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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은 정말 거듭났습니까? (엡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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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정말 거듭났습니까? (엡 5:1-7)


어제 교우 한 분이 제게 메일을 보내셨습니다. 금요성령집회 때 조금 늦게 도착하여 지하 4층 주차장에 내려갔는데, 주차할 자리가 없었답니다. 겨우 빈 자리 하나에 차를 주차하고 급히 본당에 올라오셨는데, 예배 후 사람들이 어찌나 뜨겁게 기도를 하는지 자신도 피곤을 잊고 뜨겁게 기도했답니다. 기도하다가 시간을 보려고 휴대폰을 열었는데 '차를 출구에 세우셨네요.' 라는 문자가 와 있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당황하고 송구스러운지 급히 가보았더니 차를 지하 5층에서 올라오는 출구에 세워둔 것입니다. 이렇게 무려 30분 가량을 막혀있었던 것입니다. 연신 고개를 숙이고 잘못했다고 모르고 그랬으니 용서해달라고 빌었지만 집에 돌아와서도 밤잠을 설치며 기도했답니다.“저로 인해 피해를 당한 그 분들에게 위로와 평안을 주세요.”

그리고 생각해보니 너무 감사하더랍니다. 그런 기막힌 상황에서도 인내하며 기다려주고 크게 소리치지 않고 널리 용서해주고 관용을 베풀어준 교회 식구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눈물이 났답니다. 다른 곳 같으면 엄청 욕을 먹고 멱살을 잡혔을만한데“너무 큰 피해를 드려서 정말 정말 죄송하다고 용서해주세요.”라고 했더니“처음 교회 나오신 분인 줄 알았습니다.”면서 오히려 용서를 비는 마음에 축복을 하셨답니다. 그러면서 쓰시기를‘자신도 이제부터 남 비판하며 정죄하며 살지 않고, 오늘의 일을 결코 잊지 않고 너그러이 용서하며 품으며 살려 합니다.’하셨습니다.
지난 성령집회 때 지하 5층에 주차하셨던 교우들께 너무 감사합니다.. 

여러분, 구원의 증거는 삶의 변화입니다. 삶이 변화되지 않은 구원은 없습니다.
5:1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자식은 부모님을 닮습니다. 저의 두 딸도 저희 부부를 닮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닮아야 합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 옳습니다. 그러나 이 말이 행함은 없어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마음에 오심을 믿는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께서 마음에 오셨다면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2절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그러므로 정말 예수님을 믿었다면 삶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예수 믿고도 삶의 변화가 없다면 진정 거듭난 사람이 아닙니다.
5절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교회 다닌 것이 구원의 보증은 아닙니다. 
요일 3:9-10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거룩하고 사랑해야 구원받은 자요 진정 거듭난 자입니다.
6절에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하였는데 삶이 변화되지 않아도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데는 문제가 없다고 가르치는 것을 조심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도 불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죄인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변화된 삶을 보고 그가 구원받았는지 아닌지 판단하라고 하셨습니다.
마 7:18-20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이 말씀을 들으면 다 마음이 무거우실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진정 거듭났나? 나 지옥가는 것 아닌가?’ 
그러나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신앙생활 그런 식으로 하면 지옥간다고 협박하고 좌절시키려는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오히려 진정한 복음을 알려 드리려는 것입니다.

많은 교인들이 분명한 복음을 알려하기 보다 적당하게 믿고 살기를 원합니다.
세례받았으니까, 교회다니니까, 예수믿으면 죄사함받는다고 하니까 구원받겠지, 믿으면 된다고 했잖아! 그러나 그런 어설픈 복음으로 신앙생활하는 것이 더 힘들고 더 위험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여 주여 하는 자 마다 다 천국에 들어 갈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 앞에 섰을 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이런 말을 들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큰 권능을 행하던 사람들입니다. 

계 3:1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사데 교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계 3:15-16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진정한 복음은 예수님을 믿으면 삶이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음란함과 죄를 벗어버리지 못하고 용서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렇게 살다가 죽는 줄로 여기니까 그런 것입니다. 죽을 때까지 갈등하며 사는 것인가 보다! 예배드릴 때마다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며 사는 것인가 보다!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거룩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한다면 “지옥간다!”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야 심각하게 생각할 것 아닙니까? 교회 안에서 싸움이 생기는 이유는 싸움과 비판을 당연하듯이 받으니 그런 것입니다. 
성경에 분명히 예수 믿으면 거듭난다고 했는데도 교회 다니는 것을 거듭난 것으로 여기고 사는 것입니다. 가족들도 인정하지 않는데 말입니다.

