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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생명의 강 (겔4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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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강 (겔47:1-5)


이 시대에 남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것인지 이렇게 호소하는 한 집사님의 말을 따라 도데체 이 시대에 남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슨 이야기일까 이런 생각을 한적이 있었습니다. 이번 휴가때, 한 권의 책을 보았는데, 스티브 비덜프 엮음, 남자 그들의 이야기입니다. 물속에서 동면하는 제비에 관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18세기 영국의 생물학자 길버트 화이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길버트 화이트 셀본의 자연사라는 셀본의 자연에 관한 이야기의 저자입니다. 영어로 쓰여진 책중에서 네 번째로 많이 간행된 책이며, 생태학의 아버지, 자연이야기에 관한 수필가이기도합니다. 셀본은 런던에서 60km떨어진 햄프셔의 언덕과 초지사이에 놓인 작고 오래된 도시입니다. 그는 부제직분을 받아 목사의 직을 수행하였다. 

1760년 셀본으로 돌아와 이곳에서 평생 살았다. 그는 결혼하지 않았다. 길버트의 유일한 애인은 셀본이었다. 그는 셀본의 보좌사제로 평생을 살았다. 그당시 부제는 하위 계약직이었고, 사제복을 입은 하인이나 진배없었다. 그는 부제직을 떠나지 않았다. 또한 결혼할 기회가 있었도 결혼하지 않았다. 길버트 화이트는 놀라운 정도로 섬세한 관찰자였다. 고생스럽게 연구에 전념했던 경험주의자였다. 

그는 셀본에서 위대한 자연주의자로 평생 살아갔다 독신이었고, 사제직에 오르지 못하고 부제로 평생만족하였지만, 그는 그런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삶의 열정을 오로지 셀본의 자연생태계에 모두 부었다. 그는 세상에서 잊혀진 존재였지만, 그가 평생에 열정을 쏟아 쓴 셀본의 자연에 관한 이야기는 위대한 인류의 유산으로 계속내려오고 있다. 
인생은 단지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열정을 부어 쏟아부을수 있는 것을 찾을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물질적인 성공을 추구하는 이 시대속을 살아갑니다. 아울러 경쟁에서 성공하기 위해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사회는 더욱더 죽음의 현상만이 더 진해집니다. 죽음의 현상이 진해지는 이속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삶의 정체성은 무엇을 말합니까? 예수님의 제자로 우리는 무엇에 올인해야 할까요? 우리에게 있는 세상과 다른 생명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을까요? 그 생명을 확인하고 그 생명을 죽음이 진해지는 이 세상에 전할수 있는 길을 찾을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 길을 오늘 주신 말씀속에서 찾기를 원합니다. 

에스겔 47장를 통해 하나님께서 선지자에게 비전을 보여주십니다. 이 시기는 주전 573년입니다. 포로생활이 시작된지 25년 뒤에 하나님께서 보여주십니다. 이스라엘의 멸망과 포로생활이라는 암담한 시기에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보여 주신 비전입니다. 이 비전은 성전의 회복, 그 회복으로 말미암아 만물의 회복을 노래합니다.  

성경은 앞뒤 관계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본문 바로 뒤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각자의 땅을 갖게 됩니다. 자기 몫을 갖게 됩니다. 범죄와 타락으로 말미암아 땅에서 쫒겨 났는데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 제 몫에 해당되는 땅을 갖게 됩니다. 그 경계선도 주어지게 됩니다. 그 땅분배가 있기전에 먼저 갖추야 할 선결 조건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에스겔 47장 1절부터 12절까지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를 성전 앞면에 이르게 합니다. 그곳에서 물이 스며 나옵니다. 하나님과 함께 스며나온 물을 따라 천척을 걷게 하십니다. 천척은 약 450m입니다. 물이 발목에 오릅니다. 더 나아가 또 천척을 측량하고 걷게 하십니다. 물이 허리에 오릅니다. 또 다시 천척을 측량하십니다. 물이 허리에 오르게 됩니다. 다시 천척을 측량하자,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성전에서 나온 물을 따라 계속 전진하는 그 속에서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정도로 가득차게 되어다고 하십니다. 
6절 이하는 어떤 말씀입니까? 

그렇게 된 생명의 강 주위로 놀라운 비전을 보여주십니다.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게 됩니다. 이 흘러내리는 물로 말미암아 바다의 물이 되살아납니다. 이 바다는 죽음의 바다  사해를 말합니다.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아납니다. 고기가 심히 많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고,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비전은 무엇을 말씀합니까? 
그것은 한 마디로 죽어있는 모든 만물의 새로운 회복입니다. 새 생명으로의 회복입니다. 
주린 자가 배부르게 됩니다. 절망하던 자가 희망을 갖게 됩니다. 공허한 인생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합니다. 두려워하던 사람이 평화를 갖게 됩니다. 

