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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렇게 기도합니까? (행 1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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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기도합니까? (행 10:1-23) 
 

1. 기도합니까?

휴가 기간 동안 前 주중대사와 통일부 장관을 지낸 김하중 장로의 『하나님의 대사』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 중에는 김하중 장로가 주중대사로 근무할 당시, 비서실에서 근무하던 한 여비서와 나눈 대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김 대사는 비서실 직원으로서 신실한 주님의 사람, 특별히 기도의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미스 김은 그런 조건에 적합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가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대사의 비서가 될 수 없다는 것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알게 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김 대사가 그녀를 불러서 물었습니다. 

“미스 김, 예수님 믿어요?” 
“네, 믿습니다.” 
“기도해요?” 
“기도합니다.” 
“그래요? 내가 알기로는 기도를 안 하는데요?”
대사로부터 자신이 기도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미스 김은 깜짝 놀란 표정이었습니다. “대사님이 어떻게 아십니까?” 

자신이 기도하는 가운데 깨닫게 된 것을 말해주자 미스 김은 울먹이면서 대답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실 제가 기도를 안 합니다.”
“미스 김은 목사님 딸인데, 왜 기도를 안 해요? 하나님은 미스 김이 기도하기 원하시는 것 같아요. 미스 김, 기도하면서 비서실 근무를 할 거예요? 아니면 기도 안 하고 비서실 근무를 안 할 거예요?”
“기도하겠습니다.” 
“약속할 수 있어요?” 
“약속하겠습니다.”
“좋아요! 그러면 비서실 근무 발령을 내도록 할게요.” 

그렇게 해서 미스 김은 비서실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몇 달이 지난 후, 김 대사는 미스 김이 기도하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께 여쭸습니다. 
“하나님! 미스 김 요새 기도합니까?”
“안 한다.”
그래서 김 대사는 미스 김을 불러서 물었습니다. 
“미스 김, 기도해요?” 
“….” 
“약속을 해놓고 왜 안 해요?” 
미스 김은 울기 시작했고, 잠시 후 눈물을 닦으면서 기도하겠다고 했습니다. 몇 달이 지난 후 김 대사는 다시 하나님께 여쭤보았습니다.

“하나님, 미스 김 요즘 기도합니까?”
“조금 한다.”
바로 그날 김 대사는 자기 방에 커피를 가지고 온 미스 김에게 물었습니다.
“미스 김, 기도해요?” 
“합니다.” 
“그런데 조금 하죠?”
그녀가 깜짝 놀라 대사를 쳐다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미스 김이 기도를 하기는 하는데, 조금 한다고 하셔.” 

그 말들은 들은 미스 김은 또 다시 흐느껴 울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샅샅이 아시는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과 죄송함과 감사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미스 김이 변하기 시작하더니 점점 뜨거운 기도의 용사가 되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기도 안 하는 것도 아시고 조금 하는 것도 아신다는 깨달음이 그녀의 기도에 불을 붙인 것입니다. 그때부터 열심히 기도하기 시작한 미스 김은 누가 봐도 놀랄 정도로 믿음이 쑥쑥 자라났습니다. 말이나 행동이나 목소리나 모든 것이 옛날의 그녀가 아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영사부에서 탈북자 업무를 전담하는 직원이 되었습니다. 정식 외교관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바로 그 일 때문에 하나님께서 김 대사를 통하여 그녀를 준비시키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 역시 똑 같은 질문을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 기도합니까? 정말 기도하십니까? 여러분이 정말 기도하신다면 김하중 대사의 경험이 결코 낯설지 않을 것이며, 다음 두 사람의 기도생활 역시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2. 고넬료와 베드로의 기도 생활

오늘 본문은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일어난 놀라운 일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 고넬료의 기도생활

본문은 지중해 해안 도시인 가이사랴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가이사랴는 당시 유대와 사마리아 지방을 관장하는 로마 총독의 주재지였으며, 파견된 로마 부대의 사령부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1절에 나오는 ‘이달리야 부대’란 가이사랴에 주둔하고 있던 유대와 사마리아 전체를 책임지는 로마 군대를 부르는 이름이었으며, 고넬료는 그 부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백부장이라는 로마군의 계급은 말 그대로 100여명의 부하를 거느리는 지휘관으로서, 대위 정도의 계급입니다. 

