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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전을 수리한 이후 (왕하 2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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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을 수리한 이후 (왕하 22:3-13)
 

어떤 교회가 예배당을 새롭게 건축했을 때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예배당을 새로 건축하면서 그 교회의 목사님에게 한 가지 고민이 있었는데, 그것은 어떻게 하면 설교를 할 때, 성도들이 좀 더 설교하는 자신한테 집중하도록 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예 건축을 할 때부터 설교자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공간을 설계하면 좀 더 효과적으로 말씀을 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은 교회 설계를 담당하는 건축가에게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예배 중에 교인들의 시선을 설교자에게 집중시킬 수 있겠습니까? 혹시 그렇게 할 수 있는 묘안이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건축가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아, 그것은 아주 간단한 일입니다. 시계를 강대상 바로 뒤에 걸을 수 있도록 설계하도록 하겠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 교회 본당 리모델링 공사를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시계가 강대상 바로 뒤에 걸리지는 않았습니다. 어쨌든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참 많은 분들이 수고해주셔서, 우리가 좀 더 쾌적하고, 좋은 환경 가운데서 이렇게 예배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본당이 이렇게 아름답게 고쳐졌는데, 이제는 우리가 좀 더 교회를 아끼고 사랑해서, 깨끗하게 이런 환경이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최근 기독교계에서 크게 논란이 되고 있는 이슈 중의 하나는 아무래도 교회의 건축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특히 서울 강남에 있는 이름만 대면 누구라도 알만한, 한 대형교회가 최근 새롭게 예배당을 건축하는 과정 중에 있는데, 그 문제와 관련해서 여러 말들이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습니다. 그 교회가 교회 건축을 하는 데 사용하는 비용만 해도 부지 매입 비용까지 포함해서 약 2,000억원 가까이 되는 비용을 들이고 있다고 합니다. 

한 편에서는 예배당 하나 짓는 데 그 정도의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일 수 있는 것이냐며, 차라리 그럴 돈이 있다면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 훨씬 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 아니냐며 반대하기도 합니다. 또 한 편에서는 그 정도 되는 돈을 들여서 새롭게 예배당을 건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적인 필요성을 주장하면서 이 일에 찬성하기도 합니다.

어찌 됐든, 찬성하는 측은 찬성하는 나름대로의, 또 반대하는 측은 반대하는 나름대로의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이러한 논란이 지금도 계속 진행 중에 있습니다. 아마 이 문제는 앞으로 한국 교회 안에서 교회 건축에 대한 문제 있어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주는 이정표와도 같은 사건이 될 것 같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바가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교회 같은 경우는 아예 교회를 처음 개척할 때부터, 교회 건축을 하지 않는 것을 설립 이념으로 하면서 세워진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가 그렇다고 해서 다른 교회가 각자의 사정에 따라서 예배당을 건축하거나 하는 문제를 판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뜻을 따라서 그저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는 새롭게 성전을 세우고, 건축하는 일들을 통해서 새 일을 행하시기도 합니다. 단지 중요한 것은, 어떠한 경우이던지 간에 하나님의 성전을 귀하게 여기고 아끼고 사랑하는 그 마음만이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왕상 22장에서는 하나님의 성전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만한 사람이 등정합니다. 그 사람은 바로 남유다의 요시야 왕입니다. 요시야 왕은 사실 굉장히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입니다. 요시야가 왕위에 오른 것은 22:1절 말씀을 보면 그의 나이가 불과 8살 때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요시야가 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를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요시야의 아버지는 아몬이었고, 그의 할아버지는 므낫세였습니다. 그런데 므낫세와 아몬이라는 이 두 명의 왕은 유다 역사상 최악의 왕들이었습니다. 므낫세는 55년 동안을 왕위에 있었습니다. 유다의 왕들 중에 가장 오랜 시간을 왕위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므낫세가 왕위에 있으면서 한 일은 오로지 우상을 숭배하는 일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까지도 우상을 섬기는 제단들을 쌓아올렸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산당들을 유대 땅 곳곳에 지었습니다. 므낫세의 죄악들이 너무도 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결국 유대를 멸망시키기로 결정하기에 이르셨던 것입니다. 

