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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주를 받은 돼지 (갈 5: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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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를 받은 돼지 (갈 5:13-15)


여러분, ‘개발의 닭알’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습니까? 본래 ‘닭알’이라는 말의 뜻은 말 발에 다는 편자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의미보다는 점점 더 ‘닭알’ 즉 달걀로 쓰는 경향이 많아졌습니다. ‘개발의 닭알’ 또는 ‘닭알’이라는 말은 둘 다 같은 뜻으로, 참 좋은 것이지만 그에게는 쓸모없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만약 그것을 달걀로 본다면 달걀이 아주 귀한 시절의 말입니다. 요즘은 거꾸로 달걀은 별로 귀하지 않고, 개는 때로는 사람보다 더 귀한 것이 되었습니다. 달걀이 뭔지도 모르는 개에게 그런 달걀을 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렇게 귀하고 좋은 것을 주어야 좋은 줄도 모르고 그것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으로 만들고 만다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은 다 같은 뜻입니다. 

2000년 전 유대인들은 한평생을 율법의 압박 속에 살았습니다. 그 압박은 너무 심했습니다. 예를 든다면 십계명 중에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여 지키라는 것이 있는데 문제는 어떻게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가? 입니다. 먼저 ‘노동을 하지 말라, 그렇다면 ‘노동이 무엇이냐?’ 시민들은 늘 이런 문제에 부딪혔습니다. ‘노동을 하지 말라는 것은 짐을 운반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짐을 운반하지 말라는 것인가?’ 주부들이 무화과 열매로 아침 식사 준비하는데 그때 ‘무화과 열매를 몇 개까지 움직일 수 있는가? 한 개는 괜찮은가? 세 개까지 되는가?’ 늘 이런 고민 속에 살았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갈대는 상당히 중요한 물품이었는데, 안식일에 갈대는 얼마나 움직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 여러 사람들이 의논하여 한 개의 펜을 만들 수 있을 정도까지 갈대를 움직일 수 있다는 답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글을 쓸 일이 있을 때 잉크는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알파벳 두 자 정도 쓰는 잉크는 움직여도 된다고 정했습니다. 또 안식일에 글을 읽을 일이 있을 때, 위에 있는 등잔을 얼마나 움직일 수 있는가를 고민하게 되고, 안식일에 여성들이 부럿치를 달 수 있는가? 달 수 있다면 어느 정도 크게 달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고민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도 탈모가 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가발을 쓸 수 있는가를 고민하였는데, 답은 어떠할 것 같습니까? 가발을 쓸 수는 있지만 모양을 더 내기위해서는 쓰지 못하고 보기 흉한 사람들의 경우에만 가능했습니다. 부분 탈모의 경우라면 탈모된 부분만 덮는 정도가 가능했고, 완전한 탈모는 다 쓰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들을 율법을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안식일에 병이 났을 때 병 치료는 가능한가? 상당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가능하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가능한가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비인후과 치료를 예로 든다면, 코나 귀가 상하고 목이 아플 때는 치료가 가능했는데, 그렇다고 다 치료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환자의 병 증세를 더 낫게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즉 치료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고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하는 것만 허용되었습니다. 상처를 받았으면 붕대를 감는데, 순수한 붕대는 감을 수 있었지만 붕대에다 약을 바르거나 기름을 바르는 것은 안 되었습니다. 귀에 솜을 꽂는 것도 그냥 아무것도 바르지 않는 솜은 귀에 꽂을 수 있었지만 솜에 약을 바르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이정도 되니 사람들이 어떻게 살겠습니까? 모든 문제에 있어서 항상 이것이 율법에 저촉되지 않는가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생이 살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사는 것과 같았습니다. 거기에는 까닭이 있었습니다.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이 대대로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내 사업이 풀리지 않고 내 가정에 어려움이 생기고 건강이 나빠지는 것이 혹시라도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서인가? 라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자식들의 문제에 가면 아주 심각했습니다. 내가 율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서 내 아들이, 내 딸이 저주를 받으면 어떻게 하는가? 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율법 때문에 노이로제에 걸릴 것 같았습니다. 나를 위해서 내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위해서 사는 것 같았습니다. 