에스겔 47장은 만물에 생명을 주는 강을 증거합니다. 죄악과 저주로 죽음에 처했던 땅을 다시 새롭게 회복시키는 생명의 강입니다. 이스라엘이 범죄했을 때, 그 땅은 저주의 땅으로 바뀌고 맙니다. 온 열방이 몰려와 그 땅을 죽음과 저주의 땅으로 만들고 맙니다. 그렇게 심판받아 망한 땅이 다시 회복됩니다. 포로기라는 정화의 시기를 거쳐 다시 그땅을 회복시킵니다. 온 인류를 축복하기 위한 근원으로 이스라엘을 부르셨습니다. 그 목적대로 그 이스라엘땅이 회복됩니다. 회복될뿐만 아니라 온 인류를 축복하는 근원으로 다시 서게 됩니다. 에스겔47장은 그 땅의 회복을 노래합니다. 그 땅이 다시 회복되어 나무들이 다시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 회복은 하나님과의 예배가 회복될때만이 가능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생을 포기하고 죽음에 자신을 내 던지려는 비참한 사람들이 어떻게 다시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의 마음이 기진맥진하여 마음이 거의 탈진한 분은 계시지 않는지요? 그렇다면 하나님 말씀에 귀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이 무서운 죽음과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 새롭게 만물이 회복되는 길을 에스겔 47장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길은 성전에서 물이 나오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회복으로 가는길, 생명으로 가는 그 길의 시작은 바로 성전에서 이루어집니다. 그 성전은 바로 하나님과 만남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성전, 그 성전에서 하나님과 만남을 통하여 그 회복은 시작됩니다. 

하나님과 예배드리는 삶이 회복될 때 우리는 비로서 죽음에서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안에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과 사귐을 회복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는 길을 성실히 닦으셨습니다. 그 길 따라서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 나아갈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습니다. 그 속에서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여셨습니다. 히브리서 10장 20절에서 분명하게 증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희생의 길을 따라 하나님께서 새로운 살길을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속에서 하나님과 소통은 시작됩니다. 하나님과 사귐은 시작됩니다. 그 사귐속에서 성령의 샘이 흘러넘칩니다.  

더 나아가 본문이 말하고 있는 생명의 강은 성령의 샘입니다. 그 생명의 샘이 흘러나와 발목부터 무릎 허리 머리위에까지 차고 넘쳤습니다. 이땅에 성령께서 오셔서, 계속해서 온 땅을 치유하고 고치고 싸매고 죽은 자를 회복시키십니다. 생명의 영이신 성령께서 교회를 창조하셨습니다. 생명의 공동체인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생명은 이 사회를 회복시키십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계속 솟아나와 이 땅에서 회복의 사역을 하고 계십니다. 

생명의 샘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더 나아가 그것은 사람을 치유하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요 기쁨입니다. 그 사랑과 자비와 평화가 성령의 역사를 따라 이 사회에 강같이 흘러가도록 하셨습니다.  
그 생명의 샘으로 우리의 삶이 가득차는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 길은 우리가 참된 성전이 되는데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삶의 회복입니다. 주님과의 만남은 우리안에 어두움의 정체를 더 정확하게 보게 합니다. 하나님을 더 잘 알수록 우리의 죄악들을 더 잘 알게 됩니다.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은 외부에 있기보다는 내 안에 있습니다. 내가 보지 못하는 어두움이 우리를 더 두렵게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빛이 강하게 느껴질수록 우리 안에 있는 어두움이 더 강하게 느껴집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만남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그 만남 속에서 우리 안에 있는 어두움을 토해냅니다. 하나님과 만남은 이 은밀한 내안의 어두운 것을 하나님 앞에 다 토해냅니다. 그렇게 내 안의 어두움을 하나님앞에서 비울수 있다면, 그때야 하나님은 빛이시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게 됩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그 길은 하나님께 부르짖는 길입니다. 여러분 안에 어떤 절망이 있습니까?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여러분 안에 어떤 죄악된 일이 있습니까? 부르짖어야합니다. 여러분 안에 있는 교만과 시기와 낙망과 탐욕들이 다 비워질때까지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렇게 비워질 때만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생명의 강은 드디어 흐르게 됩니다.     
 
