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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혜롭게 생각하라 (롬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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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롭게 생각하라 (롬 12:3-8) 

  
로마서 크게 둘로 나누어진다. 1-11장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구원의 교리에 대해 설명한다. 교리이기에 딱딱하고,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해가 안 될 때, 억지로 풀려고 하지말고,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만, 이해할 수 있다. 
  
12-16장은, 믿음으로 값없이 구원 얻었으니, 이제는 이렇게 살라는 생활에 대한 권면이다. 따라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신앙생활은 믿음으로 구원받고, 구원받은 후엔 구원받은 사람답게 행동하라는 말씀이다. 구원받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12:1-2) 구원받은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예배를 중요하게 여기고 살아야 한다. 자신의 욕심과 정욕을 죽이는 것이, 바로 예배다. (3-13) 봉사를 해야 하는데, 먼저 교회에서부터 봉사하고, (14-21) 사회에서 봉사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한다. 

우리가 교회에서 봉사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말씀하는가? (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했다. 

여기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했는데, 원문의 뜻은 술 취하지 않은, 건전한 생각을 하라는 말이다. 이 말씀은 5가지 형태로 사용되었다. ① 귀신들린 자가, 정신이 온전하게 되었을 때(막5:15, 눅8:35). ② 믿음의 분량을 따라(롬12:3), ③ 열광주의 자들의 대조되는 행동(고후5:13), 

④ 신중하고 규율 있는 생활(딛2:6), ⑤ 종말론적 광란에 빠지지 않은 절제(벧전4:7)가, 지혜로운 생각이다. 신비주의나, 율법주의에 빠지지 말고, 감정적으로 흥분하지말고, 온전한 정신으로, 정신을 차리고 생각하라는 말이다. 

1.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3). 

마땅히 생각할 생각은, 반드시 흥미와 애정을 가지고, 생각해야 하는 생각이다. 어떤 생각을 해야만 하는가? 하나님의 생각, 즉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에 기준이 되어야 한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은, 쉽게 말하면, 주제 넘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말이다. 주제 넘는 생각은 무엇인가?  주도권이 자기에게 있다는 생각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의 말은, 항상 주어가 '나'다. 나를 보는 데는, 2가지 관점이 있다. 

(1) 나의 입장에서 보는 관점이다. 여기에는 2가지 위험성이 있다. 
① 나 자신보다도, 나를 낮게 평가한다. 그래서 자신이 형편없다고 평가한다. 
돈 많고, 공부 많이 하고, 똑똑하고, 잘 생긴 사람 옆에 가면, 자꾸 주눅이 들게 된다. 

그래서 자신은 아주, 형편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게 된다. 괜찮은데도 자신을 자꾸만 낮게 평가한다. 벌레보다 못하다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좌절감, 열등감, 의욕상실, 자기학대, 심지어는 자살까지 하게 된다. 

② 자신을 높이 평가하게 된다. 
자신이 굉장히 잘난 줄 안다. 이런 사람은 벌써, 얼굴 표정부터 다르다. 이런 사람들을 오만하다고 한다. 우월감에 사로잡혔다. 남을 쓰레기처럼 무시한다. 

어디를 가든지 1등을 해야 한다. 이런 사람은 행복할 시간이 없다. 왜냐하면 자기가 자신을 너무 높이 평가해 놓았기에, 누구든지 자신을 존경해 주지 않으면, 화가 나기 때문이다. 자기 뜻대로 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화가 난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를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사14:13-14)을 보면, 사탄이 품은 생각이 나온다.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내 자리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앉으리라, (내가)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가, (내가) 지극히 높은 이와 같아지리라 하는 도다." 

"내가 …을 하리라!" 이런 형태가 5번 나온다. 한글성경은 2번이 생략되었다. 그러나 영어 성경은, "I will"로 더 확실하게 느껴지고, 5번 나타난다. 따라서 주도권이 나에게 있다는 생각은, 마귀가 주는 생각이다. 우리는 죄의 성질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래서 끝없이 높아지려고 한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따르는 삶이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려 할 때, 가장 커다란 방해가 있다면, 자신을 과대평가 하는 일이다. 과대평가 하면, 자신을 신으로 착각하게 된다.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다. 

