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광복절] 한국 정치사와 기독교 (행 1:1-3)

  • 잡초 잡초
  • 376
  • 0

첨부 1


한국 정치사와 기독교 (행 1:1-3)


오늘은 8·15 광복절이면서 주일이 되었습니다. 5천년 한반도 역사 가운데 가장 슬픈 날과 가장 기쁜 날 하나씩 선택해 보라면 가장 슬픈 날은 식민지로 선포되던 그 날이 가장 슬픈 날이요, 기쁜 날은 그것이 해방된 8·15 이렇게 두 가지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후 그 세상을 인간들에게 맡겨주셨습니다. “내가 이렇게 잘 만들어놓았으니 관리는 너희들이 해서 행복하게 살아라.” 창세기에 천지창조 순서를 보면 모든 것을 다 창조하신 맨 나중에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 뜻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만들어놓으신 후에 인간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만하면 넉넉하다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7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 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 하늘의 새,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말은 관리를 뜻하는 말입니다. “네가 관리를 잘하면 네가 행복할 것이요 네가 관리를 잘못하면 네가 불행해 진다.”는 뜻입니다. 

지금도 교회는 ‘청지기’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관리자’라는 말입니다. 국가 청지기를 맡은 사람이 국가 관리를 잘하면 국가가 행복해 질 것이요, 교회 청지기들이 교회 관리를 잘하면 교회가 행복하여 집니다. 나 자신의 관리 책임자도 나 자신입니다. 자기 관리를 잘하는 사람은 행복하여 지고 자기 관리를 잘못하면 불행해 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른 모든 창조물과 인간 창조는 차별화 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영적 존재로 창조하셔서 관리할 수 있는 하나님과 같은 능력을 주심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잘 관리하는 존재로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지금 세상은 선진국이 있고 후진국이 있고 풍성하게 잘 사는 민족이 있는가 하면 빈곤에 허덕이는 민족도 있습니다. 관리자가 누구였는가에 따라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저는 아프리카 땅이 앞으로 기회의 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는 ‘아프리카’ 하면 굶주린 영양실조의 아이들이 떼로 모여서 먹을 것을 달라는 그림으로 인식되어져 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아프리카를 찾아갔을 때 놀란 것은 땅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가끔 ‘동물의 왕국’이라는 TV 프로그램에서 보듯이 가도 가도 뛰어도 뛰어도 끝없이 넓은 평온의 땅이 아프리카입니다. 치타가 뛰는 속도는 시속 90km입니다. 우리들이 고속도로에서 달리는 자동차만큼 빨리 뜁니다. 먹이를 잡기 위해서 그 치타가 쫓아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뛰고 또 뛰어도 끝이 없는 그 넓은 평온의 땅은 대한민국에는 한 군데도 없습니다. 수만 마리의 동물들이 떼를 지어서 뛰어도 뛰어도 끝이 없는 평온의 땅이 아프리카인 것을 봤습니다. 

그런데 왜 아프리카는 그 좋은 땅에서 빈곤의 대명사 같은 취급을 지금까지 받아왔습니까? 관리가 문제입니다. 누가 관리자였으며, 누가 다스리고 누가 정복했느냐가 문제가 됩니다. 50년 전만 해도 아라비아 사막은 지구상에서 가장 버림받은 땅이라고 우리가 배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에서 부의 상징으로 변했습니다. 그 아무짝에도 쓸모없던 두바이 모래벌판이 지금은 세계의 꿈이 되었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좋은 칠성 호텔이 거기 있습니다. 바다 위에 떠있습니다. 저는 그래도 그 호텔 마당은 밟아 봤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세계 부자들이 모두 예약하는 꿈의 궁전이 되었습니까? 바로 관리를 잘했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셰이크 무하마드라고 하는 서구 사회에 가서 공부한 지도자 하나가 꿈을 실현시킨 것이 두바이입니다. 