그 생명의 강은 어떤 강입니까? 그 강은 창조때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흐리게 한 생명의 강이었습니다. 이 생명의 강이 에스겔 47장에 다시 등장합니다. 예수님은 이 생수의 강을 자신을 메시야로 믿는자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은 믿는자안에 솟는 성령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영원한 생명은 성령께서 이땅에 오셔서 교회를 창조할 때 함께 한 생명입니다. 

이 생명이 교회를 통해 흘러갈 때 죽은 자가 살아나고 죄악이 청산되고 가난이 극복되고, 문맹이 퇴치되고 사회의 죽음과 같은 현실을 몰아냈습니다. 인권이 회복되고, 하나님나라를 누리는 세상으로 바꾸는 놀라운 역사를 진행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이 강은 요한계시록 22장끝부분에 최종적으로 완성될 하나님나라에 다시 등장합니다. 

요한계시록 22장에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이 등장합니다. 강 좌우로 생명나무가 있어 그 열매를 내고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한다고 계시하고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의 강은 첫 창조때부터 역사속에 흘러들어왔습니다. 이 영원한 샘물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죄악의 헛된 시간들을 폐기시키고 들어온 영원한 샘물입니다. 이 영원한 샘물, 영생의 근원에서 흐르는 성령의 시간이 우리 삶의 한복판에 흘러갑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더 깊어가고, 죽은 자를 다시 살리는 생명의 강입니다. 이 강은 새로운 창조의 완성에까지 이어집니다. 

처음 창조, 죽은 자의 부활과 성령의 오심, 그리고 새로운 창조의 완성에까지 함께 연결되어 흐르는 이 영원한 생명수의 강이 인간의 죄악된 역사를 단절시키고, 허무한 역사의 한복판에 들어왔습니다. 우리가 그 영원한 생명수의 샘물을 마시며, 그 강 좌우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주셨습니다. 그 길은 철저히 성령의 샘을 마시며, 또한 그 성령의 사역에 함께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 생명의 강이 새롭게 여러분 안에 흐를 때 여러분은 비로서 희망을 볼수 있게 됩니다. 
에스겔 47장본문은 역사의 어두운 지평을 뚫고 하나님께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주신 비전의 말씀입니다. 절망의 밤에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입니다. 삶의 어두운 지평을 뚫고 내게 주시는 에스겔 47장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복된 사람들입니다. 

최용덕씨가 부르는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네‘라는 곡이 있습니다. 자신의 신앙의 삶의 고백이 들어있습니다 
“내가 세운 계획이 혹 빗나갈지 모르며, 나의 희망 덧없이 쓰러질 수 있지만 
나 여전히 인도하시는 주님을 신뢰하는 까닭은 주께서 내가 가야 할 길을 잘 아심일세 
어두운 밤 어둠이 깊어 날이 다시는 밝지 않을 것 같아 보여도 
내 신앙 부여 잡고 주님께 모든 것 맡기리니 
지금은 내가 볼 수 없는 것 너무 많아, 너무 멀리 가물가물 아른거려도 
차츰차츰 안개는 걷히고  하나님 지으신 빛이 뚜렷이 보이리라 
가는 길이 온통 어둡게만 보여도,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네“ 

어두운 미래의 지평, 보이지 않는 안개속 같은 인생길, 그 어두운 지평을 뚫고 에스겔 선지자는 희망을 선포합니다. 그 희망은 예배가 온전히 회복될 때만이 가능합니다. 그것을 가능케하는 것은 믿음으로 부르짖는 것입니다. 이 부르짖음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가 됩니다. 순간 순간 부정적인 생각이 찾아올때마다 그것의 포로가 되지 말고 그것들을 하나님앞에서 내려놓을때만이 가능합니다. 여러분이 안에 온갖 부정적인 것들을 하나님앞에 다 비우시길 바랍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대한 생명의 샘이 여러분안에 가득채워집니다.  우리는 비로서 이 속에서 걸어갈 수 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생명의 강이 계속 깊어지는 속에서 길을 걸어갔습니다. 온통 보이는 것이 암담해 보일 때, 하나님과 소통하는 삶이 깊어가기를 바랍니다. 그 영원한 생명이 여러분의 마음을 가득채우길 바랍니다. 미래를 향한 지평까지도 그 생명으로 가득채우기를 바랍니다. 