그러나 바울은, 은혜로 말미암아 말한다고 하였다. 바울은 자신이 믿음을 가지고 있어도, 여전히 제한된 존재이며, 구원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요즘 믿음을 강조하다 보니, 마치 하나님처럼 행동하려는, 잘못된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사람들이 들어야 할 복음은, 소크라테스 복음이다. 즉 '네 자신을 알라.'는 복음을 들어야만 한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삶을 살기 원한다면,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자신에 대해 지혜롭게 생각하라. 냉철하고 올바른 판단을 하시기 바란다. 

(2) 성경적인 관점에서, 자신을 보는 관점이다. 
자기가 자기를 보지 않고, 성경적인 관점에서 자신을 보게 되면, 절대 상처받는 일이 없다. 그러면 성경적인 관점에서 나를 본다는 말은 무엇을 말하는가? 여기에 4가지 기본적인 틀이 있다. 

①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피조물이라는 틀이다. 
우리는 우연히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진화된 존재도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이다. 최초의 인간에게는 죽음도, 저주도, 고통도 없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영생하는 존재로 태어났다. 

②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죄인이다. 
우리는 죄인의 후손으로 태어났기에, 죄를 짓든, 짓지 않든, 상관없이 죄인이다. 우리는 죄를 피할 수도 없게 되었다. 사람들이 이 부분을 인정하지 않기에, 신앙을 갖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한다. 

③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구원받을 길이 없는 존재다. 
인간의 노력과 선행, 율법, 종교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노력이 얼마나 무용지물인지 깨닫는 사람이 될 때,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이게 된다. 

④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회복될 수 있다는 관점이다.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우리는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를 때, 하나님의 생각보다 앞설 수 없기에, 우리의 생각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예수님은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셨다. 하나님의 뜻을 거절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셨다. 우리도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 

2. 지체의식에 대해 생각하라(4-5).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사도 바울은 교회를, 사람의 몸에 비유했다. 몸은 많은 지체로 이뤄져 있다. 손, 발, 눈, 코, 귀는 눈에 보이는 지체지만, 위, 간, 폐, 이런 지체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 지체는 모양도 기능도 위치도 다르지만,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이것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서로 연결되어, 한 몸을 이루고 있다. 만일 그 지체들 중에, 한 가지라도 상실되거나 마비가되면, 그 몸은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장애자가 된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해도, 생활하는데 장애를 느낀다. 

비행기는 거대한 물체이지만, 여러 가지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엔진도 있고 프로펠러도 있고, 바퀴도 있다. 역할이 모두 다르다. 위치도 다르고, 기능도 다르지만, 이 모든 부품은,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다. 비행기를 안전하게 뜨게 해서, 승객들을 편안히 모실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뜨지 못하는 비행기는, 비행기가 아니다. 비행기를 뜨게 하려면, 모든 부품이 각기 그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그 안에 있는 모든 부품들은, 크기가 다르고 역할도 다르다. 그러나 작은 것 하나라도, 잘 움직여줄 때, 비행기가 뜨게 된다. 그 기능을 상실하면, 비행기는 추락할 수 있다. 

이처럼 성도들은, 서로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아주 작은 일을 맡았지만, 충성할 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게 된다. 교회가 이 세상을 구원하려는, 거룩한 목적을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릴 수 있다. 

얼굴이 중요하다고, 혼자 있는 대로 자란다면, 기형이 된다. 세포 중에서도 다른 세포와 관계없이 제멋대로 크는 것이 암세포다, 혼자 잘난 척하면, 자신도 죽고, 몸도 죽이고, 집안을 죽이고, 교회도 죽인다. 

다르다는 말은 틀렸다는 말이 아니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교회를 이루고 있는 성도들은, 하나 하나의 기능과 역할을 다해야만 한다. 이러한 생각을 지체의식이라고 한다. 우리 모든 성도들은 한 몸으로서, 서로 지체가 되었다는 의식이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처럼 다른 지체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나 혼자 살아갈 수 있다고 착각하기에, 이웃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반면에 겸손한 사람은, 이웃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기에, 이웃의 존재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다. 