요즘 중국이 갑자기 세계 정상의 자리를 넘보도록 발전했습니다. 제가 중국에 가서 대학 교수들과 수없이 만났지만 등소평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훌륭한 지도자 한 사람의 생각이 방향 제시를 훌륭하게 함으로써 한 나라가 변해버린 겁니다. 싱가포르는 아시아에서 제일 작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제일 발전한 나라가 싱가포르입니다. 리콴유 지도자 때문입니다. 남아프리카의 민주화는 만델라 때문입니다. 누가 방향 제시를 어떻게 했느냐 하는 관리에 따라서 결정된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 입장에서 보면 한반도의 불행이 하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너무 늦게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중국도, 일본도 한국보다는 일찍 들어왔습니다. 만약 한국의 기독교 역사가 5백년만 되었다 해도 일찌감치 한국이 세계무대에 들어왔을 것입니다. 이유는 세계를 변화시키는 앞서가는 문명이 서구 문명인데 서구 문명이 기독교 문명이기 때문입니다. 

왜 기독교 복음이 들어가는 곳은 그렇게 훌륭한 발전이 이루어졌는가? 창세기에서 이유를 찾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엿새 동안 힘써 네 모든 일을 하고” 일하는 철학입니다. 기독교는 사람을 부지런하게 만듭니다. 절대 게으른 백성이 되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 잠언에 보십시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배워라. 게으름은 곧 죄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렇기 때문에 새벽 기도를 합니다. 새벽 4시면 모두 일어납니다. 하나님이 주신 시간과 건강, 지혜를 최대한 활용하도록 촉구하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복음이 들어가는 나라는 모두다 경제 발전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된 것입니다.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일의 신성을 강조하는 신학의 기초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직업관이 예수 안 믿는 사람과 다릅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어떤 일이든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믿으면서 일을 합니다. 이것이 칼뱅 신학입니다. 농사를 짓는 것도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직업이요 장사를 하는 것도 하나님이 주신 성직이라고 직업관을 정리합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사람과 하나님이 주셨다고 기뻐하면서 하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차이가 납니다. 이것은 세상에서는 천직 개념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일을 해서 얻은 열매를 내 노력의 결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말합니까? 하나님이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내가 피땀 흘려 얻은 수입을 놓고도 하나님이 주셨다고 정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서 나눔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잘 나누어주는 나라가 부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잘 나누어주는 교회는 계속 부흥합니다. 나누어주는 손은 하나님이 그 손을 더 풍성하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가난한 자를 부하게 하는 자는 부하여 질 것이요 흩어 구제하여도 부하게 되나니” 예수 그리스도는 주다가, 주다가 나중에는 자신의 몸까지 인류에게 구원의 선물로 주셨습니다. 

며칠 전 한국 뉴스에 나왔습니다. “인류의 최고 갑부 40명이 자신들의 재산 50퍼센트를 사회에 나누어 주겠다.” 삭개오가 예수님 앞에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겠사오며” 하는 것과 똑같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은 못살게 됩니까? 아닙니다. 더 잘 살게 되잖아요? 패러독스 진리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 갈보리교회는 목표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내신 헌금의 50퍼센트를 나누어주자. 세계 선교비로 지출하자.” 현재 43퍼센트입니다. 거의 달성되어 가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복음은 살 길을 열어주는데 영생뿐만이 아닌 지상의 행복도 약속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됩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기독교 복음에 확산되어지는데 있었던 몇 가지 정치적 사건을 조명해 보는 것이 오늘 같은 날 좋은 일인 줄 압니다. 어느 나라도 마찬가지로 복음의 역사는 핍박과 함께 시작이 됩니다. 우리 한반도 역사도 똑같이 핍박이 기독교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우리 개신교 최초의 선교사는 영국의 토마스 목사인데 미국상선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한국 땅에 내렸는데 내리자마자 죽었습니다.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그때 나이 26살이었고 개신교 최초의 순교자가 된 것입니다. 그 후로 계속해서 한반도에서는 기독교 복음의 역사가 계속 핍박의 역사였습니다. 제2한강교 지나가다 보시면 절두산이라고 예배당이 지어있습니다. 거기 끌어다놓고 목을 쳤는데 머리는 강으로 떨어지고 시체는 그대로 남아있었기 때문에 절두산인 것입니다. 