이 생명의 샘이 흐르는 곳에 만물의 회복이 이루어집니다. 그 회복은, 소망으로 살아가는 세상을 만듭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생명의 영으로 충만한 사람들입니다. 아울러 성령의 역사에 함께 하는 사람들입니다. 고통 속에 있는 이 세상을 치유하시는 위대한 성령의 사역에 동참한 자들이 예수믿는 사람들입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을 때, 그 강은 깊어갔습니다. 우리가 하는 삶의 일상은, 우리가 육체와 마음으로 하는 노동은 바로 이 성령의 샘에서 하는 노동입니다. 그 삶은 어떤 일상가운데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과 소통하는 삶을 말합니다. 어떤 일들을 하든지 하나님과 교제가 계속 되는 삶을 말합니다. 삶의 일상은 힘든 노동도 있고, 수고와 아픔도 계속됩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또 다른 하나님과 교제도 계속됩니다. 마치 우리 손에 매일 있는 핸드폰은 어디를 가더라도 늘 옆에 있습니다.  그 핸드폰은 어디에 있는지 터집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우리를 찾으십니다. 그러므로 매일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매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지하 몇천미터속에서 생명의 생수가 계속 흐리고 있습니다. 지표면은 온통 더위와 추위, 폭풍, 온갖 것으로 치열하지만, 그 깊은 속에서 생명의 젖줄기가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 삶도 동시적으로 계속됩니다. 생명의 샘은 동시적입니다. 우리 삶의 겉 표면은 경쟁과 갈등과 두려움, 절망 이런 것들로 말미암아 광야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속마음은 하나님과 계속적인 기도 가운데 진행됩니다. 그 생명의 샘이 계속 흐리고 있는 가운데 우리 삶은 진행됩니다. 이 생명의 젖줄기가 계속 우리 속사람 안에 흐르게 하고 넘치는 가운데 진행됩니다. 

그래서 이 생명의 젖줄기가 뜨거운 지표면을 뚫고 나옵니다. 두려움과 절망과 갈등으로 가득한 우리의 삶이 이 생명의 젖줄기로 온통 채워지는 은총을 경험하게 됩니다. 에스겔 선지자 하나님과 함께 전진하는 가운데 생명의 강이 더욱 넘침을 경험합니다. 우리 또한 무거운 일상의 일들이 계속되지만 그곳에서 생명의 샘은 넘쳐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 속에서 나온 생명의 샘이 우리가 일하며 섬겨야 할 사회까지도 다 채운다면 우리 삶은 정말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누리는 평화가 강처럼 여러분안에 깊어지십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더욱 가슴깊이 여러분 안에서 느껴집니까? 그렇다면 그 사랑은 이웃을 향하게 나아가게 됩니다. 이웃을 배려합니다. 이웃을 축복합니다. 이웃에게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이웃을 존중하며 섬기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섬김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수고하는 섬김과 나눔입니다. 
우리교회는 올 여름 해외에서, 국내에서 많은 선교의 손길을 펼쳤습니다. 뜨거운 태양 빛아래서 좋지 못하는 환경가운데 힘을 다해 그 선교의 사역을 다 펼쳤습니다. 그 사역에 동참한 사람들은 비록 고생했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누렸던 사람들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생명을 체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수고와 고통이 따르지만 다시 하나님의 선교에 헌신하겠다고 다짐하고 나오는 길이었습니다. 
그런 섬김의 활동들을 통해 성령의 샘은 깊어져 갑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 생각, 이웃과 관계하는 삶이 하나님말씀에 언제나 순종한다면, 이 생명의 샘은 공동체 안에 더 깊게 흘러갑니다. 그 생명의 유익을 공동체가 함께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죄악된 행동들, 탐욕과 시기와 욕심과 교만으로 가득한 행동들은 이 성령의 샘물이 나오는 근원을 차단시킵니다. 공동체를 마르게 합니다. 한 국가의 지도자가 탐욕에 물들어 있다면 그 국가의 운명은 불 보듯 뻔한 운명이 되고 맙니다. 
  
이것을 성찰하고 자신의 삶의 모습을 다시 돌이킬 수 있는 사람은 복된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시간들이 혹 공허하지는 않는지요. 예수의 생명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다시 돌이켜야합니다. 이 땅에 예수님의 생명을 누리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아울러 이 땅을 살리는 성령의 역사에 깊게 참여하는 삶으로 전환시켜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선교에 헌신하는 삶은 물론 생각대로 쉽지 않습니다. 만물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선교속에 우리의 삶의 이야기가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이 속에 있는 것을 이해할 때 우리는 우리 삶의 이야기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톨킨의 기독교 역사소설 반지의 제왕에서 두개의 탑에 나오는 장면입니다 
프로도와 샘은 돌로 된 가파른 비탈로 이어지는 좁고 끝이 없어 보이는 키리스 옹골의 계단을 올라갑니다. 계단을 오르다 지쳤고 아직도 남은 계단에 낙담한 프로도는 걸음을 멈췄습니다. 