이러한 때에 기독교가 등장해서 기독교는 자유의 종교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가장 심각하게 생각했던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인 구원에 대해서 지금까지 유대교는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했는데, 기독교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구원은 율법을 지키는 것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는 것이라고 선언을 하자 그동안 율법에 눌려서 살던 수많은 사람들이 환호했고, 기독교로 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의 자유를 누렸습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기독교가 말하는 자유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 하나님께서 자유라고 말씀하셨는데 누가 나에게 하라, 하지마라고 할 수 있는가?’ 라고 말하면서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그야말로 방종의 삶을 살았던 것이었습니다. 충분히 알만 한 사람들도 시류가 그렇게 흘러가니 그 자유를 남용하는 경우도 생겨났습니다. 

안식일도 옛날에는 율법 때문에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했는데, 이제 자유라고 하니 참된 자유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경건을 다 버리고 말았습니다. 옛날에 그렇게 두려웠던 하나님이 별로 두렵지도 아니하고 그다지 사랑의 대상이 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점점 자주 예배드릴 필요도 없게 되었고, 갖추어서 예배드릴 것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냥 예배만 드리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었습니다. 

수년전에 제가 우리 교우들에게 ‘내 교회만 너무 생각하지 마시고 일 년에 한 번 때로는 여행할 때 한두 번 정도 다른 교회에 갈 수도 있지 않는가?’ 라는 말씀을 드렸더니, 그 다음에 들려오는 소문은 앞에 것, 옆에 것 다 빼먹고 꼭 우리 교회를 지킬 필요가 없고, 예배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아주 편하게 생각하다 신앙을 잃어버리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씁쓸했습니다. 좀 더 생각하고, 그 말의 뜻이 무엇인지 생각하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사실이 그렇습니다. 꼭 내 교회, 내 목사님 할 것이 아닙니다. 너무 그렇게 하다보면 결국은 하나님까지도, 주일까지도 잃어버리는 일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초기 기독교인들 가운데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물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옛날 유대교에 있었을 때는 꼼짝하지 못했습니다. 정말로 운신의 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유라고 하니 기독교인들 가운데 내 물질, 내 돈을 쓰면서 하나님을 하나도 의식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마음대로 사치하고 자기끼리 먹고 마시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극기야 자기가 가진 돈이나 권력으로 악한 일을 하고 힘없고 없는 사람들을 혹사시키고 갈취하고 횡령하는 일까지 일어났습니다. 나아가서 생활이 점점 더 방탕하게 되고 무질서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귀한 자유가 그야말로 ‘개발의 닭알’이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질서를 생각하지 않다보니 교회 안에서 같이 믿는 사람들, 같은 그리스도인들끼리 서로 자기 말이 맞는다고 비방하면서 싸우는 일까지 생겨났습니다. 이것은 2,000년 전뿐 아니라 언제든지 그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교회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그러다가 겨우 얻은 자유를 잃어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모두가 다 망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지금 가지고 있는 자유를 얼마나 힘들게 얻었습니까? 몇 백 년, 몇 천 년 동안 눌리고 살았던 사람들이 겨우 자유를 얻었는데, 이 자유를 잃어버리는 것은 물론이고 결국은 전부다 망한다고 무섭게 경고를 하십니다. 