이러한 핍박이 계속되다가 기독교에 밝은 아침이 온 사건이 생겼습니다. 갑신정변이라는 역사입니다. 1880년대 우리 사회는 두 가지 흐름이 생겼습니다. 민씨 정권의 수구당파와 김옥균을 중심으로 하는 급진개혁파가 생겼습니다. 고종 21년의 개혁파가 이 수구파의 우두머리들을 죽여 없애려고 일으킨 정변이 갑신정변인데 개화파가 졌습니다. 그래서 김옥균이 일본으로 망명을 떠났습니다. 

이 정변의 과정에서 수구파의 우두머리인 민영익이 칼을 맞았습니다. 민영익은 명성황후의 조카인데 거의 죽을 지경이 되어서 피가 철철 흐르는데 누구도 살려낼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미국 장로교에서 서울에 와 있는 알렌 의료선교사가 민영익이 누워있는 방에 들어갔습니다. 지혈제를 놓고 압박 붕대를 감아놓으니까 민영익은 거뜬히 회복이 되었습니다. 

고종과 명성황후는 이때 알렌에 대한 고마움과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살아난 민영익은 돈 10만 냥을 만들어서 알렌 의사 선교사를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 고종은 알렌이 가지고 있는 훌륭한 기술을 이 나라에 보급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알렌은 민영익이 갖다 준 10만 냥의 돈을 가지고 이 나라 최초의 병원 광혜원을 세워서 오늘의 세브란스 병원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핍박 받던 기독교는 고종의 선언을 얻어냈는데 “누구든지 이 나라에서 이렇게 봉사적인 훌륭한 종교, 기독교 진리의 보급을 방해하지 말라!” 왕이 명령해 버리니까 그때부터 이 나라는 복음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되었습니다. 

이때 개화당의 인물 윤치호, 서재필 같은 국가적 지도자급 사람들이 미국으로 망명을 갔다가 거기서 기독교인이 되어서 그들의 고국 귀환은 이 나라 복음 전파에 활발한 활력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잘 나가는 줄 알았는데 기독교는 또다시 핍박의 시기를 만나게 됩니다.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지금도 가끔 교계의 문젯거리가 되고 있는 식민지 시대의 잔재가 있습니다. 신사참배입니다. 지난번에 물러난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신사참배 문제는 한국과 중국의 항상 시빗거리로 계속 떠들었습니다. 일본 사람이 일본에서 자기들 문화에 맞는 일을 하겠다는데 왜 한국과 중국이 야단치고 있는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일본 총리가 과거 동남아를 피로 물들인 전범들을 영웅으로 숭배한다면 그 침략을 정당화 하는 것이 일본의 양심이냐?” 그래서 난리를 친 것입니다. 이번에 일본 내각은 오늘 신사 참배 안하기로 결정했다고 방송했습니다. 그 신사 참배가 바로 한반도에서는 우상 숭배 개념화 되어서 기독교 십계명과 정면충돌을 하는 바람에 교회에 가장 큰 피해가 된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 교계에 큰 존경을 받으시는 원로급 목사님들도 이 문제는 거의 자유롭지 못합니다. 과거 노무현 정부 때 친일파 작업을 했습니다. 교계가 신경을 곤두세웠던 일은 “그러면 일제 강점기 때 신사 참배한 목사님들은 친일파로 규정할 것인가?” 이 문제였습니다. 