사도행전 21장에서 가이사랴 부대의 천부장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팔레스타인 파견군의 최고 책임자는 천부장이었으며, 백부장은 그 수하 장교들 중 한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고넬료는 그 백부장들 중에서도 다른 지역으로 가지 않고 행정 수도인 가이사랴에 주둔하면서 총독과 총독부를 직접 호위 경호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아 백부장 중에서도 최고참이거나 최고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그가 정통 로마인으로서 로마 정부로부터 가이사랴로 파견된 부대의 지휘관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잘 믿는 경건한 사람이었다는 점입니다(2). 

오늘 본문은 이러한 고넬료의 경건한 신앙에 대해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➊ 고넬료는 하나님을 敬畏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최고의 문명과 힘을 자랑하던 로마 시민으로서, 로마는 신들의 나라요, 로마 사람은 신의 후예라고 하는 자부심에 가득 차 있던 그가 어떻게 자신이 정복자로 오게 된 유대인들의 신인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었는지 알 길은 없습니다. 정복자는 자신이 지배하는 민족이나 그들의 신을 우습게 여깁니다. 자기 자식 같은 민족을 지켜주지 못한 신이니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지배자가 믿고 섬기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경외했습니다. 하나님을 신 중의 신이자 살아계신 분으로 두려워했으며, 그 두려움은 하나님께 드리는 경건한 예배로 표현되어 그는 유대인들과 어울려 하나님께 예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➋ 고넬료는 救濟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고위직 인사들이 체면 치례로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형식적인 구제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고넬료의 구제는 그런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백성을 많이 구제했다(2)”고 하는 것으로 보아, 그는 지역 사람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➌ 그리고 고넬료는 하나님께 항상 祈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고넬료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기도였습니다. 그는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었는데, 이 “항상”이라는 말은 ‘언제나’, ‘한 순간도 빼놓지 않고’, ‘종신토록’, ‘호흡이 끊어지는 순간까지’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고넬료는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항상” 기도한다고 해서 정한 기도 시간이 따로 없지 않았습니다. 그는 ‘제구시’에 기도했습니다(3). 제9시란, 오후 3시, 가장 바쁜 시간인데, 직장인으로서 정복자에게 맡겨진 과중한 업무에도 불구하고 기도 시간을 확보한 사람이었지요.

고넬료는 유대인의 입장에서 볼 때는 이방인이요, 로마인의 입장에서 볼 때는 신의 아들이자 세계 최고 최강 국가의 고급 군인이요, 가이사랴 로마군 사령부의 지휘관으로서 정말 바쁜 사람이었지만, 그의 신앙은 결코 형식적이지 않았습니다. 그의 기도생활 하나만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지요.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만큼 기도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양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정도는 비례합니다. 고넬료는 항상 기도하는 사람이요, 그리고 시간을 정해두고 그 시간에 어김없이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의 신앙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런 고넬료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기도를 들으셔서 환상을 보게 하셨습니다. 기도하던 고넬료가 본 환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사자가 자신을 찾아왔고, 그 천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 지시의 내용은 ‘욥바’에 가서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있는 베드로를 초청하라는 것이었습니다(5,6). 고넬료가 본 환상은 착시나, 꿈이나, 아니면 어떤 몽롱한 상태에서 헛것을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밤이 아닌 오후 3시에 아주 분명한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자를 분명히 만났고, 베드로가 머물고 있는 정확한 위치까지 전달받았습니다. 그가 본 환상이 그렇게 아주 분명했기 때문에 그는 곧바로 사람들을 보내어 베드로를 모셔오도록 시켰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은 아주 신비한 일입니다. 그렇지요? 일반적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이런 신비한 현상과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물론 신비주의에 빠져서 모든 것을 신비한 현상으로 해석하려고 하거나 신비적인 힘에만 의존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신비한 능력이 발휘되고 나타난다는 것을 믿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성도의 삶에는, 특별히 복음을 전할 때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때, 그리고 기도할 때 신비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음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2) 베드로의 기도생활