“샘 더 이상은 못하겠어” 
“알아요.” 
“모두 잘못됐어요. 여기까지 오는 게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우리는 여기 와 있어요. 그동안 우리는 마치 대단한 이야기 속에 있는 것만 같았어요. 정말 중요한 이야기, 어둠과 위험으로 가득찬 이야기 속에 있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우리는 종종 그 이야기의 끝을 알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그 이야기가 행복한 이야기로 끝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어요. 

그러나 결국은 어둠은 잠시뿐이에요. 어둠도 지나가고 새로운 날이 올 거예요. 햇빛이 다시 비칠 때 햇빛은 더 밝게 비칠 거예요. 우리와 함께하는 중요한 이야기들이 있지요. 우리가 그 이유를 다 이해하기에는 너무 작다할지라도 우리는 이해하고 있어요. 그 이야기속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많았어요. 다만 그들은 돌아가지 않았을뿐이에요. 왜냐하면 중요한 것을 붙들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샘, 우리가 붙들고 있는 것 뭐지” 
“세상에는 선한 것들이 있어요. 프로도 그리고 그것들은 우리가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할 가치가 있는 것들이지요.” 
우리의 삶의 이야기는 이 하나님의 선교 역사 속에 들어와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선한가치들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계속됩니다. 죽음의 위기에 처한 자를 구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한 싸움은 이 땅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주님오시는 그날까지 생명을 구하기 위한 하나님의 선교는 계속됩니다. 
    
마태복음13 하나님나라의 비유에서 예수님은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 얼마나 많은 저항들이 이 하나님의 선교를 가로막고 방해할 수 있는지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하나님 나라가 저항을 받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여전히 왕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권력과 욕심속에 타락한 왕이 아니라, 정의와 평화와 사랑의 나라를 이루실 전능하신 참된 왕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우주를 통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귀환을 기다리는 여정이 우리의 인생길입니다. 
    
기독교 소설 반지의 제왕의 끝부분에서 톨킨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왕의 귀환’ 마지막 부분에서 악마의 군단과 이를 제압하려는 선한 사람들의 저항은 계속됩니다. 그러나 마지막 전투는 도무지 수적으로 게임이 되지 않는 그런 싸움입니다. 통계적으로 볼 때 이미 전쟁은 끝나고 선한 사람들은 다 악마의 희생밥이 될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입니다. 그 악마와의 전쟁 앞에서 그 전쟁을 지휘한 아라곤 사령관이 마지막으로 병사들에게 무슨 말을 하였을까요?  
    
“내 마음을 힘겹게 하는 것과 같은 두려움을 너희들의 눈 속에서 볼 수 있다. 우리가 친구들을 저버리고 교제의 끈을 끊어버린다면 용감한 사람들이 패배하는 그런 날이 오게 될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그 날이 아니다. 오늘이 우리가 싸우는 날이다.” 이것이 그 악마와의 전쟁을 선두에서 지휘했던 아라곤 지휘관의 마지막 외침이었습니다. 
    
이  땅은 여전히 죽음의 땅과 같은 잔인한 일들은 계속 펼쳐집니다. 그속에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한 활동은 여전히 예수님의 제자들을 통하여 계속되고 있습니다. 비록 하나님의 나라가 엄청난 저항에 부딪히고, 그 나라가 도무지 결실할 수 없을 것이라고 탄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저항을 무릎쓰고 자신의 생명을 내어놓고 그 선한 싸움을 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여전히 이 죽음과 같은 세상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뒤를 따라 갈 때 물론 우리가 치러야 할 희생도 만만치 않을것입니다. 모든 영광속에서 오신 왕이 이해하기 힘든 그 모든 것에 빛을 비추실때까지 그 어둠이 지나가지 않을지 모릅니다. 우리에게 돌아갈 많은 기회들이 있지만,  그러나 영원히 우리는 돌아서지 않을것입니다. 예수님의 뒤를 따라간 용기있는 삶의 이야기가, 우리 뒤를 따르게 될 우리의 자녀들에게, 힘과 용기를 줄 것입니다. 그들 역시 어두운 세상의 운명이 닥치는 날 우리처럼 결단하고 따라나서게 될것입니다. 
    
에스겔은 포로기의 한복판 절망의 한 밤에, 무엇을 보았습니까? 에스겔 47장말씀처럼 새로운 회복을 향한 소망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삶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생명을 살리는 이 위대한 하나님의 선교에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십니까? 그 삶이 수많은 저항에 부딪힌다 하더라도 다시 일어나 걸으십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탄식하지 마시고, 다시 하나님 앞에 여러분을 드리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작은 인생을 통해 이땅에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일을 성취하실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선교에 쓰임받는 복된 인생 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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