교만한 사람은, 사람들이 자기처럼 생각하고, 자기처럼 행동하기를 기대한다. 자기처럼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지 않으면, 이웃을 비판한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우리 공동체에, 다양성을 주셨음을, 아직도 발견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말씀을 벗어나면, 틀린 것이다. 틀린 것은 잡아줄 수 있다. 그러나 다를 때는 비판하지 말고, 격려해주고, 보완해 주고, 축복해 주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두 다 한 가지 이상, 은사를 하나님께 받았다. 안 받은 사람이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면, 놀라운 변화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 나는 하나님께 받은 은사가 없다고 말하지 말고, 나의 은사를 찾아내고 개발해서,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참여해야 한다. 

겸손한 사람과, 교만한 사람과 본질적 차이는, 내 이웃이 나와 다르다는 사실 때문에, 이웃을 비판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가 다르다고 인정한다. 서로 다르지만, 미숙하면 싸우고, 성숙하면 하나가 된다. 미숙하면 분열하고 지배하려고 하지만, 성숙하면 섬기려고 한다. 

3. 받은 은사를 생각하라(6상).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다. 사람마다 각각 받은 은사는 다르다. 모든 은사는 다 귀하다. 상호보완적이다. 

19C 미국의 대표적인 복음전도자, D.L 무디는 설교는 잘했지만, 음악에는 은사가 없었다. 그래서 음악에 은사를 가지고 있는 생키라는 사람과 동역했다. 또 무디는 구둣방 점원 출신이라, 많이 배우지 못했다. 그래서 당시의 석학인 R.A. 토레이와도 동역했다. 이렇게 협력하면, 잘 할 수 있다. 

그리고 은사는 목적이 있다. 은사는 자신을 위해서, 주어지지 않았다. 은사는 언제나, 다른 사람을 위해 주어진다. 나무는 자기 열매를 먹지 않는다. 열매는 사람이 따먹지, 자기 열매를 자기가 따먹는 나무는 없다. 성령의 은사는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하고, 즐겁게 하기 위해 주어졌다. 

자기에게 어떤 은사가 주어졌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다음 3가지를 살펴야 한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고, 옳은 것"이 은사다. 나는 수학을 잘했다. 그러나 좋아하지 않았다. 이런 경우 수학은 내 은사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노래를 좋아한다. 그런데 돼지 멱따는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 

그런 경우에 노래 부르는 것은, 은사가 아니다. 신창원 같은 사람은, 도둑질을 좋아하고 잘한다. 그러나 그것은 은사가 아니다. 옳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고, 옳은 것, 이 3가지를 다 만족시키는 것이 은사다. 거기에 한 가지를 더 바란다면, 다른 사람의 반응이 좋은 것이다. 

그런 은사를 가지고, 자기 역할을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괜히 은사를 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받은 은사를 가지고, 자꾸 회피하고, 다른 길로 가려고 하는 것은 문제다. 받은 은사로 충성을 다할 때, 하나님께도 영광이 되고, 자기도 만족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 

6절 이하를 보면, 대표적인 7가지 은사를 말하고 있다. 이 은사를 다 가지고 있으면, 교만해 질 수 있다. 그래서 나누어주신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무엇인지 살피고, 하나님과 교회를 위해, 잘 활용하시기 바란다. 

(1) 예언의 은사다. 
그러면 예언은 무엇인가? 예언은 하나님이 구원을 위해, 계시하신 말씀을 받아, 사람들에게 풀어서 전하는 일을 말한다. 그렇기에 설교가 예언이기에, 말씀의 은사라고 해도 좋다. 

예언의 은사는 목사나, 남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은사다. 목회자 가운데, 다른 것은 참 좋은데, 설교는 부담스러우니, 안 했으면 좋겠다는 분은, 은사의 원리로 보면, 목회의 길이 아니라, 다른 길을 가야 좋다고 할 수 있다. 