고넬료의 기도생활만 신기한 것이 아닙니다. 9절 이하에 기록된 베드로의 기도생활 역시 놀랍습니다.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베드로가 머물고 있는 욥바, 가이사랴에서 약 50km 정도 떨어져 있어 걸어서 10시간 이상은 걸리는 거리에 있던 욥바의 시몬의 집에 도착했을 때, 베드로 역시 기도하는 중이었습니다. 베드로가 기도하러 올라간 시간은 “제 육시”로서 우리 시간으로 정오입니다. 

당시 팔레스타인의 지붕은 슬라브처럼 되어 있어서 그곳에서 쉴 수도 있고, 기도도 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베드로가 머물던 집 주인이 ‘무두장이’, 즉 가죽 제품을 만드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가 우리로 치면 옥상에다가 가죽으로 차일을 만들어 네 귀퉁이를 메어서 그늘을 만들어 주었을 것입니다. 점심때부터 거기서 기도하던 베드로는 시장기를 느껴서 뭔가를 먹고자 했고, 사람들은 그런 베드로를 위하여 식사를 준비하는 사이, 베드로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하늘이 열리고 큰 보자기 같은 것이 네 귀를 메고 내려오는데 그 안에 온갖 부정한 짐승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때 소리가 들려오기를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먹어라!”고 했습니다(13). 그 말을 들은 베드로는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하지 아니한 것을 내가 결코 먹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했습니다(14). 그러자 하나님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고 하지 말라(15)!” 이런 일이 세 번이나 있은 후 그 그릇이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세 번이나 있었던 것은 아주 분명하고 확고한 주님의 뜻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유대인으로서 율법에서 금한 부정한 짐승들을 먹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먹으라고 하시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고? 주님은 무슨 뜻으로 이런 환상을 보이시는 것일까?’ 하면서 속으로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와서 고넬료가 왜 자신들을 보냈는지를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의심하지 말고 따라 가라’고 하셨습니다(20). 그래서 베드로는 그들을 불러들여 하루를 유숙하게 한 후, 다음날 가이사랴로 갔습니다. 가이사랴의 고넬료의 집에는 고넬료가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을 불러 모아 놓고 말씀 들을 준비를 다하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유대인 베드로의 입장에서 이 장면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지요!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勢道 높은 로마 군인 고넬료가 자신의 발 앞에 엎드려 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식민지 백성에게 지배자의 군대 백부장이 엎드려 절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고넬료의 모습에 깜짝 놀란 베드로는 고넬료를 일으키면서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고 했습니다(26). 그러고 나서 베드로는 자신이 본 환상에 대해서 말했고(30~33), 이어서 고넬료의 가정에 주님의 복음을 증거했습니다(36~43). 

세례 요한의 증거로부터 시작해서 예수님의 사역과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3일 만에 다시 살리심으로 예수님이 참 구세주이심이 입증되었다는 것을 증거했습니다. 여러분, 고넬료에게 왜 이런 일이 필요했을까요? 그 이유는 그가 아무리 로마인으로서 유대인보다 더한 신앙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은 구약적인 신앙이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신앙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를 청하여 참된 복음, 구원을 주는 생명의 말씀을 듣게 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넬료가 아무리 하나님을 경외하고 구제와 기도에 최선을 다 하고, 또 그의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 되었다 할지라도, 그는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따라서 고넬료는 우리 주 예수님의 복음을 들어야 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였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이 되어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고 죽으셨는가?
내가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다 헛되다!
나는 본질적으로 죄인이다!
예수님을 믿는 것 외에는 죄 사함 받을 길도, 구원받을 길도, 영생에 이를 길도 없다! 이것을 깨닫도록 하나님은 베드로를 보내어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증거하게 하셨던 것이죠. 

