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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능력으로 들어가는 열쇠 (막 9: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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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으로 들어가는 열쇠 (막 9:14-29)


복음성가 중에 이런 가사의 노래가 있다.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 수 없을까?’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살 수 없다고 믿고 그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부탁하셨다.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예수께서 돌아오셨을 때 제자들은 자고 있었다. 그때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종종 우리는 예수님의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기도하지 않음을 정당화 합리화 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 기도하지 않음으로 그 댓가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 있는 것이다.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든다. 기도하지 않으면 능력 없다. 신앙생활에서 반드시 실패하게 된다. 

오늘 본문 28절을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왔다. 그리고 매우 심각한 어조로 여쭸다. 
‘선생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예수님의 대답은 간단하였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마태복음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마 17:20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실패의 원인을 마태는 ‘믿음’이라 했고, 마가는 ‘기도’라고 표현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주석가 핸드릭슨은 ‘기도가 작은 까닭이니라’고 바꿔 말했다. 종합해서‘너희의 부주의하고 게으른 기도 때문이니라’고 해석했다.

제자들은 앞서서 전도대로 파송을 받을 때 귀신을 내어 쫓고 병든 자를 고치는 능력을 받았었다. 그들이 돌아와서 보고할 때 능력의 나타남을 신나게 보고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 왜 실패했는가? 예수님께서는 그 원인이 바로 영적 나태함, 기도생활에 부족함 때문이었다고 지적하신 것이다. 

오늘 말씀의 제목대로 ‘능력으로 들어가는 열쇠’가 ‘기도’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문제는 열쇠는 쥐고 있으나 사용하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오늘 말씀을 듣고 기도의 능력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와 능력을 경험할 수 있는 결단의 시간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한다. 

1.영적 무능력 상태에 있는 제자들의 모습

1)서기관들과 변론하고 있는 제자들.
막 9:14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마가의 표현은 ‘변론’이란 용어를 썼으나 실제로는 조롱당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 있었던 서기관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제자들을 비난하였고 제자들은 변명하느라 전긍긍하고 있었던 것이다.

2)영적무능력
막 9:17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18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제자들에게 귀신들린 아이를 데려와서 고쳐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귀신을 내쫓지 못했다. 머리털 깎인 삼손처럼 제자들에게는 귀신을 제어할 능력이 없었다. 제자들의 무능력은 바로 서기관들의 비난과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3)예수님의 책망
막 9:19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우선적 책망의 대상은 제자들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세대’라는 표현으로 제자들 뿐 아니라 그곳에 있던 서기관들과 귀신들린 아이의 아비까지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대교의 지도자들인 서기관들은 제자들의 실패를 악의적으로 즐기로 있었고, 소년의 아비는 예수님의 능력을 과소평가했다. 

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예수님의 사역 말기에 무리들의 결여된 믿음의 모습은 예수님의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제자들은 믿음의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의 태도를 대단히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능력을 잃은 제자들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될 수 밖에 없었고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산에서 예수님의 내려오심으로 제자들은 위기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서기관들과의 논쟁을 잠 재우시고 귀신들린 소년을 고쳐주시므로 예수님의 신성과 사랑을 보여주신 계기가 되었다.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소년을 고치신 과정은 제자들이 취한 모습과 대조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예수님의 모범

1)나타나신 예수님의 능력(19절 하)
막 9:20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귀신이 예수님을 보았다. 예수님 앞에 귀신을 두려워 떨었다. 그것이 소년의 몸에서 심한 경련과 넘어지고 거품을 흘리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앞서서 귀신은 제자들 앞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귀신도 능력을 알아본다. 

2)예수님의 동정
막 9:21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아비의 마음, 아비의 고통을 예수님께서 동정하셨다. 언젠가 93세된 할머니가 ‘내가 오래살아야 해요. 이유가 있어요.’ 70이 넘은 딸이 있는데 그 딸이 장애가 있어서 어머니가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병마에 사로잡혀 오랜 동안 고생한 아비의 고통을 동정하셨다. 

3)귀신을 꾸짖으시는 예수님
막 9:25 예수께서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26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엄하신 명령 앞에 귀신을 소리를 지르고 떠나갔다. 예수님의 능력과 권세가 모든 무리 앞에서 드러났다. 그리고 쓰러진 아이를 일으켜 아비에 주었다. 

