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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토기장이의 손 안에서 (렘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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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에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에서 내 말을 네게 들려주리라 하시기로,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그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참 신앙인의 진정한 소망은 성령의 기름부으심(His Anointing)을 마음껏 받는 데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가 있을 때 넘치는 활력을 경험하게 되고, 주님의 기름 부으심이 있을 때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주님의 기름부으심은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주시는 최상의 선물입니다.
그런데 기름부음에는 댓가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기꺼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원하여 주님을 따라 나서야 합니다. 주님은 제자의 길을 따라 나서는 성도에게 성령으로 기름부어 주십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교회의 회중 가운데로 오셔서 자기 사람을 찾으십니다. 주님이 찾으시는 대상은 기존의 오래된 교인들이 아니라 ‘자원하여 주님을 따르는 자’ 입니다. 주님은 회중 가운데서 자신의 신부감을 찾고 계십니다. 사도 베드로는 그들이 장차 주님으로부터 칭찬과 영광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벧전 1:6-7=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여러분은 장차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주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싶지 않습니까?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주님으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 이라고 칭찬 받고 싶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먼저 죽어야 합니다. 나의 평판에 죽어야 하고, 나의 종교적 편견에 죽어야 하고, 나의 신학에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원하여 주님의 제자의 길을 떠나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만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싶지 않다면, 그 사람은 교회 뒷줄에 앉아 구경꾼(pew sitter)으로 만족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주님께서 자기 제자를 어떻게 연단시켜 멋진 일꾼으로 만들어 가시는가 하는 것에 대한 말씀입니다. 토기장이가 자기 마음에 원하는 대로 진흙을 가지고 토기를 만들 듯이, 주님은 자기의 종들을 아름다운 그릇으로 빚으십니다.

4절=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6절=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가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토기장이가 자기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드는 것 같이 하나님은 절대적 주권을 가지고 당신의 기쁘신 뜻대로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십니다. 토기장이가 심혈을 기울여 토기를 빚는 것처럼 하나님은 인내심을 가지고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우리를 아름다운 일꾼으로 만들어가십니다. 
이 시간 말씀을 따라서 진흙이 아름다운 그릇으로 탄생하게 되는 긴 여행에 함께 동행합시다.


1. 쓰레기 더미에서 토기장이의 집으로 (= 부르심, 세상에서 교회로)

여러분은 예수님을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하십니까? 아마도 그때 우리는 죄의식(罪意識)으로 고민하고 있을 때였을 것입니다. 세상살이에서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좌절 가운데 있을 때였을 것이고, 아무에게도 호소할 데 없어 억울하고 원통한 심정으로 울고 있을 때였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통 중에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비유컨대 주님은 쓰레기 더미에서 우리를 찾아내십니다. 그곳은 깨어진 그릇들이 즐비한 곳입니다. 거기에는 깨어진 가정들, 부서진 인간 관계들, 삶의 의욕을 상실한 사람들, 사회에서 쓸모없다고 여김 받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토기장이의 밭은 쓰레기 더미와 같습니다.
우리가 죄의식으로 고민하며 고통 가운데서 부르짖을 때 주님이 오셔서 부드러운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의 삶을 위해 비전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를 토기장이의 집인 교회로 데려오십니다. 
본문의 말씀(1-4절)을 함께 봅시다.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한 말씀에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라 내가 거기에서 내 말을 네게 들려주리라 하시기로,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여호와 하나님은 토기장이 중의 우두머리(Master Potter) 이십니다. 그의 집에는 수많은 그릇들이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하나님의 집에서 어떤 그릇에 해당합니까?
하나님의 집에는 여러 종류의 다양한 기능을 가진 그릇들로 가득합니다. 주의 말씀을 쏟아 붓는 주전자가 있습니다. 말씀의 떡과 고기를 담는 큰 접시도 있습니다. 치료의 기름을 담는 기름병도 있고, 발 씻는 대야도 있습니다. 
주님의 집에는 왕의 침실을 장식하는 꽃병도 있고 성령의 열매를 가득 담아내는 과일 바구니도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떤 그릇이 되어 있습니까?
성도 여러분! 쓰레기 더미에 묻혀 있다가 기적적으로 토기장이의 집으로 옮겨진 깨어진 그릇과 같은 우리는 이제 부서져서 변화 받는 긴 여행을 시작합니다. 토기장이는 돌을 들어 깨어진 조각을 부수어뜨리기 시작합니다. 깨어진 조각들은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토기장이의 매서운 손은 멈추지 않습니다. 마침내 미세한 가루가 되기까지 토기장이이신 주님은 우리 속의 모든 단단한 것들을 으깨어 우리를 부드러운 가루로 만드십니다.
그런 다음 토기장이는 가루를 큰 통에 넣고 거기에 생수(living water)를 부으십니다. 이 생수는 하늘 보좌로부터 부어지는 성령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예배와 찬양을 통하여 주님은 우리에게 은혜의 강수로 가득 채워주시고, 우리의 영혼을 생수로 흠뻑 적셔주십니다. 
처음 주님을 만나 은혜를 체험한 성도는 첫사랑의 감격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그의 입에서는 주님에 대한 사랑의 고백이 끊이지 않습니다. “주님, 저를 이처럼 사랑해 주시니 너무 좋아요. 저도 주님을 사랑해요”
성도 여러분! 기억합시다. 우리는 본래 쓰레기 더미에 묻혀 있던 깨어진 그릇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런 우리를 주님의 집으로 옮겨주셨고, 이제 우리를 새로운 삶에로 초청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주님을 찬송합시다.