우리는 삶의 변화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았으니 거룩하게 살도록 사랑하며 살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었으니 거룩한 자가 되고 사랑하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저절로 된다는 것입니다.
1절에서 어느 자녀나 부모를 닮듯이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닮아야 한다고 했는데, 자녀가 부모 닮으려고 노력하는 것 보셨습니까? 저절로 닮아지는 것입니다. 다른 집 아이가 나를 닮도록 노력하면 우리가 낳은 아이가 됩니까?  

많은 교인들이 거룩한 삶을 살고 사랑하며 살기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거룩하게 살고 사랑하며 살기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주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다 이루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거룩하지 못한 우리 옛 사람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성령님으로 우리 마음에 오셔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게 하신 것입니다.  

롬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거룩함과 사랑의 삶의 변화는 나 죽고 예수로 사는 십자가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고 말씀하신 것은 열매는 우리 노력으로 맺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열매는 예수님께서 친히 맺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사실을 오직 믿는 것 뿐입니다.

20세기 최고의 지성인의 한 분으로 추앙받는 영국의 버트란트 러셀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의 도덕률은 너무 높아서 나는 도저히 감당 못하겠다. 그래서 나는 아예 처음부터 예수쟁이가 되지 않겠다.” 고 비꼬았습니다. 당시 영국 교회의 영적 상태를 잘 보여주는 책입니다.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도 자신은 구원받은 자라고 확신하는 기독교인들에게 대한 환멸인 것입니다.  
이것은 버트란트 러셀도 교인들도 십자가 복음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1995년 10월 7일자 국민일보 [삶의 창가에서]란 칼럼에 실린 내용입니다. 
필자가 서울 대학병원 특실에 입원하신 연세 높은 어른께 문병 갔었는데, 그는 외교관 출신으로‘신사 중에 신사’였고 점잖고 예절 깍듯한 분이셨답니다. 그런데 병실에 들어서자 마자 그 분의 부인이 황급히 구석으로 데리고 가더니‘미리 말씀드릴 일이 있는데, 대사님께서 쌍욕을 하시더라도 놀라시지 말고 양해해 달라.’고 하더랍니다. 상대가 누구든 간에 사람을 보면 덮어놓고 욕부터 한다는 것입니다. 60 평생 욕이라고는 단 한마디도 안했을 뿐더러, 남이 욕하는 걸 보는 것조차 질색하던 분이 입에 담기도 민망한 욕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남부끄럽고 죄송해 죽겠다고 부인이 탄식을 했답니다. 

그러자 간병인인 여자가 정신을 놓아버린 뒤 저렇게 욕이나 하는 환자는 아주 양호한 편이라면서 자신이 주로 서울 대학병원 특실의 상류 사회 환자들에게 고용되어 사회적으로 유명했던 분들을 많이 간병했는데 그들 중에 얼마나 해괴한 환자가 많았는지 어느 분은  닥치는 대로 사람을 물어뜯는 분도 계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떤 존재입니까? 마구 욕해 주고 싶고, 마구 물어뜯어 주고 싶은 욕구가 그토록 강렬하게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는 것을 평생 억누르면서 산 것입니다..

모세도 지면의 모든 사람 중 가장 온유한 사람이었지만, 백성들이 물을 달라고 아우성치고 원망할 때 혈기를 참지 못하여 반석을 두 번이나 내리치는 성질을 드러냄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육신의 성품은 노력해서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육과 교양으로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를 짓지 않고 사랑하는 것은 십자가 때문이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요일 5:18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는 다 범죄하지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자가 그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그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가진 재산을 다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 하셨을 때, 그는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 보다 어렵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탄식을 했습니다. 
삶이 변화되어야 천국에 간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절망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말씀은 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구원의 조건이 얼마나 힘든가를 제시하시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인간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구원받는 것은 불가능하다.” 라는 뜻입니다. 마가복음 10장 27절에서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 "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도무지 구원받을 수 없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제 진짜 구원의 복음이 제시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까? 우리 옛 사람을 예수님과 함께 죽게 하고 우리 마음에 성령님을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가가와 도요히코는 일본이 낳은 유명한 목사님입니다. 그는 시장 아버지와 첩이었던 기생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집에서 자라기는 했으나 첩의 아들이라고 눈칫밥을 먹어야 했습니다. 본처의 자식들로부터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얼마나 저주스러운 생이었겠습니까? 왜 나같은 것을 낳았느냐고 부모를 원망하면서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이었습니다. 담모퉁이에 우두커니 기대서서 역시 자기 생을 비관하고 있을 때 북 치고 나팔을 불면서 지나가는 구세군 전도대를 만났습니다. 저들이 전도하면서 외칩니다. "하나님은 누구든지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가가와 도요히코는 그들 가까이로 다가서서 물었습니다. "기생 아들도 사랑하나요?" "아무렴요, 어떠한 죄인이라도 사랑하십니다." 그 말을 듣고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인생이 변화되었습니다. 자신의 노력이 아닙니다. 오직 십자가 복음과 성령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 되도록 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이루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도 우리도 함께 죽고 부활하실 때도 우리도 함께 부활하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이 십자가 복음입니다.

