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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교회(3) (요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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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3) (요 20:21) 


지난 금요일 청년회 수련회장을 방문했다. 쪽지의 질문에 답변하는 시간으로 진행하는 중에, 이런 질문이 있었다. ‘목사님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적으로는 가족을 가장 소중히 여긴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가족을 뛰어 넘어서 목회자로서 최고의 가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이다. 

교회에 대하여 바르게 잘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신자들의 영적생활은 교회를 통해서 이뤄지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교회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신앙의 기초를 튼튼히 하는 것이다. 교회를 잘 모른다는 것은 기초 없이 집을 짓는 것과 같다. 이번 기회에 교회에 대해서 바르게 잘 이해하고 정리할 수 있기 바란다. 

1. 교회란 무엇인가? - 교회의 정의

1)부름받은 성도들의 모임 2)그리스도의 몸 3)성령의 전

2. 교회란 무엇인가? - 교회의 존재 목적 5가지

1) 예배를 위해 존재한다. 
2) 성도 간의 교제를 위해 존재한다.
3) 성도들을 교육하고 훈련하기 위해 존재한다. 
4) 각자의 받은 은사를 따라 섬기기 위해 존재한다
5)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상의 5가지 기능과 역할이 잘 이뤄질 때 건강한 교회로서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

엡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오늘은 세 번째로 교회의 본질에 대하여 증거하고자 한다. 
본질이란 말은 어떤 물질이 가지고 있는 본래적인 성질을 말한다. 다른 말로 속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교회는 교회만이 갖고 있는 특성이 있다. 

조직신학자 루이스 뻘콥은 교회의 본질에 대하여 3가지를 말하고 있다.
1) 통일성 -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시며 모든 신자가 그의 몸이 되는 신비적 지체이다.
2) 거룩성 - 교회는 세상과 구별되고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성전이다.
3) 보편성 - 교회는 모든 시대와 족속을 다 포함하는 신자들의 모임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 교회의 본래적 특성 중에 가장 중요한 요소를 간과하고 있다. 그것은 사도성인데 로마 카톨릭교회에서 오용하고 있기 때문에 제외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본래적 의미로 사도성이란 사도적 교회를 의미한다. 곧 교회는 사도들이 고백하고 증거한 복음의 터 위에 세워졌다는 것이다. 

이상의 네 가지 속성들은 다 중요한 요소들이지만 그 중에서 제 4요소인 “사도성”은 교회의 존재 목적 중 선교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오늘은 교회의 사도성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사도성이란 무엇인가?

“사도성”에 대하여 알려면 먼저 “사도”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사도”는 예수님의 12제자들을 가르킨다. “사도(使徒)”라는 말은 “보냄을 받은 자”란 의미이다. 

요 20:21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인간 세상에 보내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계획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보내심을 받았다라는 입장에서 보면 예수님도 사도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셨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보내셨다. 

마 10:5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

그렇다면 예수께서 제자들을 보내신 목적이 무엇일까? 무작정 보내셨을리 없을 것이다. 영혼구원을 위해, 전도를 위해서 내보내셨다. 그리고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시는 것이었다. 

마 16: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이 세상에 처음 교회를 세우시기 위한 구체적 사건이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이다. 예루살렘에 교회가 세워졌고, 성령충만과 방언을 받은 제자들은 각 나라로 흩어져 복음을 전했고 그로말미암아 도처에 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이다. 

사도들의 전파와 사도들의 신앙고백의 터 위에 교회가 세워졌을 때 그 교회를 사도적이라 말할 수 있고, 사도성이 있는 교회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교회라고 다 같은 교회가 아니다.

엡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이런 입장에서 교회는 철저히 사도적이어야 한다. 만약 교회가 사도성을 상실한다면 그 교회는 더 이상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주님의 교회는 아니다. 사도성은 이 땅에 세워진 교회가 참된 주님의 교회인가 아닌가를 구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2. 사도직의 계승에 대하여 - 누가 사도직의 계승자인가?