3.예수님 앞에 나온 제자들

1)제자들의 질문
막 9: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문제 의식을 가지고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에게로 나와야 한다. 

2)예수님의 답변
막 9: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기도의 모범을 보이신 예수
1)기도 시간
막 1: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새벽)
마 14: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저녁)
눅 6:12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철야)

2)기도의 장소
눅 5:16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한적한 곳)
눅 22: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감람산)
마 14: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3)기도의 방법
마 14: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홀로)
마 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금식하며)
눅 22: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습관을 따라)
마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눅 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4.능력으로 들어가는 열쇠
1)기도하기를 결심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오직 기도만이 문제를 푸는 유일한 방편이란 뜻이다. 제자들이 말씀을 들었을 때 제자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요? 두 번 다시 군중들 앞에서 망신당하는 짓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기도해야겠다는 결심을 했으리라 생각된다. “기도”라는 책을 쓴 짐 그래함 목사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식, 감정, 의지 이 세가지 인격적 요소 중 기도에 필요한 것은 “의지”라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기도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으면서도 기도를 하지 않는 것은 죄다. 왜 죄가 되는가? 영적무기력으로 인해 세상과 타협하게 되고 신앙의 길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마귀의 관심 대상도 되질 못한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무서워 한다. 

이제 우리가 기도의 필요성을 알았다면 기도하기를 결단하라. 하루 일과 가운데서 자신이 기도하기에 가장 적합한 시간을 떼어서 하나님께 드리라. 
“하나님, 오늘부터 하루에 10분씩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오늘부터 하루에 세 번, 10분씩 30분 기도하겠습니다.”

2)믿음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제자들의 기도는 믿음의 기도가 아니었다. 소리는 질렀으나 능력은 나타나지 않았다. 제자들이 조용히 예수님께 와서 물었다. 왜 우리는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마 17:20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마태복음의 기록에 보면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를 믿음이 적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에게는 겨자씨 한 알 만큼의 믿음도 없었던 것이다. 만약 그들이 겨자씨 한 알 만큼의 믿음만 있었어도 그렇게 망신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겨자씨 한 알 만큼의 믿음도 없었다라는 말씀에 대하여 박윤선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1)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사는 믿음의 상태.
2)쓸데 없는 염려와 걱정으로 허송세월하는 생활.
3)의심과 위선과 외식으로 가득찬 순수하지 못한 신앙의 상태.

오늘날 현대인들의 기도가 허공을 치는 기도가 되는 이유는 하나님 앞에 순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요청하고 있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3)지속적으로 기도를 하라.
마 10:1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앞서서 제자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때 제자들은 긴장했었다. 영적으로 단단히 무장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무기력한 상태에 놓여 있다. 도리어 사단의 졸개들에 의해 조롱당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들이 군중들 앞에서 망신당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처음 주님께로부터 받은 권능을 유지하지 못했다. 이유는 기도를 쉬었기 때문이다. 기도에 대한 성경의 한결 같은 교훈은 기도를 쉬지 말라는 것이다. 

엡 6:18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삼상 12: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기도를 쉬는 것은 죄다. 영적 무기력의 결정적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내 생애 결코 기도를 쉬는 죄를 범치 않겠노라는 마음의 결단을 하라.

4)적극적으로 기도하라.
마 7:7-8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눅18:1-8, 예수님께서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로 기도에 대하여 교훈하셨다. 예수님은 이 비유에서 힘 없는 과부의 태도를 본 받으라고 말씀하신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도생활에 실패하거나 기도생활이 빈약한 이유는 끈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성도들이 과부가 재판관에게 찰거머리처럼 달라붙었던 것처럼 끈질기게 기도할 것을 교훈하셨다. 

우리의 기도가 좀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기도의 제목을 적고, 시간을 정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달라 붙으라. 

불의한 재판관도 귀찮아서 과부의 원한을 풀어주었는데 하물며 사랑하시는 자녀들의 간구에 응답지 않으시겠느냐는 것이다. 

이 엠 바운즈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가장 많은 일을 한 사람들은 아침에 일찍 무릎꿇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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