이 문제는 기독교에 결정적 타격을 주는 핍박 역사로 나타나서 수없이 많은 희생자가 생기는데 이 문제 해결이 바로 8·15 해방의 문제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유난히도 독립 운동에 앞장섰던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3·1 운동 때 민족 지도자 33인 중에 기독교 지도자가 16명이었습니다. 그 유명한 유관순도 왜 그렇게 나섰는가?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모든 교인들은 이 8·15는 우리 국민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누구든지 고백을 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을 하는가? 이유가 있습니다. 8·15 해방은 우리 국민의 자력적 노력으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아시아를 정복한 일본은 미국의 태평양 진출을 막아야 된다는 정치 철학으로 미국과 전쟁을 선택합니다. 야마모토 이소로쿠 사령관의 진주만 공격 때만 해도 일본이 이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일본이 패하고 미국이 승리했습니다. 미국과 일본의 전쟁에서 일본이 지는 바람에 한반도는 어부지리로 8·15 해방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치명적 상처를 입은 한국 교회는 1945년 8월 15일부터 이제 회복과 치유의 길을 가기 시작했는데 잘 되는 줄 알았더니 5년 뒤에 1950년에 또다시 공산군의 침략을 받게 되었습니다. 공산군들이 남한에 들어왔던 시간은 길지 않았습니다. 1950년 6월 28일에 서울이 함락 당했는데 9·28 수복이 이루어졌으니까 3개월 정도입니다. 중앙청 태극기 게양대에 우리 해병 2대대 6중대 1소대 박정모 소위와 최국방 수병이 태극기를 올린 바로 그 시간이 1950년 9월 26일 오전 10시 10분이었으니까 만 90일 만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그 90일 동안 대한민국 교회는 엄청난 핍박을 당했습니다. 모든 교회들이 다 불타거나 공산당 사무실이 되었고 믿음의 형제들은 끝없이 끌려가서 총살당해 죽었습니다. 

여러분! 분명히 이것은 아십시오. 기독교와 공산주의는 절대 공존하지 못합니다. 왜 공산국가에서 기독교를 다 없애버렸는가? 예수 믿는 사람이 뭐 어쨌다고 그런 걸까요? 오히려 더 애국자인데 왜 없애버린 것일까요? 공존할 수 없는 성격 때문입니다. 또, 기독교 국가에서 왜 공산당은 절대 성공하지 못하는 정당인가? 그것도 공존할 수 없는 성격 때문입니다. 절대로 기독교와 공산주의는 공존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한반도의 정치 불안 역사 속에 기독교의 한 가지 새로운 유익한 일이 생겼습니다. 초대 대통령이 철저한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4·19 혁명에 의해 쫓겨난 불행한 대통령으로 끝났습니다. 저도 4·19 데모를 했던 사람입니다. 그때 종신 대통령을 하려고 했던 것은 마땅히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했고 물러나게 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지금 평가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승만 대통령은 다 잘못했는가? 그것은 아닙니다. 

저는 국제 정치에 있어서 두 분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한분은 지금 연세대학교 석좌 교수로 계신 유영익 박사이신데 휴스턴 대학에서 대학 교수를 하실 때 저와 텍사스에서 함께 교회 창립을 같이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분과 오랫동안 같이 지냈으니까 그분에게서 많이 배울 수 있었는데 그분은 하버드에서 동양학을 전공했고 이승만 연구 1인자입니다. 지금도 때가 되면 TV, 신문에 그 분야에 대해서 말하려면 그분이 많이 나오잖아요? 교회에 같이 있으면서 그분에게 그런 정치 분야를 많이 배웠고 또 한 분은 대학원 시절에 연세대학교 이기택 국제 정치학 교수한테 1년 동안 제가 강의를 들었습니다. 그분이 한국에서 국제 정치 최고 권위적 교수라고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에게 국제 정치 이야기를 많이 배운 것이 유익했습니다. 