사도에 대한 임명권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시다. 예수님께서 직접 불러 내셔서 훈련시키시고 다시 보내신 자만이 사도다.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로는 사도직은 그쳐졌다. 그래서 사도와 선지자를 교회의 기초 직원이라 한다. 예)사도 바울의 사도성 문제.

천주교에서는 교황이 사도직의 계승자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은 성경적이지 않다.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사도의 교훈과 사역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면 오늘날은 누가 사도적 계승자가 될 수 있는가? 놀랍게도 천주교의 유명한 교회학자인 한스 킹이라는 분이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도직의 계승은 소수의 개인이 아닌 전 교회가 그 계승자이다. 교회는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여 세상으로부터 불러 모은 하나님의 새 백성이다. 그러므로 모든 교회는 사도들의 터 위에 세워진 성령의 전이며 모든 교회는 사도들의 사역에 의해 하나를 이룬 그리스도의 몸이다.”

이 말은 정확하게 성경적이다. 그리고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 말이다. 
교회는 누구나 구별 없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백성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사도의 계승자가 되기 위해 어느 한 사람이나 어느 특정한 그룹이 나설 수 없다는 것이다. 목사나 신부만이 사도적 계승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성직자나 평신도를 가릴 것 없이 교회에 소속된 모든 성도는 사도적 계승자로서의 자격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사도성이 변질되어 갔다. 초기 교회시대에 사도들이 감당했던 일들, 곧 설교하고, 말씀을 가르치고, 전도하는 일은 목사님이나 전도사님들만이 하는 일로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말씀을 선포하는 강단을 거룩하게 구별된 영역으로 알고 올라가기를 꺼려한다. 

그 원인은 중세 로마천주교가 성직과 평신도를 구별해 놓았기 때문이다. 성도들을 예배만 드리고 돌아가는 자요, 헌금하는 자요, 교회의 잔 일 처리하는 자로 만들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골3: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것이 초대교회 평신도들의 모습이다. 오늘날 교회가 힘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세상에서 밟히는 이유는 신앙생활을 부담감 없이 가볍게 즐기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사도적 계승자로서의 사명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역으로 오늘날 교회가 제대로 힘을 발휘하고 그 역할을 감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교회의 구성원인 성도 한 사람 한 사람 자신이 사도적 계승자임을 알고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교회는 소수의 직분자들에 의해 힘겹게 지탱되어 질 것이다.
바로 나 자신이 사도들의 계승자임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3. 교회가 사도적 계승자로서의 역할은 무엇인가?

1) 사도들의 교훈을 계승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도들의 신앙과 고백을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사도들의 순교적 신앙과 순수한 고백이 사도행전과 서신서에 기록되어 있다. 사도들은 주님과 함께 살았고, 주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으며, 주님의 능력을 목격하였고 경험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그 글들을 읽을 때 마음이 뜨거워지며,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되며 헌신을 다짐하게 된다. 
사도들의 교훈은 우리의 영혼을 살찌게 하며 헌신하게 한다. 다른 교훈이나 계시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오늘날 일부 극성신자들의 신앙이 변질되는 것은 사도들의 교훈을 따르지 않고 직접 계시를 받거나 더욱 신비한 체험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매일 새벽마다 사도신경을 암송할 때 마음이 뜨거워짐을 느낀다. 1세기의 사도들이 고백했던 그 신앙을 2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똑같이 고백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격스럽게 하는지 모른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이 많은 핍박과 공격 속에서도 지켜온 이 신앙의 유산을 잘 간직해서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 주어야 할 것이다. 예)청년들과 학생 어린이들에 대한 영적 계대.