2. 녹로(襤難)에서 선반 위로 (= 기름 부으심과 시련의 시기) 

3,4절= “내가 토기장이의 집으로 내려가서 본즉 그가 녹로로 일을 하는데 진흙으로 만든 그릇이 토기장이의 손에서 터지매 그가 그것으로 자기 의견에 좋은 대로 다른 그릇을 만들더라” 

토기장이는 이제 물에 이겨진 가루를 녹로(= 물레바퀴, Spinninig Wheel) 위에 올려놓고 그릇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녹로는 둥근 도자기를 만드는 데 쓰는 둥근 회전판입니다. 본문에서, 선지자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지시에 따라 토기장이의 집으로 갔는데, 거기서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자기 종들을 어떻게 다루시는가를 보여주는 현장 학습의 시간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의 권능의 손을 보십시오. 주님은 으깨어져 가루가 된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 만들기 시작합니다. 토기장이가 진흙을 다듬으며 녹로를 돌려서 그릇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는 것 같이,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다듬어 일꾼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의 약속의 음성을 듣습니다. “내가 너를 인도하리라. 너의 장래를 내가 책임져 주리라.”
주님의 전능하신 손 아래서 어린 그리스도인은 이제 성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한 주님의 궁극적인 계획은 아직 미스테리로 남아 있습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의 스토리는 본문의 토기장이 비유와 잘 부합하는 예가 될 것입니다. 요셉은 소년 시절에 하나님이 주신 꿈을 꾸고 먼 장래의 약속을 가슴에 품었습니다. 

창 37:5,7=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 형들에게 말하매...우리가 밭에서 곡식 단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창 37:9=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그의 꿈은 분명한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그 꿈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는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 꿈을 하나님이 주신 평생의 비전으로 알고 믿음을 키워갔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꿈을 가지고 있습니까?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 어떤 약속의 음성을 들었습니까?
토기장이는 만들어진 그릇을 들어 선반 위에 올려놓고 말리기 시작합니다. 그릇의 형태를 갖추었지만, 토기의 여행은 끝난 게 아니고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시련의 시기요 연단의 단계입니다.
주님은 젖은 토기와 같은 어린 그리스도인을 선반 위에 올려놓고 광야의 바람으로 건조시키기 시작하십니다. 처음 교회를 찾은 초신자는 신앙의 초기에 자신에게 불어오는 여러가지 시련의 바람을 맞으면서 두려움으로 소리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 저는 무섭습니다. 내 가족에게서 점점 멀어질까봐 두렵습니다. 내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을까봐 두렵습니다. 내 인생에 무슨 일이 닥쳐올 것 같아 무섭습니다.”

광야의 경험은 어린 그리스도인에게는 시련이면서도 성장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주님은 사막의 바람으로 우리를 단련시켜 어른으로 키우고자 하십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형들의 시기 때문에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 그리하여 바로의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 노예가 되어 앞날을 알 수 없는 가운데 종살이 하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자신의 직무에 성실했습니다. 


창 39: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창 39: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성도 여러분! 우리를 키우시기 위하여 시련을 주시는 주님의 섭리는 계속됩니다. 그런데 우리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계속하여 불어오는 광야의 바람 앞에서 과거의 모든 것을 잊어버립니다. 주님을 처음 만나던 순간의 설레임을 잊어버리고, 구원의 기쁨을 상실해버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해버립니다.
우리의 외로움과 고통 중에서도 하나님은 자신의 완벽한 계획을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제자입니까? 여러분의 마음속에 나를 구원하시려고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피를 쏟아 자신을 희생하신 예수님에 대한 감사와 사랑이 있습니까?
만일 그렇다면 그 사람은 마침내 자신이 의지하던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항복을 선언하게 됩니다. “주님, 주님은 저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주님만 제게 계시면 저는 행복합니다.” 