이렇게 정의합니다. 대한민국 탄생 때는 온 세계가 이데올로기 전쟁이었습니다. 20세기는 이데올로기 때문에 전쟁을 했습니다. 그 시절에 제일 무서운 말은 사상에 의심을 받는 말이었습니다. 그 이데올로기 전쟁 와중에 이승만은 미국에 오래 있으면서 미국을 공부해서 미국의 자유 민주주의 노선을 선택했고 김일성은 소련에 가서 사회주의 노선을 선택한 것이 오늘의 대한민국과 북한입니다. 지도자가 방향 제시를 국민에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가는 길이 정 반대입니다. 

지난 주간에 저에게 제가 주문하지 아니한 이런 두꺼운 책 하나가 배달되었습니다. 이 책은 미국 신학 대학 로버트 올리버 교수가 쓴 책을 번역한 것인데 이 로버트 교수는 18년 동안 이승만 대통령 정치 고문을 했던 사람입니다. 한국이 아닌 사람으로 객관성 있게 한국을 바라봤을 때 책 제목을「이승만 없었다면 대한민국 없다.」이렇게 결론을 내려서 책을 쓴 것입니다. 외국 사람이 객관성 있게 본 것입니다. 

“국가 정치 철학의 방향 제시를 잘한 것은 이승만의 공로이다. 그것은 인정해야 된다. 만약 그때 이승만도 사회주의 국가 정치 노선을 선택했다면 대한민국은 지금 북한과 똑같다.” 

따라서 기독교는 어떤 영향이 주어졌는가? 일종의 전성기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대한민국에는 초대 대통령의 동상이 없습니다. 4·19 데모 때 싹 다 없앴습니다. 그런데 하와이에 가면 있습니다. 그가 출석하던 하와이 교회에 가면 한복을 입으신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이 있습니다. 그때 이승만 대통령의 독립 자금을 그 교인들이 만들어 드렸습니다. 사탕수수 농장에 가서 하루 종일 노동해서 독립 운동 하라고 만들어 드렸습니다. 그래서 대통령 되셨을 때 그 교인들을 경무대로 다 초청한 바 있습니다. 

그때 이승만 대통령은 아주 철저한 자유 민주주의 정치 노선의 선택과 기독교인이 되었기 때문에 대통령 담화 가운데 무슨 말까지 했느냐? “경찰서 10개 짓는 거 보다 교회 하나 세우는 것이 대한민국 국가를 위해서 더 유익하다.” 지금 같으면 종교 편향이라고 난리를 쳤을 겁니다. 그때는 꼼짝도 못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핍박 없는 성장을 해 와서 오늘의 한국 교회가 된 것입니다. 이승만 대통령부터 이명박 대통령까지 우리나라 대통령 명함을 가진 사람 10명인데 5명이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예수님 때부터 기독교는 계속 핍박 종교로 살아왔는데 가장 잔인하고 극심한 핍박을 한 정치 세력이 로마였습니다. 그런데 로마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뒤집어 엎어버렸잖아요? 왜 그렇게 되었는가? 권력자 콘스탄틴이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기독교인들과 같이 살아야 된다. 기독교 핍박하지 말라. 오히려 장려하자.” AD 313년 밀라노의 이 황제의 명령 때문에 변해버렸습니다. 그러니까 기독교 역사는 항상 이 정치 권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왔음을 우리가 인정해야 합니다. 

로마가 저렇게 변한 것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베드로도 로마에서 순교 당해 죽었고, 바울도 로마에서 칼에 목이 잘렸는데, 그 고난의 역사 현장에 지금은 베드로 성당이 서있고, 바울 순교 기념 예배당이 서있습니다.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북한도 우리 계산으로는 안 나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믿는 것입니다. 미국이 잘 한 일이 있습니다. 일본과 전쟁에 승리했는데도 일본을 식민지화 하지 않고 오히려 일본의 재건을 도와주었다는 것입니다. 