한국의 대부분의 교회는 사도들의 신앙과 교훈을 잘 간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독교 2000년 역사가 흐르는 동안에도 변질되지 않고 잘 유지되고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요즘 한국교회 일부 자유주의적이고 진보적인 성향의 사람들이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고, 이혼과 동성연애를 합법화하고 장려하는 행위는 결코 사도들의 교훈이 아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세속주의에 불과한 것이다. 예)WCC 부산대회

사도들의 교훈을 계승하고 있는 비결은 신앙의 기본을 사수하는 것이다. 성실하게 예배에 참석하고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이다. 그리고 매일 매일 하루의 시작을 사도들의 신앙고백으로 시작하면 사도들의 신앙과 교훈을 계속 유지해 나갈 수 있다.

2) 사도들의 사역을 계승하는 것이다. 

사도들의 또 하나의 핵심 사역은 복음전파하는 일이다. 사도들이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하고, 봉사를 많이해도 복음전파하는 일을 소홀히 하면 사도가 아니다. 사도의 주 사역은 복음전파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 그들에게 사명을 주셨다. 

마 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그러나 제자들은 사명을 감당할 용기는 없었다. 그러나 오순절날 성령이 임하신 후 그들은 달라졌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사도들의 사역은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지는 사역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모순은 사도적 사역이 변질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도적 사역은 특별한 계층의 사람들만 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목사, 선교사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 차별 없이 부여된 사명이다. 스테픈 닐이라는 교회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 
“교회가 존재하게 된 중요한 한 가지 목적은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있다. 그 외에 속한 모든 것 - 봉사, 성례, 교리, 예배- 은 이 목적을 위한 부수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관심이 무엇이며, 예수님의 관심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왜 나를 구원하시고 왜 나를 교회의 한 구성원이 되게 하셨는가에 대한 바른 인식이 있어야 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세상에 세우신 하나님 나라의 분소와 같은 곳이다. 교회가 사도적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닌 것이다. 

오늘날 소수의 몇 사람에게만 부담지우고 나머지 대다수의 성도들은 무관심하고 있는 것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70인의 전도대가 돌아왔을 때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눅 10: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이르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옥한흠 목사님은 그의 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복음의 증인되기를 포기한 교회가 그 영력을 쉽게 상실하는 경우를 자주 보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가장 큰 뜻에 대한 복종과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바라보는 소망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사도성을 상실한 현대 그리스도인

사명감 없는 군인들은 밥그릇 수만 헤아리고 앉아 있다. “이제 200그릇 남았다.” “국방부 시계는 왜 이렇게 안가냐?” 그런 병사가 전투에 참가했다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겠는가? 

부산과 진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 사람도 별로 살지 않는 어촌, 남전도회의 사업이 개키우고, 여전도회의 사업이 김과 젓갈 판매해서 목사님 생신 선물하던 교회, 25명 정도 모이던 어촌교회가 지금은 2천여명이 출석하는 교회가 되었다. 그 교회의 핵심 사역은 제자훈련과 전도였다. 그러니까 사도적 사명을 충실하게 잘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그 지역사회를 변화시키고 구원의 방주 사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었다. 

가유삼성(家有三聲)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잘 되는 집안에는 3가지 소리가 들린다는 뜻이다. 첫째는 해성(孩聲), 둘째는 기성(機聲), 셋째는 독성(讀聲). 교회 안에서 이 세 가지 소리가 들려야 한다. 기성 독성 소리가 커도 해성이 없으면 그 집안에 소망이 없다. 

모이는 일에 힘써야 할 뿐 아니라 새신자들이 늘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새벽마다 기도하는 제목이 하나 더 늘었다. ‘하나님, 내년에는 세례 받는 숫자가 100명 넘게 해주세요.’ 교회를 10년 넘게 다녀도 한 명도 세례 받도록 하지 못했다면 주의 말씀에 불순종한 것이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구원을 주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고, 예수님은 사도들을 보내셨고, 사도들은 교회를 세웠고, 교회는 사도적 사명을 부여받은 계승자들이다. 우리는 단순히 예배꾼이 아니다. 

내 자신이 바로 교회요. 사도적 계승자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나의 관심과 주님의 관심이 같은가? 세상을 향하여 보냄을 받은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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