므낫세에 이어서 왕이 된 아몬 역시 므낫세와 별로 다를바 없던 사람입니다. 아몬은 불과 2년 동안만 왕위에 있었는데, 므낫세가 했던 일을 그대로 이어받아서 했습니다. 결국 참다 못한 신하들이 반역을 일으켜서 아몬 왕을 죽이고, 그의 아들이었던 8살의 어린아이였던 요시야를 왕위에 올려놨던 것입니다.     이처럼 요시야는 아버지를 잃고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오른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또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거의 60년 가까이 수많은 우상을 섬기면서 나라를 완전히 망쳐놓은 다음 왕이 되었기 때문에, 요시야가 왕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사실 거의 아무 것도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요시야에게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본문 3절 말씀을 보면 “요시야 왕 열여덟째 해”, 즉 그러니깐 요시야가 26살의 청년이 되었을 때 일어났던 일을 말씀합니다. 26살이 된 청년 왕 요시야는 그의 신하들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보냅니다. 당시 하나님의 성전은 므낫세와 아몬이 망쳐놓은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전 안에는 여전히 우상의 제단들이 쌓여져 있었고, 바알과 아세라의 상들이 그대로 놓여 있던 때였습니다. 

그 때 요시야는 신하들을 보내어서 성전을 수리하게 합니다. 요시야 당시는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후로 300년이 넘게 지난 후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아무리 솔로몬이 성전을 아름답게 건축했다고 해도, 3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성전은 조금씩 낡아져가고 있었고, 또 므낫세와 아몬 같은 왕들이 성전을 거의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성전은 굉장히 퇴락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요시야가 성전 수리를 시작한 것인데, 요즘 말로 하면 성전을 리모델링했다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전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했던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성전 안에서 율법책 한 권이 발견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낡고 오래된 건물을 수리하다보면 그 안에서 옛날 책이나 물건들을 발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요시야도 성전 안에서 율법책 한 권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책을 발견한 요시야의 신하들은 곧장 이 사실을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요시야는 서기관 사반에게 그 책을 읽어보라고 했고, 사반은 명령을 받고 큰 소리로 율법책을 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때, 율법책의 말씀을 듣던 요시야가 갑자기 일어나 자신의 옷을 찢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요시야는 이 책에 기록된 말씀을 우리가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과 같은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 책의 말씀이 과연 무슨 말씀인지 선지자에게 가서 물어보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선지자에게 가서 이 책에 대해 물어본 요시야의 신하들인 그 책의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 틀림없다는 사실을 요시야에게 전하고, 요시야는 그 때부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요시야는 어린 시절의 아픔을 간직한 채,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유약한 왕이 아니었습니다. 

요시야는 이 때 이후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다시 세우고, 나라 안에 있는 모든 우상의 세력들을 남김없이 제거하고, 나라를 새롭게 하면서, 유다 멸망 직적 마지막 영적 회복의 때를 가져온 개혁 군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이 있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바로 성전을 수리하는 사건이었다 라는 것에 오늘 우리는 주목하길 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성전을 중심으로 한 역사입니다. 지금도 이스라엘의 역사를 나눌 때, 어떤 성전 시대였는지를 기준으로 해서, 제1성전시대, 제2성전시대라고 구분하고 있습니다. 제1성전시대는 솔로몬 성전이 세워져 있던 시대를 가리킵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세운 이후로 훗날에 바벨론 군대에 의해서 그 성전이 파괴될 때까지의 시대를 가리켜서 제1성전시대라고 합니다. 그러니깐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의 전체 역사를 가리켜서 제1성전시대라고 부릅니다. 

제2성전시대라는 것은 바벨론 포로 귀환 후에 새롭게 성전을 건축했던 시대를 가리킵니다. 남 유다 멸망 후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70년 만에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 포로 귀환의 지도자였던 스룹바벨이라는 사람을 중심으로해서 무너졌던 성전을 다시 세우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두 번째 성전, 즉 제2성전시대의 개막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성전을, 성전을 세웠던 지도자의 이름을 따서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성전을 중심으로 해서 구분할 정도로 철저하게 성전 중심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중심으로 해서 새로운 영적 부흥과 회복의 역사를 일으키기도 하셨습니다. 

솔로몬이 첫 번째 성전을 건축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중심으로 한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에 하나님의 이름을 둘 것이고, 하나님의 눈과 마음이 항상 성전 안에 머물 것이며, 또 솔로몬의 후손들이 계속해서 왕위를 이어가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대로 솔로몬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나라를 건설할 수가 있었습니다.