그리고 이 일은 베드로에게도 목적이 있었습니다. 유대인인 베드로는 여전히 이방인에 대한 편견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주님은 그에게 환상을 보이시고, 그 환상대로 이뤄지는 모든 과정을 통하여, 그의 편견을 깨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여 이방인의 교회가 세워지는데 초석을 놓도록 만드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넬료와 베드로에게 일어난 일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무엇입니까? 예, 바로 ‘기도’입니다. 그들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거나,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를 만났거나, 자신의 삶에서 아주 중요한 만남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고넬료와 베드로 두 사람은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기도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 기도의 유익과 혜택이 얼마나 대단한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3. 『하나님의 대사』 김하중 장로의 기도생활

설교 시작에 소개했던 김하중 장로의 책 『하나님의 대사』의 내용 중 일부를 한 번 더 소개해야 겠습니다. 김하중 장로는 원래 기도하는 어머니 슬하에서 자랐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새벽마다 그의 방문 앞에 엎드려 오랜 시간 기도하셨는데, 그 어머니 때문에 잠을 잘 수도 없었고, 화장실에도 갈 수 없어 책상에 앉아있어야 했으며, 식사 때마다 어머니가 가족들 모두의 이름을 부르며 간절히 기도하는 바람에 항상 밥은 식어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신앙은 보잘 것 없었고, 독실한 불교 집안의 사람과 결혼한 후, 교회도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부인이 먼저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아빠의 신앙생활을 위하여 금식 기도하던 딸 때문에 1994년 가을에야 교회를 나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즈음, 그가 나가던 교회 어느 권사님이 기도하는 중에 그의 진로에 대한 응답 받은 것을 말해 주었고, 그것이 정확하게 그대로 이루어져 외무부 인사 이동이 거의 없는 시기에 외무부 아태국장이 되는 일을 경험하면서 기도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나이 47세에 세례를 받을 때 온몸으로 살아계신 하나님과 성령님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며 뭔가 뜨거운 것이 내 몸 속으로 확 쏟아져 들어왔다. 그러고는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그때부터 그는 무슨 일이든지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떤 때는 책상에서 서류를 보다가, 어떤 때는 소파에 앉아 있다가, 어떤 때는 신문을 보다가, 심지어 김대중 대통령 의전 비서관으로 근무할 때 먼저 기도하고 대통령을 만났는데, 한 번은 대통령에게 보고하던 도중에 그 보고에 대해 기도로 준비하지 않은 것이 생각나 대통령에게 핑계를 대고 나와서 기도하고 다시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그가 주중대사로 근무하던 시절, 가장 힘들었던 일은 2002년 11월 중국 광동성에서 발생한 21세기 신종 전염병인 ‘급성호흡기증후군(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 일명 ‘SARS’ 때문이었습니다. 예방약도 치료약도 없는 이 병은 급속도로 전 세계로 퍼져 8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중국 전역이 불안에 흔들렸을 뿐 아니라, 각 나라들은 기업인 유학생 대사관 직원까지 철수를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주중한국대사관은 철수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김하중 대사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철수하지 마라”고 하셨고, “중국에 있는 한국인은 어느 누구 한 사람도 이 병에 걸리지 않게 하겠다”고 하셨으며, 기도하는 가운데 환상을 보이시면서 “사스가 곧 끝난다”고까지 말씀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그것을 믿고 대사관 직원들을 독려하면서 버티었습니다. 바로 이 일이 중국 정부당국자들과 중국인들을 크게 감동시켰습니다. 