주님은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나사로야 나오라" (요 11:43)라고 소리치셨습니다. 만일 당신이 그때 예수님 곁에 있었다면 “주님, 왜 죽은 자에게 말씀하십니까? 생명이 없는 시체가 어떻게 명령에 순종합니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나사로야 나오라!"고 소리치실 때 죽은 나사로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에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2장 5절에서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했습니다. 이 기적이 오늘 우리의 심령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지금도 십자가 복음과 성령의 역사로 죽은 자들을 다시 살리시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어느 목사님께서 자신에게 솔직히 물어보았습니다. "너는 정말 행복하냐? 지금 죽어도 후회가 없냐?" 솔직히 말해서 지금 죽으면 너무 후회가 될 것 같습니다. 솔직히 행복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가 깊이 생각해 보았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목회에 바쁘다는 핑계로 정작 예수님과의 관계를 소홀히한 것입니다. 

저는 ‘나의 60대 70대는 어떨까?’ 생각하면서 두렵습니다. 말이 많은 고집쟁이가 되지는 않을까? 권위주의자가 되지는 않을까? 노욕이 심하고 노여움이 심한 자가 되지는 않을까? 시대착오적인 생각에 빠져서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는 않을까? 심약해지지는 않을까? 일반적으로 보는 일입니다.
신명기 34장 7절에서 120세 된 모세는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 14장 11-12절에 보면 85세 된 갈렙은 “오늘도 내가 여전히 강건하니 내 힘이 그 때나 지금이나 같아서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으니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 고백하였는데, 나이 들어 오히려 영혼이 더 맑고 예수님과 한 몸된 모습이 될 수는 없을까? 
성령님께서는 답을 주셨습니다. 계속하여 예수님을 바라보라 하십니다. 

시 119:35-37 내가, 주님의 계명들이 가리키는 길을 걷게 하여 주십시오. 내가 기쁨을 누릴 길은 이 길뿐입니다. 내 마음이 주님의 증거에만 몰두하게 하시고, 내 마음이 탐욕으로 치닫지 않게 해주십시오. 내 눈이 헛된 것을 보지 않게 해주시고, 주님의 길을 활기차게 걷게 해주십시오. 

김준곤 목사님의 글을 젊어서 읽을 때는 그 의미를 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목사님의 심정을 알 것 같습니다. 
[나는 내 무의식과 꿈속까지 예수 의식화가 된 골수 예수쟁이이고 싶다. 나도 성몽이나 식몽, 개꿈 같은 것을 꾸기도 하지만, 내 많은 꿈속에 예수가 있고, 40일을 금식 기도할 때도 밥 먹는 꿈보다 예수 꿈을 더 많이 꾸었다. 일생에 두 번 의식이 죽었다 깨어난 경험이 있는데, 그때도 나는 예수의 의식 속에 깨어났으며, 나의 언어의 대부분이 예수를 설교했고, 내가 쓴 수 천통의 편지와 길가며 쓰고, 밥 먹다 쓰고, 자다 일어나 쓰는 글도 예수이며, 내 딸들을 위해 써 놓은 한 줄 유서도 예수님을 사랑하라는 것이며, 내 묘비명도 예수일 것이다. 예수는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신앙의 순도는 100%이고 싶다. 내게 흠도 티도 없는 최후의 순수하고 진실한 것이 있다면, 목숨이 열두 번 다 한 후에라도 더욱 사랑하고만 싶은 예수님이다]> 

예수님만 바라보며 사는 것이 좀 답답해 보여도 예수님의 생각을 알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의 빛을 드러내는 길이 또 있을까요? 이 보다 더 큰 복은 없을 것입니다. 함께 이 길을 가시지 않겠습니까?
로비에 접수받고 싶은 마음도 있습니다.

목회 기도
예수님만 생각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루를 한 주간을 평생을 살기 원합니다. 

우리가 홀로 살지 않게 하시고 부모가 있어 태어나게 하시고 가족과 친척이 있어 어울려 살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교회가 있어 성도들과 함께 예배드리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으로…가족들이 헤어져 있음으로… 외롭게 살아가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저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함께 하시는 은총이 충만키를 구합니다.
병상에 누운 고통을 감당해야 하는 이들… 군대 나간 자식을 그리워하는 부모들… 해외에, 객지에 나가 사는 식구들을 기다리며 사는 이들… 모두에게 평안을 주시옵소서. (유기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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