그중의 한 예가 무엇입니까? 전범이라고 판단한 일본의 지도자들을 감옥에 두지 않고 다 석방시켜 주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아니면 일본은 갈 길이 없다. 이 사람들을 내보내주어서 이들이 일본을 재건할 수 있도록 하자.” 그래서 그때 최고의 능력 평가를 받았던 사람이 사또 수상입니다. 감옥에 있다가 보따리 들고 나왔잖아요? 그래서 일본 재건에 최고의 공로자가 되어 정치를 잘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일본과 미국은 지금 가장 가까운 우방으로 변했습니다. 국제 정치는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습니다. 상황에 따라서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성경말씀을 보겠습니다. 사도행전은 의사인 누가가 기록한 성경인데 누가는 비유대인입니다. 바울 사도의 주치의를 하면서 복음 전파에 헌신한 사역자인데 오늘 1절에 사도행전을 쓰면서 “데오빌로여!” 이런 말로 사도행전이 시작됩니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데오빌로는 당대 최고의 정치 권력자입니다. “이 사도행전 성령의 역사를 그에게 써 보내줌으로 말미암아 그가 예수를 믿게 된다면 그 파급 효과는 엄청나게 클 수 있도다.” 여기 “내가 먼저 쓴 글에는” 이렇게 나와 있는데 먼저 쓴 글이란 누가복음을 말합니다. 누가복음을 써서 예수님이 행하신 모든 일을 그에게 가르쳐주고 그 이후에 성령의 역사에 의한 사도들의 행적을 다 기록해서 데오빌로 각하에게 주어서 이것을 읽고 절대 기독교를 핍박하지 마시고 당신도 예수 믿는 사람이 되라고 그 목적을 위해서 쓴 책입니다. 그래서 ‘데오빌로 하나가 예수를 믿는다면 세상은 달라진다.’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써서 그에게 보낸 겁니다. 현명한 판단이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축복 속에서 국토와 인구 비례 교인, 교회 출석률에서 세계에서 1위 국가이고, 정치는 민주화 국가, 자유 민주주의, 경제 성장은 G20국가, 선교사 파송 2위 국가, 인구 비례 대학 졸업자 캐나다와 함께 세계에서 1위 국가, 이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늘 8·15 기념 예배 때 ‘아! 이것은 이 민족을 향하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 힘으로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었는데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우리 국민 가운데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 이러한 하나님의 축복 속에 번영이 계속 된다면 교회가 잘 됩니다. 사도적 눈을 가지고 영적 관찰을 하면서 계속해서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의 역사가 나타나면 지금의 교회들이 가장 주님의 뜻에 맞게끔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위해서 노력할 때 하나님은 21세기에, 저는 앞으로 20년 안에 한국이 미국을 앞질러서 선교사 파송 1위 국가가 된다고 믿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시도록 되어 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의 장래를 말하라면 밝다고 보는 사람입니다. 왜 그러느냐? “한국 교회는 복음주의에 입각해서 건강한 교회이다. 절대로 서구사회 교회 같이 되지 않는다.” 이런 신학적 기초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틀림없이 한국 교회의 미래는 밝고 한국 민족의 앞날은 밝다고 평가합니다. 오늘 광복절 65주년을 우리가 맞이하면서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나라에게! 대한민국 만세! 대한민국이여, 주 안에서 영원하라! 할렐루야!

「 하나님 아버지! 우리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핍박과 고난의 연속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우리가 계산할 수 없는 놀라운 섭리가 이 나라에게 65년 전 광복을 주셔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계속해서 하나님의 축복과 하나님의 손길이 이 민족 가운데 있을 것인가 기도하면서 믿음 안에서 쓰임 받는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어가는 지혜로운 청지기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기도 제목이 있는데 지금 우리의 계산으로서는 도저히 이루어낼 수 없는 남북통일의 문제도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성취시켜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필재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