3. 1차 불가마에서 2차 불가마로 (= 불시험과 연단)

이제 우리 주님의 모습을 보십시오. 주님은 교회 회중 가운데로 걸어가셔서 토기들을 살펴보십니다. 그리고 바싹 마른 그릇들을 골라 내셔서 다른 방으로 옮겨 놓으십니다. 
그 방은 불가마 방입니다. 토기장이는 1차 불가마 방에서 뜨거운 불로 토기들을 굽기 시작합니다. 그릇들의 표면에서는 땀이 비오듯 합니다. 이처럼 주님은 한꺼번에 여러 명에게 불시험을 가하십니다.
주님의 불시험은 가정 단위로, 구역 단위로, 혹은 교회 단위로 이루어집니다. 불시험을 통해 그릇의 안팎에 섞여 있던 각종 불순물들이 녹아내리기 시작합니다. 점점 달구어지는 불은 세상살이를 통해 우리의 삶속에 깊숙이 파고들어온 정욕의 찌끼들을 녹여 내립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더욱 정결한 몸과 마음을 갖게 됩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보디발의 집에서 성실히 일했고, 주인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더욱 큰 시련이 찾아 왔습니다. 주인의 아내가 노골적인 유혹을 해 왔고, 요셉은 그 유혹을 적극적으로 물리쳤지만, 결과는 전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요셉이 당한 모함은 예수님의 경우와 흡사했습니다. 주인의 아내가 주인에게 했던 말은 사탄의 지배하에 있는 이 세상에서 얼마든지 들을 수 있는 마귀의 소리입니다. 

창 39:17,18=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그리고 요셉은 감옥에 갇힌 죄수가 되었습니다. 그는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소년 시절의 꿈을 떠올렸을 것이고, 아직도 자기 속에 남아 있던 형들과 세상에 대한 분노의 찌꺼기들이 하나씩 둘씩 녹아내리는 것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마침내 1차 불가마의 시련이 끝나고 문이 열립니다. 토기장이는 달구어진 그릇들을 내어 다시 선반 위에 올려놓습니다. 토기들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쉽니다. 그러나 아직 그릇에는 유약(釉藥,glaze:잿물)이 칠해지지 않아 물을 담을 수 없습니다.
1차 불가마의 고통을 맛본 교인들 중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이제 하나님 무서운 줄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두려운 분이라는 사실 앞에 그들은 몸을 사리게 됩니다. 처음 멋모르고 교회 일에 앞장을 섰던 사람들까지 지금은 맨 뒷줄에 앉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구경꾼(Pew Sitters, 의자에 앉아 있는 자들)' 이라고 부릅니다. 
주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첫사랑을 회복하라!” “제자도의 값을 생각하라!” 주님은 말씀으로 계속하여 권면하시며 경고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주님의 사랑의 초청을 거부하며 그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버립니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은 제자의 길로 부르시는 주님을 따라 나섭니다. 주님은 자원하여 따라 나선 그를 테이블이 있는 큰 방으로 인도해 가십니다. 그곳에는 천사들이 주전자와 컵을 준비하고 있다가 준비된 그릇에 유약을 발라줍니다.
성도 여러분! 이제 두 번째 불가마 시련이 시작됩니다. 1300도가 넘는 엄청난 화력입니다. 빛나는 광채의 누런 불꽃입니다. 시련의 시간을 지나 죽음의 시간이 왔습니다. 
그릇에 아직도 남아 있던 마지막 불순물이 녹아내립니다. 아마도 그것은 경쟁(Competition)이나 교만의 찌꺼기일 것입니다. 남에게 이기고자 하는 마음일 것입니다.
주님은 불가마 방의 모든 댐퍼들(dampers)을 차단시키고 산소(Oxygen) 공급을 중단시키십니다. 시커먼 불꽃이 짙은 연기 속에서 번득입니다. 그 속에서 그토록 끈질기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던 내 마음 속의 경쟁과 교만이 녹아내리고, 미움과 원망이 증발합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그는 주님의 계명을 목숨 걸고 지켰건만 억울하게 모함 받아 감옥에 갇혔습니다. 요셉은 그 속에서 죽음을 경험했고, 최고의 연단을 받았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어떠하셨습니까? 주님은 겟세마네에서 이미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감내하셨습니다. 