두 번째 성전 건축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다시 건축하려고 했을 때, 처음에는 강력한 반대에 부딪히게 됩니다. 이미 예루살렘에 터잡아 살고 있는 이방 민족들이 성전을 건축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전 건축은 거의 20여년 가까이 중단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학개와 스가랴 같은 선지자들이 등장해서 성전 건축을 독려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학개 선지자 같은 경우에는 선지자로 활동했던 시간이 불과 3달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학개 선지자는 그 누구보다도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성전 건축을 독려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말씀을 전하기 시작한지 불과 한 달 만에 20여년 가까이 중단됐던 성전 건축이 다시 시작되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두 번째 성전 건축을 완성시킨 후에는 에스라나 느헤미야와 같은 영적 지도자들이 등장하게 되면서 포로 후기 이스라엘 사회가 영적으로 재무장되고 회복되는 부흥의 때가 열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이런 역사적인 사건을 살펴볼 때, 하나님께서 새로운 영적인 회복과 부흥의 은혜를 부어주시기 전에는 많은 경우에, 성전을 중심으로 한 특별한 일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또 예수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죽으시고, 부활하셨는데, 그러한 일들이 있기 얼마 전 예수님은 성전을 정결하게 하셨던 일이 있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3년 동안의 공생애를 마무리하시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 예수님은 가장 먼저 성전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성전 안에서 장사치들이 양과 염소를 팔고, 한 편에는 돈을 환전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크게 분노를 발하셨습니다. 그리고는 한 손에는 채찍을 들고,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모든 사람들을 다 내쫓으셨던 것입니다. 성전이 하나님을 섬기는 기도의 집이 되어야지, 장사하는 사람들의 시장터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사건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성전 정화 사건이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이 이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사실이 공통적으로 우리에게 알려주는 메시지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성전을 소중히 여길 때, 하나님께서 새로운 영적 회복의 은혜를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성전을 중심으로 무언가 새로운 일이 일어날 때 마다, 하나님은 그에 합당한 새로운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오늘 본문 말씀으로 돌아갑니다. 요시야는 하나님의 성전을 수리했고, 수리하는 과정 중에 율법책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율법책의 말씀대로 요시야는 온 나라를 새롭게하는 커다란 개혁 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합니다. 

가장 먼저 요시야는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세우고 있습니다. 왕하 23장에서 요시야는 모든 백성들을 다 불러 모읍니다. 그리고 발견한 율법책을 백성들 앞에서 읽어서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합니다. 그리고 온 백성들과 함께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말씀들을 철저하게 지킬 것을 다짐하게 합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갱신하는 것입니다. 

요시야는 단지 말로만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곧장 구체적인 실천에 들어갑니다. 23:4절부터 요시야가 했었던 일들이 쭉 나오고 있는데, 먼저는 바알과 아세라 상과 같은 모든 우상들과 그 우상들을 섬기기 위해 만들어졌던 모든 물건들을 모조리 다 제거합니다. 성전 안에 여전히 남아 있던 모든 우상의 흔적들을 없애버렸고, 이스라엘 전역에 흩어져 있던 모든 산당들을 다 헐어 버립니다. 그래서 모든 예배 의식이 오직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집중될 수 있도록 철저하게 성전 중심의 신앙 체계를 구축해 나갑니다. 

뿐만 아니라 요시야의 개혁의 손길은 남 유다에만 국한되지 않고, 북이스라엘 지역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요시야 당시는 북이스라엘이 멸망한지 거의 100년 이상이 지난 때였습니다. 하지만 그 때까지도 북이스라엘 지역에서는 여로보암 왕이 세웠던 우상의 제단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요시야는 북이스라엘의 벧엘에까지 올라가서 그곳에 남아 있던 모든 우상의 흔적들을 남김없이 제거했습니다. 벧엘에 있던 그 우상의 제단은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원인으로 끊임없이 지적되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까지도 그것이 여전히 남아 있었는데, 그 우상의 제단을 완전히 뿌리 뽑은 사람이 다름아닌 요시야 왕이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요시야는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전역에 흩어져 있던 우상의 흔적들을 철저하게 제거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온 백성들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길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구축합니다. 그리고 나서 이제 요시야는 율법에 기록된 대로, 유월절을 지키게 됩니다. 

왕하23:21절 말씀을 보면 요시야가 모든 백성에게 이렇게 명령합니다. “이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그런데 이 때 요시야가 얼마나 철저하게 유월절을 지켰는지, 22절을 보면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부터 이스라엘 여러 왕의 시대와 유다 여러 왕의 시대에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더니”라고 말씀합니다. 요시야의 개혁은 그만큼 철저했습니다.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바르게 서 있던 때가 바로 요시야의 때였습니다. 요시야는 유다 멸망 직전에 마지막으로 새로운 영적 부흥의 때를 준비했었던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요시야 시대에 이러한 영적인 회복과 부흥의 때가 찾아왔던 결정적인 원인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성전을 수리했던 일입니다. 만약 요시야가 퇴락한 예루살렘 성전을 수리할 마음을 품지 않았다면, 요시야는 율법책을 발견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율법책에 나오는 말씀대로 개혁을 진행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영적 회복과 부흥은 도저히 경험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요시야가 성전을 수리하지 않았다면 유다는 훨씬 더 일찍 바벨론에게 멸망당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가 하늘로부터 임하는 은혜를 새롭게 누리길 원하고, 영적인 회복과 부흥을 경험하길 원한다면 가장 먼저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을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부터 가져야 할 것입니다. 

