 60만 대군이 되었습니다. 200백만이 넘는 큰 민족이 되었습니다. 작은 출발이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이런 역사가 우리 가정과 우리 사업터와 우리 교회에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이런 이룸이 이루어 집니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욥8:7)”라는 이룸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작은 자가 천을 이룰 것'(사 60:22)이라는 이룸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홀로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함께 가는 길입니다.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다 대속하시고 돌아가신 우리 주님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20)” 이룸에 두려워하고 지치신 성도님 계십니까?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보십시 바랍니다.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고 언제나 공평과 은혜로 나를 지키셨네 오 신실하신 주 오신실하신 주 내 너를 떠나지도 않으리라 네 너를 버리지도 않으리라 약속하셨던 주님 그 약속을 지키사 이후로도 영원토록 나를 지키시리라 확신하네”

우리 하나님 함께 하는 길이라면 어떤 고달픈 이룸의 길이라도 외롭지 않습니다. 두렵지 않습니다. 가나안에만 계신 것이 아니라 고난의 현장 애굽에도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이룸에 동참할 때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는 '반드시 너를 인도하여 다시 올라 올 것이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미래가 보장된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미래의 보장입니까? 사람들이 누림에 안주하고 이룸에 도전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확실한 미래가 보장된다면 누가 누림에서 안주하겠습니까? 이룸을 위해 신앙적 모험을 합니다. 도전을 합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이룸을 위해 부르실 때 늘 우리를 보장해 주신다고 약속해 주고 있습니다. 민족 해방이라는 하나님 나라의 이룸을 위해 동역자로 모세를 부르실 때 모세가 못하겠다고 거절합니다. 계속해서 거절합니다. "그들이 저를 믿지도 않고 제 말을 듣지도 않으며 여호와께서 제게 나타나시지 않으셨다고들 말할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 때 하나님이 기적을 일으켜 주시면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출4:12)”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죽고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 때 하나님 두려워하는 여호수아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십니까?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수 1:8)” 미래의 길을 보장해 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우리의 미래를 보장해 주면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우리는 조금 힘든 과정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순종하는 길은 어떤 결과가 나와도 실패가 아닙니다. 순종이 성공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일은 확실하게 보장된 내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과정을 거치지만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것을 너를 통해 하나님 스스로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애굽으로 인도하셨고 약속대로 출애굽 시켰습니다. 하나님의 열심히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일을 이루게 하십니다. 우리는 이룸에 있어서 내 계획보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따르면 됩니다.

셋째는 '요셉이 그의 손으로 네 눈을 감기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룸의 삶에 동참할 때 웰빙 뿐 아니라 웰 다잉을 보장해 주십니다. 이는 야곱이 객사하는 것도 아니고 전쟁으로 죽는 것도 아니고, 애굽 사람들의 모략으로 사약을 받는 것도 아니고 그가 그렇게 사랑했던 아들 요셉을 보고 평안히 살다가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편안하게 죽음을 맞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유대인은 자식들 앞에서 죽는 것을 복으로 생각했습니다. 복스러운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영원한 천국을 사모하며 죽게 되고 죽음 후에 영원한 천국 잔치에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웰빙과 웰다잉에 대한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이룸에 동참한 마지막 인생의 누림에 대한 약속입니다. 천국에 가면 이 땅의 이룸에 대하여 결산할 때가 옵니다. 그 때 잘했다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 주어진 달란트, 건강, 시간 하나님 나라의 이룸을 위해 쓰임받아야 합니다. 

어느 부자가 죽을 때가 되어 하나님께 자기 재산을 천국으로 가져가겠다고 졸랐답니다. 계속 조르니까 하나님이 "한 가지 조건이 있다. 네 재산을 가져오되 가방 하나에만 가져와야 한다"라고 했답니다. 부자는 자기 재산을 모두 팔아 금으로 바꾼 뒤 기분 좋게 천국문에 들어섰답니다. 베드로가 소지품은 가지고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자 부자는 하나님께 허락받았다고 주장했답니다. 베드로가 가방을 열어보더니 깜짝 놀라는 것입니다. "아니 도로포장 재료를 무엇 하러 이렇게 잔뜩 가져오셨습니까?"

천국은 길이 황금길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죽음도 눈물도, 고통도 한숨도, 갈등도, 질병도 없는 영원한 천국에서 누림을 누려야 합니다. 천국은 이룸이 없습니다. 누림만 있습니다. 사람의 누림과 이룸도 언젠가는 다 끝이 납니다. 어떤 누림을 했든 어떤 이룸을 했던 끝이 좋아야 합니다. 우리 신앙인의 끝은 죽음이 아닙니다. 죽음 후 영원한 생이 있습니다. 그 때 주님 앞에 설 때 잘했다 칭찬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이룸은 결국 영원한 천국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합니다. 이 땅의 삶을 상급의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이룸을 위해 흘린 눈물 우리 주님께서 다 닦아 주실 날이 올 것입니다. 

“초가 삼간도 나는 만족하네 값진 재물도 내겐 없지만 앞으로 내가 하늘나라에 가면 순 홤금길 을 거닐겠네 내게는 저 하늘위에 집이 있네 영원한 기쁨 넘치는 그곳 언젠가 내가 빛난 천국이르러 주님과 함께 거닐겠네” (김필곤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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