그때만큼 한국과 중국이 가까웠던 적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북한에서 중국으로의 탈북자 문제로 영사관이 폐쇄당하는 등 여러 가지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도 “대사 재임 기간 동안 1,000명의 목숨을 구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고, 결국 대사 재임 5년 9개월(2002.5~2008.2) 동안 한국으로 보낸 탈북자 수가 1,060명일 정도로 기도한 그대로 탈북자들을 섬긴 일은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또 엄청난 양의 마약을 제조, 밀매한 혐의로 중국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한국인 범죄자 두 명을 회개시키고 8년 만에 가석방시켜 본국으로 추방해 새 삶을 살게 해 준 불가능한 일도 이루어 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중국과 중국 정치인들을 위하여 매일 빠지지 않고 기도했는데, 이번에 한반도를 중심으로 이해관계가 밀접한 6개 국가인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 우리나라와 북한이 포함된 6자회담의 중국 측 수석대표로 북한을 거쳐 우리나라를 訪韓한 우다웨이(武大偉)와도 기도를 통하여 아주 특별한 사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다웨이의 외교관으로서의 삶에 대해서도 기도하는 가운데 조언을 해 줌으로서 더욱 더 친해졌습니다. 그리고 그는 대사로서 근무하는 동안 한인교회들이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해 도왔습니다. 그는 자녀들의 결혼 문제도 그 시기와 배우자들까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가운데 해결했습니다.

외교관으로서, 대통령 외교안보수석비서관으로서, 주중 대사로서, 그리고 통일부 장관으로서 36년 동안의 공무를 은퇴한 후, 지금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면서 헌신하는 일은 매일 수백 명을 위하여 중보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의 기도는 단순한 기도가 아닙니다. 보는 기도, 듣는 기도, 미리 보는 기도, 이미 아는 기도입니다. 오늘 본문의 고넬료와 베드로처럼 말이죠! 여러분의 기도생활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기도 생활은 어느 정도입니까?

4. 여러분의 기도생활은 어떠해야 하나?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고넬료와 베드로의 기도가 어떠 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들은 단순한 기도자가 아니었습니다. 정말 기도의 깊이, 기도의 신령함을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눈을 감고 기도했는지 뜨고 기도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세상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 볼 수 없었던 그들이 주님과 주님이 하시는 일은 분명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고넬료나 베드로 만이 아닙니다. 주님은 바울을 이방 선교를 위해 부르실 때도 아나니아에게 환상을 보이셨습니다. 

그 후, 바울이 유럽 지역으로 선교를 하게 된 것도 마게도냐 사람이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릴를 도우라”는 환상을 주님께서 보게 하심으로서 이뤄졌습니다. 이렇게 눈을 감고 기도하는 성도에게는 또 다른 세계가 열린다는 것을 오늘 본문이 말씀하고 있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고넬료와 베드로의 기도 생활이 어떠했는지를 아는 것으로 끝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그들의 기도를 경험하는 것, 아니 그들의 기도를 넘어서서 더 깊고 풍성한 기도생활을 하는 것, 바로 이것이 주님의 뜻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설교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을 했습니다. “우리의 신앙 수준은 우리 기도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우리 기도의 수준이 곧 우리 신앙의 수준을 결정합니다.” 즉 기도가 곧 그 사람의 신앙의 수준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정도라는 말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다면 사람하는 만큼 기도하십시오. 

교회는 ‘특별새벽기도회’로 하반기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합니까?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 수 없으며,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친밀해질 수 없으며,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닮아갈 수 없으며,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으며,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기도하지 않으면 신앙 생활이 신앙 생활이 아니기 때문이며, 기도하지 않고 사는 것은 제대로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기도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주님과 말씀과 무관한 삶을 살게 되고,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 아들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은혜와 복, 성령님이 주시는 신령한 은혜들을 누리지 못하게 되고, 결국 세상적인 그리스도인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만 바라보다가, 사람들만 바라보다가 끝나는 생애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면 천국을 보며, 하나님을 만나며, 천사의 도움을 입을 수 있으며,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되고, 알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 기도해야지요! 

사랑하는 여러분, 이번 특별새벽기도회를 통하여 기도가 무엇인지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기도의 깊고 놀라운 세계를 여러분들도 맛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기도를 통하여 여러분의 신앙생활이 달라지고 여러분의 인생이 달라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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