막 14:34=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눅 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예수님의 제자들 또한 한결같이 불시험을 통하여 연단 받았습니다. 그들은 매 맞고 옥에 갇히고 쫓겨났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도 사도들의 모범을 따라 불시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맞섰습니다. 카타콤에서 그리고 갑바도기아에서 그들은 목숨을 걸고 황제숭배의 광풍과 맞섰습니다. 2차 불가마 시련은 죽음을 경험하는 불시험입니다.
그러나 이 과정 중 신비하게도 그릇의 표면에는 너무나 밝고 아름다운 빛깔이 생기게 됩니다. 마치 다이몬드나 루비, 에메랄드 같은 보석이 땅 속에서 뜨거운 불에 의해 형성되듯이, 불시험을 통과한 성도에게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나오는 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1차 불가마를 통과하셨습니까? 주님의 엄위하심을 몸으로 느껴보셨습니까? 그러면서도 제자의 길로 부르시는 주님의 초청에 기꺼이 순종하셨습니까?
주님은 자원하여 따르는 자들을 다시 2차 불가마로 데리고 가십니다. 그곳에서 주님은 산소 공급도 막은 채 무섭게 짙은 연기로 그릇 속에 아직도 남아 있는 마지막 불순물 하나까지 깨끗하게 제거하십니다. 그때 우리는 고난의 단계를 넘어 죽음의 문턱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자굴에 던져진 다니엘처럼, 그리고 7배나 더 뜨거운 풀무에 던져진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우리도 주님의 제자로서 감당해야 할 불시험을 통과하게 됩니다.
바로 이 순간 주님께서 개입하십니다. 산소를 주입하시고 부활의 빛을 비춰주십니다. 주님은 2차 불가마를 통과한 주님의 자녀에게 새로운 기름부음을 허락하십니다. 성령께서 강력하게 역사하셔서 주님의 제자를 충만하게 채워주십니다. 
놀라운 성령의 은사를 부어주십니다. 주님의 사랑을 가득히 채워주시고, 주님의 능력을 삶 속에서 체험하게 하십니다. 
이때 유약(glaze)이 녹아 흘러 그릇의 표면이 거울처럼 반들반들하게 됩니다. 그제서야 우리는 우리의 삶을 통해 주님의 얼굴을 반사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예수님의 모습을 연상하게 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네가 나의 얼굴과 나의 영광을 반사하게 되었으니, 내가 너를 온 세상에 보내노라!”
성도 여러분! 불가마에서 나오는 자기(瓷器) 그릇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답습니다. 이 그릇에 음식이 담겨지고 생수와 향기로운 기름이 담겨집니다. 세상에 나가 마음껏 사용되어집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1차와 2차 불가마를 통과한 그는 하나님의 가장 아름다운 그릇이 되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요셉의 꿈을 마침내 이루어주셨습니다. 그의 오랜 여행이 끝나고 하나님께서 그를 우뚝 세우셨을 때, 온 세상이 그를 알아보았습니다. 

창 41:38-41=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다스리라 내 백성이 다 네 명령에 복종하리니 내가 너보다 높은 것은 내 왕좌뿐이니라.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애굽 온 땅의 총리가 되게 하노라”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요셉의 내면에 어느덧 영광스러운 칼라가 착색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어 천하를 호령하는 권세를 가졌지만, 그는 자기 앞에 엎드린 힘없는 형제들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형들이 자기 때문에 두려워할까봐 신경이 씌였고, 진심으로 형들을 감싸안았습니다.

창 50:19-21=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요셉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가슴이 시리도록 아름답지 않습니까? 우리의 자랑스런 요셉은 영광스러운 불시험을 통과했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불가마를 나왔습니다. 그는 비싼 댓가를 치루고 마침내 최고의 영광스런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성경 인물 중 가장 예수님을 닮은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기꺼이 주님의 불연단에 자신을 내맡기겠습니까? 아니면 비겁하게 숨어 평생을 뒷좌석에서 구경꾼(pew sitter)으로 지내겠습니까?
지금 주님의 손에는 신부의 가운이 들려져 있습니다. 그 가운은 몸과 마음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정결한 영혼으로 주님을 따르는 자를 위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옷이 욕심나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죽음의 시련을 통과하여 부활의 영광을 경험해보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결코 강요하지 않습니다. 선택은 우리 각자의 몫입니다. 

(기도) 
주여, 나의 연약을 붙드소서! 
주여, 나의 믿음 없음을 도우소서! 
나를 불가마에 넣으소서, 준비 되어 있습니다. 
주여, 우리 교회를, 우리의 가정을 정결케 하소서.
(대구서현교회, 박순오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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