오늘 광복주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나라 그리고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참 많은 선물을 주셨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아마 이 자리에 계신 분들 가운데는 이 감사를 정말로 뼈저리게 느끼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나라가 혹독한 일본 식민 통치하에 있으면서 이 자유 저 자유를 잃어버렸던 우리 민족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게다가 얼마나 가난했습니까? 웬만한 나이가 있는 사람들은 다 압니다. 너무너무 가난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 가운데 월사금 못 내신 분, 점심 도시락 제대로 못 싸 가신 분, 공책하나 제대로 못 사신 분들 참 많을 것입니다. 꼭 사고 싶은 책, 꼭 신고 싶은 신, 꼭 입고 싶은 옷, 이런 저런 갖고 싶은 것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런 것들을 마음대로 가진다는 것은 그야말로 꿈같았던 시절이 우리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얼마나 좋아졌습니까? 얼마나 풍요로워졌습니까? 전 세계를 돌아보십시오. 우리나라처럼 복 받은 나라가 어디 있겠습니까? 정말로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러나 자칫 잘못하게 되면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다시 망하는 일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좋은 것을 서로 나누려고 생각하지 아니하고, 있는 사람들이 없는 사람들을 도와줄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 같이 살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 권력이 있거나 힘이 있으면 어떤 형태이든 그것을 이용하여 내가 더 잘 살고, 더 많이 누리는 것만 생각한다면 이 민족, 이 나라는 망하고 맙니다. 틀림없습니다. 서로 물고 뜯으면, 서로 싸우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개 한 마리가 고기 덩어리를 물고 신나게 외나무다리를 지나갑니다. 그러다 물속을 들여다보니 웬 개가 아주 먹음직스러운 고기 덩어리를 가지고 가는 것입니다. 이 개는 그것도 탐이 납니다. 자기 입에 물고 있는 것, 물속에 있던 개가 물고 있던 고기 덩어리도 다 갖고 싶었던 것입니다. 욕심을 내어서 ‘으르릉’ 하고 짖었습니다. 그 순간 입에 물고 있던 고기 덩어리가 그만 물속에 풍덩 빠지고 말았습니다. 입에 물고 있던 것도 잃어버리고 물속에 비친 것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정말로 적확한 예입니다. 그렇습니다. 다 잃어버리고 맙니다. 

정치 이야기를 좀 할까요? 지난 6월 2일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있었는데 한나라당이 참패했습니다. 여러분, 왜 참패했는지 이야기를 들으셨습니까? 많은 언론에서 이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어느 당을 지지하는가는 상관이 없이 왜 망했는지 잘 읽어야합니다. 그 때 교육감 선거도 같이 있었습니다. 교육감 선거 역시 보수주의자들이 참패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서로 싸우다 망하고 말았습니다. 잘 했습니다. 싸우는 사람은 다 망해야합니다. 

또 정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다음 정권,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될 것 같습니까? 어느 당이 집권할 것 같습니까? 한나라당이 재집권할 것 같습니까? 민주당이나 다른 야당이 정권을 탈환할 것 같습니까? 흥미를 가지고 한 번 보십시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좋은 공약, 좋은 정책으로는 이길 것 같지가 않습니다. 거의 결정적으로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어느 당이든지 분열하지 않는 당이 이길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참 딱한 이야기입니다. 어쩌다가 우리가 사는 나라, 내 나라가 이렇게 되었습니까? 좋은 정책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더 잘 사는 나라,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집권당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싸우지 않고 분열하지 않는 당이 될 것이라고 하니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책임이고, 교회 책임입니다. 

정당이든, 나라든, 가정이든 다 마찬가지로 싸우면 망합니다. 가진 것 다 잃고 끝내 망하고 맙니다. 나라의 지도자들이, 나라의 어른들이 서로 싸우고 물고 뜯으면 나라가 망합니다. 요즘은 옛날처럼 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살고 싶지 않는 나라, 이민가고 싶은 나라, 더 이상 있고 싶지 않는 나라, 내 나라라고 말하고 싶지 않는 나라, 그런 나라가 되고 말 것입니다. 이것이 나라가 망하는 것입니다. 가정이 그냥 없어지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가정 같지 않는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돈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런 저런 우환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남편과 아내가 하나가 되지 못하고 서로 싸우는 가정, 지옥 같은 가정, 그것은 가정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너무도 분명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어떤 곳입니까? 거룩함을 지향하는 곳이 바로 교회이지 않습니까? 하나님 나라의 전초기지 혹은 하나님 나라의 모델이라고 하는 곳이 바로 교회인데 그 교회도 마찬가지로 분열하고 나누어지게 되면, 서로 싸우고 시끄러우면 망하고 맙니다. 그런 교회는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교회가 없어집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교회같지 않은 교회가 됩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서로 물고 다투고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한국의 상당히 많은 초대형 교회들이 망해가고 있습니다. 일류였던 교회가 이류가 되고, 이류에서 삼류가 되는 교회가 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그 교회의 지도자들이 서로 물고 뜯고 싸우기 때문입니다. 목사님 말씀이 못해서가 아닙니다. 요즘 목사님 말씀은 다 똑같습니다. 인터넷만 들어가면 온갖 목사님의 설교가 나오기 때문에 다 좋습니다. 저만 좀 모자란 것 같습니다. 목사님 말씀이 모자라서 교회가 잘못 되는 예는 없습니다. 돈이 모자라서, 교인들이 없어서 잘못되는 예도 없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싸우면 그렇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 더 확실하게 알 것이 있습니다. 나라를 망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고, 가정을 망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우선 보기는 괜찮게 사는 것 같습니다. 망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반드시 망합니다. 더 빨리 망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식까지 망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나라를 망하게 하고, 자기만 이민 가서 잘산다고 한들 잘 살 것 같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하늘 끝까지 가서 찾아내십니다. 하나님께서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당신의 말씀을 반드시 이루고야 마십니다. 이기주의자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결국 자기 파괴라고 말합니다.