시69편에서 다윗은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켰다”라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또 시84편에서는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라고 말씀하기도 합니다. 또 시122편에서는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라고 노래하기도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너무도 사랑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성전에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너무도 사랑하는 하나님이 그 성전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으로 가는 것이 다윗에게는 기쁨이었고, 즐거움이었습니다. 그 어떤 곳에 있는 것보다도 다윗은 하나님의 집에 거하는 것을 가장 기뻐하던 사람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는 마음이 오늘 우리들 가운데 있게 되길 소망합니다. 이 세상 어느 곳보다도 주님의 집에 머물기를 힘쓰는 우리들이 되길 원합니다. 이 주님의 성전을 더욱 귀하게 여기고, 아끼고 사랑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우리들 가운데 더욱 크게 넘쳐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눈에 보이는 이 하나님의 성전을 아끼고 사랑해야 할 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성전, 즉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성전 또한 아름답게 가꾸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전3:16절에서는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씀합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 속에 계시기 때문에,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계시는 성전이 된다라는 말씀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거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신약 시대인 지금, 하나님은 바로 우리 마음 속에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라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은 바로 성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마음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 또한 하나님이 거하시기에 합당하도록 거룩하고, 아름답게 가꾸어 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마치 요시야가 예루살렘 성전을 정성을 다해서 거룩한 모습으로 가꾸어 갔던 것처럼, 우리의 영혼 또한 하나님이 거하시기에 합당하도록 거룩한 모습으로 만들어가야만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혼을 어떻게 하면 거룩하게 가꾸어갈 수 있겠습니까? 먼저 우리 영혼의 회복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시작된다라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합니다. 요시야가 성전을 수리하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율법책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율법책에서부터 모든 개혁과 영적인 회복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영혼이 회복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부흥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우리의 영혼을 거룩한 모습으로 가꾸어 갈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 속에 거하시도록 거룩한 모습을 가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말씀을 알아야 할 것이고, 하나님 말씀으로 영혼을 가득 채워야만 합니다. 

하지만 말씀을 아는 것 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말씀을 알았다면 이제는 그 말씀을 우리의 삶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천해 나가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 말씀에 순종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요시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깨닫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제대로 순종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고통과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요시야가 어떻게 했습니까? 요시야는 철저하게 말씀에 순종합니다. 말씀에 금하고 있는 모든 우상들을 다 물리치고, 말씀에 기록된 대로 철저하게 유월절을 지키고 준행합니다. 요시야는 말씀 앞에 진심을 다해서 순종했고, 그럼으로써 영적인 회복과 부흥을 열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요시야처럼 하나님의 말씀 앞에 철저하게 순종할 수 있는 우리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듣는다”라는 말은 단지 귀로 소리를 듣는 것만을 의미하는 말이 아닙니다. 듣는다라는 말은 그 말을 듣고, 또 그대로 따라 행한다, 순종한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단지 귀로 듣기만 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히 나의 주장과 생각을 내려놓고,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내 안에 충만하게 거하실 수 있도록, 우리의 영혼이 거룩하여지고, 성결케 될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전의 수리를 모두 마친 요시야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새로운 영적인 회복과 은혜가 가득하게 임하였음을 말씀을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그와 같은 은혜가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전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더욱 아름답게 이 성전을 가꾸어 가는 성도님들 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더욱 부흥케 되고, 우리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가득하며, 기쁨과 사랑이 충만한 삶을 누리게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성전이 더욱 아름답게 세워져갈 수 있길 바랍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이 성전 또한 너무도 귀하고 소중한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욱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성전을 아름답게 세워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마음을 채우고, 또 그 말씀 앞에 전적으로 순종하면서 우리 마음의 성전이 귀하게 세워질 수 있길 원합니다. 

우리 교회는 예배당을 건축하지 않겠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는 교회입니다. 예배당을 건축하지 않는 대신, 그 만큼 더욱 많은 것들로 이웃과 사회를 섬기고, 나누겠다는 정신을 가지고 세워진 교회입니다. 비록 우리가 예배당을 건축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마음 속에 있는 성전만큼은 이 세상, 그 어떤 교회, 그 어떤 예배당 보다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세워져가는 은혜와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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