예언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겸손해야 하며, 특별히 지혜가 필요하다. 예언의 은사를 잘못 사용하면, 교만해지거나 상처주기 쉽기 때문에, 성경은 예언의 은사를 믿음의 분량대로 활용하라고 말한다. 그런데 믿음의 분수를 넘어서, 예언의 은사를 받았다는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킨다. 

(2) 섬기는 은사가 있다. 
유난히 섬기고, 봉사하는 일이 굉장히 즐거운 사람이 있다. 다른 사람들의 사역을 도와주는 은사다. 이런 사람은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해야 하고, 일을 독점하지 않아야 한다. 

조화를 이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섬기는 사람은 능력이 많거나, 돈이 많아서 섬기는 것처럼 하지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한다는 마음으로, 섬겨야 한다. 그럴 때 열매가 있고,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있다. 아론과 훌처럼, 조력하는 은사라고 할 수 있다. 

(3) 가르치는 은사가 있다. 
지식을 잘 정리하고 분석해서, 남을 이해시키는 은사다. 예언의 은사가 말씀을 증거 하는 영적 파워라면, 가르치는 은사는 이해시키는 능력이다. 설득력이 있다. 귀에 쏙쏙 들어오게 만든다. 

가르치는 은사가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똑같은 내용을 이야기하더라도, 훨씬 재미있게 들린다. 가르치는 은사는, 특별히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나, 말씀을 증거 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은사 중의 하나다. 가르치는 은사가 있는 사람은, 받은 은사대로 남을 가르쳐야 한다. 

(4) 권위의 은사가 있다. 
권위는 위로하여, 용기를 북돋아주는 은사다. 안 되는 일도 된다고 용기를 주고, 포기하려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게 하고, 자살을 하려던 사람을, 자살하지 않게 하는 은사다. 

권면 하는 은사가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얘기를 잘 들어준다. 바나바 같은 사람이, 이 은사를 가진 사람이다. 이 은사를 가진 사람 옆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위로를 받고, 새 힘을 얻는다. 그래서 다시 일어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 많아야 한다. 

(5) 구제하는 은사가 있다. 
아낌없이 퍼주는 은사다. 아낌없이 퍼주면, 하나님이 채워주신다. 김장훈이라는 가수가 있다. 40억을 기부하여 어려운 사람을 도왔다.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신문기자가 물었을 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쓰고 남은 것으로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부하고 난 다음에, 남은 것을 가지고, 씁니다." 그는 진정 구제하는 은사를 가진 사람이다. 이런 사람을 보면, 은사를 받은 자들이 많이 나오면, 이 땅이 훈훈해진다. 이런 은사를 많이 받으시기 바란다. 

(6) 다스리는 은사다. 
많은 사람을 지휘하고, 통제하는 은사다. 리더십이다. 무질서한 곳에 가면, 그 곳의 질서가 잡힌다.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명확히 깨닫게 된다. 

오합지졸도 지도력이 있는 사람 밑에서는,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변화된다. 다윗이 지녔던 은사다. (삼상22장)을 보면, 다윗은 아둘람 굴로 도망친다. 그랬더니 400명 정도의 오합지졸들이 아둘람굴에 모여들었다. 

이들은 오합지졸이었지만, 이들을 훈련시켜, 시대를 풍미하는 장군들, 요압, 아비새장군 등이 그 안에서 나왔다. 그 외에 기록된 장군들이 전부 아둘람 출신이다. 담임목사에게 정말 필요한 은사다. 조직을 지휘하는 은사가 없으면, 굉장히 어려움이 생긴다. 이 은사를 가진 사람은 부지런해야 한다. 

(7) 긍휼의 은사가 있다. 
고통받는 자들과 함께 울 수 있는 능력, 남을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기쁜 마음으로 일을 해야 한다. 은사를 다 받은 사람이 있는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서로 돕도록 하셨다. 

지체의식을 가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을 이루자. 서로 다른 은사로, 맡은 자리에서 주님을 섬기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나누어주신 줄로 믿고 찾아서 활용하라. 이 은사를 묻어두지 말라. 내게 주신 은사가 무엇인지, 온전한 건강한 정신을 가지고,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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