시어른을 잘 모시는 것은 참 쉽지 않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런 얘기를 하면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저는 말하겠습니다. 목사가 이런 말을 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습니까? 교회에서 듣기 좋은 말만 하면 그 곳이 교회입니까? 그래서 제가 한 마디 하려고 합니다. 시부모님들 생각하지 아니하고, 시부모님들 잘 모시려고 생각하지 아니하고 내 남편, 내 자식들만 잘 챙기는 사람은 우선은 잘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결국 자기 남편을 망하게 하고, 자기 자식을 망하게 합니다. 귀 있는 사람들은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요즘 회사 기밀을 다른 데 빼돌리는 사람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우선은 참 좋을 것입니다. 천문학적인 돈을 벌기도 하고 좋은 직급으로 옮겨가기 때문에 참 좋게 보입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망하고 맙니다. 반드시 망합니다. 하나님 눈으로 보아야합니다. 우리는 한 면밖에, 일시적인 것밖에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 눈으로 멀리 보시고 전체를 보십시오. 반드시 망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대중가요 가사를 한 번 들어보십시오.

‘깊은 산 오솔길 옆 작으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지만
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세월이 지나가니까 아무 것도 살지 못하지만 옛날에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깊은 산 작은 연못 어느 맑은 여름날 
연못 속에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위에 떠오르고 

그 물 위에 떠오른 붕어의 여린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 속에는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

서로 싸워서 이긴 그 놈도 죽어서 물위에 떠오르고 말았습니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작으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죠.’

대중가요를 쓰는 사람이 쓴 글인데 참 잘 썼습니다. 이 천년 전 우리 하나님께서도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만일 서로 물고 물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여러분, 우리가 이 자유를, 이 풍요함을 잃어버려야하겠습니까? 만약 잃어버린다면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만약 그 아름답고 맑고 깨끗하던 연못이 아무것도 살지 못하는 연못이 된다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입니까? 그런데 여러분, 망하지 않는 길이 있습니다. 받은 자유를 계속 누리고 받은 복, 받은 풍요를 계속 누리고 더 받아 누릴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이는 틀림없는 길입니다. 

누군가 하나님은 가끔 빵 대신 벽돌을 던져주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원망하면서 그 벽돌을 차다가 발가락 하나가 부러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 벽돌을 주춧돌로 삼아 기막힌 집을 짓기도 한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자기 일을, 자기의 길을 스스로 선택합니다. 우리 길도 우리가 선택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길을 선택하겠습니까? 받은 자유, 박은 복, 받은 풍요를 육체의 기회로 삼으시겠습니까? 아니면 섬기는 기회로 삼으시겠습니까? 여러분은 나라도 사회도 가정도 교회도 망하게 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흥하게 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우리의 소원은 확실합니다. 그러나 내가 소원만 한다고 그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다시 들으십시오.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하나님은 오늘 여러분들에게 여러분이 사랑의 종이 되시기를 소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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